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전북현대가 결국 심판 매수 혐의로 징계를 받았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난 달 30일 오전 10시 서울 신문로에 위치한 축구회관에서 상벌위원회를 열고 6시간 이상에 걸친 장시간 회의 끝에 전북 스카우트의 심판 매수와 관련해 징계를 최종 결정했다. 상벌위는 심판 매수가 사실로 드러난 전북에 승점 9점 삭감과 1억 원의 제재금 징계를 내렸다. 이번 승점 9점 삭감은 곧바로 적용된다. 하지만 나는 이게 말도 안 되는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수 많은 모순과 논란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전북 징계의 모순과 논란을 하나 하나 살펴보자.

1. 전북은 차 모 스카우트를 고소하라

전북 구단의 입장은 한결 같다. 구단 차원이 아니라 차 모 스카우트가 개인적인 일탈을 했다는 것이다. 구단이 나서 심판을 매수했다면 이건 차원이 다른 거대 스캔들로 비춰질 수 있지만 전북은 개인이 마음대로 한 일이라면서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 검찰과 연맹 역시 구단이 관여했다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다는 입장이었고 축구계 다수 관계자들도 “구단이 개입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전북의 행태를 꼬집었다. 하지만 결국 연맹은 구단 차원에서 개입했다고 판단하지 않았고 “굳이 (구단이) 관여하지 않더라도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으니 이에 대해 징계를 내렸다”고 징계 이유를 설명했다.

자 이제 공은 전북으로 넘어왔다. 전북은 그들 스스로 구단이 개입한 게 아니라 차 모 스카우트가 개인적인 비리를 저질렀다고 했고 연맹에서 이를 인정받았다. 그렇다면 구단에서는 이제 차 모 스카우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구단은 몰랐던 일인데 이 일 때문에 제재금을 1억 원이나 내게 생겼고 승점도 9점이나 깎였다. 제재금 1억 원에 더해 승점을 1점당 가치로 계산해 정식으로 차 모 스카우트에게 변상하라며 고소해야 한다. 여기에 전북이 ‘매수 구단’의 이미지까지 얻게 됐으니 이 피해까지도 고스란히 차 모 스카우트에게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전북이 차 모 스카우트를 고소하지 않고 이대로 넘어간다면 비호한다거나 구단이 개입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당당하다면 차 모 스카우트를 고소하고 피해 보상을 청구하라.

2. 영향 없는 징계였다

전북은 승점 9점이 깎이면서 올 시즌 32경기 무패행진(18승 14무)을 달리고도 승점 59점이 됐다. 리그 2위 FC서울(승점 54)의 추격을 받게 됐다. 이제 두 팀 간의 승점은 5점차로 줄었다. 하지만 이 징계는 영향의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올 시즌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전북이 남은 경기에서 1패를 하느냐 마느냐는 게 관전 포인트가 될 정도인데 여기에서 5점차는 상당히 크다. 징계로 우승컵을 박탈해 버리고 해당 시즌의 기록 전부를 삭제하는 정도의 중징계를 내리는 리그도 있지만 K리그는 독주를 하고 있는 전북에 형식상의 징계만을 내렸을 뿐이다. 전북이 승점 9점을 삭감당한들 올 시즌 리그 순위 변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또한 제재금 1억 원도 마찬가지다. 나같은 사람에게는 한 번에 만져보지도 못할 큰 돈이지만 올 시즌 스타급 선수들을 싹쓸이한 전북 입장에서는 1억 원이 큰 돈이 아니다. 전북의 올 시즌 예산이 350억 원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면 이 제재금은 1/350이다. 연봉 3천만 원을 받는 직장인으로 치면 1/350인 85,714원을 제재금으로 낸 셈이다. 이건 누군가에게 타격을 주고 반성을 하라는 정도의 금액이 아니라 직장인으로 쳐도 한 달 건강보험료 정도쯤 되는 돈을 내라고 한 셈이다. 리그 순위 변화와는 전혀 관계 없는 승점 삭감에 이어 체감상으로는 직장인에게 8만여 원쯤 될 제재금이 과연 징계로서 얼마나 대단한 효력이 있을지 모르겠다. 전북에는 손해가 별로 없는데 이건 징계라고도 볼 수 없다. 그저 성난 민심 달래기다.

전북은 올 시즌 승점 9점을 삭감 당했지만 여전히 리그 1위다. ⓒ 전북 현대 제공

3. 왜 하필 금요일 오후였나

전북 징계는 4개월이나 미뤄졌다. 그러다 4개월 만인 어제(9월 30일) 열렸다. 하지만 나는 이 시점 자체도 연맹이 대중을 기만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상벌위원회는 결국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징계 내용을 공개했다. 그리고 팬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이 소식은 곧바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언론 보도로도 나왔고 SNS에도 순식간에 전파됐다. 하지만 이 공개 시기도 의도된 것이라고 봐야한다. 금요일 오후 5시, 그러니까 오후 6시에 업무를 마무리하는 일반 직장인의 특성상 업무 종료 한 시간 전에 징계 사실을 공개한 것이다. 파급력을 줄이기 위해 시기를 잘 보고 있다가 이때를 택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어차피 금요일 오후 6시가 넘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주말의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뉴스에 별로 관심이 없다.

