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이별이 쿨하지 못했던 외국인 선수 TOP10

전북 힝키
힝키는 기대를 모으며 전북에 입단했지만 결국 한 시즌 만에 팀을 떠났다. ⓒ전북현대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FC서울 데얀은 “은퇴는 꼭 한국에서 싶다”고 했고 스테보는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문구를 적은 속옷을 입고 경기에 나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에닝요는 전북을 떠나면서 “내가 지금 팀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팀을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합니다. M.G.B. 감사합니다. 전북. 존경합니다. 감독님”이라는 작별 인사를 전해 뜨거운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렇게 한국을 사랑하고 K리그를 자랑스러워하는 외국인 선수들도 많다. 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K리그를 떠나며 많은 뒷말을 남긴 외국인 선수들도 적지 않다. 아름답게 이별하지 못하고 추한 뒷모습을 남겼던 외국인 선수 열 명을 꼽아봤다. 이름만 들어도 화딱지가 나는 그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자.

10. 아첼 (대우로얄즈)
1990년 졸탄 아첼은 헝가리 국가대표에 뽑혀 잉글랜드, 터키전 등에 출전하는 등 촉망받는 동유럽 수비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1991년 시즌을 앞둔 상황에서 대우로얄즈 지휘봉을 잡은 헝가리 출신 비츠케이 감독은 곧바로 구단에 이렇게 말했다. “아첼을 영입해 달라.” 감독의 강력한 의지를 꺾을 수 없었고 결국 대우는 계약금 8만 달러에 월봉 4천만 달러라는 큰 금액을 들여 아첼을 영입했다. 당시 K리그 국내 주전급 선수들의 월급이 150만 원 정도였으니 한화로 약 450만 원에 이르던 아첼의 월급은 엄청난 것이었다. 하지만 아첼은 결국 기량미달로 딱 6경기에 출장한 뒤로는 벤치만을 전전해야 했고 구단에서도 방출을 고민했다. 1년 동안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첼이 계약서를 들이밀며 말했다. “2년 계약인데 1년 만에 방출시킬 거면 남은 연봉을 모두 지급해 달라.” 아첼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남은 1년도 이렇게 밥이나 축내며 벤치를 지킬 아첼을 생각하니 구단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결국 대우는 아첼을 달래며 남은 연봉의 절반을 지급하는 것으로 계약을 마무리 지었다. 접촉사고가 났는데 목을 부여잡고 나와 곧바로 병원에 입원해 보험금을 타먹는 게 이런 기분일까.

9. 파울로 힝키 (전북현대)
힝키는 1998년 분데스리가 바이엘 레버쿠젠에서 활약하며 브라질 선수로는 최초로 독일로 귀화해 국가대표가 된 특급 스트라이커다. 독일 대표로 A매치에도 13경기에 나섰을 정도로 검증된 실력의 소유자였던 그는 유로2000에도 참가했던 바 있다. 자존심 강한 축구 강국 독일이 브라질 출신인 그를 귀화시킬 정도라면 그의 실력을 대충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힝키는 네덜란드리그 비테세를 거쳐 전북에 입단했지만 이렇다 할 활약을 선보이지 못하고 돌아갔다. 16경기 출전, 2골 2도움의 기록이 전부였다. 이렇게 계약 기간이었던 1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조용히 K리그를 떠났더라면 힝키를 기억하는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K리그를 떠난 힝키는 아시아 무대 진출을 노리던 옛 팀 동료 롭슨 폰테에게도 이렇게 말했다. “너에게 입단 제의를 한 곳이 한국이면 가지 말고 일본이면 가라.” 결국 이 말을 들은 폰테는 J리그 우라와 레즈로 이적했다. K리그에서 데얀이나 레오나르도 쯤 해 놓고 이런 말을 하면 수긍할 수 있겠지만 힝키가 이런 말을 하면 그건 치졸한 복수일 뿐이다.

