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서울 면목동에서 한 조기축구회가 결성됐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 팀의 이름은 바로 ‘아람축구단’이었다. 중학교 때까지 축구를 하다가 가정 형편이 좋지 못해 꿈을 포기했던 이민걸씨는 감독겸 구단주로 이 팀을 이끌었다.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이민걸씨는 평소 직장 생활을 열심히하고 주말이면 이 축구단 운영에 집중했다. 그저 지인들과 함께 축구를 통해 땀 흘리는 게 행복했다. 창단 후 서울시 직장인 축구대회를 비롯해 동네에서 열리는 대회에 꾸준히 참가한 아람축구단은 점차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면목동이 동대문구에 속해있던 당시 이 팀은 동대문구에서 이름 깨나 날리기 시작했고 창단 10년을 맞은 1992년 무스탕축구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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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3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무스탕축구단은 중랑 코러스무스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조기축구회와 변호사들이 뭉쳤다

무스탕축구단은 단순히 축구를 즐기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때부터는 회원들이 직접 자비를 털어 현역 선수들을 대상으로 장학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축구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1997년부터는 유소년 클럽을 독자적으로 운영하면서 어린 선수들을 키우는 일에도 집중했고 팀의 이름을 딴 축구대회를 개최할 정도로 단순한 생활 체육을 수준을 넘어섰다. 2002년에는 푸마컵 푸티 리그에 참가하기도 했는데 이 대회는 현 K3 챌린저스리그 출범 전 아마추어 클럽축구 팀들이 참가했던 ‘코니그린컵’의 뿌리였다. 면목동이 동대문구에 속해 있던 시기에는 ‘동대문 무스탕축구단’이라는 팀명을 썼지만 이후 면목동이 중랑구로 편입되면서 팀명도 자연스레 ‘중랑 무스탕축구단’이 됐다. 이민걸 구단주는 구단을 운영하면서 은행 등 금융기관들의 권리조사업무를 수행하는 퍼스트써치주식회사를 설립하며 사업적으로도 성공 가도를 달렸다.

이민걸 구단주가 더 큰 꿈을 품은 것도 이때부터였다. ‘언젠가 더 큰 무대로 나가고 싶다. 축구선수를 꿈꾸다 실패해 소외받는 친구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1년 6월 드디어 마음 속으로만 품고 있던 꿈을 현실화했다. 챌린저스리그 진입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한 것이다. 이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아마추어인 챌린저스리그라고 해도 생활 체육팀과는 운영 자체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같이 한 번 뭉쳐보자.” 고려대 법대 후배이자 법무법인 코러스 대표인 박형연 변호사와 의기투합했다. 박형연 변호사 역시 워낙 축구를 좋아하고 도중에 축구를 그만두면서 좌절하는 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있던 터라 학교 선배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30년이 된 오랜 전통의 생활 체육팀이 뿌리가 됐고 여기에 든든한 법무법인의 지원까지 더해져 챌린저스리그 진입 추진에는 탄력이 붙었다. 6개월 만에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챌린저스리그 참가 승인 및 인가가 난 것이다.

변호사들이 주축이 돼 챌린저스리그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고 축구계에서는 반신반의했다. “조금 해보다 열정이 식으면 그만둘 것”이라는 차가운 시선도 있었다. 더 황당한 건 이 팀에서 철저히 실패한 어린 선수들만을 영입한 것이었다. 다른 챌린저스리그 팀들은 좋은 성적을 위해 프로를 경험한 공익 근무요원이나 방위 산업체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려고 노력했지만 이 팀은 달랐다. 고교 졸업 후 갈 곳이 없어진 선수들과 대학 중퇴 및 졸업생으로 팀을 꾸렸다. 상위 리그에서 선수를 데려오는 ‘하향식 선수 영입’이 아니라 챌린저스리그에서 뛰다 상위 리그로 진출하는 ‘상향식 축구’를 모토로 정했기 때문이다. “축구를 그만두고 방황하는 이들을 위해서 기회를 주자”는 게 이유였다. 그렇게 엘리트 체육에서 멀어져 더 이상 갈 곳이 없던 선수들을 데리고 2012년 2월 28일이 역사적인 창단이 이뤄졌다. 중랑 무스탕축구단과 법무법인 코러스가 합쳐진 ‘중랑 코러스무스탕 축구단’이라는 참 길고도 독특한 이름을 달고 그들의 새 역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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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시즌 동안 중랑 코러스무스탕은 챌린저스리그에서 하위권을 면치 못했다. (사진=중랑 코러스무스탕)

