거스 히딩크 감독 재부임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난 데 없이 거스 히딩크 감독이 등장했다. 한국의 2018 러시아월드컵 진출이 확정된 뒤 은 히딩크 측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히딩크 감독이 지난 6월 슈틸리케 감독 퇴임 이후 한국 국민들이 원한다면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을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전했다. 한국이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는 성공했다고 하지만 경기력이 실망스러웠던 상황에서 전국민적인 영웅 히딩크 감독의 발언까지 더해져 파장은 상당히 커지는 것 같다. 아직도 우리는 2002년 한일월드컵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히딩크 감독이 돌아와 한국 축구를 또 다시 월드컵의 중심으로 이끌어달라는 기대도 생겨나고 있다.

지도자 인생 건 신태용에 대한 예의는?

하지만 이런 일은 현실적으로도 일어나기 어렵고 일어나서도 안 된다. 일단 보도 시기 자체가 의아하다. 월드컵 본선 진출이 채 확정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지난 6월 발언이 ‘단독보도’ 형태로 나오는 건 신태용 감독 흔들기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대업을 달성하고 이제 막 샴페인을 터트리려는 상황에서 전국민의 영웅 히딩크 감독을 등판시켜 대표팀 감독직을 흔드는 건 그리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적어도 하루 정도는 대표팀의 성과에 축하를 보내는 게 먼저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자마자 히딩크 감독이 언급되는 건 시기적으로 안타깝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는데 합격 통지서를 받은 날 입영 통지서를 받는 것만큼 씁쓸한 일이다.

이건 어려운 상황에서 지도자 인생 전부를 걸고 도전한 신태용 감독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경기력은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우리가 신태용 감독에게 원한 건 이란전, 우즈베키스탄전 두 경기를 통해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태용 감독은 두 경기를 모두 비기며 위기의 한국 대표팀을 구해냈다. 다들 ‘안 한다’, ‘못 한다’고 하며 피하던 자리를 자신의 지도자 인생 전부를 건 도박이었다. 그런데 딱 원하는 성과가 나오자마자 신태용 감독을 흔드는 건 상당히 아쉽다. 축하와 존경의 박수를 보내지 못할망정 이 시기에 대표팀 감독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물에 빠진 놈 구해줬더니 구해준 은인을 물에 빠트리려고 한다.

신태용 감독의 이번 두 경기가 만족스럽지 못했던 건 사실이다. 나 역시 이런 경기력으로는 월드컵에서 제대로 된 성적을 낼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복잡한 경우의 수를 따져야 했고 지지 않는 경기를 해야 했다. 앞선 칼럼에서 신태용 감독의 수비적인 경기 운영을 지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신태용 감독은 단 한 골도 실점하지 않고 위태로웠던 한국을 본선 무대에까지 올려놓았으니 이것도 성공이라면 성공이다. 이 두 경기만으로 신태용 감독의 철학과 전술을 논해서는 안 된다. 두 경기에서 시원한 공격력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또 다시 감독을 갈아치울 만큼 신태용 감독은 무능력하지 않다. 단지 경기 운영을 해야 하는 상황이 그랬던 거다.

신태용 감독은 위기의 한국 축구를 구해냈다. ⓒ프로축구연맹

신태용 감독은 패장이 아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수비적일 수밖에 없었던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신태용 감독에게는 당연히 모두 한 경기도 치르지 않아 승점 0점, 득점0, 실점0의 동등한 상황에서 월드컵 본선 무대에 도전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의 지도력을 평가해야 하지 최근 두 경기만으로 신태용 감독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아직 그는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단 한 경기도 치르지 않은 감독이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올랐어도 실망스러운 경기력에 머물렀다고 계속 질타하는 이들도 있지만 우리의 목표는 시원한 경기력보다는 답답하더라도 월드컵에 가는 것이었다. 신태용 감독이 단 두 경기 만에 대표팀에서 나가고 그 자리를 과거의 영광을 누리는 감독이 채워서는 안 된다.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된 뒤 헹가래도 논란이 되는 것 자체가 아쉽다. 선수들이 우즈벡을 이기지도 못했는데 월드컵 진출이 확정됐다고 감독을 헹가래 했다는 게 논란이다. 하지만 우리의 단기적인 목표는 우즈벡을 이기는 것이었을지 몰라도 크게 봐서는 월드컵에 나가는 것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나긴 고생을 해왔고 그 결과 자체로도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어려운 순간 팀을 맡아 월드컵에 올려 놓은 감독을 향해 선수들이 이 정도 예우를 해주는 건 그리 문제가 될 일이 아니다. 대표팀에 대한 여론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부정적이어도 너무 부정적인 것 같다. 신태용 감독은 이 두 경기를 통해 성과를 냈다. 패장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우여곡절 끝에 성과를 낸 감독에 대한 대우가 아쉽다. 일부에서는 그를 패장처럼 대한다.

누구라도 성과를 내면 계속 기회를 얻어야 한다. 신태용 감독이 뻔히 위험한 걸 알면서도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한 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스스로 감독으로서 더 도전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성과를 내지 못했으면 이민까지 가야 할 엄청난 위험부담을 안고도 모험을 해 성과를 냈으니 당연히 보상도 줘야 하고 기회도 더 줘야 한다. 물론 이건 신태용 감독이 대표팀을 수락할 때부터의 약속이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히딩크 감독이 아니라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먼저 대한축구협회에 문의를 해도 신태용 감독을 전적으로 믿어야 한다. 성과를 냈음에도 상황에 따라 사람을 내치고 또 누군가를 데려와 쓰고 버리는 조직에서 헌신하고 충성할 이들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늘 온전히 감독에게 시간을 주고 맡기지 못해 생기는 문제를 지금껏 많이 겪어오지 않았나.

신태용 감독은 위기의 한국 축구를 구해냈다. ⓒ프로축구연맹

이제는 히딩크 감독을 놓아주자

이제는 히딩크 감독을 놓아줬으면 좋겠다. 전국민 누구라도 2002년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 덕분에 행복하지 않은 사람도 없었고 추억 하나쯤 없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15년이나 된 과거에 계속 얽매이지는 않았으면 한다. 설령 히딩크 감독이 대표팀에 부임한다고 하더라도 눈이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지고 거기에 히딩크 감독에 대한 기대치도 엄청나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는 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2002년 월드컵처럼 K리그를 중단하면서까지 대표팀을 합숙시키는 시대도 지났고 준비할 시간도 부족하다. 15년 전 국민 영웅이 2017년에도 회자된다는 건 그만큼 대표팀의 최근 모습이 실망스러웠다는 여론이 꽤 크다는 것 정도로 덮어두자. 그냥 하나의 해프닝 쯤으로 여기자. 이제는 신태용호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나 역시 다가올 월드컵까지는 계속 문제점을 제기할 테지만 신태용호 자체를 흔들고 싶지는 않다. 이제 남은 9개월 동안은 신태용 감독에게 계속 기회를 줘야한다. 무엇보다도 성과를 낸 감독을 한 순간에 내치는 팀은 아주 단기적으로 발전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발전이 없다. 헤어진 여자친구를 자꾸 그리워하며 인스타그램을 몰래 들여다보고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 궁상 맞게 윤종신의 <좋니>나 들으며 눈물 흘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우리 곁에는 또 다른 사랑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제 히딩크 감독을 놓아주고 신태용 감독과 미래를 그리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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