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약자 편에 서려고 노력한다.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힘겹게 꿈을 위해 노력하는 선수들을 조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아직 능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그게 내가 가야할 길이라고 믿는다. 일부에서는 그래서 내가 유명한 해외파를 싫어한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이런 오해를 들으면서도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거나 귀 기울이는 게 좋다. 그런 면에서 나는 KBS 2TV에서 방송 중인 <청춘FC-헝그리 일레븐>이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방송 전부터 직접 담당 PD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고 이후에도 열혈 시청자가 돼 그들을 응원 중이다. 한 번씩 실패를 경험한 이들이 다시 모여 꿈을 쫓는 과정이 너무나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치열한 시즌 막판, 엉뚱한 올스타전(?)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들의 팬이다. 그들 중에서 단 한 명이라도 다시 꿈을 위해 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겠다. 마음 같아서는 그들이 한 팀이 돼 K3리그 무대나 내셔널리그 등에서 다시 한 번 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도전을 응원하면서도 최근의 행보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묵묵히 기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청춘FC 선수들에게는 잘못이 없지만 소외된 ‘을’이었던 그들이 어느덧 ‘갑’이 됐기 때문이다. 청춘FC가 K리그 챌린지 선발과의 경기를 치른다는 소식은 특히 더 그랬다. K리그 챌린지는 예능 프로그램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서 청춘FC는 ‘갑’이고 K리그 챌린지는 ‘을’이다. 미생이었던 그들은 어느덧 ‘갑’이 돼 있었다.

청춘FC와 K리그 챌린지 선발의 경기가 불편한 이유는 시기 때문이다. 청춘FC 측은 K리그 챌린지 선발과 오는 14일 마지막 평가전을 치른다고 밝혔는데 이 시기가 참 미묘하다. K리그 챌린지의 막판 순위 싸움이 펼쳐지는 과정에서 선수들의 컨디션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각 팀마다 2~3명의 선수를 의무적으로 차출해야 하는데 만약 그들이 K리그 챌린지에서도 완생을 꿈꾸는 백업 요원들이었더라면 그나마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이랜드FC는 김영광과 김재성 등 주축 선수들을 내보내야 하고 안산경찰청 역시 신광훈과 신형민 등 핵심 선수들이 경기에 나서야 한다. 박종찬, 김혁진(이상 수원FC)과 안성남, 최진호(강원FC), 김준엽(경남FC), 황순민(대구FC), 주현재, 조성준(이상 FC안양) 등 팀의 핵심 자원들도 대거 K리그 챌린지 선발에 포함됐다. 시즌 막판 순위 싸움이 중요한 시점에서 K리그 챌린지는 ‘갑’인 지상파 방송사의 들러리가 될 수밖에 없다.

서울이랜드FC를 예로 들어보자. 현재 서울이랜드FC는 현재 K리그 챌린지에서 대구FC에 이어 2위를 내달리고 있다. 하지만 3위 상주상무와 4위 수원FC에 비해 경기를 더 많이 치른 상황이라 얼마든지 순위에는 변동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핵심 선수들을 청춘FC전에 내보내고 나흘 뒤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를 놓고 경쟁 중인 수원FC와 경기를 치러야 한다. 다른 팀의 상황 역시 다르지 않다. 2위부터 4위까지의 승점차가 1점에 불과한 상황에서 시즌 막판 체력적인 부담과 부상 위험까지 각오하고 선수들을 내주기에는 부담이 상당하다. 더군다나 대중에게 마지막으로 경기력을 보여줘야 하는 청춘FC 선수들이 부상을 각오하고라도 이를 악물고 뛸 건 당연한 일이다. K리그 챌린지로서는 지상파 방송사의 요구를 거절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선뜻 응하기에도 어려운 일이었다. 만약 잉글랜드 챔피언십이 막판으로 치닫고 여기에 승강에 대한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는데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을 위해 챔피언십 올스타가 선발된다면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

