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이 막을 내렸다. 올 시즌 역시 명승부가 속출하며 우리에게 재미를 선사했다. 특히 스플릿 시스템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진출 티켓, 승강을 놓고 싸운 경기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짜릿한 감동을 줬다. 오늘은 2014 K리그 클래식에서 우리를 울리고 웃겼던 명승부 10경기를 꼽아봤다. 이 경기들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며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을 한 번 정리해 보는 건 어떨까. 물론 선정은 언제나 그렇듯 내 마음대로다.

10위. 2014년 3월 9일 상주종합운동장
상주 2-2 인천 (부제 : 11분 짜리 반전 드라마)

K리그 팬들이 겨우내 기다린 개막전에서부터 명승부가 연출됐다. K리그 챌린지에서 승격해 K리그 클래식 복귀전을 치른 상주의 안방에서 열린 상주와 인천의 이 경기는 올 시즌 명승부의 출발점이었다. 전반 내내 열띤 공방전을 펼치며 0-0 동점으로 경기를 마친 상주와 인천은 후반 들어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명승부를 연출했다. 그리고 마침내 후반 30분부터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경기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박태민이 왼쪽 측면에서 짧게 내준 공을 남준재가 넘어지면서 슈팅으로 연결하며 인천이 선취골을 뽑아낸 것이었다. 하지만 상주가 2분 뒤 곧바로 반격에 성공했다. 코너킥 상황에서 이정협이 쇄도하며 헤딩으로 인천의 골망을 흔들면서 또 다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 세웠다. K리그 클래식에 이제 막 승격한 상주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경기를 잘 풀어나가고 있었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상주의 집중력은 더 이어졌다. 후반 40분 코너킥에서 양준아가 이상호에게 짧게 내준 패스를 이상호가 크로스가 연결했고 이호가 이를 힐킥으로 연결해 인천 골문을 다시 한 번 가른 것이다. 2-1로 상주가 역전에 성공하고 경기는 이대로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실점 1분 만에 또 다시 인천이 믿기지 않는 골을 뽑아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교체 투입된 지 2분밖에 지나지 않은 이효균이었다. 이효균은 이윤표가 길게 넘겨준 공을 침착하게 가슴으로 잡아 놓은 뒤 왼발슛을 날려 상주 골망을 출렁였다. 11분 동안 네 골이나 터진 대단한 명승부였다. 포기하지 않고 역전까지 성공한 상주와 그런 상주를 상대로 역시나 포기하지 않으면서 동점에 성공한 인천 모두에게 승점 1점씩 주기란 너무나도 아까운 경기였다. 하지만 이 경기 이후 인천이 9경기 동안 단 한 골도 넣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9위. 2014년 8월 23일 전주월드컵경기장
전북 1-2 서울 (부제 : 독수리 사냥에 실패한 봉동이장)

이 경기 전까지 전북은 3연승 중이었고 서울은 2연승을 내달리고 있었다. 상승세를 이어가야 하는 중요한 길목에서 만난 두 팀은 전반을 득점 없이 0-0으로 마쳤다. 하지만 이는 후반 명승부를 위한 숨 고르기에 불과했다. 후반이 시작되자 두 팀 모두 치열한 공방전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먼저 골을 뽑아낸 건 서울이었다. 후반 시작 후 채 1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승기의 패스 실수를 가로챈 윤일록이 돌파하며 한 박자 빠른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한 것이었다. 그러자 전북은 후반 5분 김남일을 빼고 레오나르도를 투입하며 공격적인 전술로 맞불을 놓기 시작했다. 레오나르도 투입 이후 전북은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반 16분 마침내 전북이 짜릿한 동점골을 뽑아냈다. 이주용이 길게 올린 크로스를 이동국이 그림 같은 왼발 터닝슛으로 연결하며 서울 골망을 흔든 것이다. 이동국의 세 경기 연속골이었다. 전북은 동점에 성공하자 카이오까지 투입하며 역전 의지를 불태웠다.

