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잠까지 반납하고 지켜본 한국과 코스타리카의 2015 캐나다 여자월드컵 조별예선 두 번째 경기는 참으로 아쉬웠다. 선취골을 내준 뒤 지소연과 전가을이 연이어 골을 뽑아낼 때만 하더라도 사상 첫 월드컵 승리라는 대위업이 눈앞에 다가 왔었지만 결국 마지막 1분을 버티지 못했다. 한국은 후반 44분 코스타리카에 치명적인 골을 내주며 경기를 2-2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고 이렇게 월드컵 첫 승 도전은 또 다시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됐다. 마지막 1분을 버티지 못하고 골을 허용하던 순간 나도 탄식했다. 경기를 잘 풀어놓고 이렇게 허무하게 골을 내주니 답답하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다.

윤덕여호의 막판 실점, 그 두 가지 아쉬움

그런데 경기가 끝나고 나니 온통 그녀들을 향한 질타만이 쏟아진다. 정당한 비판이야 당연히 윤덕여호가 받아들여야 한다. 후반 막판 선수 교체나 공격적인 경기 운용 등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김혜리가 부상을 당해 임선주를 중앙 수비수로 투입하고 심서연을 우측으로 기용한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실점의 빌미를 여기에서 찾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걸 남자 대표팀으로 바꿔 비교해 보면 이해가 쉽다. 오른쪽 측면의 차두리가 부상을 당해 그 자리에 중앙과 측면을 겸할 수 있는 김주영을 배치하고 중앙 수비수로 홍정호를 새롭게 투입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물론 이럴 때만 여자축구에 관심을 갖고 훈수 두기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런 전후 상황과 선수들의 특성은 안중에도 없겠지만 말이다. 어찌 됐건 감독으로서 전술적인 변화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두 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건 후반 막판 공격적인 경기 운용이다. 윤덕여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조별 라운드에서 더 많은 득점이 필요했기 때문에 지키려는 생각은 없었다.” 사실 이건 결과론적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윤덕여 감독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경우의 수를 따지며 골 득실까지 계산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한국이 코스타리카를 3-1로 제압했을 때 우리가 대단히 유리해진다. 아마 마지막 순간까지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가 한국이 한 골을 더 넣었더라면 우리는 지금쯤 ‘갓덕여’라며 그를 극찬하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건 일종의 도박이었고 윤덕여 감독의 이런 도박은 실패로 돌아갔다. 사실 내가 감독이어도 끝까지 고민이 되긴 했을 것 같다. 어차피 지키는 것도 불확실하고 골 득실도 따져야 하는데 공격할 것인가, 아니면 일단 안정적으로 지키고 볼 것인가. 윤덕여 감독은 전자를 택해 실패했지만 여기에는 정답이란 게 따로 있을 수는 없다.

이 두 가지 비판은 반박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문제 제기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각자 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김혜리를 빼고 임선주를 투입한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고 막판 공격적인 경기 운용에 대해서도 비록 실패했지만 감독으로서는 과감히 도박을 걸어볼 만한 사안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의 의견도 존중한다. 결과론적이지만 임선주를 투입하지 않고 마지막에 다른 선수를 교체 투입해 잠그기에 들어갔더라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경기가 끝난 뒤 이런 건전한 토론이 이뤄지는 분위기라면 뭐 내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이가 많아도 기분 나쁘지 않다. 또한 윤덕여 감독으로서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선택은 감독의 몫이었고 그는 마지막 순간 감독으로서 아쉬운 결과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도박에서는 이렇게 잃을 수도 있고 딸 수도 있다.

여자축구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 이런 건전한 토론은 별로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선수들을 흠집 내기에 바쁘다. 그녀들의 외모를 지적하는 이들부터 지소연의 별명이 ‘지메시’라는 것까지 트집을 잡는다. 부상으로 뛸 상황이 아닌 박은선을 두고 “왜 투입하지 않았느냐”고 생떼를 쓰는 이들도 있다. 조롱과 비아냥이 넘친다. 이렇게 저급한 팬 의식이 자리 잡은 나라에서 여자 월드컵 본선 무대에 진출한 선수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그녀들에게 조롱과 비아냥을 던지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저들이 월드컵 본선 무대에 나설 때까지 도대체 한국 여자 축구를 위해 무얼했는가. WK리그 경기장엘 한 번 가 보았나. 아니면 여자축구 대표팀 경기에 가 응원을 한 번이라도 보내길 했는가. 그것도 아니면 그녀들 SNS에 가 응원 메시지 한 번 보내기라도 해 보았는가. 아마 이렇게 어떤 식으로건 여자축구를 응원했던 이들이라면 지금과 같은 조롱과 비아냥은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지금 조롱과 비아냥 뿐인 이들이 축구팬이 아니라 그저 어떤 일이건 우르르 몰려다니며 낄낄거리는 인터넷 패거리들이라고 생각한다.