옳은 방향으로 가던 청춘FC의 역주행
청춘FC가 지금껏 상대한 팀들을 보면 수긍할 만했다. 서울이랜드FC와 성남FC, FC서울 등을 상대했지만 그들은 대부분 팀의 주력 선수들이 아니었다. 유스 선수들이 수급됐고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백업 선수들이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식의 경기로도 나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완생을 꿈꾸는 미생들의 대결이라는 점에서도 감동적인 부분이 많았다. 한 팀의 선수들은 소속팀이 있지만 그 안에서도 현실의 벽에 도전하는 입장이었고 또 다른 팀의 선수들은 소속팀도 없이 더 큰 도전에 뛰어든 이들이었다. 이렇게 주목받지 못한 이들끼리 경기를 펼치며 많은 관중 앞에서 박수를 받고 언론을 통해 주목받는 일은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의 순기능이었다. 이 과정을 보며 시청자들은 많은 감동을 받았고 기존의 축구팬들 역시 청춘FC의 도전에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여기까지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청춘FC와 K리그 챌린지 선발의 경기는 조금 다른 의미다. 한창 리그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청춘FC를 상대하기 위해 K리그 챌린지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올스타’ 개념으로 모여 경기를 치러야 한다. 물론 모든 포커스는 K리그 챌린지 선발이라는 큰 벽에 도전하는 청춘FC 선수들에게 맞춰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과연 이런 식으로까지 청춘FC가 K리그 챌린지 선발에 도전장을 내밀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이걸 K리그 챌린지의 홍보 효과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청춘FC가 유럽 전지 훈련을 떠나 상대했던 팀들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K리그 챌린지 선발 역시 유럽 전지 훈련에서 청춘FC가 만났던 팀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저 K리그 챌린지 선발은 청춘FC에게는 여러 스파링 파트너 중 한 팀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시선은 오로지 청춘FC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청춘FC 선수들 중 단 한 명이라도 K리그 챌린지에서 뛸 수 있게 됐다면 이건 기적과도 같은 일일 것이다. 선수들에게는 K리그 챌린지라는 곳이 꿈의 무대다. 그런데 그들이 동경하는 리그의 일정을 예능 프로그램이 좌지우지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제작진들이 K리그 챌린지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하지 않았을까. 다른 이들도 아니고 K리그 챌린지에서 뛰는 게 꿈인 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라면 말이다. 2군 선수 위주에 유소년 선수와 1군에서 컨디션을 조절 중인 선수들이 적절히 섞인 단일팀이라면 모를까 K리그 챌린지에서 가장 능력이 뛰어난 이들을 예능 프로그램을 위해 모아 놓는다는 게 축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청춘FC를 응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아쉽다. 옳은 방향으로 잘 나가던 청춘FC가 한 순간의 스파링 파트너 선정으로 비난 받아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이대로 묻히면 안 될 FA컵 4강전
K리그 챌린지 선발과의 경기 일정이 리그 막판에 겹친 것과는 별개로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이 있다. 사실 K리그 챌린지 선발과의 평가전이 예정된 14일은 2015 하나은행 FA컵 4강전 두 경기가 열리는 날이다. 이날 오후 7시 30분부터 인천유나이티드-전남드래곤즈전과 울산현대-FC서울전이 동시에 열릴 예정이다. FA컵 4강은 축구계 전체의 축제가 되어야 하는데 이날의 이슈는 청춘FC가 될 게 뻔하다. FA컵 결승 진출 팀을 가리는 중요한 승부가 이벤트성 경기에 가린다는 건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여기에는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거대한 ‘갑’이 있기 때문이다. ‘축구판 완생을 꿈꾸는 미생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청춘FC는 어느덧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인지도를 앞세워 미생이 아닌 ‘갑’이 되고 말았다. 청춘FC 측에서도 일정 조율을 위해 노력했겠지만 FA컵 4강전이 열리는 날 일정을 잡았다는 건 참으로 아쉬운 결정이다.

물론 청춘FC 선수들을 비판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시기에 이해할 수 없는 경기 일정과 상대를 잡은 청춘FC 제작진들, 그리고 그들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한 프로축구연맹에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진정 청춘FC 선수들이 더욱 많은 주목을 받고 성장해 나가면서도 프로그램이 더 인기를 끄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2종 클럽으로 등록해 FA컵 도전기를 다뤄도 좋고 아예 이 인기를 등에 업고 K3리그 팀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방법도 있다. 여러 방법이 있고 어떤 식이건 나는 응원을 보낼 테지만 이번 K리그 챌린지 선발과의 평가전 만큼은 이해할 수 없다. 수능시험을 일주일 앞둔 지방 수험생에게 다른 학생들을 위한 좋은 기회라며 함께 서울로 올라가 시험 범위가 아닌 과목의 과외를 받으라고 강요한다면 어떨까. 지금이 딱 그 꼴이다.

나는 늘 약자의 편을 들어주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고 하지만 이 상황에서 약자는 청춘FC가 아니라 오히려 K리그 챌린지 선발이다. 청춘FC의 꿈을 응원하지만 K리그에서 뛰는 선수들 역시 청춘FC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이겨내고 프로에서의 수많은 경쟁을 치르고 있는 이들이다. 그런데 청춘FC만이 왜 지상파 방송사의 힘을 뒤에 업고 일방적인 지지를 받아야 할까. 왜 청춘FC의 꿈을 위해 K리그 챌린지 선수들의 꿈은 등한시 되어야 하는가. K리그 챌린지에서 뛰는 선수들에게도 꿈이 있는데 말이다. 어렵게 노력해서 경쟁을 이겨낸 프로 선수들이 그 경쟁에서 낙오된 이들의 들러리가 되는 현상이 참으로 아쉬울 뿐이다. 나는 여전히 청춘FC 선수들을 응원하지만 왜 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에 대한 예의는 없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