전북의 기세는 대단했다. 하지만 후반 44분 이재성이 올린 프리킥을 카이오가 헤딩으로 골문을 겨냥한 공이 골대를 강타하고 말았다. 극적인 역전의 기회가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경기가 1-1로 끝나가던 후반 추가 시간 이 명승부의 마침표를 찍은 건 서울이었다. 그것도 후반 추가 시간 4분 중 3분 40초가 흐른 시점에서 터진 극적인 골이었다. 전북 골키퍼 권순태와의 혼전 상황에서 고명진의 패스를 이어 받은 윤일록이 오른발 슈팅으로 통렬한 결승골을 뽑아낸 것이다. 윤일록의 골이 터지자 서울 선수들은 부둥켜 안고 이 극적인 승리를 자축했다. 윤일록은 이 날 두 골을 뽑아내며 전주성을 찾은 전북 팬들을 침묵시켰고 전북의 무시무시했던 10경기 연속 무패(7승 3무) 행진까지도 멈춰 세웠다. 경기 전 독수리를 사냥하겠다던 전북 최강희 감독도 결국 이 통한의 패배 이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8위. 2014년 7월 5일 광양전용경기장
전남 2-2 서울 (부제 : 몰리나가 돌아왔다)

월드컵 휴식기 이후 48일 만에 치러진 K리그 후반기 첫 경기에서 전남과 서울이 마주했다. 특히나 이 경기는 몰리나의 복귀전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2013년 12월 1일 전북과의 경기 이후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무려 7개월 동안 그라운드에 서지 못했던 몰리나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몰리나가 복귀하자마자 펄펄 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경기력을 끌어 올리는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90분 경기가 끝난 뒤 사람들은 하나 같이 몰리나를 연호할 수밖에 없었다. 이 경기를 통해 몰리나는 자신을 잊고 있던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어필했다. 먼저 골을 뽑아낸 건 전남이었다. 전반 9분 현영민의 코너킥을 이종호가 헤딩에 이은 왼발 터닝 슈팅으로 선취골을 뽑아낸 것이다. 이종호의 시즌 6호골이었다. 전남은 4분 뒤 또 한 번 골을 뽑아냈다. 안용우가 올린 공을 스테보가 가볍게 머리로 밀어 넣으며 2-0으로 달아났다.

이때부터 ‘몰리나 타임’이 시작됐다. 전반 44분 몰리나는 왼발 크로스로 오스마르의 첫 골을 도우며 복귀전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전반에만 세 골이 터진 이 경기는 후반 들어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이어지며 스코어 변동 없이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후반 39분 마침내 서울이 극적인 동점골을 뽑아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몰리나였다. 몰리나는 아크서클 근처에서 공을 잡은 뒤 수비수 두 명 사이로 그림 같은 왼발 중거리 슈팅을 날렸고 이 공은 천하의 김병지도 막을 수 없는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복귀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맹활약한 몰리나는 “한 물 갔다”는 평가를 실력으로 반박했다. K리그 전체 연봉 1위 몰리나의 가치를 입증한 경기였다. 비록 경기장을 가득 채운 홈 팬들은 전남의 승리를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경기 내내 쉴 새 없이 파도타기 응원이 펼치는 등 한 여름의 짜릿한 명승부에 푹 빠졌다. 네 골뿐 아니라 경기 내내 빠르게 이어진 공수전환으로 명승부의 자격을 충분히 갖춘 경기였다. 월드컵으로 버린 눈을 정화시켜주는 경기였다.

7위. 2014년 10월 26일 탄천종합운동장
성남 3-4 울산 (부제 : 12분 사이에 무슨 일이?)

울산으로서는 무척이나 중요한 경기였다. 6위까지 주어지는 상위 스플릿 티켓 마지막 한 장을 놓고 전남과 경쟁하던 울산은 성남을 반드시 잡아야 했다. 전반 38분 역습 상황에서 성남 왼쪽을 돌파한 양동현이 패스를 찔러주자 따르따가 침착하게 마무리하며 울산이 선제골을 뽑아낼 때만 하더라도 경기는 쉽게 풀려가는 듯했다. 하지만 후반 들어 성남의 반격은 무서웠다. 후반 3분 제파로프의 왼발 프리킥을 골문 앞에서 김태환이 헤딩으로 연결해 동점을 기록한 성남은 후반 11분에는 김동희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제파로프가 파넨카킥으로 침착하게 꽂아 넣으며 역전에 성공했다. 여기에 울산은 이용까지 부상을 당하면서 전력에 큰 공백까지 생겼고 후반 22분에는 김동섭에게 세 번째 골을 허용하며 무너지는 듯했다. 김동섭은 김동희가 침착하게 밀어준 공을 가볍게 차 넣으면서 팀 승리를 사실상 굳혔다.

