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은 성남 축구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하루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성남일화가 성남FC라는 시민구단의 이름으로 홈에서 첫 경기를 치렀기 때문이다. 나 역시 지난해 성남FC 재창단을 위해 부족한 역량이나마 보태고 싶던 사람으로서 참 기쁜 날이었고 실제로 지난 시즌에 비해 훨씬 많은 8,700여 명의 관중이 이날 성남탄천종합운동장을 찾아 이 역사적인 개막전을 축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축제와도 같던 경기에는 불청객(?)도 있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정치적인 목적을 앞세워 축구장을 찾는 이들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할까. 성남 축구의 재탄생에는 축하를 보내지만 자꾸 축구장을 유세의 장으로 활용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필요해 보인다. 성남FC 재창단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이재명 시장에게 박수를 보낸 한 사람으로서 오늘은 쓴소리를 좀 할까 한다.

명함 돌리는 예비후보, 기자회견 자청한 시장

이날 경기 시작 전 관중석 입구에서는 누군가가 입장하는 관중을 향해 분주하게 명함을 돌리고 있었다. 성남FC 개막전과 관련한 응원 문구 정도였으면 참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새누리당 성남시장 예비후보의 얼굴과 이름, 공약이 담긴 명함이었다. 오는 6월 4일 열리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둔 유세였다. 스포츠에 편을 가를 생각은 없지만 이 후보의 공약 중 ‘성남시 연고 프로야구단 창단추진과 야구 전용 돔구장 건립, 성남시에 KBO 본부 유치’는 어쩐지 축구장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대부분 관중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 명함을 받아 들었다가 몇 걸음 떼지도 않고 정치인의 선거 유세라는 걸 알고는 이 명함을 버렸다. 입구 주변에는 이 예비후보의 버려진 명함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기자회견장으로 이재명 성남시장이자 성남FC 구단주가 예고도 없이 들이 닥쳤다. 이재명 시장은 원정팀 서울 최용수 감독 기자회견이 끝나고 홈팀 박종환 감독 기자회견을 앞둔 상황에서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와 난 데 없이 마이크를 잡았다. 박종환 감독과 수훈 선수 기자회견을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은 황당한 표정이었다. 성남FC 재창단과 관련해 이재명 시장의 예정에도 없었던 생색내기용 기자회견을 위해 이재명 시장은 10여명의 관계자까지 대동했다. 이 관계자들은 이재명 시장이 발언을 할 때마다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끌어올리기도 했다. 이재명 시장이 성남FC 재창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지방선거를 앞두고 구단 재창단을 생색내기용으로 이용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일단 모든 걸 ‘흑백논리’로 보는 이들이 간혹 있어 미리 말하자면 나는 정치적인 성향을 떠나 성남FC를 새롭게 탄생시킨 이재명 시장의 용단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하지만 이재명 시장의 이번 행동은 잘못됐다. 그가 경기 전 관중을 위해 마이크를 잡고 “시민구단으로 탄생한 성남FC의 첫 홈 경기를 축하한다”면서 시축을 했을 때만 하더라도 재창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서는 충분히 그럴 만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경기 전 신문선 대표이사와 함께 경기장을 한 바퀴 돌 때만 하더라도 ‘구단주로서 이 정도 인사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남팬뿐 아니라 원정팀 서울팬들 역시 성남FC 재창단이라는 어렵고도 훌륭한 선택을 한 이재명 시장이 자신들 앞으로 다가오자 큰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여기까지만 했다면 참 좋았겠지만 이재명 시장은 결국 도를 넘고 말았다. 경기 종료 후 경기에 관해 감독과 선수들이 언론과 대화를 나누는 기자회견장에까지 와 마이크를 잡는 건 그가 할 일은 아니었다.

기사 이미지

2010년 안상수 인천시장 후보는 인천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도를 넘은 선거 유세를 펼치기도 했다. (사진=안상수 전 인천시장 홈페이지)

안상수 시장의 기막혔던 선거 운동

‘뭐 구단주로서 그럴 수도 있지’라는 반응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구단주는 어디까지나 뒤에서 구단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내가 이만큼 했소”라고 생색내는 건 구단과 상의해 보도자료를 돌리거나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어필하면 된다. 따로 일정을 잡아 기자 간담회를 열어도 된다. 구단 운영을 위해 엄청난 돈을 대는 첼시의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도 이렇게 구단주 명함을 달고 경기 종료 후 기자회견장을 막 들이 닥치지는 않는다. 경기 전 입구에서 공약이 담긴 명함을 돌리던 여당 예비후보 역시 마찬가지다. 축구장에서 이렇게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면 오히려 반감만 키운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단순히 역사적인 성남FC의 홈 개막전을 즐기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과 공약을 알리기 위해 불편을 주는 행동 자체가 큰 실례 아닌가.

