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을 할 때 자신이 넘치는 남자는 오로지 상대방 여자에게 집중한다. 하지만 자신감이 부족하고 뭔가 패배 의식에 젖은 이들은 소개팅 후 주선자에게 전화해 이렇게 꼬치 꼬치 캐묻는다. “그 여자가 나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 괜찮대? 별로래? 말 좀 해봐. 너한테는 얘기해 줬을 거 아니야.” 남의 눈치 안 보고 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남들 신경 쓰면서 사는 건 더 피곤한 일이다. 나만 당당하면 될 일 아닌가. 누군가를 신경 쓰고 의식할수록 그건 내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요새 우리 언론을 보면 이게 한국 언론인지 일본 언론인지 잘 모를 때가 많다. 카가와 신지와 아사다 마오가 매일 등장한다. 자취하면서 부모님 얼굴 본지는 오래 됐는데 카가와와 아사다 얼굴을 부모님보다 더 자주 본 것 같다. 이들이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사소한 행동을 했는지까지도 기사화 된다. 여기에 네티즌들은 조롱으로 화답한다. 마치 택배 크로스를 헤딩슛으로 연결하듯 척척 호흡이 맞는다. 그들은 항상 박지성과 김연아를 더 돋보이기 위한 도구로 쓰인다. 여기에 가위 바위 보도 질 수 없는 일본인이라는 이유까지 더해지니 이거 참 완벽한 시나리오다. 카가와와 아사다의 이야기를 전하는 언론은 ‘자, 이제 나는 멍석을 깔아줬으니 너희 네티즌들이 물어 뜯어줘’라고 암묵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참으로 한심한 행태다. 과거사 문제 등으로 일본이 죽도록 미운 건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카가와와 아사다를 조롱하는 건 애국심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원숭이에 빗대 그들을 조롱하는 것과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는 같은 맥락이 아니다. 카가와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해트트릭을 하고 전용기를 타는데 박지성은 퀸즈파크 레인저스에서 주전경쟁을 하는 게 한국과 일본의 국격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김연아가 트리플 악셀에 성공하는데 아사다는 넘어졌다고 해 “한국이 일본에 비해 우월하다”고 할 사람도 없다. 우리는 지금 엉뚱한 곳에서 애국심을 발휘하고 있다. 아니, 이건 애국심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를 조롱하고픈 군중심리일 뿐이다. 카가와가 전용기를 탄다는 말에 “추락해서 죽어라. 공중 폭파를 기원한다”는 댓글 수십 개가 달린 걸 보고 경악했다.

박지성과 김연아는 누구와 비교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훌륭한 선수들이다. 꼭 여기에 카가와와 아사다를 끼워 넣고 ‘박지성과 김연아가 이들보다 더 위대하다’고 할 이유가 없다. 이건 우리끼리 제 살 깎아 먹는 거다. 김연아 스스로도 “우리 둘의 비교 때문에 아사다 역시 힘들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비틀즈는 그냥 비틀즈고 마이클 잭슨은 그냥 마이클 잭슨이다. 비틀즈가 위대한 뮤지션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다른 뮤지션과 비교하는 거 본 적 있나. 수준 낮게 왜 이러나. 우리는 박지성과 김연아라는 위대한 선수를 보유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비교질도 좀 적당히 하자. 카가와가 벤치에 있건 해트트릭을 하건 그건 일본 사정이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갖는 건 소개팅에서 나온 자신 없는 남자가 주선자에게 “그 여자는 뭐래?”라고 묻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나는 이전에도 몇 번 칼럼에 썼지만 일본 선수들도 국제 무대에서 성공하는 게 우리를 위해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카가와가 세계에서도 손 꼽히는 맨유에 진출할 수 있었던 건 분데스리가에서 보여준 능력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박지성이 아시아 선수도 빅클럽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만약 박지성이 맨유에서 오랜 시간 활약하지 못하고 실패했다면 카가와도 맨유에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카가와가 맨유에서 또 다시 박지성 못지 않은 활약을 이어갈 경우 언젠간 이 기회가 손흥민이나 구자철에게도 돌아온다. 그런 면에서 일본인이라는 색안경을 벗는다면 그들이 실패하는 걸 바랄 수만은 없다. 대학생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노모 히데오가 길을 닦아 놓았기 때문이라는 걸 부인할 수 있나. 다른 걸 다 떠나 체격도 왜소한 아시아 선수들이 국제 스포츠 무대 정상권에서 활약하는 건 스포츠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국적을 막론하고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다. 아니, 응원은 못해도 조롱은 하지 말자.