하지만 이때부터 반전의 드라마가 시작됐다. 6분 만에 이호가 문전 혼전 상황에서 오른발 슈팅으로 추격골을 기록한 울산은 마지막 교체 카드로 박동혁을 선택했다. 김신욱의 부상으로 공격 자원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수비수 박동혁을 최전방에 기용한 변칙 전술이었다. 그리고 후반 36분 박동혁이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이를 양동현이 득점으로 연결하며 3-3으로 다시 균형을 맞췄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4분 뒤 울산은 박동혁이 헤딩으로 성남 골망을 흔들며 거짓말 같은 4-3 대역전극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순간 울산 조민국 감독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하늘로 치켜 들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울산은 경기 막판 성남의 파상공세를 온몸으로 막아내며 결국 상위 스플릿 진출을 확정지었다. 이후 이재명 성남 구단주가 이 경기 판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12분 동안 연거푸 세 골이나 퍼부으며 승부를 뒤집은 울산의 저력 만큼은 높이 평가할 만한 경기였다.

6위. 2014년 11월 22일 수원월드컵경기장
수원 1-2 전북 (부제 : 봉동이장의 대단한 용병술)

전북은 이미 우승을 확정지은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할 일이 남아 있었다. 8연승 중이었고 이 경기에서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아 무실점 기록도 써내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우승을 확정지은 상황에서 수원도 2위를 확정해 내년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놓은 상황이라 경기 집중력이 떨어질 수도 있었지만 두 팀은 자존심 대결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수원 역시 전북전 2연패의 사슬을 끊어야 했다. 특히나 권순태는 전반 38분 정대세의 강력한 슈팅을 막아내며 무실점 행진이 우연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는 걸 실력으로 보여줬다. 전북의 골문은 너무나도 견고했다. 전반을 팽팽한 승부 끝에 0-0으로 마친 두 팀은 후반 들어 불을 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후반 3분 전북의 8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끝내는 수원의 득점포가 터져 나왔다. 산토스의 로빙 패스를 이어 받은 정대세가 논스톱으로 날린 슈팅은 리그 최고 골키퍼 권순태가 몸을 날릴 수도 없이 예리하게 골문에 꽂혔다. 대기록을 노리던 전북의 기대감을 짓밟는 득점이었다.

하지만 무실점 행진은 막을 내렸어도 전북은 연승 행진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후반 28분 이승현과 정혁을 나란히 교체 투입한 전북은 역전을 위해 사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1분 뒤 최강희 감독의 용병술은 적중했다. 최철순이 투지를 앞세워 빼앗은 공이 이승기를 거쳐 교체 투입된 이승현의 발에 걸렸고 그가 날린 슈팅은 수원 골문 구석으로 꽂혔다. 교체 투입 1분 만에 이승현이 골을 기록하며 1-1 동점이 됐다. 그러자 수원도 김두현과 로저를 투입하며 공격 의지를 계속 이어갔다. 두 팀 모두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경기 종료 직전까지 1-1로 팽팽하던 균형은 후반 44분 깨졌다. 코너킥 상황에서 흘러나온 공을 정혁이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강하게 때렸고 이 공은 수원 수비수 몸에 맞게 굴절돼 그대로 수원 골문에 꽂혔다. 극적인 전북의 대역전승은 최강희 감독이 투입한 두 명의 발 끝에서 이렇게 마무리됐다. 전북은 이 승리로 9연승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1위를 이미 확정지은 선수들이라고는 볼 수 없는 투지와 집중력이었다.

