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FC 숙소 앞에 난데 없이 커피 트럭이 등장했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26일 오후 1시. 너무 더워 ‘대프리카’라고 불리는 대구FC 숙소 앞에 뜬금 없이 커피 트럭 한 대가 도착했다. 선수들은 ‘이게 뭔가’ 싶었다. 서로 “이거 누가 시켰어? 네가 시켰어?”라고 묻는 풍경이 펼쳐졌다. 그런데 이 커피 트럭의 정체를 안 선수들은 깜짝 놀라면서 부러워했다. 과연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대구에 시원한 음료가 가득한 이 커피 트럭을 보낸 이는 누구일까.

남자친구 위한 100경기 출전 선물

숙소 생활을 하지 않고 출퇴근을 하는 김선민은 이 시간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다 동료 선수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 방에서 계속 알람이 울려 깼다. 눈을 비비며 대화 내용을 살펴보던 김선민은 깜짝 놀랐다. 숙소에서 같은 방을 쓰는 후배 조귀범이 사진과 함께 글을 하나 올린 것이었다. “선민이형 여자친구가 선수들 고생한다고 이런 선물을 보냈어요.” 사진은 놀라웠다. 숙소 앞에 떡하니 커피 트럭 한 대가 서 있는 것이었다.

잠이 확 깬 김선민은 곧바로 조귀범에게 전화를 했다. “무슨 소리야?” 전혀 감을 잡지 못한 김선민이 묻자 조귀범이 말했다. “형 여자친구가 깜짝 이벤트로 커피 트럭을 보냈어요.” 조귀범과 전화를 끊은 김선민은 여자친구 임은혜 씨(26세)에게 전화를 걸었다. “깜짝 이벤트가 무슨 소리야?”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임은혜 씨는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응, 너 K리그 100경기 출전 기념으로 무슨 선물을 할까 하다가 커피 트럭 보냈어.” 감동한 김선민은 곧바로 숙소로 향했다.

김선민은 지난 23일 강원과의 원정경기를 통해 K리그 통산 100경기 출장을 기록했다. 하지만 큰 이벤트나 그를 조명하는 기사 없이 이 기록은 조용히 넘어갔다. 김선민은 여자친구가 이 기록을 축하하기 위해 이렇게 깜짝 이벤트를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숙소에 도착해 보니 선수들은 커피 트럭 앞에 모여 시원한 커피와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여자친구 짱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대?” “형. 너무 부러워요. 음료수도 잘 마셨어요.” 최고참 황재원은 “여자친구 잘 뒀다”고 했고 최원권 코치도 “부럽다”며 웃었다. 홧김에 음료수만 연이어 세 잔을 마시고 지나간 선수도 있었다.

대구 김선민(왼쪽)은 올 시즌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프로축구연맹

여자친구의 007 작전과 깜짝 이벤트

알고 봤더니 여자친구 임은혜 씨는 2주전부터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보통 기념이 될 만한 경기를 하면 여자친구들이 인형 모형의 케이크를 선물하더라고요. 그런데 선민이는 그런 거는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 같고 조금 더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커피 트럭이었죠.” 임은혜 씨는 남자친구에게는 철저히 비밀로 하고 김선민의 룸메이트인 조귀범에게 몰래 연락해 구단 일정을 살폈다. 언제 숙소로 커피 트럭을 보내야 선수들이 편하게 음료수라도 한 잔 할 수 있을지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한 디데이가 바로 어제(27일) 오후 1시였다. 1시부터 점심을 먹으니 이때부터 선수들에게 커피와 음료를 제공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김선민은 여자친구의 깜짝 이벤트를 보고 감동했다. “너무 감격했어요. 이런 이벤트는 처음입니다. 전혀 생각도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어쩐지 요새 들어 계속 ‘선수단은 몇 명이냐’, ‘숙소에는 누가 사느냐’ 등등을 계속 물어보더라고요. 왜 그런 걸 갑자기 물어보나 했는데 이거 때문에 그런 거였어요.” 생각도 못한 100경기 출장 선물에 김선민은 입이 귀에 걸렸다. 1시부터 3시까지 운영한 커피 트럭 앞에서 선수들은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김선민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임은혜 씨도 깜짝 이벤트를 위해 나름대로 머리를 썼다. “일부러 한 번에 일정이나 숙소 상황 등을 다 물어보면 눈치를 챌까봐 남자친구에게 사흘에 한 번 정도 아주 조금씩 물어봤어요. 끝까지 눈치를 채지 못해 다행이네요.” 임은혜 씨는 이 커피 트럭을 숙소 앞으로 보내기 위해 대구 지역 업체에 10번도 넘게 전화를 했다. 오랜 수고 끝에 성공한 이벤트였고 김선민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이벤트라고 하더라고요. 이 선물을 받고 동료들 앞에서 제 어깨가 굉장히 많이 올라갔어요. 여자친구에게 너무 고맙죠. 감동했습니다.”