문제는 이게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010년 5월 26일에도 나는 축구장이 정치인의 유세 현장으로 바뀌는 걸 현장에서 경험했다. 당시 인천유나이티드 구단주였던 안상수 인천시장은 대구와의 K리그 경기가 열리는 인천문학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그런데 그는 인천 구단주 신분이기도 했지만 인천시장 재선을 노리는 시장 후보이기도 했다. 그런 그는 선거운동원을 대동한 채 경기를 앞두고 그라운드 한복판에서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한 뒤 운동원들과 함께 관중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엉겁결에 인천 선수들 역시 안상수 후보를 따라 큰절을 올려야 했고 이는 새로 영입된 외국인 선수도 예외가 아니었다. 안상수 후보는 당시 ‘기호1번 한나라당 인천시장 후보’라는 어깨띠를 두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경기 시작은 예정보다 무려 9분이나 늦춰졌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경기가 한참 늦게 시작된 뒤에도 안상수 후보는 선거운동원들과 함께 관중석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녔다. 웃으며 관중에게 악수를 요구했고 결국 주변의 다른 관중들도 경기에 집중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됐다. 안상수 후보는 경기가 시작되고 오랜 시간 유세를 이어갔다. 당시 다른 시장 후보들이라고 깨끗하게 선거 유세를 하기 위해 축구장을 일부러 피한 것도 아니었다. 안상수 후보는 인천 구단주라는 명함을 달고 있어 경기장 곳곳을 돌며 유세를 펼칠 수 있었지만 다른 시장 후보들은 경기장에서 선거 운동을 할 수 없어 경기장 밖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경기장을 자기 집처럼 드나드는 안상수 후보가 부럽다는 반응이었다. 당시 기자석에 앉아 있던 나에게도 안상수 후보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고생 많으십니다. 안상수입니다. 허허.” 나는 악수를 요구하는 그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저 인천시민 아니거든요.”

축구장에는 축구만 있었으면 좋겠다

제발 스포츠는 스포츠로 보길 바란다. 아마 성남 팬들 중에는 “성남FC를 살려주신 ‘갓재명’님이 기자회견 좀 하면 어때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게 이렇게 누군가의 정치적인 업적으로 칭송받고 부각되면 결국 언젠가는 피해를 보는 게 바로 시·도민구단이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옹호할 생각 없이 하나의 가정을 들어보려 한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성남FC 창단에 큰 힘을 보탰지만 가까운 미래건 먼 미래건 언제든 야당이 아닌 여당에서 성남시장이 탄생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만약 성남FC가 이재명 시장이 세운 업적의 전유물이 된다면 차기 성남시장은 성남FC를 최대한 부정하고 지원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건 우리가 지금껏 늘 K리그의 시·도민구단에서 봐왔던 일 아닌가. 그만큼 시·도민구단에 정치색이 입혀지는 건 위험한 일이다. 성남FC를 재창단한 이재명 시장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이 일이 하나의 정치적인 쇼가 되는 걸 성남 팬들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이재명 시장이 앞으로 이 일로 생색을 내는 건 성남FC의 미래를 위해서는 피해야 할 일이다.

성남FC를 살려낸 이재명 시장은 그 업적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성남시민들에게 박수를 받을 만하다. 나는 이번 일방적인 기자회견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지만 그러면서 그의 공까지 폄하되는 일은 없길 바란다. 그는 역사적인 개막전에서 축하의 한 마디를 하고 시축을 하면서 관중의 박수를 받았으면 그걸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기어코 감독, 선수와 언론의 공간인 기자회견장을 불쑥 찾아 주인공 행세를 했다. 이재명 시장이 살려낸 축구단에 찾아와 명함을 돌리며 유세를 떠는 여당후보도 비호감이긴 마찬가지다. 구단주라는 직함을 이용해 킥오프를 지연하고 관중에게 피해를 입힌 안상수 후보는 말할 것도 없다. 또한 나는 얼마 전 안양FC를 창단하는데 큰 공을 세운 최대호 안양시장을 단독 인터뷰 한 적이 있었는데 최대호 시장측 관계자는 그때 알아낸 내 전화번호로 최대호 시장 출판기념회에 대한 문자 메시지를 시도 때도 없이 보냈다. 나는 최대호 구단주를 인터뷰한 것이지 그가 출판기념회를 열어 지지자들을 모으는 데는 관심도 없는데 말이다.

이 정도가 되면 축구단이 정치인들 숟가락 얹는 용도로만 인식되는 것 같다. 최근에는 울산이나 부산 등 K리그 경기가 열리는 다른 경기장에서도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대거 출몰(?)해 유세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축구단 창단이나 발전에 큰 공을 세운 정치인들도 많지만 그 공을 내세우기 위해 오히려 제 살 깎아먹는 행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날 축구장을 찾은 사람 중 이재명 시장이 성남FC 살리는데 혁혁한 업적을 세웠다는 걸 모르는 이가 있을까. 이럴 때는 가만히 있어도 중간 이상은 간다. 또한 프로축구연맹 규정 제33조 ‘인터뷰 실시’ 4항에는 “인터뷰 대상은 미디어가 요청하는 선수와 양 클럽 감독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미디어가 요청하지 않은 이가 불쑥 기자회견장에 들어와 마이크를 잡는 건 연맹 규정에도 명백히 반하는 행동이다.

또한 지금까지 아무런 관심도 없었으면서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이라고 찾아와 명함이나 돌리고 가는 후보에게 진심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 역시도 후보의 진심을 떠나 명백한 연맹 규정 위반이다. 연맹 규정 제36조 ‘홈경기 관리책임자, 홈경기 안전책임자 선정 및 경기장 안전요강’에는 “정치적, 사상적, 종교적인 주의 또는 주장 또는 관념을 표시하거나 또는 연상시키고 혹은 대회의 운영에 지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게시판, 간판, 현수막, 플래카드, 문서, 도면, 인쇄물 등을 가지고 경기장에 입장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고 “해당 경기장(시설) 및 관련 장소에서 권유, 연설, 집회, 포교 등의 행위 등을 할 수 없다”는 규정도 따로 있다. 만약 이런 정치인들의 유세가 당연시 돼 그라운드에서 땀 흘리는 선수들이 그저 약장수의 장사를 위해 재롱을 부리는 서커스 단원으로 전락하는 건 곤란하다. 정치 집회나 전당대회는 따로 모여서 하자. 축구장은 축구를 보러 온 사람들이 있는 곳 아닌가. 축구장에는 축구만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