5위. 2014년 5월 4일 광양축구전용경기장
전남 4-3 상주 (부제 : 신의 한 수가 된 코니의 투입)

5승 2무 3패로 시즌 초반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던 전남이 상주를 안방으로 불러들였다. 하루 전날 전북과 포항이 나란히 패하는 바람에 이 경기에서 승리를 따내면 선두권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절호의 상황이었지만 전남의 출발을 좋지 못했다. 전반 8분 만에 상주 유지훈에게 왼발 프리킥 골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바로 전남이 반격했다. 전반 17분 스테보가 페널티 박스에서 올린 크로스를 이종호가 몸을 날리며 오른발로 밀어 넣어 동점을 만든 전남은 전반 29분에는 현영민의 프리킥을 수비수 방대종이 헤딩골로 연결, 2-1 역전에 성공했다. 전남의 공격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1분 뒤 이번에는 이종호가 찔러준 공을 이현승이 오른발로 차 넣으면서 세 번째 골까지 기록했다. 화끈한 공격력에 팬들은 열광하기 시작했고 전남은 3-1로 앞서며 기분 좋게 후반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 반면 상주는 선취골 이후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무너지고 있었다.

하지만 후반이 시작되자 상주가 무섭게 반격했다. 후반 시작 4분 만에 유지훈의 크로스를 이어받은 하태균이 추격골을 뽑아낸 상주는 후반 14분에는 이근호의 크로스에 이은 이상호의 헤딩 동점골로 순식간에 3-3 동점에 성공했다. 3-1로 여유 있게 앞서 상황에서 졸지에 3-3 동점을 허용한 전남은 이후 박준태와 김동철을 연이어 투입하며 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상주의 단단한 수비진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자 전남 하석주 감독은 마지막 교체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장신 수비수 코니를 투입한 것이다. 후반 교체 투입된 박준태를 다시 빼고 코니를 투입하는 강수를 뒀다. 그런데 코니가 그라운드에 들어서고 3분 만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긴 크로스를 코니가 페널티 박스 오른쪽에서 머리로 떨궈 주자 이를 송창호가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했고 이 공은 그대로 상주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짜릿한 4-3 승리의 마침표였다. 코니의 투입은 말 그대로 신의 한 수였다.

4위. 2014년 9월 28일 포항스틸야드
포항 2-2 전북 (부제 : 리그 선두 다툼의 분수령)

당시 리그 1위 전북이 리그 2위 포항의 안방으로 향했다. 승점 2점차로 1,2위가 갈린 상황에서 이 경기는 무척이나 중요했다. 전북이 승리를 따내면 승점이 5점차로 벌어지는 상황이었고 반대로 포항이 이길 경우 선두가 뒤바뀌는 상황이었다. 전반이 시작되자 기세를 올린 건 전북이었다. 전반 초반부터 강하게 몰아친 전북은 전반 42분 행운의 선제골을 뽑아냈다. 레오나르도의 프리킥이 김광석의 머리를 맞고 굴절되며 포항 골문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포항의 반격이 이어졌다. 포항은 후반 14분 강수일이 머리로 떨어 뜨린 공을 유창현이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하며 동점에 성공했다. 그러자 전북은 후반 18분 카이오를 빼고 김동찬을 투입하며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전북의 전략은 그대로 주효했다. 후반 33분 전북이 레오나르도의 코너킥이 골문 반대쪽으로 흐르자 이를 김동찬이 가볍게 밀어 넣으면서 다시 한 번 앞서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김동찬의 군 제대 복귀골이었다.