‘신생팀’ 중랑의 실망스러웠던 성적표

비록 열악한 챌린저스리그 팀 중에서도 기반이 약한 신생팀이었지만 이들은 묵묵히 갈 길을 갔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구단 운영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선수들의 장래를 위해 대표변호사를 비롯해 법무법인 코러스의 변호사를 에이전트로 등록해 향후 선수들의 해외 진출과 이적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이민걸 구단주가 중랑 코러스무스탕과 함께 10년 넘게 운영해온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뛰는 ‘파파스 축구단’과도 연계했다. 검사, 의사, 사업가 등 파파스 축구단 회원들을 초청해 코러스무스탕 선수들에게 축구뿐 아니라 사회생활을 위한 조언을 전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축구선수로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훌륭한 인격을 갖춘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의 다양한 경험과 인생 노하우를 지식 기부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미 엘리트 체육 울타리 안에서 한 번씩 좌절을 맛보고 의기소침했던 선수들이 조금씩 희망을 되찾기 시작했다. 기존부터 해오던 장학사업과 유소년클럽 운영 및 지원 사업도 꾸준히 이어졌다.

30년 넘게 고수해온 연고지를 지켜내며 중랑구립잔디운동장을 홈 경기장으로 사용하기로 한 중랑 코러스무스탕은 조촐하지만 갖출 건 다 갖춰 나갔다. 경기장 근처에 25명이 생활할 수 있는 아파트와 빌라를 빌려 선수들에게 숙소로 제공하고 영양사까지 초빙해 계획적인 식단 관리를 시작하기도 했다. 비록 K리그 클래식 구단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챌린저스리그 중 이렇게 계획적으로 운영되는 팀은 별로 없는 게 사실이다. 구단 버스까지도 갖췄다. 이민걸 구단주와 법무법인 코러스에서 예산을 확보했고 구단을 후원하는 이들의 회비도 큰 힘이 됐다. 이렇게 1년에 약 4억 5천만 원 정도의 돈으로 숙소 운영 및 훈련 비용, 경기장 대관료, 수당, 직원 급여 등이 쓰였다. 또한 법무법인 코러스는 아예 서울에 종로와 서초 등 단 두 개 뿐이던 사무소를 중랑구에 하나 더 설립하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중랑 코러스무스탕은 이렇게 소박하지만 탄탄하게 시작됐다.

물론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학창 시절 그리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들이 모여 이제 막 발을 맞춘 팀이다보니 챌린저스리그에서도 하위권을 맴돌 수밖에 없었다. 창단 첫해인 2012년에는 전국 18개 팀 중 통합 16위(6승 2무 17패)라는 참담한 성적에 머물렀다. 서울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는 무려 2-8의 대패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무법인 코러스 박형연 대표변호사는 시즌을 마무리하는 납회식에서 실망하는 선수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내년에 꼴찌를 해도 괜찮습니다. 지원은 계속될 겁니다. 여러분들은 마음 놓고 축구를 즐겨주세요.” 이듬해에도 중랑 코러스무스탕은 6승 4무 14패라는 성적으로 전국 18개 팀 중 14위에 머물렀지만 누구 하나 선수들을 나무라는 이는 없었다. 원래 이 팀의 창단 목적이 당장의 성적이 아닌 미래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도 총 29명의 선수단 중 무려 27명이 1990년대 이후 출생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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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 허재원은 고려대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FA컵 1라운드 MOR(맨오브더라운드)에 선정됐다. (사진=대한축구협회)