대구 김선민(왼쪽)은 올 시즌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프로축구연맹

‘저니맨’ 김선민의 100경기, 그리고 정착

특히나 김선민에게 100경기 출장은 굉장한 의미다. 수원공고 졸업 후 일본 프로축구 가이나레 돗토리에 진출했던 김선민은 이후 예원예술대와 내셔널리그 울산현대미포조선을 거쳐 돌고 돌아 K리그에 입성했다. 울산미포에서는 7경기 연속으로 골을 넣기도 했던 그는 2014년 울산현대에 입단하며 이제는 한 팀에 정착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해 18경기에 나선 그는 이듬해 FC안양으로 임대를 떠나야 했다. 안양에서도 32경기에 나서 6득점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주전으로 도약했지만 2016년 대전으로 또 둥지를 옮겼다.

대전에서도 김선민은 주전으로 활약했다. 30경기에 나서 4골 3도움을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올 시즌을 앞두고 김선민은 또 다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이번 행선지는 대구였다. 이렇게 그는 네 시즌 동안 네 팀을 돌았다. 하지만 그는 특이하게도 이 네 팀에서 모두 주전으로 활약했다. 실력이 없어 팀을 떠났다기보다는 여러 이해관계가 맞물렸다. 그렇게 네 시즌 동안 네 팀을 거치며 이뤄낸 100경기 출장은 그래서 더 의미가 깊다. ‘저니맨’이지만 그는 어느 팀에서건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줬다.

김선민도 이제는 어딘가에 정착하고 싶다. “항상 한 팀에서 오래 뛰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시즌이 끝나면 변수가 생기더라고요.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지만 이제는 한 팀에 정착하고 싶어요.” K리그에서 꽤 자리 잡은 이들이라면 100경기 출장이 큰 의미를 갖지는 않지만 김선민의 100경기는 누구보다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런 김선민은 올 시즌이 끝나면 또 어떤 팀으로 옮길지는 모르지만 이제 한 여자에게 정착할 예정이다. 이번에 깜짝 이벤트로 커피 트럭을 보낸 여자친구 임은혜 씨와 오는 12월 결혼을 한다. 무려 4년 넘게 연애를 한 이 둘은 이제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될 예정이다.

대구 김선민(왼쪽)은 올 시즌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프로축구연맹

커피 트럭은 사랑을 싣고

예비 신부 임은혜 씨는 누구보다도 축구에 대해 잘 안다. 4년 넘게 만나온 예비 신랑이 축구선수일 뿐 아니라 동생도 축구선수이기 때문이다. 임은혜 씨는 FC서울에서 뛰는 임민혁의 친누나다. 김선민이 2013년 일본 팀에서 나와 모교인 수원공고에서 훈련을 하는데 이때 고등학교 1학년이던 수원공고 임민혁을 처음 만났다. “애가 공을 되게 잘 차더라고요. 그때부터 많이 챙겼죠. 데리고 나가서 따로 운동도 하고 그랬어요. 물론 누나가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순수한 마음으로 후배를 챙긴 겁니다.”

임민혁도 성실하고 자상한 선배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스스로 누나와 김선민의 소개를 주선한 것도 임민혁이었다. 임은혜 씨는 김선민이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김선민은 달랐다. “제가 많이 다가갔죠.” 김선민은 진심을 담아 고백했고 결국 4년 넘는 열애 끝에 올 겨울 결혼할 예정이다. 김선민은 경기가 끝나면 ‘축구 전문가’인 예비 신부로부터 늘 조언을 듣는다. “저한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걸 보완해야 하는지 다 충고해줘요. 그리고 축구선수라는 직업에 대해 잘 알아서 이해도 잘해주고 배려도 해주죠.”

이제 K리그에서 100경기에 나선 김선민은 결혼을 앞두고 책임감이 더 커졌다. “안양에서 18경기 동안 승리를 하지 못해 굉장히 힘들었을 때도 여자친구와 신앙의 힘으로 이겨냈어요. 앞으로 유럽이나 해외 진출에 대한 생각보다는 K리그에서 꾸준히 오래 뛰면서 팬들의 기억에 남고 싶어요. 300경기까지는 모르겠고 일단 2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우는 날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이제 가정도 꾸리니 더 책임감 있는 선수가 돼야죠. 오늘 여자친구 덕분에 팀에서 제 위상이 많이 올라갔네요. 제가 여자친구에게 더 잘하겠습니다.” 대구 숙소 앞에 온 커피 트럭은 커피만 싣고 온 게 아니라 사랑까지 듬뿍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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