8. 엘리치 (부산아이콘스)
호주 청소년 대표를 거친 엘리치는 2004년 7월 부산과 입단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과 연봉을 포함해 총 25만 달러(당시 한화 약 3억 원)에 1년 6개월 계약서에 서명한 엘리치는 곧바로 한국 올림픽 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골을 뽑아내며 부산 팬들을 기쁘게 했다. 2004 아테네 올림픽이 끝난 뒤 부산에 합류한 그는 실제로 10경기에 출장해 1골 3도움을 기록하는 등 나름대로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K리그에 잘 적응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엘리치가 찌질해지기 시작했다. 프리미어리그 풀럼 이적설이 터지자 엘리치는 부산 구단에 떼를 쓰기 시작했다. 계약 기간이 한참 남았지만 풀럼으로 보내달라고 억지를 부렸고 결국 부산이 이에 응하지 않자 팀을 무단이탈해 임의탈퇴 신분이 되기도 했다. 이후 당황한 부산이 엘리치와 협상을 시도했지만 엘리치는 막무가내였고 결국 FIFA 제소까지 가는 상황에서 지친 부산이 엘리치를 풀럼으로 보내줬다. 그렇게 무려 6개월의 시간 동안 싸운 끝에 엘리치는 풀럼으로 이적했지만 6경기를 뛴 뒤 한 시즌 만에 방출됐다. 런던에서 맛없는 피쉬 앤 칩스를 먹는 것보다는 부산에서 대연동 쌍둥이 돼지국밥을 먹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성남 자엘
이 무시무시하게 생긴 선수가 민간인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성남일화

7. 자엘 (성남일화)
야심차게 데려온 요반치치가 헛발질만 하면서 실망감을 안겨 준 뒤 성남일화는 다시 한 번 부활을 노리며 자엘을 영입했다. 호나우지뉴와 플라멩구에서도 같이 뛰었던 자엘은 “지금 팀 상황이 어렵다는 점을 잘 안다. 골로 능력을 증명하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당시 성남은 이적료 130만 달러(한화 약 13억 원)를 두 번으로 나눠 원소속팀에 주기로 합의했고 1차적으로 65만 달러(한화 약 6억 5천만 원)를 지급했다. 자엘은 2012년 시즌 후반기에 성남에 입단해 15경기 2골 4도움으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2013년이 시작되면서 모든 게 꼬이고 말았다. 자엘이 2013년 3월 민간인 폭행 사건에 연루됐고 성남은 그를 퇴출시켰다. 브라질 구단에도 계약 파기 공문을 발송했다. 하지만 전 소속 구단은 “자엘이 문제를 일으키건 말건 그건 너희들끼리의 문제이니 돈을 다 달라”고 했고 성남은 “너희 팀 출신 선수가 문제를 일으켜 계약해지를 하는 것이니 그냥 반만 먹고 털자”고 했다. 결국 FIFA가 나선 이 문제는 1년 뒤 성남의 패소로 막을 내렸다. “선수 개인의 문제로 계약을 해지한 만큼 이적료와는 무관하다”는 게 FIFA의 입장이었고 성남은 이자를 포함해 무려 9억 원을 전 소속팀에 지불해야 했다. “팀 상황이 어렵다는 걸 잘 안다”던 자엘은 주먹질 한 번으로 팀을 더더욱 어려운 곳으로 떨어트리고 말았다.

