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현대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대한축구협회 신임 기술위원장으로 김호곤 전감독이 선임되자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상당하다. 협회의 돌려막기라는 지적부터 새로운 인물이 아니라는 이유까지 비난 여론은 거세다. 하지만 나는 김호곤 기술위원장 선임은 현 시점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신선하지 못한 인물이라고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욕 먹을 각오를 하고 오늘 내 의견을 전하려 한다. 김호곤 기술위원장이 뭐 어때서 그러나. 이만하면 기술위원장으로 일하기에 충분한 인물이다.

올림픽 8강과 ACL 우승을 모두 이룬 지도자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자. 콧수염이 멋지고 ‘수트빨’이 기가 막히고 인터뷰도 잘하는 젊은 외국인 감독이 있다. 이 젊은 외국인 감독이 한국 올림픽 대표팀을 이끌고 아시아 예선에서 8전 전승 무실점을 기록한 뒤 올림픽 본선 무대에서는 8강에까지 올랐다. 이후 이 젊은 외국인 감독은 한 K리그 팀을 이끌고 3년 만에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랐다. AFC 챔피언스리그 개편 후 첫 무패 우승(12경기 10승 2무)의 엄청난 성적을 냈고 이 젊은 외국인 감독은 그해 AFC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됐다. 수비수로 입단한 선수를 공격수로 포지션을 변경시켰고 이 선수는 국가대표 공격수로 성장했다.

그가 기용한 또 다른 공격수는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4골 7도움을 기록하며 한국 선수로는 무려 21년 만에 AFC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정도면 축구팬과 여론의 엄청난 지지를 받아야 한다. 인맥과 학연, 지연으로 찌든 한국 축구에서 뒷방 노인네(?)들을 몰아낸 외국인 지도자로 대단한 칭송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감독이 콧수염이 멋지고 ‘수트빨’이 기가 막히고 인터뷰도 잘하는 젊은 외국인 감독이 아니라 기성세대 축구인을 대변하는 한국인 할아버지라면 어떨까. 그런데 이거 실화다. 내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 김호곤 감독이다. 뭔가 확 깨나. 젊은 외국인 감독이 한국의 기성 축구인을 몰아내지 못해 아쉽나. 하지만 이건 요새 우리가 좋아하는 말로, 이강이 좋아하는 말로 ‘팩트’다. 한국 축구의 기성세대에 깊은 불신을 가진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진짜다.

나 역시 그가 울산현대에 처음 부임해 이해할 수 없는 영입과 이적, 전술을 구사할 때는 비판적인 칼럼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김호곤 감독은 성적으로 보여줬다. 축구를 글로 배운 이들을 찍 소리도 못하게 해버렸다. 그런데도 여론은 여전히 김호곤 감독, 아니 기술위원장에게 부정적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봐도 이유는 하나뿐이다. 신선하지 못하고 개혁적이지 않은 ‘꼰대’ 이미지가 강해서다. 그런데 대표팀과 리그에서 이 정도 업적을 쌓은 지도자가 푸대접을 받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일까. 앞서 블라인드 테스트처럼 이 감독이 콧수염이 멋지고 ‘수트빨’이 기가 막히고 인터뷰도 잘하는 젊은 외국인 지도자였어도 이런 반응이었을까. 김호곤 기술위원장은 지도자로 쌓은 경력과 업적에 비해 유난히도 부정적인 시선이 많은 인물이다.

원래 수비수였던 김신욱은 김호곤 감독과 함께 하며 공격수로 전향해 국가대표로까지 발돋움했다. ⓒ울산현대

김호곤 반대한다면 그 대안은?

