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와 니폼니시 감독이 만났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부천=김현회 기자] 부천SK를 이끌고 ‘니포축구’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이 다시 부천 팬들과 만났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부천SK 축구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그는 지난 8일 입국해 한국 축구와 부천 축구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공개했다. 그는 여전히 한국 축구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부터 니폼니시 감독과의 대화 내용을 공개한다.

반갑다. 한국에 온 소감은 어떤가.

올때마다 항상 그렇듯 내가 좋아하는 나라에 와 반갑고 좋다. 오면 한국 분들이 나를 굉장히 따듯하게 맞아주셔서 기분이 좋다. 이번에는 나흘 간의 짧은 방문이라 아쉽지만 이 기간 동안 좋은 친구들도 만나고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부천 구단에서 직접 과거 당신의 러시아 구단으로 편지를 보내 초청한 걸로 안다.

부천FC 창단 10주년 기념으로 나를 초대해 줬다. 주저않지 않고 당연히 흔쾌하게 방문을 결정했다. 나를 기억하고 있는 팬들의 부름으로 생각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이렇게 시간을 내 왔다는 게 내 기분에 대한 대답 아닐까. 내 과거 축구에 대해 여전히 기억해 주시는 분들게 감사드린다.

오랜 만에 한국에 왔는데 어떤가.

가족들도 한국을 너무 좋아한다. 예전에는 딸과 함께 한국에 왔는데 지금은 딸의 딸과 손을 잡고 한국에 방문했다. 내 손녀가 10살인데 한국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서 할아버지인 나와 함께 왔다. 어제 나한테 무슨 말은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더라. 알고 봤더니 한국 아이돌 가수 ‘방탄소년단’이었다. 10살 된 러시아 소녀가 한국 아이돌 그룹을 잘 알고 있어 나도 깜짝 놀랐다.

당신이 유명하다는 사실은 손녀도 알고 있나.

어제(9일) 처음 알았다.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경기 일정 현수막에 할아버지 얼굴 사진이 있는 걸 발견한 것이다. 같이 만나는 사람들이 다 할아버지에게 잘 대해주니까 손녀가 놀라는 중이다.

‘니폼니시의 아이들’이라고 윤정환을 비롯해 조성환, 김기동, 강철, 이임생, 남기일 등 많은 제자들이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제자들 소식은 자주 접하나.

당시 코치진과는 항상 연락이 닿았다. 그리고 그때 선수였던 이들도 이제 감독으로 옮겨갔다는 것도 당연히 알고 있다. 내 아들 같은 이들이다. 한 번 세어보니 내 제자 중 지도자가 된 이만 15명에 이르더라. 제자들이 또 다른 어린 친구들을 지도한다는 것 자체가 내 입장에서는 너무 기분이 좋은 일이다.

그 중에서 혹시 선수 시절부터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보였던 이들도 있나.

당시에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과 대화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일대일로 불러 면담을 해도 속마음을 전혀 이야기해주지 않으니 그게 좀 힘들었다. 그 상황 속에서도 그나마 몇 마디 하는 선수들이 있었는데 당신의 질문에 답을 하자면 자기 의견을 이야기했던 그 선수들이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보였던 게 아닐까. 윤정환과 이임생, 김기동, 송선호 등이 그런 선수들이었다. 같이 축구에 대해서는 이런 활발한 대화가 필요한데 한국 선수들은 그런 자세가 부족했다.

당시 부천SK의 추억을 좀 떠올려 보자.

좋았던 추억과 안 좋은 추억이 공존한다.

안 좋았던 추억은 뭔가.

무승부만 해도 리그 챔피언이 될 수 있었던 경기였는데 이 경기를 패해 우승을 놓쳤던 건 가장 아쉬웠던 기억이다.

당신의 팀이 단 한 번도 리그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좋았던 기억은 어떤 건가.

아디다스컵에서 우승했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어느 한 장면보다는 관중이 점점 늘어나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는 게 가장 행복했다. 처음에는 동대문운동장에서 경기를 했는데 그 다음 목동운동장으로 홈 경기장을 옮겼다. 그래도 동대문운동장은 주변 교통이 좋아 오가는 사람이 한 번씩 들를 수 있는 곳이지만 목동운동장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하철역도 가깝지 않았고 접근성도 좋지 않았다. 그때는 수원삼성 팬들이 경기장 한 면을 푸른색으로 가득 채울 정도로 열기가 대단했는데 썰렁했던 우리 경기장도 경기력이 좋아지니 조금씩 팬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게 가장 인상에 남는다.

그 당시 동대문운동장은 이제 사라졌다.

그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거기에서 2년 넘게 경기를 했는데 경기장이 사라진 건 아쉬운 일이다.

그때 승점 자판기였던 전북은 이제 K리그 1강이 됐다. 어색하지 않나.

그런가. 당시 전북은 우리가 두 명이 퇴장당하고 9명이 싸워서도 3-0으로 이긴 적이 있다. 예전에는 많이 약했던 팀이다.