6. 까보레 (경남FC)
2007년 시즌을 앞두고 경남 박항서 감독은 외국인 선수 영입을 위해 브라질로 향했다. 하지만 영입하려던 브라질 선수의 기량이 기대이하여서 실망했고 결국 숙소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켰는데 여기에서 운명적인 선수를 만나게 됐다. TV 중계를 통해 지켜본 이 선수의 플레이는 대단했다. 박항서 감독은 곧바로 이 선수를 찾아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바로 까보레였다. 까보레는 2년 임대 계약으로 경남에 입단하자마자 첫 시즌 내내 맹활약하며 31경기에 나서 18골 8도움이라는 대단한 기록을 내면서 하위팀 경남을 4위까지 끌어 올렸다. 경남에서는 반 시즌 만에 브라질 소속 구단에 이적료를 지급하고 완전 이적을 성사시켰다. 당연히 이듬 해에도 까보레의 플레이를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까보레는 새 시즌을 앞둔 경남의 전지훈련에 참여하지 않았고 연락도 두절됐다. 그런데 갑자기 일본 언론의 보도가 터져 나왔다. “까보레가 FC도쿄와 완전 이적을 확정했다”는 것이었다. 소유권이 있던 경남이 허락하지도 않은 계약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까보레는 일본행을 강력하게 원하면서 “경남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위약금을 물더라도 일본으로 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결국 경남은 대승적 차원에서 일본 이적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실력은 있었지만 의리, 아니 개념은 눈꼽 만큼도 없었다.

5. 세르지오 파리아스 (포항스틸러스)
선수는 아니지만 감독 중에서는 이보다 추잡한 이별을 한 감독도 드물다. 포항에서 K리그는 물론 FA컵과 리그컵, AFC 챔피언스리그 등을 모두 제패한 파리아스 감독은 명장 중의 명장으로 칭송 받았다. 포항은 2009년 그와 2년 재계약에 합의했다. 2009년 클럽월드컵 도중 알 아흘리 이적설이 흘러나오자 그는 “사우디 클럽의 언론 플레이”라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2009년 12월 클럽월드컵 3,4위전이 끝난 뒤 파리아스 감독은 돌변했다. “1년 정도 고향에서 휴식을 취하겠다고”했고 가족들 핑계도 댔다. “포항에 국제학교가 없어 자식 교육이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파리아스 감독은 많은 이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포항을 떠났다. 하지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파리아스 감독이 고향인 브라질로 돌아가지 않고 사우디의 알 아흘리 지휘봉을 잡은 것이다. 자녀 교육이나 고향에서의 휴식은 모두 다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급하게 파리아스 감독과 이별해야 했던 포항은 가까스로 대체 감독을 구했지만 그를 대신해 온 레모스 감독은 포항의 흑역사를 만들고 말았다. 파리아스 감독은 역대 최고의 성적을 낸 영웅에서 한 순간의 선택으로 스스로 이미지를 망치고 말았다.

파리아스 포항
포항 파리아스 감독은 영웅으로 등극했지만 이후 이해할 수 없는 이별 방식으로 스스로 이미지를 깎아 먹고 말았다. ⓒ포항스틸러스

4. 크리스 마스덴 (부산아이파크)
마스덴은 빅리그에서 K리그로 직행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프리미어리그 사우스햄턴 주장이었던 그가 부산으로 이적하자 잉글랜드 언론은 “우리의 ‘대머리 베켄바우어’가 떠난다”며 슬퍼했을 정도였다. 마스덴은 부산에 이적한 뒤 치른 서울과의 첫 경기에서 리그 개막골을 터뜨리는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두 번째 경기로 치러진 부산 홈 경기 분위기를 경험한 마스덴은 깜짝 놀랐다. 텅 빈 부산아시아드경기장의 모습에 놀란 그는 결국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팀을 무단이탈했다. 마스덴은 “집에 돌아오면 아내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울고 있다”는 이유를 들며 고향 팀인 셰필드 웬즈데이로의 이적을 부산 구단에 간청했다. 이미 계약을 했는데 단 두 경기 만에 징징대기 시작한 마스덴은 부산 구단이 이적을 허용하지 않자 결국 편지 한 장만을 남기고 고향으로 도망쳐 버렸다. 원래는 무단이탈로 인해 FIFA에 제소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마스덴은 ‘대인배’ 이안 포터필드 감독이 구단을 겨우 설득해 자유계약 신분이 됐다. 단 두 경기 만에 이럴 거면 처음부터 이적에 신중했어야 하지 않을까. 계약이 애들 장난은 아니다.

