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는 지난 해 아픔을 완벽하게 씻어냈다. ⓒDUF MEDIA

[스포츠니어스 | 태백=김현회 기자] 딱 1년 전인 지난해 7월 대구대는 각오가 남달랐다. 강원도 태백에서 열린 추계대학연맹전에서 8강 이상의 성과를 내기 위해 미리 20일 전부터 현지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2002년부터 대구대를 지도한 박순태 감독은 황석호와 김은선, 박진포, 유창현 등을 이을 선수를 반드시 배출해 내겠다는 각오도 다졌다. 초당대, 원광디지털대, 제주국제대와 한 조에 속한 대구대는 추계연맹전에 참가하는 팀 가운데 가장 먼저 태백에 도착했을 정도로 열의에 가득 찼다. 대구대는 내심 분위기를 타면 8강 이상의 성적도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믿을 수 없는 대구대의 몰수패

그런데 징조가 좋지 않았다. 첫 경기를 앞두고 AD카드를 제대로 챙기지 않아 다시 숙소에 가 이를 챙겨온 것이다. 대구대 선수들은 부랴부랴 첫 경기가 열리는 태백시 고원구장으로 향했다. 첫 경기 상대인 초당대를 제압하고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경기장에 도착한 뒤 믿을 수 없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선수 등록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이대로는 경기에 나설 수 없습니다.” 대회 운영본부의 날벼락 같은 이야기였다. 미리 제출한 선수 명단과 이날 선수들이 실제로 입고 나온 유니폼의 등번호가 뒤죽박죽이었던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리 없었다. 한두 해 경기를 한 것도 아니고 무려 대구대에서만 14년째 지도자를 하고 있는 박순태 감독이 단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는 대구대의 실수가 맞았다. 학교에서 행정 담당자가 출장을 가 급하게 다른 이가 대회 선수 등록을 대신했는데 이때 문제가 생겼다. 이 상황에서 한 선수가 축구부를 탈퇴했고 이 선수가 빠지면서 선수들의 등록 순서가 하나씩 앞당겨진 것이었다. 그러니 등록 선수의 이름이 맞지 않는 건 당연했다. 대구대는 급하게 수습해 보려했다. 테이프를 가져와 선수들 유니폼에 붙여 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러는 사이 시간은 30분이나 흘렀다.

결국 박순태 감독은 ‘이대로는 경기를 할 수 없겠다’ 싶어 눈물을 머금고 몰수패를 인정해야 했다. 대구대 선수들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경기 준비를 마치고도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초당대와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했다. 결국 대구대는 초당대에 0-3 몰수패를 선언 당했다. 이후 대구대는 2차전 원광디지털대와의 경기에서 1-0으로 이겼지만 두 골 이상 승리가 필요했던 3차전 제주국제대와의 경기에서 무승부에 그치고 말았다. 대구대는 실제로 두 번 싸워 1승 1무를 기록했지만 초당대와의 1차전 몰수패가 결국 발목을 잡았다. 대구대는 한 번도 패하지 않았지만 패한 팀이었다. 야심차게 이 대회를 준비한 대구대는 예선 탈락하며 일찌감치 짐을 싸야했다.

올해 찾아온 뜻밖의 암초

행정 실수로 선수들은 많은 타격을 입었다. 특히 4학년 선수들에게는 너무나도 뼈아픈 몰수패였다. 한 번이라도 더 경기에 나서 프로 구단에 어필하고 성적을 내야 취업이 가능한 4학년 입장에서는 예선 탈락이라는 충격이 상당했다. 박순태 감독은 “행정 실수 때문에 학교에서도 선수들에게 굉장히 미안해 했다”면서 “이런 대회에서 성적 하나 내는 게 취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데 우리는 몰수패로 대회 하나를 날리고 말았다”고 아쉬워했다. 박순태 감독은 “4학년 선수들이 제대로 취업하지 못한 이유 중에 이 몰수패의 영향이 없진 않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몰수패가 전적인 영향이 될 수는 없지만 결국 지난해 대구대는 단 한 명의 프로선수도 배출하지 못했고 내셔널리그에 선수를 보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지난 해 추계연맹전 예선 탈락 이후 대구대는 절치부심했다. 반드시 올해에는 성적을 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올 시즌 U리그 개막을 앞두고 대구대에 또 한 번의 날벼락이 쳤다.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KUSF)가 학점 미달 선수에 대해 리그 출전을 제한하는 규정을 신설했는데 대구대 선수 중 8명이 기준 학점인 C학점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연세대가 28명 중 절반인 14명이 학점 미달로 U리그 불참을 통보한 상황에서 대구대도 심각하게 U리그 불참을 고민해야 했다. 출전 제한에 걸린 선수 부모들의 강한 반발도 있었다. 하지만 대구대는 개막 직전 극적으로 U리그 참가를 결정했다. 박순태 감독은 “선수가 부족해도 어떻게든 한 번 부딪혀 보자”고 했다.