2014 FA컵, 중랑의 새 역사가 시작되다

중랑 코러스무스탕은 올 시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개막전에서 만만치 않은 상대인 이천시민축구단과 1-1로 비기더니 2라운드에서는 고양시민구단을 2-0으로 잡고 현재 1승 1무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하지만 FA컵에서의 대진은 절망적이었다. 5년 만에 직장팀이 합류해 주목을 끌었던 하나은행 FA컵 1라운드 대진 추첨에서 중랑 코러스무스탕은 믿고 싶지 않은 통보를 받아야 했다. “FA컵 1라운드 중랑 코러스무스탕의 상대는 고려대학교입니다.” ‘전통의 대학 강호’인 고려대는 대진추첨 후 열린 전국춘계대학축구연맹전에서도 숭실대학교를 꺾고 무려 이 대회 8번째 우승을 차지한 팀이었다. 김건희와 이상민, 김승준, 김원균 등 연령대별 대표팀을 거쳐 현재에도 여러 프로 구단에서 눈독을 들이는 선수들이 즐비한 고려대를 상대로 챌린저스리그에서도 약체로 꼽히는 중랑 코러스무스탕이 힘 한 번 써보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비록 고려대가 춘계연맹전 결승 후 이틀 만에 경기를 치른다고 하더라도 이건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지난달 23일 중랑 코러스무스탕과 고려대의 FA컵 1라운드 경기가 시작되자 역시나 고려대가 중랑 코러스무스탕을 압도하기 시작했고 첫 골 또한 고려대의 몫이었다. 후반 3분 허용준에게 첫골을 실점하면서 중랑 코러스무스탕은 수세에 몰렸다. 한순간 와르르 무너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중랑 코러스무스탕은 이때부터 기적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후반 20분 김성현이 동점골을 뽑아내더니 후반 종료 직전 허재원이 문전 혼전을 틈타 골키퍼와 맞선 일대일 상황에서 강렬한 결승골을 터트린 것이었다. 2-1. 중랑 코러스무스탕이 춘계연맹전 우승팀 고려대를 상대로 짜릿한 역전승에 성공하는 순간 고려대 선수들은 고개를 숙인 채 경기장을 빠져 나왔고 중랑 코러스무스탕 선수들은 두 팔을 높이 들고 승리를 만끽했다. 그렇게 중랑 코러스무스탕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FA컵 2라운드에 진출하게 됐다. 챌린저스리그에서도 약체로 평가받는 중랑 코러스무스탕이 고려대를 제압한 건 축구계에서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었다. FA컵 2라운드 상대는 1라운드에서 승리한 대학 및 챌린저스리그, 직장팀 등이 내셔널리그 및 K리그 챌린지 팀과 추첨을 통해 맞붙는 방식이었다. 중랑 코러스무스탕으로서는 대진 추첨에서 엄청난 행운이 아니면 희망을 품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느 하나 만만한 상대는 없었지만 그나마 나은 건 대학 중 약체를 만나거나 같은 챌린저스리그 소속인 춘천시민축구단 또는 포천시민축구단을 만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중랑 코러스무스탕의 FA컵 2라운드 상대는 너무나 버거웠다. 지난해 춘계연맹전 우승팀 광주대였다. 더군다나 광주대는 2012년과 2013년 U리그 권역별 대회에서 2년 연속 무패 우승을 기록한 엄청난 팀이었다. 대학팀 중 최근 가장 무시무시한 성과를 내는 팀이 바로 광주대였다. 고려대를 넘으니 광주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선수들은 경기를 앞두고 모여 이렇게 말했다. “광주대와의 경기날(4월 5일)이 우리 김병환 감독님 생신이야. 꼭 멋진 생신 선물을 해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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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 코러스무스탕은 약체라는 예상을 뒤엎고 올 시즌 FA컵에서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중랑 코러스무스탕)