전북은 2-1에 만족하지 않았다. 5분의 후반 추가 시간 중 4분이 흐른 시점에서 또 한 번 완벽한 기회를 잡은 것이다. 하지만 이승현의 패스를 이어 받은 이동국이 이 기회에서 날린 슈팅은 텅 빈 골문 오른쪽으로 벗어나고 말았다. 이때만 하더라도 이 득점 기회 무산이 불행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렇게 후반 추가 시간이 4분 50초를 흐를 때쯤 마지막 기회를 잡은 포항이 일을 내고 말았다. 윤준성의 패스를 받은 강수일이 페널티 박스 안에서 수비를 등지고 날린 슈팅이 그대로 전북 골문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강수일은 골을 넣자 마자 웃통을 벗으며 포효했고 스틸야드는 용광로가 됐다. 그렇게 결국 두 팀의 치열한 승부는 2-2 무승부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경기가 끝나자 포항 팬들은 고향팀의 골문을 향해 믿기지 않는 슈팅을 날리며 득점에 실패한 이동국의 이름을 연호하기도 했다. 리그 1,2위가 펼치는 이 치열한 승부가 끝나자 두 팀 선수들은 모두 그라운드에 드러누우며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그만큼 치열한 경기였다.

3위. 2014년 3월 16일 수원월드컵경기장
수원 2-2 상주 (부제 : 조커와 조커의 맞대결)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과 상주의 맞대결. 무려 22,185명의 관중이 들어찬 경기장은 경기 전부터 들썩였다. 전반을 0-0으로 마친 두 팀은 후반 들어 교체 선수를 투입하며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상주가 후반 15분 김동찬을 투입시키자 수원은 1분 뒤 배기종을 그라운드로 내보내며 응수했다. 다소 지루했던 전반과 달리 후반 들어 교체 선수들의 활약이 이어지며 경기는 점점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먼저 웃은 건 수원 서정원 감독이었다. 후반 27분 수원은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에서 수비수 한 명을 제친 뒤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선취골을 기록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서정원 감독이 투입한 교체 카드 배기종이었다. 용병술이 그대로 주효한 것이다. 하지만 상주도 만만치 않았다. 후반 35분 역시나 교체 투입된 김동찬이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 모서리에서 감각적인 오른발 감아차기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했다. 기가 막힌 코스로 빨려 들어가는 공이었다. 박항서 감독도 교체 투입한 김동찬이 골을 기록하자 환호했다.

경기가 1-1로 마무리 돼 가던 후반 추가 시간부터가 진짜 이 경기의 시작이었다. 후반 추가 시간이 2분이나 지난 상황에서 상주가 극적인 역전골을 뽑아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김동찬이었다. 김동찬은 페널티 에어리어 정면에서 고재성의 패스를 이어 받은 뒤 상대 수비를 두 명이나 앞에 두고도 강력한 슈팅을 날려 믿기지 않는 역전에 성공했다. 패배가 짙어진 수원으로서는 좌절할 수밖에 없는 골이었다. 하지만 수원은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았다. 후반 추가 시간 4분을 넘긴 순간 믿기지 않는 일이 한 번 더 벌어졌다. 문전 혼전 상황에서 수원이 날린 강력한 슈팅이 그대로 상주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또 다시 배기종이었다. 이날 두 팀은 후반에 교체 투입된 선수가 나란히 두 골씩을 기록하며 대단한 명승부를 펼쳤다. 후반 추가 시간에만 두 골이 터진 이 경기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K리그 명승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지 않을까. 이 경기를 보고 그런 말이 나오는 모양이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2위. 2014년 8월 6일 전주월드컵경기장
전북 3-2 수원 (부제 : 이동국이 끊은 ‘수원 징크스’)

전북은 수원을 반드시 이겨야 할 이유가 있었다. 이전 여섯 경기에서 2무 4패로 수원에 승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북은 경기 초반부터 안방에서 반드시 수원을 제압하고 징크스를 깨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쳤다. 전북은 전반 14분 만에 권영진이 부상으로 교체 아웃되며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났지만 전반 23분 마침내 첫 골을 뽑아냈다. 최철순이 올린 크로스를 이동국이 헤딩으로 연결해 수원 골문을 흔든 것이다. 기분 좋게 전북이 앞서 나가자 이번에는 수원이 응수했다. 전반 44분 프리킥 찬스에서 염기훈이 왼발로 감아 찬 공이 권순태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정확히 빨려 들어가면서 동점에 성공했다. 이렇게 치열했던 두 팀의 전반전은 1-1로 막을 내렸다. 수원은 후반 들어 더 강력한 경기력을 선보이더니 후반 17분 역전골을 뽑아냈다. 산토스가 내준 공을 김두현이 페널티 박스 왼쪽에서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연결했고 이 공은 그대로 전북 골대 구석으로 꽂혔다.