대구대는 8명이 불참하게 된 U리그에서 1학년 선수들을 적극 활용했다. 박순태 감독은 1학년 선수 6명을 주전으로 투입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게 긍정적인 효과로 발휘되기 시작했다. 리그 초반부터 짠물 수비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현재 11경기에서 단 1패만을 경험하며 6승 4무 1패 24득점 9실점의 엄청난 플레이를 보여주게 된 것이다. 박순태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1학년 선수들이 경기에 나서면서 실력이 많이 늘었다. 또한 그러면서 기존 선수들도 긴장하고 경쟁이 붙었다.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 박순태 감독은 그렇게 1년 전 몰수패라는 아픔을 경험했던 추계연맹전을 다시 한 번 준비했다.

초당대와의 경기에서 전반전이 끝난 뒤 선수들에게 전술 주문을 하는 박순태 감독의 모습. ⓒ스포츠니어스

다시 만난 초당대, 완벽히 설욕하다

중간에 에이전트의 유혹으로 외국 진출을 타진하며 팀을 떠난 선수들도 있어 대구대는 단 18명의 선수만으로 대회를 준비해야 했다. 부상자라도 생기면 선수단 운영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을 만큼 선수층은 두텁지 못했다. 하지만 박순태 감독은 선수들을 독려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하자.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은 보여줘야 한다.” 다른 팀이 감독과 코치, 의무 트레이너 등 여러 명이 벤치에 앉는 것과 달리 대구대는 박순태 감독 혼자 벤치를 지켰다. 코치도 없이 박순태 감독 혼자 이끄는 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구대는 1차전에서 한국열린사이버대를 2-0으로 제압한 뒤 2차전 인천대와의 경기에서도 2-0 승리를 따냈다. 두 경기 연속 무실점이었다.

그리고 오늘(21일) 마지막 3차전을 준비했다. 1위 팀만이 32강에 직행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잡아야 하는 중요한 경기였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일까. 대구대의 마지막 상대는 바로 1년 전 이 대회에서 몰수패를 안겼던 초당대였다. 박순태 감독은 1년 만에 태백에서 다시 잊고 싶었던 기억을 떠올려야 했다. 몰수로 인한 0-3 패배라는 1년 전 기억은 대구대와 박순태 감독에게 아픈 추억이었다. 선수들은 경기 전부터 AD카드를 꼼꼼히 챙겼고 학교에서도 선수 등록 문제를 면밀히 살폈다. 그런데 막상 경기가 시작하자 대구대는 딱 1년 전의 수모를 씻는 대단한 플레이를 펼치기 시작했다.

전반 4분 만에 송명근의 첫 골로 달아난 대구대는 전반을 2-0으로 마친 뒤 후반에도 골 폭풍을 이어갔다. 그리고 90분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 점수판에 찍힌 숫자는 놀라웠다. 1년 전 0-3 몰수패를 배로 갚아준 것이다. 6-0 대구대의 대승이었다. 그것도 무려 다섯 명의 선수가 골고루 골을 기록해 더 의미가 컸고 세 경기 10득점 무실점이라는 완벽한 결과여서 더 놀라웠다. 대구대는 1년 만에 치욕의 패배를 완벽히 털어냈다. 박순태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몰수패의 기억을 1년 만에 지울 수 있어 기쁘다. 10득점도 좋고 무실점도 좋다. 오늘은 기쁜 날이다.” 대구대는 이렇게 조1위로 추계연맹전 32강에 안착했다.

10득점 무실점, 대구대의 비상

공격과 수비 모두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지만 박순태 감독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아직도 이번 대회 목표는 8강이다. “우승까지 가겠다는 생각은 현실적으로 할 수가 없어요. 코치 없이 감독 혼자 벤치를 지키고 18명으로 꾸린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다른 학교에서 욕할 겁니다. 8강 정도 가면 좋겠네요. 그런데 8강에 가면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요. 어린 친구들이라 좋은 기운을 받으면 그걸 계속 이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 점에 기대를 하고 있어요. 해볼 때까지는 해봐야죠.” 끔찍했던 1년 전의 기억을 지운 대구대는 이제 무실점이라는 좋은 기운을 계속 이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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