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3 3라운드는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라 볼거리가 너무나도 많았다. K리그 클래식 개막 이후 열기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언제까지 해외 언론에서 매기는 박지성 평점에만 목을 맬 텐가. 오늘은 지난 라운드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이들에 대한 평점을 매겨 봤다. 언젠간 이 평점도 K리그 클래식의 대박 흥행으로 전세계 언론에 퍼져 나가길 기대한다.

수원 보스나 - 평점 5점

프리킥을 차기 위해 준비하는 보스나 앞에 서 수비력을 쌓고 있는 이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보스나가 강 건너에서 손짓하는 저승사자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보스나가 포항과의 경기에서 보여준 프리킥은 무시무시했다. 아마 이 장면 하나로 많은 이들은 보스나의 능력을 극찬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보스나는 이 대단한 프리킥 한 방으로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았지만 정작 포항을 상대로 한 수비력에서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엄청난 프리킥에는 10점을 부여할 수 있지만 수비력은 낙제점이었다. 수비수는 일단 수비가 튼튼해야 한다. 그럼에도 평점 6점을 부여한 건 이 강력한 프리킥 한 방 때문이다. 아마 이 프리킥을 본 많은 이들은 나처럼 화장실에 가 속옷을 갈아 입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수원 경기장에 가려면 속옷을 한 장 더 챙겨야 할지도 모른다.

부산 윤성효 감독 - 평점 9점

‘디펜딩 챔피언’ 서울을 잡는 데는 별거 없다. 윤성효 감독만 있으면 된다. 수원 시절 다른 팀에는 패해도 서울에는 무려 7승 1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던 윤성효 감독은 부산 사령탑에 오른 뒤 치른 첫 서울과의 이번 라운드 경기에서도 1-0으로 서울을 잡았다. 이전까지 부산이 서울을 상대로 최근 3연패를 비롯해 무려 10실점을 허용했고 2010년 이후 7경기에선 2무 5패로 승리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정말 대단한 ‘세제믿윤’이다. 토탈사커? 티키타카? 닥공? 다 필요 없다. 윤성효 감독은 경기 전 서울을 잡는 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단디 해야지에.” 경기가 끝난 뒤에도 윤성효 감독은 “용수가 봐 준 것 같다”며 ‘멘붕’에 빠진 최용수 감독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아마 어제 밤 최용수 감독의 꿈에 윤성효 감독이 나와 “난 한 놈만 패”를 외쳤을지도 모른다. 서울이 윤성효 감독을 영입하지 않는 이상 이 징크스는 깨지지 않는 것인가.

성남 제파로프 - 평점 5점

성남에 입단한 제파로프가 이번 라운드 인천과의 홈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3년 전 서울에서 뛸 때 18경기에 나서 1골 7도움을 기록했던 제파로프는 이날 경기에서도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아직 팀에 완벽히 녹아들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날카로운 패스와 킥 능력, 센스는 여전했지만 겉도는 모습이었고 볼을 끄는 시간도 늘어났다. 인천 미드필더에 봉쇄당해 이렇다 할 플레이를 선보이지 못했다. 후반 막판 페널티킥으로 한 골을 기록했지만 이걸로 그를 평가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그의 뛰어난 능력이야 의심하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아직 성남에서는 제대로 발일 맞지 않은 모습이었고 개선이 필요하다. 적어도 이날 경기에서 보여준 경기력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기가 어렵다. 이날 제파로프가 공격수들에게 선물한 패스보다 관중석에서 샤다라빠가 다른 관중에게 선물한 맥주가 더 많았다.