이런 지도자가 아니면 기술위원장에 오를 만한 인물은 국내에 몇 없다. 더군다나 기술위원장은 현장 경험과 행정에서 모두 능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김호곤 기술위원장을 반대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를 이 자리에 앉히고 싶은가. 혹시 떠오르는 인물이 있나. 아니면 그냥 김호곤 기술위원장의 ‘꼰대’ 이미지가 싫어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건 아닌가. 반대 의견도 존중하지만 반대를 하려면 그에 따른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 나는 현재 기술위원장을 할 정도의 경험을 갖춘 지도자는 김호곤과 김학범 감독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지도자 경험이 없고 행정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영표나 박지성을 앉혀 놓으면 만족할 텐가. 현재 협회가 갖춘 인력 안에서 김호곤 기술위원장은 그래도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안타까운 건 김호곤 기술위원장 선임이 아니라 이제는 지도자로 꽃을 피워야 할 국내 40대 지도자들이 매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성장이었더라면 홍명보, 황선홍, 서정원, 최진철 등 40대 지도자들이 지금쯤 눈부신 성과를 내 기성 축구인들의 자리를 차지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 같이 실패를 맛보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기회가 적게 주어진 것도 아니다. 이들은 K리그 빅클럽 감독도 했고 국가대표 감독도 했다. 이들 중 누군가는 지도력을 발휘해 김호곤, 허정무, 김정남, 최순호 등이 돌려 먹는 그 자리를 뺏었어야 하는데 지금껏 뭘 보여줬나. 이게 과연 김호곤 기술위원장 잘못인가. 아니면 이 ‘꼰대’보다도 나을 게 전혀 없는 우리 젊은 축구 지도자의 잘못인가.

대표팀 토너먼트에서 8강에 가고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도 먹어보고 하면 하지 말라고 해도 다들 기술위원장에 앉혀 준다. 60대 감독이 ‘철퇴 축구’도 했는데 40대 감독들은 스리백이랍시고 꽁무니 빼고 수비수 5명씩 박아놓고 축구하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김호곤 기술위원장 선임에 대해 우려를 표할 게 아니라 이 점을 걱정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 같이 식상한 인물이라고 김호곤 기술위원장을 비판하고 있다. 무능력한 아버지와 삼촌들이 돈도 못 벌어 오는데 할아버지가 아직도 뼈 빠지게 열심히 일해 먹여 살리고 있으면 그 할아버지가 욕을 먹어야 하나. 아니면 아버지와 삼촌들을 걱정해야 하나. 우리는 지금 그 나이에도 일하는 할아버지를 욕하고 있다. 더군다나 기술위원장은 그냥 지도자로 성적 좀 냈다고 앉는 자리가 아니라 경험도 무척 중요하다. 김호곤 기술위원장이 손가락질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원래 수비수였던 김신욱은 김호곤 감독과 함께 하며 공격수로 전향해 국가대표로까지 발돋움했다. ⓒ울산현대

김호곤이 어때서?

혁신을 해야 할 때가 있고 안정을 취해야 할 때가 있다. 지금 축구계는 절대적으로 안정을 취해야 한다. 두 달 안에 월드컵 본선 진출 여부가 결정 나는 시점에서 축구계를 갈아 엎을 수는 없다. 지금은 경험 많은 기술위원장과 조금은 식상해도 경험이 풍부한 대표팀 감독이 팀을 바짝 올려놓아야 한다. 혁신과 개혁은 그 다음 문제다. 월드컵 본선에 나가건 못나가건 그 여부가 결정되면 4년, 5년 뒤를 내다보고 개혁을 칼을 빼야한다. 그때 가선 더 혁신적인 인물에 자리에 앉아도 좋다. 하지만 위급한 이 상황에서는 현재 가동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력을 가동해야 하고 김호곤 기술위원장은 충분히 그럴 능력을 갖춘 인물이다. 식상한 구시대적 인물이라고 조건반사적인 비난을 해서는 안 된다. 올림픽 8강과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모두 이뤄내고도 욕 먹는 인물이 전세계에 또 있을까.

나는 김호곤 기술위원장이 혹시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가감 없이 비판할 것이다. K리그 감독을 대표팀으로 빼가거나 능력 없는 인물을 대표팀 지도자로 선임한다면 그런 선택에 대해서는 당연히 쓴소리를 할 것이다. 하지만 김호곤 기술위원장 선임 자체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 혹시 대표팀이 원하는 성적을 내지 못한다고 해도 지금은 그의 선임이 현실적으로 가장 옳은 방법이다. 김호곤 기술위원장 선임에 반대한다면 그게 단순히 ‘꼰대’ 이미지가 강한 축구인에 대한 거부감은 아닌지, 정말 그렇지 않다면 어떤 대안이 있는지도 제시해야 한다. 왜 김호곤 기술위원장이 문제인가. 이 정도면 충분히 납득 가능한 인사였고 지금은 온전히 대표팀에 힘을 실어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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