부천 팬들은 열정적이기로 유명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에 남는 건 내가 한국을 떠나는 날 김포공항으로 팬들이 배웅을 나왔을 때였다. 그 장면은 잊을 수 없다. 한국과 부천은 이렇게 나에게 기분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이다.

오랜 만에 예전 팬들과 다시 만나 회포를 좀 풀었나.

어제 만나서 ‘치맥’을 즐겼다. 기분 좋은 자리였다. 그때는 어렸던 팬들이 지금은 다 어른이 돼 있더라. 예전을 기억하는 일은 늘 기분이 좋다. 항상 과거에만 살 수는 없고 내가 아무리 지금은 노인이 돼 있어도 내일이 있다. 지금 우리가 추억을 나누는 것도 팬들과 여기 있는 구단 사람들 모두 팀이 성장해 나가길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부천FC는 니폼니시 감독을 반겼다. ⓒ부천FC

당시 ‘니포 축구’는 지금도 K리그 역사에 남아있다. ‘니포 축구’라는 건 정확히 어떤 거였나.

혹시 바르셀로나 경기를 보나. 그 경기를 보면 마음에 드나. 내가 항상 추구했던 축구가 바로 그거였다. 선수들이 그렇게 공을 찼으면 좋겠다. 팀이 일단 공을 소유해야 하고 그걸 창의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 지역에 머물지 않고 용감하게 상대 지역으로 넘어가 그 공이 움직이게 하는 게 내가 원하는 축구다. 지금 현대축구는 더 빨라졌고 촘촘해졌다. 틈이 없다. 공을 소유하려면 개인적인 기술이 필요하고 팀 플레이가 있어야 한다. 항상 선수들에게 상대방 골대 쪽에서 행운을 찾으라고 했다. 그리고 공격을 할 때는 공격수 두세 명만 공격을 하는 게 아니라 팀 전체가 공격을 하는 거라고 주문했다.

부천 정갑석 감독도 만나봤나.

경기가 잘 안 풀리는데 그 원인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당황스럽다. 어제 정갑석 감독과 단둘이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그는 부천의 문제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 이 사실은 반가운 점이다. 그에 대한 해결책도 여러 가지를 가지고 있더라.

그렇다면 당신은 부천 선수들에게 어떤 점을 강조하고 싶나.

어제 부천 선수들과 미팅 시간이 있었다. 내가 선수들에게 그 자리에서 강조한 건 ‘나를 위한 축구’를 하지 말자는 거였다. 축구는 관중석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거다. 극단적으로 생각해보자. 11명의 선수가 아무리 좋은 선수여도 관중석에 아무도 없으면 무슨 좋은 축구를 할 수 있겠나. 눈앞에 관중이 보여야 한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도 해보자. 팬들은 무슨 흥미가 있어야 돈을 지불하고 경기장에 온다. 그래야 선수들은 돈을 받을 수 있다. 팬들을 위한 축구를 해야겠다고 선수들이 자각해야 하는 이유다.

K리그에는 현재 외국인 감독이 단 한 명도 없다. 당신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복잡한 문제다. 한국 축구를 위해서 외국인 감독이 무조건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런데 나도 외국인이다. 내국인 감독보다 외국인 감독이 일하기가 더 어려운 부분도 있다. 하지만 외국인 지도자는 한국 지도자가 갖는 스트레스에서 더 자유롭다. 역설적인 답변이 된 거 같기도 하다. 내 제자들이 K리그에서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게 문제가 있다면 내가 나쁜 제자들을 배출시킨 게 되질 않나. 우리 제자들이 부족하다면 나를 꾸중해 달라.

한국 축구와 K리그에 대해 평가하자면.

나는 부천에서 4년 동안 일을 했는데 매년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 그 발전을 한 끝에 내가 떠난 뒤에는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준결승 진출이라는 성과도 냈다. 그런데 한 번 정점을 찍으면 후유증이 있고 하락세를 탈 수밖에 없다. 항상 상승 곡선만 그릴 수는 없는 거다. 축구에선 굴곡의 그래프가 있다. 지금 이 순간 K리그에 대해서는 아직 드릴 만한 말이 많지는 않은데 겨울에 터키 안탈리아에서 만나고 지켜본 K리그 팀들의 수준이 꽤 높다고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 선수들의 최대 장점은 무엇인가.

한국 선수들은 교육을 잘 받을 의욕이 있다. 배우고 싶은 자세가 돼 있다는 것이다.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하지만 문제는 ‘리턴’이 없다는 거다. 내 생각이 전달되면 그에 대한 의견이 돌아와야 하는 쌍방 소통이 중요한데 한국 선수들은 그게 부족하다. 감독 입장에서는 선수가 어떤 심리에 어떤 상태인지 아는 게 중요한데 그런 상호 이해가 없으면 목표를 이루기가 어렵다. 한국 선수들은 침묵하는 편이다. 그 상태가 지속되면 경기장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유소년 시절부터의 교육이 중요한 게 아닐까.