3. 제칼로 (전북현대)
2004년 여름 카르로스라는 이름으로 울산현대에 입단한 그는 19경기에서 14골을 넣으며 엄청난 득점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무려 10분 만에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괴력도 과시했다. 하지만 그는 다혈질적이고 이기적인 성격 탓에 결국 1년 만에 울산에서 방출되고 말았다. 이렇게 K리그와 작별했어도 그는 역사에 남을 만한 선수였다. 하지만 2006년 전북이 다시 그의 손을 잡았다. 이름도 제칼로로 등록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기대했다. 제칼로는 이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중요한 경기마다 골을 터트리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고 결국 전북을 2006년 아시아 정상 무대에 올려 놓았다. 하지만 제칼로는 2008년 대형 사고를 치며 K리그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2군 경기에서 상대 선수를 폭행해 20경기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당하고 만 것이다. 아마도 그가 성질머리를 조금만 더 죽이고 팀에 헌신했더라면 우리는 제칼로를 ‘악동’이 아니라 ‘전설’로 기억하지 않았을까. K리그와 제칼로는 이렇게 막장 스토리를 남기며 이별하고 말았다.

2. 미첼 (천안일화)
1997년 천안일화에 입단해 1999년까지 3년간 K리그에서 활약한 카메룬 국가대표 출신 미첼은 K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외국인 선수다. 1998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출전했다가 천안에 곧바로 복귀하지 않고 무단이탈했던 미첼은 한참 뒤 팀에 돌아온 뒤 2000년 3월 구단 공금 740만 원을 훔쳐 달아났다. 이 선수, 아니 이 도둑은 너무도 당당하게 이적동의서도 없이 러시아리그 로코모티브 모스크바로 이적까지하며 천안일화 구단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다시는 한국에 돌아올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미첼은 한국이 월드컵을 개최하게 됐다는 사실을 잊은 것 같다. 미첼은 2002 한일 월드컵을 한 해 앞둔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때 카메룬대표로 뽑혀 한국을 찾았고 곧바로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결국 카메룬축구협회는 6,200달러에 성남과 합의한 뒤 미첼을 다시 카메룬행 비행기에 태웠다. 헤어진 여자친구를 다시 받아줬더니 내 시계와 지갑을 훔쳐 다시 도망간 셈이다.

인천 알파이
인천유나이티드에서 뛰던 알파이는 온갖 미운 짓은 다했다. ⓒ인천유나이티드

1. 알파이 외잘란 (인천유나이티드)
터키 국가대표 핵심 수비수 알파이 외잘란이 인천유나이티드에 입단한다고 했을 때 세상이 깜짝 놀랐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애스턴 빌라로 소속이던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터키의 주전 수비수로 5경기에 나서 팀이 3위를 차지하는 데 크게 기여하며 바르셀로나와 인터밀란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알파이는 입단 기자회견에서 “주장을 맡겠다. 6개월 뒤엔 한국어로 인터뷰를 하겠다”면서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K리그 8경기에 출장해 경고 2회와 퇴장 1회를 기록하며 거친 플레이로 일관한 알파이는 전북의 특급 외국인 선수 에드밀손에게 거친 태클을 해 에드밀손을 은퇴시키기도 했다. 심지어 인천 동료들에게 “나는 일본으로 가는 게 목표”라는 말을 대놓고 했을 정도다. 훈련에 무단 불참하고 팀 동료들에게도 악담을 일삼는 등 태도도 불량했던 알파이는 J리그 우라와 레즈로 떠난 뒤에도 “K리그는 내 성에 안차는 리그”라면서 끝까지 떠들어 댔다. ‘대어’인줄 알고 낚시대를 당겼더니 어디서 쓰레기더미가 끌려 올라왔다.

모든 선수들이 다 박수를 받으며 떠날 수는 없다. 그래서 더 박수를 받으며 떠나는 이들의 모습이 조명되는 것 아닐까. 앞서 언급한 10명은 쿨하지 못한 이별로 우리를 화나게 하고 때론 분노하게 했지만 이 또한 K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다. 이들의 막장 스토리도 한 번쯤은 기억되길 바란다.

footballavenue@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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