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김용만이 불법 도박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혐의를 인정하는 그는 맡고 있던 다섯 개 프로그램 모두 자진 하차했다. 김용만은 2008년부터 5년 동안 사설 스포츠도박 사이트를 통해 약 10억 원대의 불법 도박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연예인 축구단을 운영하면서 축구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김용만이 불법 사설 도박에 연루됐다는 건 큰 충격이다. 건강하게 축구를 즐기는 줄로만 알았던 연예인 축구단 단장이자 열혈 축구팬이었던 그가 5년 넘게 불법 사설 도박에 10억 원이라는 거액을 베팅했다는 사실은 믿기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도 '자기야'를 무척 즐겨보던 나에게 이 소식은 큰 충격이었다.

불법 도박, 승부조작의 뿌리 된다

불법 사설 도박은 단순한 도박이 아니다. 최근 한국 프로스포츠에 전염병처럼 퍼진 승부조작을 키우고 있는 곳이 바로 이 불법 사설 도박 업체다. 중국 삼합회와 유럽 마피아 등까지 연루된 이곳들은 단순한 도박을 넘어 승부조작까지 깊게 관여한다. 결국 이 불법 사설 도박에서 날린 돈은 선수와 감독, 심판의 매수에 쓰일 수밖에 없다. 그저 재미삼아 불법 사설 도박에 건 돈은 한국 프로스포츠를 회생불능 상태로 만드는 종잣돈(?)이 된다. 김용만이 날린 돈 10억 원 역시 불법 사설 도박 업체를 운영하는 폭력조직의 손에 들어가 부정적인 일에 쓰였을 것이 자명하다. 그 돈으로 사설 도박 업체 운영자가 기부를 한다거나 선행을 할 리는 없다.

사람들은 불법 스포츠 도박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모른다. 슬롯머신이나 카지노, 바카라 등 다른 도박과 비교해 봤을 때 이것들보다는 훨씬 더 건전해 보이기 때문이다. 스포츠 경기에 돈을 걸고 지켜보는 게 직접적으로 도박장에 자리를 잡고 눈 앞에서 돈이 오가는 것보다는 덜 불법적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서 '내가 하고 있는 이 베팅은 다른 도박과는 다르다'고 암시를 건다. 그리고는 자신을 스포츠 마니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불법 스포츠 도박은 다른 도박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당신의 주머니에서 나간 돈 몇 푼이 모여 결국에는 승부조작이라는 거대한 암 덩어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하는 이들은 스포츠를 통해 감동과 희열을 느낄 자격이 전혀 없다.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베팅한 팀이 패할 경우 분풀이하듯 이렇게 말한다. "이거 조작 아니야?" 맞다. 그거 조작이다. 그런데 그 조작이 바로 당신들 돈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모른다. 브로커가 알토란 같이 자기가 적금을 들어 강동희 감독에게 승부조작 대가로 돈을 줬겠나. 다 그 돈은 도박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낸 돈으로 조작이 이뤄지고 결국에는 자기들이 피해를 본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불법 스포츠 도박으로 지금껏 돈을 벌었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들에게 "이제 그런 거 하지 말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사이트에서 탈퇴한다고 약속해 놓고 로그인 해서 베팅하는 사람도 봤다. 적어도 이런 중독자들이 우리나라에만 수십 만 명은 된다.

한 탕을 노리는 '토쟁이'의 변명

나는 과거에 '스포츠 토토'가 국내 스포츠 베팅을 독점하고 있어 생기는 문제점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물론 다양한 업체가 경쟁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법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인 베팅은 이 한 업체 뿐이고 개정이 되기 전까지는 법을 지켜야 하는 게 마땅하다. '스포츠 토토'의 독점에 불만을 품고 법 개정을 위해 사설 도박 업체에 베팅한다? 그저 한 탕을 노리는 범죄자 '토쟁이'의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국가에서 하지 말라는 건 다 이유가 있다. 불법 스포츠 베팅 업체에 수백 만 원씩을 걸고 한 탕을 꿈꾸는 이들이 국내에 합법적인 베팅 업체가 더 생겨난다고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토토를 즐기지는 않는다. 지금도 편법을 이용해 10만 원 상한의 '스포츠 토토'를 여러 번 구입하는 이들도 많다.

