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동안 축구팬들이 가장 많이 싸웠던 주제는 국내파와 해외파였던 것 같다. 이동국이 낫느냐, 박주영이 낫느냐도 결국에는 이 범주 안의 싸움이었고 최강희 감독과 홍명보 감독에 대한 찬반 역시 다 이 큰 틀 안의 논쟁이었다. 이동국은 국내파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였고 그를 전적으로 믿어주고 국내파를 대거 중용한 건 최강희 감독이었다. 반대로 박주영은 해외파의 대표 주자였고 박주영을 비롯한 해외파에게 기회를 준 게 홍명보 감독이었다. 정답은 없지만 우리는 늘 이렇게 쳇바퀴 도는 듯한 논쟁으로 몇 년을 허비했다. 그렇다고 이 논쟁이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된 것도 아니었다.

케케묵은 논쟁, 국내파와 해외파

나도 ‘국내파를 폄하하면 안 된다’는 쪽이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도 칼럼을 썼던 기억이 있는데 당시 나는 해외파 위주로 구성된 대표팀이 ‘우리팀’보다는 ‘너희팀’이라는 인식이 더 강하다는 느낌을 피력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국내파 중용론자이기 전에 국내파와 해외파가 절묘하게 어우러져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당시 대표팀은 한 쪽에만 치우친 반쪽짜리 대표팀 같았다. 물론 이는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을 이끌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현상이 심해지자 한 쪽은 “국내파는 수준이 떨어진다”고 했고 한 쪽에서는 “해외파는 건방지다”고 했다. 결국에는 국내파가 이적해 해외파가 되고 해외파도 국내로 복귀해 국내파가 되는 건데 마치 K리그 선수들은 그저 해외파로 베스트11을 꾸린 뒤 남는 자리를 채우는 신세 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참 불편했다. 대표팀의 경기력을 논하다보면 어느샌가 이 논쟁은 K리그의 낮은 수준으로 귀결됐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최강희 감독이나 홍명보 감독, 혹은 이동국이나 박주영, 혹은 국내파 전체와 해외파 전체 중 누가 더 잘 났느냐가 아니다. ‘적당히’라는 게 있어야 하는데 과하게 한 쪽으로 치우쳐 마치 K리그에서 뛰면 모두가 ‘땜빵용’이고 해외에서 뛰면 대표팀 승선에 인센티브(?)를 얻는 듯한 분위기가 싫었다는 것이다. 당시 감독들은 저마다의 철학이 있어 선수 선발에 고집을 부렸겠지만 결국 양 쪽으로 갈라져 싸우는 팬들은 봉합될 기미조차 보이질 않았다. 나도 2014 브라질 월드컵이 열리기 전 이렇게 해외파 한 쪽으로 치우쳐진 대표팀에 우려 섞인 이야기를 했다가 호되게 욕을 먹기도 했다. 그깟 공놀이인데 사람들은 국내파와 해외파를 놓고 마치 자기네 집 조상의 선산을 놓고 싸우는 것 이상으로 싸웠다. 선산의 상속 문제는 법정에서 가려지기라도 하지 케케묵은 국내파와 해외파 논쟁은 누가 답을 내려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한 뒤 이런 해묵은 논쟁이 쏙 들어갔다. 나는 슈틸리케 감독의 여러 업적 중 이걸 가장 지금까지의 가장 훌륭한 업적으로 꼽고 싶다. 바로 어제(8일) 레바논을 상대로 할 때도 그 누구도 “국내파의 수준이 떨어진다”거나 “해외파끼리 패스를 한다”고 한 이는 없었다. 권창훈은 권창훈일뿐 그에게 ‘국내파’라는 꼬리표를 달고 괜한 시비를 거는 이도 없었다. 기성용도 대표팀의 주장 기성용일뿐 그를 바라보고 “이게 해외파의 실력이다”라며 ‘해외파부심’을 느끼고 시비를 거는 이도 없었다. 석현준과 황의조를 놓고 선발 원톱을 논할 때 ‘해외파여서’ 석현준을 여론이 더 미는 게 아니라 최근 컨디션과 전술적인 움직임을 놓고 의견을 제시하는 옳은 분위기로 가고 있는 것도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달라진 부분이다.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K리거는 안 된다”며 석현준의 중용을 주장하는 이가 있었을 테고 “해외파라고 다 되는 건 아니다”라며 황의조의 투입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을 텐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느덧 ‘한 팀’이 된 슈틸리케호