포항 조찬호 - 평점 9점

나는 개인적으로 K리그 클래식 선수들에게 ‘광양 루니’나 ‘한 페르시’ 등의 별명이 붙는 걸 원치 않는다. 유명한 외국 선수들의 능력이야 대단하지만 꼭 거기에 우리 K리그 클래식 선수들을 빗대는 건 별로다. 하지만 어제 수원과의 원정경기에서 보여준 조찬호는 말 그대로 ‘조메시’였다. 비록 골은 기록하지 못했지만 작은 키에도 수원 진영을 탈탈 털며 흔드는 모습은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내가 골을 기록한 김원일이나 박성호 대신 그를 언급하는 건 그만큼 이날 시원한 경기력을 선보인 포항 선수 중에 조찬호가 가장 돋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를 메시와 비교했을 때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이 경기에서만큼은 메시 부럽지 않았다. 아마 그의 축구화에 제초제를 발라 놓았다면 수원 진영 오른쪽 잔디는 다 죽고 맨땅이 됐을 것이다.

포항 트위터 - 평점 8점

포항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수원을 초토화시키고 있을 때 그들의 발 만큼이나 현란했던 것이 바로 포항 트위터 담당자의 손가락이었을 것이다. 포항 트위터 담당자는 경기 내내 경기보다 더 재미있는 문자 중계로 보는 이를 웃게 만들었다. “김원일 해병 전투헤딩슛. 상대 골키퍼 사단장을 마주한 것처럼 얼어버리고 맙니다!”, “빅성호 선수 카페라떼보다 부드럽게 감아 넣었네요.”, “최강희감독님? 신화용 한 마리 몰고 가세요.”, “예의 없게 놀러 와서 5-0은 안되고 네 골 정도만 넣어드리고 편안하게 낮은 순위로 모시겠습니다. (주)포항스틸러스.”, “수원선수들 얼굴과 옷 색깔이 똑같네요” 등 마치 음유시인처럼 이 경기를 주도했다. 나는 이런 포항 트위터의 센스에 높은 평점을 부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부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축구 칼럼은 쓰지 말라는 것이다. 나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는가.

인천 이석현 - 평점 8점

2라운드에서 서울 격침에 한 몫 했던 인천의 신인 이석현은 3라운드에서도 가장 ‘핫’한 선수였다. 성남과의 원정경기에 나선 이석현은 1-0으로 팀이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감각적인 프리킥 골로 두 경기 연속 득점포를 가동했다. 아직 시즌이 얼마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대박 신인이다. 벌써부터 인천 팬들은 이석현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다른 팀에 팔리는 건 아닌지 걱정할 정도다. 이석현은 득점뿐 아니라 경기 내내 위협적인 움직임으로 성남을 괴롭혔다. 이날 경기에서 본인 스스로 신인왕 경쟁 라이벌이라고 지목한 성남 황의조를 상대로 완승을 거둔 이석현은 하늘 같은 선배이자 ‘후리킥 까는 건’ 따라올 자가 없는 이천수에게 직접 프리킥을 배우고 있어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이천수는 아직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지만 이석현이 넣은 골로 일단 밥값은 하고 있다.

수원 골대 - 평점 10점 (이번 라운드 MVP)

이번 라운드에서 최고의 선방을 선보인 건 누가 뭐래도 바로 수원 서포터스석 앞에 있는 골대였다. 이 골키퍼, 아니 골대는 무려 여섯 번의 선방쇼를 펼치며 이번 라운드 MVP로 선정됐다. 특히나 골키퍼 왼쪽으로 날아오는 슈팅은 무려 네 번이나 막아냈다. 이 골대가 선방만 하지 않았더라도 이 경기는 더 많은 골이 터졌을 것이다. “다섯 번이다.”, “아니다. 여섯 번이다.” “일곱 번이다.”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도 이 골대가 몇 번이나 선방을 했는지 갑론을박할 만큼 선방이 수 차례 이뤄졌는데 연맹 기록상으로는 다섯 번, 내가 직접 세어 본 걸로는 여섯 번의 선방을 펼쳤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포항제철에서 만든 골대라 수원을 상대로 완벽한 선방을 펼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쪽 골대 높이가 더 낮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골대 위에 귀신이 앉아 있는 걸 봤다는 무속인도 있다. 조찬호가 한 밤 중에 몰래 경기장에 잠입해 이 골대를 부숴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