가끔 K리그 클래식 중계를 보기 위해 인터넷 '아프리카TV'에 접속하면 놀랄 때가 많다. 이건 뭐 축구 중계를 즐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오로지 '돈', '베팅'에만 눈에 불을 켠 사람들의 파티가 펼쳐진다. 조용히 중계를 보고 있으면 방장이 말한다. "오늘 XX팀에 건 호구들 다 어디 갔느냐?", "내가 거기 부러진다고 몇 번 말했냐?" 등등 스포츠 관람을 빙자한 '토쟁이'들이 넘쳐난다. 불법 사설 토토가 도를 넘어선 지경이지만 이들은 양심의 가책도 없고 그게 얼마나 큰 불법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하는 행동은 카지노나 슬롯머신보다도 더한 도박이라는 걸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베팅하고 계좌로 돈을 주고 받으니 그저 '사이버 머니'쯤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인기 연예인도 10억 원씩 불법 토토에 베팅할 정도로 한국은 사설 불법 토토 천국이 됐다.

김용만의 불법 도박 혐의가 알려진 뒤의 비난은 연예인들의 이전 불법 도박 때보다 비교적 덜하다. 이전에 연예인들의 불법 도박은 주로 원정 카지노가 주를 이뤘는데 김용만은 도박을 위해 해외 원정을 떠난 것도 아니고 도박의 상징인 카지노에도 출입하지 않았으니 '괘씸죄'에서도 보다 자유롭다. 스포츠 경기에 돈을 걸었다는 점에서 그리 큰 범죄가 아닌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불법 스포츠 도박은 스포츠 시장에 부수적으로 더 큰 타격을 주고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김용만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너무나 재미있게 즐겨보던 터였지만 그가 한 행동은 한국 프로스포츠를 회생불능 상태로 만들 수도 있는 중대한 범죄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차라리 다른 도박을 했으면 가정이 파탄 나고 자기도 망치는 정도지만 스포츠 도박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축구광' 아닌 '도박 중독자'일 뿐

우리는 지금껏 여러 축구인을 승부조작으로 잃었다. 1차적으로 승부조작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축구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싶지만 사설 불법 토토를 통해 그 세력이 정의를 돈으로 매수할 수 있도록 키워준 도박꾼들의 잘못도 상당하다. 직접적인 살인까지는 아니어도 그들을 죽음에 이르도록 한 총과 칼을 제공한 셈이다. 주변에서 사설 토토를 하는 이들을 단순히 자기 돈 날리는 도박꾼 정도로 보지 말자. 그들은 한국 프로스포츠를 좀 먹는 암 덩어리 같은 존재다. 합법 토토의 낮은 배당률 따위로 자신들의 불법을 합리화 할 생각도 말자. 담배보다 대마초의 중독성이 더 낮다고, 담배에 터무니 없이 세금을 매긴다고 대마초 피우는 것과 다를 게 뭔가. 불법은 엄연한 불법이다.

한국 프로스포츠는 승부조작이라는 거대한 적과 싸우고 있다. 결론적으로는 이를 주도하는 몸통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전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도박꾼들이 불법 사설 토토에 건 수십, 수백 만 원이 모여 결국에는 승부조작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도박을 하는 이들은 하나 같이 "내가 남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왜들 뭐라고 하느냐"고 한다. 하지만 적어도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하는 이들은 이런 변명도 할 수가 없다. 그들은 승부조작이라는 아주 작은 씨앗에 물을 주고 양분을 제공하고 있다. 결국 그 씨앗이 싹을 틔워 무성한 숲이 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나. 그때 가서 도박꾼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 나무가 저렇게 클 때까지 안 쳐 내고 뭐한 거야?" 승부조작이라는 숲을 만들어 내고 있는 건 바로 당신들이다. 자신이 '축구광'인지 '도박 중독자'인지 잘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