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제 막 K리그에 입문한 친구에게 선물을 사주기 위해 K리그 구단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무언가 의미 있는 선물을 해주고 싶었는데 살 수 있는 건 유니폼 뿐이었다. 유니폼도 분명히 그에게는 좋은 선물이 되겠지만 그보다 더 각별한 스토리가 담긴 선물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다. 결국 나는 예전에 인터뷰 후에 선물 받았던 선수들 친필 사인볼을 선물했다. 무언가 아쉬웠다.

K리그 구단들이 판매하는 상품은 엇비슷하다. 유니폼과 머플러가 대부분이다. 열쇠 고리나 볼펜 등 그나마 일부 구단에서 내놓는 나머지 상품은 사실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편이다. 구단의 충성도 높은 팬들이야 매 시즌 유니폼을 구매하지만 이걸로 상품 판매 목적을 달성했다고 편한 마음을 먹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조금 더 특별한 상품을 제작해 스토리를 갖춰야 한다. 지금과 같은 시기라면 스토리를 갖춘 상품이 나올 만한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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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성이 전북 유니폼을 입었다는 건 경기력 향상뿐 아니라 구단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는 측면에서도 주목해야 할 일이다. (사진=전북현대)

최은성 머플러 한정판 판매한다면?

먼저 전북을 예로 들어보자. 전북은 올 시즌을 앞두고 은퇴의 기로에 놓인 최은성을 영입했다. 구단 전력에 보탬이 되기 위한 영입이었지만 갈 곳 없어진 레전드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이제 최은성은 대전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전북의 새로운 역사이기도 하다. 전북으로서는 최은성 영입으로 레전드를 대우하는 스토리를 갖추게 됐다. 대전이 아무리 최은성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한들 이제 최은성은 전북 선수 아닌가. 전북이 최은성을 이용한 상품 개발에 나서면 어떨까.

최은성 기념 머플러를 제작하는 것이다. “최은성은 이제 전북의 역사다”와 같은 글귀를 써 넣으면 참 멋질 것 같다. 최은성을 이렇게 떠나보낸 대전이나 그와 관련 없는 나머지 구단은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는 특별한 머플러다. 비록 최은성이 경기에 나설 기회는 그리 많지 않지만 이런 특별한 머플러는 시간이 흘러도 무척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훗날 이 머플러를 바라보면서 ‘아, 그때 우리가 최은성을 영입했었지. 참 멋진 선택이었어’라고 회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건 참 멋진 아이템이다.

구단에서는 상품을 팔아서 남는 게 별로 없다. 유니폼이나 머플러 판매 수익으로 흑자를 기록하는 게 쉽지는 않다. 시장이 작은 탓에 몇몇 빅클럽을 제외하고는 판매 수량이 다 뻔하다. 하지만 주판알 튕겨가면서 상품 판매할 거라면 차라리 그냥 아무 것도 안 파는 게 이득이다. 당분간은 구단 상품 판매로 큰 이득을 기대할 수 없지만 이 가치를 높이는 건 구단의 역할이다. 이런 스토리 있는 상품들이 쌓여야 그 구단의 역사가 튼튼해지고 결국 소비자도 늘어나게 된다. 당장 몇 개 팔리지도 않는다고 스토리 있는 상품 개발을 멈춰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정판을 참 좋아한다. 최은성 기념 머플러도 500장만 한정으로 판매하는 게 어떨까. 희소성이 있어야 상품의 가치도 높아진다. 몇 만 장씩 찍어서 창고에 대량으로 쌓아 놓거나 공짜로 경기장 앞에서 나눠주는 것보다는 한 장을 팔더라도 제 가격에 팔아 훗날에도 기념품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북-대전전에서 전북 골대 뒤의 많은 팬들이 “최은성은 이제 전북의 역사다”라는 머플러를 펼치고 응원가를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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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가 제주전에서 골을 터뜨린 뒤 보여준 티셔츠 세리머니는 참 감동적이었다. 이 감동을 오랜 시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사진=광주FC)