최근 들어 중국 프로축구도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막대한 자본을 앞세운 이들은 세계적인 감독과 선수들을 연이어 영입하며 K리그 클래식을 위협하고 있다. 과거에는 손 쉽게 제압했던 중국 클럽들이 이제는 복병을 넘어 강호로 인식되는 상황이다. 전북이 안방에서 광저우 헝다를 상대로 힘겨운 승부를 펼친 것에서 보듯 이제 더 이상 중국 프로축구는 약하지 않다. 국가대표는 아니지만 클럽 축구에서 한국이 중국에 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추세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 혼자 아시아 무대를 씹어 먹는 건 기분 좋지만 그래서는 발전이 없다. 누군가 바짝 추격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우리도 더 집중하고 투자를 한다. 그런 면에서 중국 프로축구의 급성장처럼 이웃 나라의 스포츠 발전은 충분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우리는 그들보다 또 한 걸음 더 먼저 나아가면 된다.

일본을 대하는 분한 마음이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피가 끓는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자꾸 카가와와 아사다를 우리 언론 전면에 등장시켜 조롱하는 게 오히려 더 우리가 스스로를 낮추는 꼴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대만 관중은 태극기를 찢고 김정일 초상화를 걸어 우리에게 도발했다. 불쾌한 감정이야 상당하지만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그들에게 융단폭격을 가하고 맞대응했나. 아니었다. 왜 그럴까. 아무리 대만에서 도발하고 조롱해도 그들은 우리와 견줄 만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오히려 침묵이 그들을 확실하게 제압하는 방법이다. 초등학생이 최홍만에게 시비를 걸었다고 최홍만이 발끈이나 하겠나. 그냥 “귀엽다”며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줄 것이다. 대응할 가치조차 없다.

자꾸 우리가 카가와와 아사다를 신경 쓰고 깎아내리는 건 결국 그들을 의식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우리 언론 전면에 등장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카가와가 벤치를 지켰다고 해서 그를 조롱한다면 그건 열등감을 정당하게 표현하려는 행위일 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가 열등감을 느낄 이유는 전혀 없다. 우리는 빅클럽에서 오랜 시간 뛴 박지성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면 되고 피겨스케이팅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김연아를 응원하면 된다. 그런데 왜 자꾸 스스로 열등하다고 느끼면서 남을 깎아내려야 박지성과 김연아가 더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대만의 도발에는 무대응으로 한 방 먹인 나라에서 오히려 일본 선수들에게는 조롱을 일삼고 있다. 일본이 박지성과 김연아를 헐뜯는다고 똑같이 행동해 복수할 생각인가. 오히려 무관심이 더 시원한 복수 아닌가.

영국 현지 방송에서 카가와를 소개하며 자막으로 박지성 이름이 나간 건 그냥 단순한 방송사고였다. 하지만 우리 언론은 ‘카가와의 굴욕’이라고 애국심을 빌어 대단하게 포장했고 네티즌은 이 떡밥을 덥썩 물고 카가와에게 온갖 난도질을 했다. 조롱을 앞세운 언론에게는 ‘개념 언론’이라는 칭호가 붙기 시작했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애국심으로 포장된 수준 낮은 비방만이 판을 치고 있다. 박지성과 김연아는 그들 스스로로 대단한 인물이다. 카가와와 아사다가 그들의 발톱 때만도 못하다고 비교해주지 않아도 박지성과 김연아는 충분히 빛난다. 말을 바꿔 만약에 카가와가 아사다가 박지성과 김연아를 넘어선다고 해도 박지성과 김연아가 지금껏 세운 업적에 흠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카가와와 아사다를 조롱하는 게 ‘개념 언론’이라면 나는 스스로 ‘무개념 칼럼니스트’가 되려한다. 누군가 카가와와 아사다를 줘 패야 속이 후련한가. 이게 진정한 애국심인지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