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현대는 결국 이번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이 좌절됐다. ⓒ전북현대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나는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 대해 여러 차례 비판했다. 전술은 물론 선수 선발 방식에 큰 문제가 있고 이를 납득할 수 없을뿐더러 이렇게 가다가는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실망스러운 성적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많은 언론과 축구인들은 당시 침묵했다. 아니 오히려 “선수 선발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라면서 홍명보호를 두둔했고 ‘홍비어천가’를 불러댔다. 최고 스타 출신의 감독과 팬층이 어마어마한 선수들을 비판하자 나에게는 온갖 욕설이 쏟아졌다. 그래도 나는 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적어도 상식적으로는 이 문제에 대해 비판적이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결과가 어떠했건 과정이 잘못됐으면 이건 반드시 지적해야 하는 게 축구 언론과 축구인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홍명보호는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최악의 경기력에 머물렀다. 그러자 언론과 축구인들이 돌연 태세를 전환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홍명보 찬가’를 부르던 언론이 갑자기 ‘엔트으리’를 언급하면서 의리 축구라는 말로 홍명보호를 대차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 쓴소리 한 번 하지 않던 이들이 갑자기 입장을 바꿨고 그들은 마치 월드컵 개막 전부터 이런 일이 벌어질 걸 알았다는 뉘앙스로 홍명보호를 비난했다. 하지만 이미 우리의 월드컵은 끝난 뒤였다. “내가 맞았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만약 홍명보호가 좋은 성적을 거뒀더라도 언론은 늘 비판적인 사고를 하면서 문제점을 파고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은 홍보팀 직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언론과 축구인들은 ‘홍비어천가’를 부르다가 대표팀이 참패하자 귀신 같이 태세전환을 했다. 마치 전부터 이 모든 결과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비단 2014년의 문제가 아니다. 전북현대가 심판 매수 혐의로 프로축구연맹의 솜방망이 징계를 받았을 때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출전 자격을 박탈당한 뒤 이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했을 때도 언론과 축구인들은 침묵하거나 오히려 전북 구단에 동조했다. 1차적인 책임이 있는 전북을 강하게 비판하는 언론도 없었고 솜방망이 처벌로 사건을 키운 연맹에 대한 비판도 없었다. 심지어 호주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 측에서 전북의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 자격 박탈을 주장하자 이를 터무니 없는 주장, 혹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한 이기주의, 혹은 실현 가능성 없는 헛소리로 치부하는 언론도 있었다. “우리도 피해자”라는 전북 코치진과 선수들의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전달했다. 이 사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내세우는 언론과 축구인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느 언론 하나를 꼬집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랬다는 것이다.

그런데 결국 CAS에서 AFC의 판정이 옳았다고 손을 들어줬다. 그러자 또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태세를 전환한 언론에서 갑자기 전북을 비판하고 나섰다. 애초부터 승산 없는 싸움이었다며 한국 축구의 망신을 자초한 일이었다고 근엄하게 쓴소리를 내뱉는다. 연맹의 솜방망이 처벌 때부터 잘못된 일이었고 전북이 이기주의를 부렸다며 비판하기 시작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당시 ‘홍명보 만세’를 외치다가 돌연 태세를 전환했던 일부 언론의 그 모습이 떠오른다. 마치 자기들은 처음부터 전북의 심판 매수 혐의와 그 이후의 CAS 제소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던 것처럼 슬쩍 꼬리 자르기를 하고 있다. 비겁해도 너무 비겁하다. 언론이 언제부터 슬슬 눈치 보며 여론을 따라가는 도구가 됐나. 여론이 다 아니라고 해도 맞다고 생각하면 뚝심 있게 논조를 지켜야 하는 게 언론이다.