졸지에 역전을 당한 전북도 곧바로 대응했다. 불과 3분 뒤 최철순의 크로스가 레오나르도의 슈팅에 이어 한교원의 무릎에 맞고 굴절되며 동점골을 뽑아냈다. 2-2의 팽팽한 균형이 맞춰진 것이다. 전북은 카이오를 투입하며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더니 결국 후반 22분 재역전골이라는 드라마를 썼다. 오른쪽 측면에서 이승기가 올린 크로스를 문전 쇄도하던 이동국이 강력한 헤딩으로 연결해 수원 골문을 뚫은 것이다. 2만여 명의 관중이 들어찬 전주월드컵경기장은 이동국의 재역전골에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동국은 후반 29분에 날린 시저스킥이 골대를 강타해 해트트릭 기회를 놓쳤지만 그의 플레이는 감탄사를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후 전북은 파상공세를 펼치는 수원에 여러 차례 위기를 허용했지만 권순태의 선방으로 위기를 넘겼고 특히 후반 추가 시간이 흐르던 상황에서 수원이 날린 회심의 헤딩슛까지 기적적으로 막아내며 짜릿한 승리를 이끌었다. 전북으로서는 지긋지긋한 ‘수원 징크스’에 마침표를 찍는 멋진 경기였다.

1위. 2014년 11월 30일 서귀포월드컵경기장
제주 1-2 서울 (부제 : 서울을 아시아 무대로 이끈 드라마)

경기 시작 전 서울은 무척이나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리그 3위까지 주어지는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따내려면 포항이 수원에 패하고 서울은 무조건 제주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둘 중의 하나도 장담할 수 없었기에 서울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역시나 서울에는 악재가 겹쳤다. 전반 19분 제주 황일수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건 물론 포항에서 김광석이 후반 3분 선제골을 기록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기 때문이다. 만약 이 상황을 뒤집기 위해서는 서울이 제주를 상대로 두 골을 기록하고 포항이 수원에 두 골을 허용해야 했지만 이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포항의 3위가 굳어지는 듯했다. 후반 24분 윤일록이 동점골을 뽑아내긴 했지만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경쟁을 뒤집을 만한 가능성은 여전히 낮았다.

그런데 포항에서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후반 10분을 남기고 산토스와 정대세에게 연이어 골을 허용하며 포항이 1-2로 뒤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서울에 한 골이 더 필요했다. 20경기 동안 서울을 단 한 번도 이긴 적 없는 제주도 이번에는 서울을 잡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경기 종료 직전까지 골은 터지지 않았다. 그런데 후반 44분 마침내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오스마르가 에스쿠데로의 패스를 받아 제주 밀집수비를 뚫고 날린 슈팅이 거짓말처럼 제주 골문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벤치에서 포항-수원전 결과를 접하고 있던 서울 선수들과 최용수 감독은 그라운드까지 뛰어 나와 이 믿기지 않는 드라마에 환호했다. 하지만 제주의 마지막 반격도 무서웠다. 서울이 3위 탈환으로 들떠 있던 후반 추가 시간이 흐르던 순간 드로겟의 크로스를 그대로 윤빛가람이 발리슛으로 연결한 것이다. 하지만 이 완벽한 득점 기회는 김용대의 거짓말 같은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정말 마지막까지도 눈을 뗄 수 없는 경기였다. 서울과 앙숙 관계에 있는 수원이 서울을 돕는 사상초유의 일까지 더해져 이 경기는 올 시즌 최고의 명승부로 기억될 것이다.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스토리를 만들어 냈고 명승부로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아마 오랜 시간이 흘러 훗날 과거를 되짚어 볼 때 우리가 2014년 K리그 클래식과 함께 했다는 사실은 무척 자랑스러울 것 같다. 이 멋진 드라마를 연출한 모든 K리그 클래식 선수들과 팬들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면서 올 시즌보다 더 화끈한 2015년 K리그 클래식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