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우리에게 효창운동장은 어떤 의미일까?

사실 효창운동장의 입지는 여느 경기장 못지 않다. 오히려 더 우월하다. 서울시의 중심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외진 곳은 아니다. 서울역과 용산역 사이 주거단지와 캠퍼스들 속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 효창운동장이다. 이곳이 수십 년 전 한국 축구의 역사가 만들어졌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낡고 열악한 시설들은 이 경기장의 나이를 설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이곳에서는 조용히 한국 축구의 역사들이 쓰여지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축구 경기가 많은 곳이 아마 효창운동장일 것이다. 수없이 많은 아마추어 경기가 이곳에서 열리고 있고 WK리그 서울시청의 홈 구장이기도 하다. 과거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효창이지만 이곳은 어김없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효창운동장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경기는 축구팬이 쉽게 찾아가기 어렵다. 평일 낮 또는 주말 오전에 많은 경기가 열린다. 직장이나 학교를 다니는 팬들이 찾기 쉽지 않다. 게다가 주말에는 K리그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로 인해 효창은 다른 축구장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신선한 광경을 만들어낸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은 노인들이다. 하지만 군데군데 외국인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선수 또는 관계자와 일면식도 없이 효창을 찾는 팬들의 대부분은 노인 또는 외국인일 것이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신 만의 축구를 즐기고 있다. 무엇을 하든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효창은 일종의 '축구 해방구'다.

한국의 노인들과 외국의 젊은이들이 뒤섞여 있는 광경은 이질적이다. 우리가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하지만 효창운동장은 알고보면 축구팬에게 최고의 가성비를 지닌 핫 플레이스다. 무료로 몇 경기의 축구를 관람할 수 있고 관중석으로 가는 입구에는 K리그 못지 않게 잘 갖춰진 매점이 있다.

잉글랜드에서 한국으로 온 알라스테어 역시 이 매력에 끌려 효창을 찾는다. "저는 낙성대에 살고 있어요. 효창과는 약간 멀죠. 하지만 일이 없는 날에는 이곳을 자주 찾아요. 친구들과 함께 맥주 한 잔 하면서 시간 보내기 굉장히 좋아요. 요즘은 날씨도 좋아서 구경하기 정말 좋네요."

함께 따라온 그의 친구 제이미는 스코틀랜드 사람이다. 한국에 사는 친구의 결혼식에 오고자 한국을 방문했다가 친구의 손에 붙들려 이곳까지 끌려왔다. 한국 관광 대신 끌려온 축구장에 불만을 가질 법도 했지만 그는 꽤 즐거워 보인다. 심지어 그는 이곳을 찾은 지소연을 알아보기도 했다. "저 선수 혹시 첼시에서 뛰고 있지 않아요? 여자 챔피언스리그에서 봤어요."

이 두 사람은 효창의 매력을 '조용하고 아기자기하다'고 표현한다. 특히 알라스테어는 효창의 역사를 꿰뚫고 있다. "과거 이곳이 한국 국가대표팀 경기장이었잖아요? 옛 유적지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도심 속의 조용한 공원 같아요. 트랙이 있지만 축구가 잘 보여요. 게다가 이곳은 올 때마다 축구 경기를 볼 수 있어요."

이들처럼 친구들과 함께 온 외국인이 있는 반면 혼자서 조용히 그라운드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외국인도 있다. 미국에서 온 짐은 벌써 한국 6년 차다. 하지만 WK리그를 본 것은 이제 2년 째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여러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어요. 특히 여성 스포츠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요. 처음에는 배구 V-리그 여자부를 보기 시작했는데 우연히 WK리그를 알게 된 이후 자주 이곳을 찾고 있죠."

아직 그는 WK리그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고 말한다. 지역 연고제가 정착되고 있지만 관중들을 위한 편의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에 경주 여행을 갔다가 경주 한수원 팀의 경기를 봤어요. 깜짝 놀랐어요. 스코어도 알 수 없었고 지금이 후반 몇 분인지도 알 수 없었어요. 이런 점은 굉장히 아쉽죠." 알고보니 WK리그를 보러 경주까지 간 마니아다.

이들 외에도 여러 명의 외국인들이 효창운동장에 모여 있었다. 날이 더우면 지붕 밑에서, 날이 시원하면 한적한 곳에 앉아 축구를 본다. 잠시 들렀다 가는 사람도 있고 끝까지 이곳을 지키는 외국인도 있다. 이태원, 용산 등 외국인 밀집 지역과 가까운 지리적 환경 덕분에 효창은 의외로 많은 외국인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저 효창을 옛 추억을 더듬는 곳으로만 치부하면 아쉽다. 분명 효창운동장은 아직도 한국 축구를 위해 살아 숨쉬고 있고 부지런히 한국 축구의 미래를 만들고 있었다. 그곳에 대한 관심이 많을 때도 적을 때도 효창운동장은 묵묵히 자신이 할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달라진 것은 우리의 시선 아닐까.

단순히 낡고 열악하다는 이유로 효창운동장을 '옛날 운동장'이라고 생각하면 안될 것이다. 분명 누구에게는 이곳이 핫플레이스고 또다른 사교의 장이다. 손주 뻘의 축구를 보며 즐거워하는 노인들, 그리고 축구에 대한 갈증을 마음껏 풀기 위해 이곳을 찾는 외국인들이 있기에 효창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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