이는 실제로 정치권에서도 많이 써먹는 수법이다. 2016년 7월 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새누리당 선거홍보 동영상 무상수수 사건을 검찰에 고발했다”고 발표했다. 새누리당이 텔레비전용 홍보 동영상 제작을 업체에 의뢰하면서 인터넷용 선거운동 동영상을 공짜로 제공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새누리당 홍보 작업을 진두지휘한 새누리당 전 홍보본부장과 새누리당 당직자 2명이 고발됐다. 하지만 이 소식은 사건의 비중만큼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 금요일, 그것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업무를 다 끝낸 오후 6시 30분에 이뤄진 발표였기 때문이다. 전북 징계 발표 시기가 금요일 오후 5시라는 점도 마찬가지 의도가 담겨져 있다. 4개월 동안 질질 끌다가 하필이면 언론 주목도가 가장 낮은 금요일 오후 5시를 발표시기로 택한 건 이미 징계를 강하게 내리지 않고 은근슬쩍 넘어가겠다는 다분한 의도 아니었을까. 발표시기가 불순한데 징계 내용이라고 불순하지 않을 수 있을까.

4. 고양KB 잘못이 더 컸나

2006년 고양KB국민은행은 내셔널리그를 우승하며 K리그 승격권을 얻어냈다. 당시 시즌 초부터 내셔널리그는 리그 우승팀을 K리그로 승격시키겠다고 공언했지만 고양은 우승 확정 이후 K리그 승격을 거부했고 이로 인해 징계를 받게 됐다. 실업축구연맹은 2007년 2월 23일 2007 정기 총회 및 제 1차 이사회를 열고 고양에 대한 징계안을 확정했다. 당시 연맹이 내린 징계 내용은 행장이나 단장(부행장) 등 책임을 지고 있는 관계자의 사과, 벌금 10억 원, 승강제 이행 각서 제출, 전·후기리그 각 10점씩 총 승점 20점 감점이었다. 물론 고양이 “징계를 강행할 경우 팀 해체도 고려하겠다”고 강력히 주장하자 결국 이 징계안 중 승점 20점 삭감만이 최종 징계로 확정됐다.

승점 9점 삭감에 그친 전북과 비교해 보자. 둘 다 모두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승격 거부와 심판 매수 중 어떤 게 더 한국 축구의 명예를 실추시킨 행위일까. 심판에게 돈을 제공해 경기 승패에 영향을 끼치려 했던 일이 훨씬 더 악의적인 범죄 아닌가. 심지어 전북의 이 같은 징계에 대해 영국과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세계 유명 언론사는 물론 K리그 소식 한 번 다뤄보지 안은 헝가리와 슬로베니아 등도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할 만큼 사건은 중대했다. 하지만 승격 거부는 승점을 20점이나 깎였고 심팬 매수는 승점 9점 삭감에 그치고 말았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승격을 거부하는 일보다는 심판을 매수하는 행위가 더 가벼운 일로 취급받아도 이제 할 말이 없다.

전북은 올 시즌 승점 9점을 삭감 당했지만 여전히 리그 1위다. ⓒ 전북 현대 제공

5. 이제 모든 기준은 경남FC?

전북 징계를 전후해 자꾸 거론되는 팀이 있다. 바로 경남FC다. 2013년과 2014년 구단 수뇌부가 직접 개입해 심판에게 총 6400만 원의 금액을 전달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연맹은 경남 구단에 7000만 원의 제재금과 승점 10감점의 징계를 내렸다. 그리고 어제 조남돈 상벌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2014년도 경남 구단 사장의 비자금 조성 및 심판 매수 사건 조사 과정을 기준으로 삼았고 형평성을 고려했다. 경남 사건은 사장이 직접 자금을 조성해서 심판들을 줬는데 400만원이다. 전북 사건은 구단의 수뇌부 관여 증거가 없다. 전북 징계는 상벌위원회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이제부터 모든 심판 매수 징계 기준은 경남FC의 징계 기준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경남의 징계 자체가 너무 약했다. 이미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된 상황에서 더 내려갈 곳도 없었고 빅클럽도 아니다보니 중징계를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없었다. 하지만 경남보다 매수 금액도 적고 구단 수뇌부 관여 증거도 없다는 이유로 전북에 더 덜한 징계를 내렸으니 이제부터 논란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만약 또 다시 심판을 매수하는 구단이 나온다면 경남보다 심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승점 10점 삭감이 기준선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심판 매수라는 어마어마한 범죄 행위 치고는 너무 가벼운 징계다. 그렇다고 앞으로 승점 20점씩 삭감하거나 하부리그로 강등시키는 등 중징계를 내릴 수도 없다. “전북은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왜 우리한테만 그러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연맹은 이제 스스로 경남FC 징계에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다.

