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 혐의로 퇴출된 강동희 전 감독이 한 프로야구단을 대상으로 부정방지 교육 특별 강의를 했다. ⓒ프로스포츠협회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승부조작 여파는 쉽게 사그러지지 않고 있다. K리그에서는 지난 2011년 충격적이었던 승부조작 사건 이후 아직까지는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 듯하지만 프로야구에서는 또 다시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이미 한 차례 큰 홍역을 경험한 상황에서 또 다시 승부조작에 연루된 선수들이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얌전히 운동만 하면 연봉 대박이 보장돼 있는데 왜 저런 바보 같은 짓을 했을까.’ 하지만 승부조작이라는 게 그렇게 애들 장난처럼 이뤄지는 게 아니다. 최근 들어서는 이 승부조작이 더 교묘하게 스포츠에 자리 잡고 있다.

구단과 언론에까지 퍼지는 승부조작의 유혹

얼마 전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승부조작을 주도하는 브로커들이 우리나라 프로축구 하부리그 구단 인수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정난에 허덕이는 구단을 사들여 일으켜 세우는 척 하면서 이 구단을 승부조작의 기지로 삼겠다는 아주 무시무시한 계획이다. 처음부터 “승부조작을 위해 구단을 인수하겠다”고 하지 않고 구단 스폰서 개념으로 접근하면 재정이 좋지 않은 구단으로서는 손 쓸 틈도 없이 승부조작의 원흉이 될 수밖에 없다. 한 구단의 구단주가 승부조작 주범이고 사장은 브로커고 감독과 선수는 인질이라고 생각하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뿐 아니다. 최근 들어서는 승부조작 세력이 국내 언론사를 인수하려고 알아보고 있다는 소문도 기정사실화 돼 떠돌고 있다. 영세한 언론사를 사들여 취재를 목적으로 감독, 선수들과 접촉하고 이를 승부조작에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인수한 언론사를 승부조작 소스 제공하는 일에도 쓰겠다는 의도도 있다. 승부조작을 포착하면 사회 정의를 위해 가감 없이 비판하고 들춰내야 할 언론이 승부조작의 손아귀 안에 있다면 이 얼마나 오싹한 일인가. 승부조작을 은근슬쩍 감춰주고 옹호하는 언론이 생긴다면 그건 언론계 전체가 자존심에 큰 타격을 입을 일이다. 물론 이제 막 출범해 회식도 김치찌개로 하는 영세한 우리 언론사 역시 이런 검은 유혹에는 절대 흔들리지 않겠다는 걸 다짐한다.

이제는 승부조작이 단순하지 않다. 선수들에게 유흥을 대접하거나 꾀어서 승부조작을 시키고 이후에는 이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해 또 다른 승부조작을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언론과 구단까지도 사들일 만큼 몸집이 커진 그들이 스포츠계 어디를 들쑤시고 다닐지는 모를 일이다. 경기장에 출입하는 모든 이들이 이제는 승부조작에 그대로 노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승부조작 세력이 구단과 언론사까지도 들쑤시고 있는데 심판들에게도 접근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최근에는 전주 노릇을 하는 전문직, 연예인 등이 마치 펀드 매니저를 고용하는 것처럼 도박사들에게 5억∼10억 원을 맡기고 뒤에서 수익을 얻기도 한다.

승부조작 혐의로 축구계를 떠난 최성국은 지난해부터 공식석상에 얼굴을 보이고 있다. ⓒ광주상무

승부조작 연루자의 ‘피해자 코스프레’

이 상황에서 승부조작의 주범들은 자꾸 공식적인 자리로 나오려 하고 있다. 2010년 K리그 승부조작의 주범이었던 최성국은 인터뷰나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여론을 살핀다. 더 나아가 프로농구 승부조작을 주도한 전 농구 감독 강동희 또한 얼마 전 한 프로야구단을 대상으로 부정방지 특별강연을 했다. 내용은 뻔하다. “나처럼 되지 말라. 주변 사람들을 다 믿지 말라. 선의를 베푸는 사람들은 한 번쯤 의심하라. 난 지금 정말 힘들다. 후회하고 있다.” 그런 말은 나도 할 수 있다. 스포츠계를 뒤흔드는 승부조작을 자행해 놓고도 또 대중 앞에 나타나도 용인이 되는 세상이니 이거 참 승부조작도 할만 한 것 같다. 전국 각지를 돌며 엘리트 체육 선수들에게 부정행위 방지 강연만 하고 다녀도 강연료로 좋은 차에 좋은 집은 충분히 유지할 것이다.

먼저 승부조작을 일으킨 이들이 자꾸 세상에 나오는 건 반대하고 싶다. 최성국이 ‘조작호프’를 차리건 강동희가 ‘역배노래방’을 차리 건 그건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들도 사람인데 먹고 사는 문제를 가지고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아니 인간적인 측면으로 봐서는 고생도 좀 하고 나중에는 그래도 남들 못지 않게 살았으면 한다. 하지만 그들이 자꾸 자신들도 승부조작의 피해자인 것처럼 대중 앞에 서는 건 안 된다. 이제 깔끔하게 스포츠계와는 인연을 끊고 본인의 길을 가면 그거 가지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욕 먹는다. 더 이상 그들이 ‘피해자 코스프레’하면서 억울하다고 징징대는 걸 들어주는 분위기는 오히려 승부조작에 대한 동정 여론만 키우는 셈이다.

또한 이제는 선수들이 알아서 조심한다고 해 승부조작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강동희가 아무리 선수들 앞에서 승부조작의 위험성을 역설해도 구단과 언론까지 승부조작범들과 한 패가 되면 손 쓸 방법이 없다. 아니 구단주와 감독이 작정하고 승부를 조작하고 언론에서도 이걸 부추기면 선수가 제 아무리 성인군자라고 해도 어쩔 텐가. 목숨 걸고 기자회견을 열어 양심선언을 할 수 있나. 아니면 협박하는 구단주한테 이적을 요구할 수 있나. 선수들에게 소양 교육만 시킨다고 해서 승부조작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이미 우리는 승부조작범들과의 승부에서 지고 들어가는 거다.

이제 승부조작은 개인의 잘못을 넘어섰다

구단과 언론사까지도 인수하려는 승부조작 세력의 치밀하고도 무서운 계획에 이제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간 초대형 악재가 터질 수도 있다. 지금이야 몇몇 선수의 개인적인 잘못으로 돌리면 되지만 만약 훗날 구단과 언론에도 승부조작이라는 거대한 암 덩어리가 발견되면 그때는 그저 죽어가는 한국 스포츠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말해 칼럼이라면 해결책까지 내놓아야 하는데 이런 거대한 세력과의 싸움에서 내가 지금 당장 내놓을 수 있는 해결책은 딱히 없다. 다만 이제는 승부조작의 거대한 음모가 선수뿐 아니라 구단과 언론을 포함한 그 어떤 누구에게라도 손을 뻗칠 수 있다는 것부터 공론화하고 함께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칼럼이 영향을 끼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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