슈틸리케 감독이 정말 분위기를 잘 잡아놓은 덕분이다. 이제 대표팀에서 국내파와 해외파의 구분은 완벽히 사라진 것 같다. 홍철과 김진수가 왼쪽 측면을 놓고 경쟁하는데 이 둘을 평가할 때면 서로의 장단점만을 바라볼 뿐 홍철이 국내에서 뛰고 있다고 해 그를 깎아내리는 이도 없고 김진수가 유럽에서 활약한다고 해 그를 무조건 중용하자고 주장하는 이도 없다. 박주호와 권창훈의 경쟁 역시 마찬가지다. 오로지 이 둘의 실력과 최근 컨디션만을 따질 뿐 이들이 이제 어디 소속인지에 신경을 쓰고 딴죽을 거는 이들은 없다. 아마 내가 오늘 칼럼을 쓰기 전까지 이번 대표팀에서 국내파와 해외파가 나눠져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슈틸리케 감독이 적절하게 실력 위주로 대표팀을 꾸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국내파와 해외파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졌을 정도다. 물론 나 역시 국내파와 해외파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이 있지만 이들을 나눠 바라보던 과거의 표현 그대로를 빌려오지 않으면 지금 얼마나 슈틸리케호가 한 팀으로 똘똘 뭉쳤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국내파와 해외파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 선발과 기용을 통해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레바논전에서 구자철을 45분만 기용하고 후반 들어서는 이재성을 투입했다. 박주호가 나올 것으로 예상됐던 것과 달리 기성용의 파트너는 또 다시 권창훈이었다. 컨디션만을 놓고 선택한 것이다. 반대로 황의조는 K리그에서 펄펄 날고 있지만 석현준이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조커로 밀렸다. 이들뿐 아니라 모든 포지션의 선수들이 마찬가지다. 슈틸리케 감독이 다양하게 선수들을 기용하면서 불과 1년 만에 선수 자원이 무척이나 풍부해졌다. 국내파 위주로 대표팀을 뽑거나 아니면 해외파들끼리만 뭉쳐 대표팀이 완성됐더라면 나머지 절반은 동료가 될 수 없는 이들이지만 이제 대표팀은 기성용과 권창훈, 이청용과 이재성, 석현준과 황의조, 손흥민과 김승대가 어울릴 수 있는 팀이 됐다. 단순한 논리지만 그랬더니 대표팀에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은 기존보다 두 배나 늘었다. 나는 슈틸리케호의 경기력을 떠나 이게 가장 훌륭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그 누구도 “국내파에게도 눈길을 달라”고 하거나 “해외파가 무조건 짱”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제 더는 국내파와 해외파를 애써 나누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어울리는 분위기가 됐다. 어제 열린 레바논전만 하더라도 선발 및 교체 출전한 14명 중 K리그에서 뛰는 이는 김승규와 권창훈, 이재성, 황의조, 임창우 등 다섯 명이었고 유럽에서 활약 중인 이는 기성용을 비롯해 김진수와 구자철, 이청용, 석현준 등 다섯 명이었다. 이외에도 중국에서 뛰고 있는 김영권과 장현수, 일본의 정우영, 중동의 곽태휘 등까지 포진해 있으니 이보다 더 절묘한 조화가 있을 수 있을까. 공평하게 선수들을 투입하기 위해 억지로 숫자를 나눈 것도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국내파와 해외파의 비중이 적절히 조화됐다는 게 결국 좋은 경기력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이뿐 아니다. 대표팀에는 대학생 골키퍼 김동준도 있고 이번에는 부상으로 안타깝게 빠졌지만 K리그 챌린지의 이정협도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 국내와 해외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고 국내 선수들 중에도 리그를 가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국내파와 해외파, 이제 더는 장벽이 없다

지금껏 우리는 매일 ‘해외파가 낫네’, ‘국내파도 해외파 못지 않네’라는 주장으로 갈려 끊임 없이 싸워왔다. 나는 후자에 가까운 쪽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외파라고 무턱대고 배척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지난 월드컵을 앞두고 그토록 외친 건 해외파가 싫어서가 아니라 국내 무대에서 뛰는 능력 있는 선수들도 기회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절대 국내 선수들과 해외 선수들을 나눠 생각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결국에는 국내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면 해외로 나가는 것이고 거기에서 또 적응에 실패하면 국내로 돌아오는 건데 이 경계가 무슨 소용일까. 그런 의미에서 이 경계가 슈틸리케 감독에 의해 모호해 진 걸 상당히 환영한다. 그리고 레바논전은 지금껏 수도 없이 국내 경기장을 돌아다니고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의 기량을 체크해 온 슈틸리케 감독이 찾은 퍼즐을 완성한 경기였다. 훗날 또 다른 감독이 대표팀에 부임해 국내파건 해외파건, 신예건 노장이건 다시 파벌이 나뉘고 대립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만큼은 그 어떤 파벌이나 장벽도 없이 오로지 ‘하나의 팀’이 된 슈틸리케호를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