6. 조작 증거 없어 경징계?

조남돈 상벌위원장은 어제 전북 징계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북 스카우트로부터 금품을 받고 심판을 본 경기가 여덟 경기였다. 이에 대해 감안했다. 그렇다고 해서 승부조작이 이뤄졌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는 것도 감안했다. 승부조작을 했다는 결과가 나온다면 파급력이 엄청났겠지만 돈을 받은 이후 심판이 특별히 유리한 판정을 내린 정황은 파악하지 못했다.” 검찰을 통해 차 모 스카우트가 심판들에게 돈을 제공했다는 점은 입증이 됐다. 검찰은 이 돈이 부정 청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차 모 스카우트는 용돈 개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만 다르다. ‘팩트’만 가지고 이야기하자. 돈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고 줬다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서 받았다는 사람은 심판이고 줬다는 사람은 구단 직원이다. 그런데 상벌위원회에서는 “돈을 받은 건 우리도 아는데 승부조작이 이뤄졌다는 증거는 없다”면서 징계 수위를 결정했다.

승부조작 혐의로 축구계에서 퇴출된 선수들이 들으면 땅을 칠 말이다. 승부조작 가담자 중에서는 실제로 돈만 받고 승부조작에 실패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들 역시 승부조작 혐의로 축구계에서 자격 정지나 영구 제명 등 중징계를 당했다. 그런데 이번 징계를 놓고 조작이 이뤄진 증거가 없다며 징계 수위를 결정했다는 건 승부조작 가담자 중 돈은 받고 조작에는 실패했던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행위다. 심판을 매수해 승부를 조작하는데 성공했건 실패했건 이건 나중 문제다. 불순한 의도로 돈을 건넸고 이걸 받은 이가 있다는 점 하나로만 판단해야 하고 이 자체로도 이미 중징계 사안이다. 승부조작 성공과 실패는 나중 이야기다. 왜 여기에서 “돈 받은 건 아는데 조작이 이뤄졌다는 증거가 없다”는 말이 나오나. 최성국도 슬슬 몸 풀어라.

전북은 올 시즌 승점 9점을 삭감 당했지만 여전히 리그 1위다. ⓒ 전북 현대 제공

7. 성의 없는 전북, 사과는 빨랐다

연맹은 징계 조사를 면밀히 하기 위해 전북에 진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전북은 상벌위원회가 열리는 날까지도 진술서조차 내지 않았다. 수사권이 없는 연맹이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기사로 사건을 파악하는 것뿐이었다. “구단은 모르고 직원이 준 돈”이라는 전북 입장과 “돈을 준 건 맞는데 뇌물은 아니고 용돈이었다”고 주장하는 구단 직원의 말에 연맹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여기에 진술서까지 거부하니 연맹은 포털사이트 기사 검색 좀 해 본 축구팬들보다 이 사건에 대해 면밀히 아는 게 전혀 없었다. 결국 연맹은 무성의로 일관한 전북에 기사만 보고 징계를 내려야 했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징계 수위가 발표된 뒤 전북현대는 구단 공식 홈페이지에 재빠르게 사과문을 게재했다. “본 구단은 금일(9월30일) 한국프로축구연맹 상벌위원회의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이번 사건으로 인해 팬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번 사건에 대하여 모든 임직원 및 코칭스태프는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이러한 일련의 사태가 다시금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연맹의 자료 협조 요청에는 철저하게 무대응으로 일관해 놓고 징계 결과가 발표되자 곧바로 사과문부터 올리는 자세는 심히 불량하다. 거기에다가 반성의 기미 없이 자료 협조까지 거부한 구단에 “우리가 아는 게 없다”며 솜방망이 징계를 내린 연맹까지도 모두 다 엉터리였다.

8. 연맹은 때려도 전북은 못 때리는 나팔수들

연맹의 솜방망이 징계 이후 연맹의 행동을 비판하는 언론은 꽤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언론도 ‘거대 구단’ 전북에 대해서는 쓴소리 한 번 못한다. 연맹의 결정이 아쉽다고만 할 뿐 애초에 사건을 만들고 이후 연맹의 협조 요청에도 불성실하게 대하고 구단 차원이 아닌 개인의 일탈이라고 뻔뻔하게 주장하는 전북 구단에 대해 비판하는 기사 한 줄이 없다. 전북은 못 때리고 에둘러 연맹이나 때리는 게 무슨 언론인가. ‘전북 홍보대사’지. 나는 앞으로도 ‘거대 구단’ 전북이라도 계속 비판할 일이 있으면 하겠다. 또한 K리그 무패 우승에 도전하고 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도전하는 그들의 경기력에 대해서는 극찬할 일이 있으면 극찬하겠다. 그게 언론의 일이다. 연맹은 때려도 전북은 못 때리는 ‘전북 나팔수’가 될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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