감격적인 그들의 FA컵 32강 진출

코러스무스탕은 독기를 품고 지난 주말(5일) 중랑구립운동장에서 FA컵 2라운드 광주대를 상대했다. 막상 뚜껑이 열리자 중랑 코러스무스탕이 의외로 경기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전반 40분 광주대를 상대로 믿기지 않는 첫골을 뽑아냈다. 박명서가 날린 슈팅이 골대를 맞고 흐르자 이를 수비수 임장원이 강력한 슈팅으로 연결해 광주대 골문을 뚫은 것이다. 중랑 코러스무스탕이 고려대에 이어 광주대의 혼을 빼놓는 경기였다. 경기를 완전히 중랑 코러스무스탕이 주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후반이었다. 후반 6분 심영길이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하면서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광주대가 수적 우세를 앞세워 몰아치자 중랑 코러스무스탕은 수비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후반 32분 동점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전기성의 크로스를 받은 광주대 이제길이 침착하게 이를 차 넣은 것이었다. 광주대가 완벽히 주도권을 쥐고 중랑 코러스무스탕을 흔들었다. 중랑 코러스무스탕의 FA컵 도전도 이대로 끝나는 듯했다.

그런데 후반 37분 기적적인 일이 벌어졌다. 광주대 측면을 돌파하던 중랑 코러스무스탕 김성현이 반대쪽으로 패스한 공이 광주대 수비수 발에 맞고 그대로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광주대의 자책골이었다. 2-1로 앞선 중랑 코러스무스탕은 남은 10분을 온몸을 날려 버티고 또 버텼다. 비록 많은 관중은 아니었지만 이날 경기장을 찾은 이들은 또 한 번의 기적을 노리는 중랑 코러스무스탕을 열광적으로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막판 총공세를 잘 막아낸 중랑 코러스무스탕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그라운드에 선 선수들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감격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챌린저스리그의 약체가 고려대에 이어 광주대까지 제압하고 FA컵 32강에 안착하는 순간이었다. 한때 대학에도 가지 못하고 실패를 경험했던 선수들이 대학 최강팀을 두 차례나 격파하고 이뤄낸 기적이었다. 이제 중랑 코러스무스탕은 K리그 클래식 팀이 가세하는 FA컵 32강 진출팀 중 하나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됐다.

중랑 코러스무스탕의 이 위대한 도전이 더 이어질지, 아니면 이제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32강에서 마무리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들이 FA컵 32강에 오르기까지의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준다는 사실이다. 실패하고 좌절하는 선수들이 안타까워 힘을 모은 31년 전통의 조기축구회와 그런 이들을 함께 돕기로 한 변호사들, 그리고 마지막 기회를 잡은 선수들의 투혼이 모여 이뤄낸 드라마가 바로 지난 주말 펼쳐졌다. 그들은 “운영해보다 금방 시상해지면 포기할 것”이라는 세간의 싸늘한 시선을 이겨냈고 “그런 실패한 선수들로 어떻게 챌린저스리그에 참가하느냐”는 조롱까지도 이겨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무명의 아마추어들이 뛰는 FA컵 예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중랑 코러스무스탕이 FA컵 1라운드와 2라운드에 보여준 경기에는 그들의 눈물과 땀, 그리고 열정이 담겨 있다.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뒤 곧바로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붙여 김병환 감독에게 달려갔다. “감독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멋지고 아름다웠던 스승과 제자들의 생일 파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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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 중랑 코러스무스탕은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다. 그래서 더 간절하다. (사진=중랑 코러스무스탕)

“100년, 200년 전통 가진 팀 되고파”

마지막으로 2012년 중랑 코러스무스탕을 출범할 당시 이민걸 구단주의 창단사를 소개하려 한다. 그는 자신들을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2012년 2월 이런 말을 했다. “기량이 검증된 선수를 영입해 당장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좋지만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어린 선수들이 꽃 피울 수 있는 희망의 무대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실패하고 좌절하는 이 어린 선수들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려 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100년, 200년 전통을 가진 팀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들이 100년, 200년이 지난 뒤 최고의 전통을 가진 팀이 되는 게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라고 믿는다. 1982년 처음 조그마한 조기축구회로 시작할 때도 지금 같은 멋진 팀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FA컵의 기적’을 선보이고 있는 중랑 코러스무스탕에 진심으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