유소년 축구의 근간이 튼튼해야 한다. 유소년 시스템이 정말 중요하다. 좋은 수준의 감독이 유소년을 지도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 유소년 지도자는 좋은 팀을 만들겠다는 생각보다는 좋은 선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팀을 조련하는 것과 선수 개인을 육성시키는 건 분명한 차이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팀을 우선시한다면 개성이 없어질 수 있다. 개인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4살짜리 어린 아이들을 위한 유아 축구교실도 있는데 그 아이들한테 전술은 의미가 없다. 2년은 넘게 축구를 경험하면 그제야 축구라는 전술을 조금 이야기할 수 있다. 만약 승리만을 강요하는 시스템으로 간다면 발전은 이뤄지지 않을 거다. 개인을 성장시켜 주는 쪽으로 유소년 축구가 가야 한다. 유소년 지도자가 서둘지 않는다면 유소년 선수들이 자라나는 성장이 더 나아질 것이다.

부천FC는 니폼니시 감독을 반겼다. ⓒ부천FC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선수의 덕목은 무엇인가.

‘극장’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영화’를 좋아해야 한다. 축구를 좋아하라는 뜻이다. 축구가 어려운 일이고 그들의 직업이다. 천명 이상의 사람이 현장에서 지켜보고 좋은 경기는 몇천만 명이 텔레비전으로 본다. 정말 흥미로운 직업이다. 항상 나를 관찰하는 눈이 있다는 걸 의식해야 한다. 만약 자신의 경기력이 좋지 않다고 그 스트레스를 도망가서 딴 데서 풀거나 그러면 안 된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프로선수가 되기 전에 오릴 때부터 소양 교육이 잘 이뤄져야 한다.

자기 관리는 정말 중요한 것 같다.

프로란 무엇인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전문가는 누구보다 나를 분석하고 잘 알아야 한다. 언제 술을 마시고 언제 여자친구를 만나는지 그런 부분에 대해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그건 축구선수뿐 아니라 일반인도 마찬가지 아닌가. 무조건 절제하라는 게 아니다. 누구는 여자친구를 만나고 와야 좋은 경기력을 발휘하는 선수도 있고 누구는 며칠 전에 친구와 놀았어도 며칠 뒤까지 잠도 못 자고 좋지 못한 경기력에 머물 수도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기 자신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똑같은 훈련을 통해서도 선수 개인에 따라서 다른 영향을 끼친다. 어떤 선수는 이 훈련이 충분하고 어떤 선수는 부족하다.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아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게 유소년 지도자가 할 일이다. 프로선수는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하고 감독은 이런 선수들을 데리고 팀을 조직하는 일을 해야 한다.

당신이 지도한 부천 선수들은 어땠나. 

초창기에는 하루 외박을 주고 나면 이틀 동안 선수를 잃어버렸다. 외박 후 선수들의 상태가 그만큼 좋지 않았다는 거다. 그래서 나한테 코치들이 항상 "한국 선수들은 휴식을 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고 내가 휴가 때도 선수들을 따라다닐 순 없지 않은가. 점진적으로 믿음이 쌓이고 선수들이 변했다.

부천SK가 연고를 제주로 옮긴 뒤 힘겨운 시간 끝에 부천FC가 창단했다. 이 소식도 알고 있었나.

물론이다. 한국에는 자주 못 오더라도 K리그 팀이 터키 안탈리아에 동계 전지훈련을 오면 그곳에서 한국 팀과 자주 만났다. 항상 한국에 대한 소식은 끊기지 않는다. 팀이 제주로 옮겨간 뒤 남은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새로운 팀을 창조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당신이 속했던 모기업은 제주로 갔고 그 연고팀인 부천에는 새로운 팀이 생겼다. 당신의 정체성은 어딘가. 제주유나이티드인가. 부천FC인가. (통역 : 어려운 질문이다. 통역을 하지 않고 집에 가고 싶다.)

그래도 물어봐 달라. 이게 가장 궁금하다. (통역 : 알겠다)

자식들 중 누구는 미국에 가 공부를 한 애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애라고 해서 어떤 부모가 자식을 편애할 수 있을까. 제주유나이티드도 나를 예전에 몇 번 초대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서포터스는 여기 부천에 있고 역사를 가지고 있는 팬들도 여기에 존재한다. 이런 팬들의 초대에는 당연히 응해야 한다. 나는 두 팀 모두를 존경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이다. 부천을 위한 응원의 메시지를 부탁한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이렇게 나뿐 아니라 우리 가족까지도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나를 좋게 기억해 주는 친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부천FC가 계속 성장하기를 바라고 모든 가정의 행복을 바란다. 내가 있을 때 12번째 선수로 명명한 우리 서포터스가 내 깃발을 흔들며 나를 지켜주신다는 점이 참 고맙다.

니폼니시 감독은 인터뷰가 끝난 뒤 그라운드에서 오랜 만에 부천 팬들을 만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선수들이 경기장에 입장할 땐 선수단 출구 바로 옆에 서 박수를 보내고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을 독려했다. 그리고 부천 선수 한 명 한 명을 모두 안아주며 응원했다. 비록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부천을 향한 니폼니시 감독의 애정은 변치 않았다. 그리고 그런 니폼니시 감독을 그리워하던 팬들도 조금 늙은 걸 빼곤 변한 게 없다. 세월은 흘러도 니폼니시 감독과 부천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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