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00여명 관중 앞에서 시즌 마지막 홈경기를 치르는 빌바오 레가네스

현재 스페인 발렌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배시온 기자는 스포츠니어스 독자 여러분들께 스페인 축구의 생생한 이야기를 직접 전달해 드립니다. 세계 3대 프로축구 리그로 손꼽히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그리고 축구 없이 못사는 스페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스포츠니어스 | 빌바오=배시온 기자] 2016-2017 시즌 프리메라리가는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우승 경쟁은 뚜렷이 알 수 없고, 강등팀 역시 한자리가 공석이다. 유로파리그 진출권인 6위 싸움 역시 혼란스럽다. 지난 37라운드에서는 유로파리그 진출권과 프리메라리가 잔류라는 각자의 목적을 가진 두 팀이 맞붙었다.

5월 15일 오전 3시, 현지 시간으로 5월 14일 오후 8시 아틀레틱 빌바오의 홈구장 산 마메스에선 중요한 경기가 열렸다. 2016-2017 프리메라리가 37라운드 빌바오와 CD레가네스가 각자 승리해야 할 분명한 이유를 안고 싸웠다. 경기는 전반 14분 빌바오 아리츠 아두리스의 선제골로 빌바오가 분위기를 잡는듯 했지만 후반 16분 레가네스의 알렉산더 슈지마놉스키가 동점골을 터트린 후 끝까지 점수를 지키며 1-1로 종료됐다.

42000여명 관중 앞에서 시즌 마지막 홈경기를 치르는 빌바오 레가네스

이겨야만했던 양 팀, 무승부임에도 갈린 희비

현재 6위인 빌바오는 순위를 끝까지 지켜야 했다. 레가네스와 경기를 치르기 전, 두 경기를 남겨놓은 상황에서 승리했다면 5위로 올라서거나 7위 레알 소시에다드와 승점 차를 벌린 6위를 지켜 유로파리그 진출권에 좀더 안정적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레가네스와 비기면서 승점 1점을 획득해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바스크 지방 라이벌인 소시에다드와 승점이 같지만 득실차에 앞서있는 상황으로 마지막 경기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원정길에서 다득점 승리해야 안심할 수 있다. 마지막 경기에서 패한다면 라이벌 팀에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내줄 수도 있어 최종전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반면 레가네스는 알렉산더 슈지마놉스키의 동점골을 끝까지 지켜 프리메라리가 잔류를 확정했다. 이번 시즌 승격한 레가네스는 37경기동안 승점 34점(8승10무19패)으로 강등권 근처에 머물렀지만 벼랑 끝에서 살아남았다. 레가네스가 다음 경기에 지고 18위인 스포르팅 히혼이 이기더라도 히혼은 승점 33점으로 시즌을 종료한다. 레가네스는 최종적으로 17위를 기록해 아슬아슬하게 2017-2018 프리메라리가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빌바오 원정 경기에서 졌더라면 현재 17위 데포르티보 라코루냐, 18위 스포르팅 히혼 결과에 따라 순위가 뒤바뀔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잔류 의지는 원정팀의 지옥이라 불리는 산 마메스 팬들의 압박을 뚫었다.

42000여명 관중 앞에서 시즌 마지막 홈경기를 치르는 빌바오 레가네스

 

원정 지옥을 뚫은 레가네스의 잔류 의지

경기 시작 3시간 전부터 빌바오 곳곳에 레가네스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뭉쳐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레가-네스!"라며 빌바오 한복판에 당당히 그들의 클럽을 외쳤다. 이들은 이날 경기에서 비기기만 한다면 잔류를 확정지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온 것 같았다. 상대를 압도하는 빌바오 홈팬들의 응원에도 전혀 기죽지 않고 경기 내내 조그마한 원정석에서 최선을 다해 레가네스를 외쳤다.

산 마메스의 주인인 빌바오 팬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평소보다 약 4000여명이 더 들어차 경기장을 가득 메운 이들은 시즌 마지막 홈경기를 축제로 만들 기세였다. 전반 14분 아두리스의 선제골이 터질 때까지만 해도 이들의 축제는 이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잔류 의지로 똘똘 뭉친 레가네스의 수비를 막긴 쉽지 않았다. 이케르 무니아인이 빠른 돌파로 레가네스 수비를 제쳐 쏘아올린 슛도 골키퍼 샴페인의 최종 수비에 막히며 두 번째 골을 터트리진 못했다.

빌바오 팬들의 응원은 더욱 거세졌다. 이들의 응원소리는 잔디 위 레가네스 선수들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후반 16분 레가네스의 동점골이 터졌고, 빌바오 팬들의 목소리는 더 높아지고 행동은 거칠어졌다. 레가네스는 동점 상황을 만들자마자 경기를 이대로 끝내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 경기장엔 이들의 의미 없는 공돌리기가 계속 됐고 조금의 태클이 들어와도 드러눕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레가네스가 모은 총 6개의 경고 중 후반 동점골이 터진 후 받은 옐로카드는 4장이나 됐다. 약 30분의 시간 동안 빌바오 팬들의 엄청난 야유를 들어야 했지만 이들에겐 잔류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42000여명 관중 앞에서 시즌 마지막 홈경기를 치르는 빌바오 레가네스

하나의 경기장, 두 개의 기념식

경기 후 산 마메스를 축제의 장으로 먼저 사용한 것은 빌바오가 아닌 레가네스였다. 잔류를 확정지은 레가네스 선수들은 종료 휘슬이 울리자 긴장이 풀린 듯 잔디 위에 드러누웠다. 그 후 먼 원정길에 오른 팬들에게 다가가 감사 인사와 함께 기쁨을 나눴다.

42000여명 관중 앞에서 시즌 마지막 홈경기를 치르는 빌바오 레가네스

빌바오 팬들은 안방에서 상대가 환호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럼에도 빌바오 팬들 대부분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들에게도 중요한 이벤트가 하나 남았기 때문이다. 이날 경기 후 빌바오의 골문을 10년 동안 지킨 골키퍼 고르카 이라이소스의 은퇴식이 치러졌다. 2007년 8월 빌바오에 입단한 이라이소스는 36세의 나이로 빌바오와 작별했다. 바스크 순혈주의 때문에 바스크인들만 뛸 수 있는 빌바오의 평균 연령은 낮은 편이다.

그 속에서 에이바르로 임대간 2004-2005시즌을 제외하곤 한결 같이 빌바오를 지킨 이라이소스의 노련함은 선수들에게 힘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헌신한 이라이소스를 기념하며 선수들은 그의 등번호인 1이 새겨진 옷을 입고 팀의 레전드를 떠나보냈다. 상승세인 후배 골키퍼 케파 아리사발라가에 밀려 최근 경기를 뛰지 못했던 그는 팀의 승리를 위해 마지막 경기도 양보했다. 빌바오는 유로파 진출 안정권 확보와 함께 이라이소스에게 승리를 선물하기 위해 더욱 승점 3점을 챙겨야 했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빌바오로선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경기였다.

빌바오의 2016-2017시즌 마지막 홈경기는 이렇게 상대에게 축제의 공간을 만들어주며 막을 내렸다. 레가네스는 지난 시즌 승격 후 다시 한 번 프리메라리가에서 뛸 기회를 얻었다. 42000여명의 관중은 잔류를 확정지은 상대에게, 10년간 수고한 팀 레전드에게 이번 시즌 마지막 산 마메스에서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si.onoff@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