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다 이란이 훨씬 더 강하다. ⓒ이란축구협회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살다 살다 카타르가 한 경기에서 세 골씩이나 넣는 건 처음 봤다. 카타르가 이기고 있는데도 침대 축구도 안하고 페어플레이 하는 것도 처음 봤다. 그리고 카타르가 한국을 이긴 것도 처음 봤다. 1984년 이후 카타르에 당한 첫 패배다. 충격적인 일이다. 한국이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카타르와의 원정경기에서 당한 2-3 패배는 분노할 정도로 형편없는 경기였다. 이란은 벌써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어 놓고 팝콘을 먹으며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데 우리는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다. 카타르전 패배는 경악스러운 수준이다.

이쯤 되면 ‘동네북’이다. 살다 살다 카타르한테 지는 꼴을 볼 줄은 몰랐다. 일단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전술과 지휘 능력은 더 이상 가망이 없어 보인다. 나는 끝까지 슈틸리케 감독을 믿자고 주장했지만 이제 그가 경질 당해도 할 말이 없다. 이라크와의 경기에서도 유효 슈팅 하나 날리지 못할 정도로 경기력은 형편없었고 카타르에는 굴욕을 당하며 졌다.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원정 네 경기에서 1무 3패다. 아무리 월드컵 본선 진출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해도 원정에서 이 정도 성적을 내고 월드컵 본선 진출을 바란다는 건 너무 이기적인 일이다. 심지어 단 한 번 비긴 경기도 시리아와의 말레이시아 중립 경기였다. 한 마디로 한국은 축구를 못한다는 거다.

하지만 나는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슈틸리케 감독만이 비판의 대상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대일 돌파는커녕 기본적인 볼 트래핑도 못하는 선수들을 데리고 그 어떤 감독이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 나는 이런 대참사에 대해 선수들도 강도 높은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프라는 발전하고 선수들에 대한 대우도 과거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좋아졌는데 경기력은 쌍팔년도 수준보다도 훨씬 더 떨어졌다. 아직도 한국 선수들의 기량은 대단히 뛰어난데 외국인 감독 한 명이 와서 다 망쳐 놓았다고 생각하나. 그러면 마음은 편할 테고 또 새로운 감독이 오면 잠깐 희망을 품겠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다. 일단 선수들의 기량과 자세가 개판 오분전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감독이 와도 변할 게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도 있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선수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축구 좀 한다고 군대까지 빼주고 해외에 나가서 천문학적인 돈도 벌게 해줬다. 그리고 설령 군대에 간다고 해도 일반 사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특급 대우도 해준다. 말이 군대지 합숙 훈련하는 프로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회 정서 때문에 해외에서 이적 제안 오면 구단이 거절도 못하고 선수를 헐값에라도 해외에 보내준다. 국내에 있어도 좋은 전용경기장 천연 잔디 위에서 공을 찬다. 남들은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돈을 연봉이랍시고 받고 마치 슈퍼스타라도 된양 팬들이 몰린다. 세상 참 편하다. 공 좀 찬다고 이런 대우를 해주니 뭐 남부러울 게 없다. 중국에서는 연봉을 수십억 원씩 부르니 지들 잘난 줄 안다.