앞서와 같은 질문을 던지면 꼭 이런 반박이 돌아온다. “아니. 평소에 WK리그 보지 않으면 여자 월드컵에 관심도 갖지 말라는 건가.” 물론 WK리그에 관심이 없어도 여자 월드컵에 관심은 다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평소 여자축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전혀 없었으면 이렇게 대표팀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도 그냥 조용히 지켜보고 말면 된다. 평소 투표는 하지도 않고 나중에 정치가 어쩌고 하는 것과 크게 다를 거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투표도 하지 않은 이가 나중에 “우리 정치는 썩었다”고 지탄의 목소리를 낸다면 이보다 더한 모순이 또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적어도 그녀들에게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으면 그냥 이렇게 실망스러운 모습에 그칠 때도 예전과 다르지 않게 행동해 달라는 말이다.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는 말이 있는데 ‘모든 나라는 그 나라 축구팬들 수준에 맞는 대표팀을 가진다’는 말로 바꿔도 다를 게 없다. WK라고 범위를 줄이지도 않겠다. 지금껏 여자 대표팀을 위해 우리가 한 일은 무엇인가. 2010년 여자 청소년 대표 선수들이 청소년 월드컵에서 입상할 때 이후 우리는 그녀들에게 관심이나 줬었나.

2011년 U-20 남자 청소년월드컵에 나선 이들은 콜롬비아전 0-1 패배 이후 국내 여론의 엄청난 조롱과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그 당시 이광종 감독의 전술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여자 대표팀 윤덕여 감독의 전술과는 정반대였다. 조별예선 마지막 콜롬비아전에 나선 이광종 감독은 선수들에게 ‘선수비 후역습’을 지시했고 선수들은 90분 내내 잔뜩 움크린 채 경기에 나서야 했다. 하지만 이 경기가 끝난 뒤 인터넷은 초토화됐다. 이광종 감독을 비롯해 선수들 한 명 한 명에게 조롱이 이어졌다. 일부에서는 만나본 적도 없고 대화를 나눠본 적은 더더욱 없는 선수들의 인성을 운운하며 마치 정의의 사도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물론 당시 콜롬비아전은 굉장히 실망스러운 경기였음이 분명하지만 전술과 전략에 대한 비판이 아닌 의미 없는 조롱과 비아냥만이 전부였다. 그런데 놀라운 건 또 이들이 16강에서 스페인을 만나 선전하자 여론이 금방 바뀌었다는 점이다. “내가 너희들 언제 한 번 이렇게 일 낼 줄 알았다.” 불과 며칠 전 그 조롱과 비아냥은 싹 사라지고 처음부터 이광종호를 열렬히 응원하던 이만 있었다고 느낄 정도였다.

여자축구, 잘하면 ‘우리팀’, 못하면 ‘너희들’

잘하면 ‘우리팀’이고 못하면 ‘너희들’인가. 여자 대표팀이 두 경기 연속 월드컵 본선 첫 승에 실패하자 그녀들은 ‘너희들’이 되고 말았다. 이러니 <‘너희들’이 뛰는 프로리그에는 관중이 없고 ‘너희들’ 실력이 그 모양 그 꼴>이라는 분위기다. <‘너희들’이 그렇게 겉멋 부리고 화장을 하니 ‘너희들’이 하는 경기 결과가 이렇다>고 한다.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이들로 그녀들을 바라보는 이 모습은 축구팬으로서는 치사한 행동이다. 만약 그녀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다면 어땠을까. <‘우리’ 태극여전사들>, <‘우리’ 지메시>, <‘우리’의 자랑스러운 여자축구>가 됐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들과 우리를 하나로 묶으며 서로 한국 축구 발전에 지분을 주장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껏 한국 축구, 특히 여자 축구는 늘 이런 상황 속에서 살아왔다. 2010년 청소년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냈을 때는 저마다 <자랑스러운 ‘우리’ 여자축구>라고 숟가락을 얹었지만 이런 이벤트만 지나가면 <무관중 앞에서 공차는 ‘너희’ 여자축구>가 됐다. 이번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대표팀을 응원하려면 자국리그부터 관심을 가지라는 말은 더 이상 하고 싶지도 않다. 이런 말이 통했을 거면 진작에 통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에 관심도 없었으면 제발 그녀들이 실망스러운 경기력에 그쳤다고 해 조롱과 비아냥의 탈을 쓰고 근엄한 척 비판하려는 행동도 하지 말자. 지금까지 경험으로 비춰보면 여자 대표팀이 반짝 성적을 내면 또 이런 이들이 제일 먼저 나서 <‘우리’ 여자축구>를 외치고 있었다. 지금부터라도 여자축구 대표팀이라는 ‘우리’ 배에 다 같이 탑승하는 건 어떨까. 오히려 이렇게 그녀들이 자책할 때가 힘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윤덕여호를 비판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고민하고 비판하는 건 ‘우리’가 되도 언제든 할 수 있다. “‘너희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한 번 지켜보자”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잘할 수 있도록 함께 응원하자”가 지금 상황에서 더 맞는 게 아닐까. 나나 독자들보다 축구에 대해 훨씬 더 능통한 리버풀의 레전드 빌 샹클리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비기거나 지고 있을 때 응원할 수 없다면 우리가 이길 때도 응원하지 말라.” 우리는 지금 벼랑 끝에 몰린 여자 대표팀을 과연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한 번 곱씹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