하지만 우리네 일부 언론 및 축구인들은 그렇지 않다. 연맹 눈치 보고 빅클럽 눈치 보며 쓴소리 한 번 하지 못하다가 여론이 완전히 기우니 이때 와서 마치 정의의 사도인냥 행동하는 건 축구 언론으로서의 자존심을 완전히 팔아먹는 행위 아닌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를 떠나 후폭풍이 있더라도 문제 제기를 해야 할 때는 과감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게 언론으로서의 역할이다. 그런데 2014 브라질월드컵 때도 귀신 같은 태세 전환으로 목숨을 부지한 일부 언론은 이번에도 슬슬 눈치를 보면서 전북을 옹호하다가 CAS의 판결이 나오고 여론이 완전히 기울자 호되게 전북을 꾸짖고 있다. 아마 앞으로 무언가 축구계에서 잘못돼 가고 있는 일이 있더라도 일부 언론의 보도는 별로 믿을 게 못 될 것 같다. 그들에게는 정의보다도 친한 감독과 친한 프런트, 밥 사주는 선수들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북현대를 향한 언론의 자세는 며칠 사이 급격히 변했다. ⓒ전북현대

나도 사실은 전북 구단을 상당히 좋아한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전북 선수들을 인간적으로도 너무 좋아하고 최강희 감독도 좋아한다. 전북의 축구는 지금도 매력적이다. 사람 냄새 나는 전북 프런트도 좋고 전주 한옥마을의 비빔밥 고로케와 새우 만두도 좋아한다. 하지만 이건 부수적인 문제다. 이 모든 것들을 좋아한다고 해 전북의 잘못된 문제에도 침묵하거나 동조하는 건 언론으로서의 직무유기다. 나는 최근 들어 연이어 전북에 대한 비판적인 칼럼을 썼다. 심판 매수가 정말 개인의 일탈로 일어난 일이라면 전북이 이 스카우트를 고발해야 한다고 했고 또 다른 칼럼에서는 연맹 징계 수위가 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전북의 CAS 제소가 민폐라고도 했다. 전북은 제소를 할 게 아니라 반성해야 한다고도 썼다. 전북 사람들을 좋아하고 전북 축구를 매력적으로 느끼지만 그럼에도 그들과 늘 웃는 얼굴로 마주할 수는 없는 게 칼럼니스트와 기자, 혹은 축구인의 숙명이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공적인 시선과 사적인 관계를 구분하지 못한다. 친하면 못 까고 상대가 거대해도 못 깐다. 홍명보호의 ‘엔트으리’ 논란 때도 그랬고 이번 전북의 심판 매수와 CAS 제소 때도 그랬다. 시민구단의 힘 없는 무명 선수들이 승부조작을 한 뒤 이미 너덜너덜해진 틈을 타 비판의 화력을 키웠던 때를 제외하면 이들이 제대로 비판 기능을 작동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비단 이런 사태들 뿐 아니라 축구계 전체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마인드로 똘똘 뭉쳐있다. 그러다가 결과가 한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을 때 득달 같이 입장을 바꾸고는 근엄한 척 한다. 전북이 심판 매수 사건을 벌였을 때도 과감히 비판하는 언론과 축구인이 없었고 그들이 개인의 일탈이라며 꼬리 자르기를 할 때도 문제 제기를 하는 이들은 없었다. 애들레이드가 전북의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에 문제를 삼았을 때는 ‘국뽕’에 취해 애들레이드의 이기주의를 지적했다. 그러는 사이 전북을 옹호하는 팬들과 비판하는 팬들의 앙금은 더 깊어졌다.

이번 전북 사태를 통해 전북 구단도 반성해야 하지만 귀신 같은 태세전환을 선보인 일부 언론과 축구인들도 반성해야 한다. 그렇게 그들은 또 꼬리를 자르고 빠져 나갔다. 특히나 언론의 뒷북 비판은 참 보기 불편하다. 이런 표현을 쓰기엔 그렇지만 언론으로서의 ‘가오’는 다 어디로 갔나. 그 ‘가오’는 빅클럽이나 친한 선수, 친한 구단의 비위를 맞춰주는 게 아니라 뚝심 있게 할 말은 할 때 산다는 걸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언론이 아니라 홍보팀 직원이 된 건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 봤으면 한다. 앞으로는 축구계에 또 다시 쓴소리가 필요한 사건이 터지면 언론과 축구인이 협회와 연맹, 빅클럽에 과감히 비판을 할 정도의 뚝심이 있었으면 좋겠다. 귀신 같은 태세 전환으로 꼬리를 자른 이들이 부끄러운 줄 알았으면 한다. 이번 전북 사태에서 일부 언론의 태세전환은 오졌고 비겁함은 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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