하지만 이거 다 거품이다. 그냥 세상이 너무 좋아진 거고 딱 이 타이밍에 축구선수로 태극마크를 단 거다. 선배들은 우리나라에 프로팀이 6개 있을 때도 월드컵에 나갔고 떡잔디에 녹색 페인트 뿌려서 축구할 때도 월드컵에는 나갔다. 서정원은 바르셀로나에서 이적 제안이 왔는데도 구단에서 “안 보내준다”고 한마디 해 못 갔고 최순호도 유벤투스에서 영입하고 싶어했지만 구단에서 거절해 국내에 남았다. 그래도 이 우물 안 개구리(?)들은 아시아를 때려 부수고 월드컵에 진출했다. 중국? 그냥 승점 깔고 가는 나라였고 카타르는 불과 5년 전에도 우리가 원정에서 4-1로 가지고 놀았다. 최악의 조건에서도 선배들은 그렇게 성과를 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툭하면 해외파니 프로선수니 하는데 카타르한테도 지는 걸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껏 선수들을 너무 오냐오냐 했다. 선수들이 경기를 못하면 감독 탓만 했다. 슈틸리케도 그렇고 홍명보도 그렇고 모든 책임을 혼자 다 떠안았다. 그러는 사이 선수들은 아주 좋은 대우를 받으며 떵떵거렸지만 실력은 점점 추락했다. 툭 까놓고 이야기해보자. 최근 A매치 경기에서 ‘역시’라는 감탄사를 자아냈던 선수가 누가 있나. 환경은 훨씬 좋아졌고 선수들의 어깨는 더 올라갔는데 경기력은 처참한 수준이다. 더 황당한 사실을 하나 더 알려줄까. 카타르가 이번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6골을 넣었는데 그 중 5골이 한국을 상대로 넣은 거다. 이 정도면 창피해서 고개를 들지 못해야 한다. 슈퍼스타들인양 건방떨지 말라는 거다.

슈틸리케호의 경기력은 최악이다. ⓒ jtbc 방송화면 캡쳐

예전 이야기 꺼내면서 “요즘 애들은 참 편하게 산다”고 하는 나를 ‘꼰대’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를 ‘꼰대’라고 치부하려면 요즘 애들이 예전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면 된다. 하지만 어떤가. 이번 카타르전 충격패 뿐만 아니라 한국은 여기저기에서 ‘동네북’처럼 쥐어 터지고 다닌다. 그래놓고 선수들은 모든 책임을 떠안는 감독 뒤에 숨어버린다. 슈틸리케 감독의 전술도 당연히 비판받아야 하고 이제는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을 만큼 신뢰를 상실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지만 90분 동안 경기장에서 한숨만 나올 정도의 경기력에 머문 선수들도 호되게 꾸짖어야 한다. 심지어 이 선수들은 리그까지 멈추고 조기 소집돼 발을 맞췄다. 그래도 이 정도 수준이라는 건 심각하다.

최근 15년 동안 거쳐간 대표팀 감독이 몇 명이었을까. 감독대행을 포함해 무려 14명의 감독이 거쳐갔다. 그런데도 이 모양 이 꼴이라는 건 선수들의 수준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학생들이 공부를 못하는데 담임선생님만 계속 바꾼다고 뭐가 달라질까. 감독이 문제가 아니라 선수의 문제 아닐까. 그래도 선배들은 공한증도 유지하고 월드컵 본선에도 나가면서 꾸역꾸역 자존심이라도 지켰다. 그런데 요즘 대표팀 선수들은 어떤가. 아무리 중국 축구가 성장했다고 하더라도 중국에 쥐어 터지고 시리아한테는 제3국에서도 비겼다. 살다 살다 카타르한테 세 골이나 먹힌 대표팀은 본 적도 없다. 이래 놓고도 무슨 월드컵을 바라나. 카타르한테도 지면 월드컵 본선 진출 자격은 없다. 이란이 우즈벡을 잡으며 도와줘도 우리는 여전히 월드컵 본선 진출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이번 패배가 또 다시 슈틸리케 감독의 전적인 책임으로 돌아가지 않길 바란다. 선수들을 호되게 꾸짖는 시간이어야 한다. “축구장에 물 채우라”던 때의 극단적인 비판이 나와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과거보다 축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훨씬 더 좋아졌고 대우도 나아졌다. 국가대표 선수가 되면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스타 대접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런데 당신들은 지금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한 자격이 과연 있는가. 웃기지 마시라. 그냥 세상이 좋아졌고 그 타이밍에 잘 맞게 국가대표가 돼 인기를 얻은 것뿐이다. 비인기종목 선수가 될 수도 있었는데 재수 좋게 학교에 축구부가 있어서 축구선수가 된 걸 수도 있다. 지금 위치가 대단하다고 착각하지 말고 정말 대단한 경기력을 보여 달라. 이번 졸전의 상당 부분 책임은 선수들에게 있다. 부디 당신들이 선배들이 어렵게 이뤄 놓은 월드컵 8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성과에 흠집을 내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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