역사에 남겨야 할 슈바 티셔츠

얼마 전 광주 슈바의 감동 스토리가 화제였다. 힘겹게 K리그에 잔류한 슈바는 재기를 위해 이를 박박 갈다가 제주전에서 극적인 결승골을 넣은 뒤 ‘내가 다시 돌아왔다’라는 글귀를 적은 티셔츠를 공개해 훈훈한 감동을 전했다. 하지만 얼마 전 일임에도 이 감동은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 수 없이 쏟아지는 K리그 뉴스 속의 지나간 한 장면일 뿐이다. 광주 구단에서 이 감동 스토리를 오랜 시간 기억할 수 있도록 멋진 상품을 내놓는다면 아마 슈바의 이 멋진 골과 집념은 훌륭한 역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다시 돌아왔다’ 티셔츠를 제작하는 건 어떨까. 슈바의 티셔츠에 써 있던 글씨체를 그대로 옮겨 프린팅해 판매하는 것이다. 광주의 팀 컬러인 노란색 티셔츠를 제작해 앞면에는 당시 티셔츠 글귀를 써 넣고 뒷면에는 슈바의 등번호와 마킹을 하는 간단한 방법이면 된다. 이런 티셔츠 하나 제작하는데 드는 원가는 몇 천원 하지도 않는다.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슈바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포장하는 건 이제 슈바의 몫에서 우리들의 몫으로 넘어왔다. 슈바가 더 이상 멋진 플레이를 펼치지 못해도, 아니면 더 멋진 활약을 펼쳐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K리그 구단은 기념관을 만들 정도로 역사가 길지 않다. 하지만 역사가 길어도 전시할 만한 기념품이 없다. 과거 유니폼 몇 벌과 우승 트로피, 선수들 친필 사인이 전부일 것이다. 훗날 100년의 시간이 흐르고 광주FC가 기념관을 건설한다면 어떤 물품이 전시되어야 할까. 슈바가 제주전에서 극적인 골을 넣은 뒤 티셔츠를 들어 올리고 환호하는 낡은 사진 한 장과 당시 실제 티셔츠, 그리고 그 옆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티셔츠가 걸려 있어야 한다. 이런 상품들이 모이면 구단의 역사도 탄탄해지고 결국 기념관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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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으면 뒷목을 잡고 쓰러져 병원에 누웠겠지만 인천 마스코트 ‘유티’는 폭행사건 이후 목발을 짚고 경기장에 등장했다. (사진=UTD기자단 남궁경상)

흥미로운 소재를 그냥 넘어가지 말자

인천은 대전 팬들의 인천 마스코트 폭행 사건으로 구설에 올랐다. 이후 치러진 경남전에서 이 마스코트 ‘유티’는 목발을 짚고 등장해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했다. 숨기고 싶은 사건일 수도 있지만 이를 유쾌하게 풀어낸 건 참 좋은 아이디어였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면 아마 훌륭한 상품이 나올 것이다. 인천이 ‘유티 살리기 캠페인’을 벌이면 어떨까. 아길레온이나 시드 등 다른 K리그 구단의 마스코드도 있지만 현 상황에서 유티 만큼 인기스타도 없다. 인천으로서는 이 유티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할 기회를 얻었다.

유티를 이용한 여러 구단 상품을 만들 수 있다. 촌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뽀로로를 생각해보면 뽀로로에 비해 유티의 외모나 패션 감각이 떨어지는 편도 아니다. 안경빨 하나 내세운 뽀로로보다 유티가 떨어질 게 뭐가 있나. “우리 유티를 살려주세요”라는 캠페인으로 유티 관련 상품을 판매한다면 보다 더 구단 상품 제작에 활기가 돌지 않을까. 현재 경기장에 단 한 명뿐인 유티를 수십 명으로 늘리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은 유티로 가득찰 필요가 있다. 다른 구단 마스코트 이름은 잘 몰라도 유티 이름을 모르는 K리그 팬은 없다.

하찮은 아이디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얼마나 이슈와 스토리를 이용해 얼마나 유쾌하고 의미 있는 상품을 만드느냐는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유니폼과 머플러만으로 구단 쇼핑몰을 채우는 건 프로구단으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대전은 지난 시즌 박은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 때 박은호 가발을 만들어 판매하고 울산은 솜방망이로 철퇴 모양을 만들어서라도 팔아야 한다. 이 흥미로운 소재들을 그냥 넘어간다면 우리가 팔 수 있는 건 100년이 지나도 달랑 유니폼과 머플러 뿐일 것이다. 이제는 스토리를 이용한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