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1이 전북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전북의 우승만큼 주목받는 팀과 선수가 있다. 바로 울산과 김신욱이다. 울산은 6위로 6강 챔피언십에 턱걸이 해 서울과 수원, 포항을 연달아 제압하고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물론 그 중심에는 바로 이 선수, 김신욱이 있었다. 김신욱을 직접 만나 지금까지는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들어봤다. 솔직한 그와의 이야기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과묵해 보이는 김신욱은 알고 봤더니 수다쟁이였다.

반갑다. 이제 시즌도 끝났는데 요새 어떻게 지내나.

쉬는 동안은 축구를 버려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어릴 적부터 운동을 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형들은 쉴 때는 다 잊고 쉬어야 한다고 하는데 참 어려운 거 같다. 휴가를 받아 집에서 쉬는 동안에도 유럽축구 보면서 공부도 하고 그런다. 별로 할 게 없고 잠도 안 와서 꼬박꼬박 축구는 다 챙겨본다.

휴가 나오면 술도 마시고 놀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시간이 또 없지 않나.

챔피언결정전 2차전 끝나고 곧바로 울산에 도착해서 울산 형들과 가볍게 한 잔 했다. 그런데 평소에 술 마시는 습관이 몸에 익지 않아서 많이는 못 마신다. 새벽 한 시 넘어가면 졸립고 피곤하다. 그리고 또 사실 나는 집에 통금이 있는 남자다. 새벽 한 시 넘으면 집에서 엄마한테 계속 전화 온다. 서울 와서도 술 마시고 놀 기회도 별로 없었고 가볍게 한 잔하고 싶어도 주위에 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라 같이 마실 사람도 없다.

그럴 땐 나를 불러라. 술이라면 환장한다.

알았다. 정말 한 잔하자. 지금 이런 휴가 기간이 나한테는 참 생소하다. K리그 1년차였던 2009년에는 시즌이 끝나자마자 대표팀 남아공 전지훈련에 참가했고 작년에는 아시안컵 준비로 바빴다. 울산에서 휴가 받자마자 대표팀에 가 공을 찼다. 아시안컵을 앞두고는 하루에 운동을 오전, 오후, 저녁 이렇게 세 탕이나 했다. 그런데 올해는 이 시기에 시간이 남아돌아 잘 적응이 안 된다.

올 시즌 이야기는 차근차근 들어보기로 하고 일단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어보겠다. 키 커서 좋겠다. 원래 그렇게 컸나.

늘 또래보다는 큰 편이었는데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 넘어갈 때 키가 확 컸다. 피로골절 부상을 당해 재활을 한 뒤 복귀했는데 또 피로골절 부상을 당해 운동을 한 동안 쉬면서 개고기를 엄청 먹었다. 무척 마른 체형이었는데 개를 한 10마리 먹었더니 갑자기 살이 찌는 체질로 바뀌면서 급속도로 키가 컸다. 고등학교 올라갈 때 190cm가 됐다.

부럽다. 나도 지금 개고기 먹으면 190cm 될 수 있나.

그냥 포기하는 편이 빠를 것 같다.

지금 정확한 키가 몇인가. 연맹에 등록된 프로필에는 196cm로 나와 있다.

병무청에서 신체검사 할 때 195.7cm였는데 지난 번에 대표팀에가 쟀을 때도 똑같이 나오더라. 정확히 말해 195.7cm다.

뭔가. 지금 연맹 등록 프로필에 키를 0.3cm나 속인 건가. 그렇다면 앞으로 나도 반올림 해 172cm라고 해야겠다. 키 커서 평소에 좋은 것도 있나.

사람들이 함부로 시비를 걸지 않는다. 아무래도 키가 크다보니 위화감을 좀 주나보다.

그런가 보다. 나한테는 사람들이 툭하면 시비를 건다.

안 됐다.

그런데 대학 때까지 수비수로 뛰다가 성인 무대에 와서 공격수로 전향한 선수로 잘 알려져 있다. 뒷이야기가 궁금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주로 공격수로 뛰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키가 갑자기 크는 바람에 스피드가 떨어졌다. 그래서 과천고에 입학하고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했었다. 당시 수비형 미드필더로 꽤 주목받았고 우리 학교의 전국대회 첫 우승을 주장으로 이끌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를 뽑아가겠다는 대학교도 상당히 많았고 특히 당시 고려대학교 조민국 감독님은 지금도 “널 내가 데려오고 싶었는데 중앙대 감독하고 내가 친해서 못 데려왔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중앙대에 가게 됐다.

그런데 대학교에서는 주로 중앙 수비수로 나섰다. 감독의 권유였나.

아니다. 유럽 축구를 보면서 수비수로 유럽에 진출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힘이나 체격 조건에서도 밀리지 않을 거 같았다. 그래서 감독님을 찾아가 직접 말씀드렸다. “감독님, 저 수비하고 싶어요.” 그랬더니 감독님도 내 의견을 존중해 수비수로 나를 기용하셨다. 미드필드에서는 엄청나게 뛰어다녀야 하는데 수비수가 되니 뛰는 양도 적도 키가 커 헤딩도 잘해 참 편한 느낌이 들었다. 프로팀 스카우트 분들이 직접 찾아와 밥을 사주면서 “우리가 너 뽑고 싶으니까 드래프트 냈다는 소리 다른 데 가서 하지 말고 일단 드래프트부터 넣자”고 한 적도 종종 있었다.

사실 울산에서도 당신을 중앙 수비 자원으로 생각하고 뽑았었다.

대학교 2학년 중퇴하고 1순위로 울산에 입단했으니 일이 참 잘 풀린 거 아닌가. 나도 내가 중앙 수비수로 성공시대를 열어갈 줄 알았다. 하지만 나를 뽑았던 김정남 감독님이 그만두시고 김호곤 감독님이 새로 오셨다. 김호곤 감독님이 날 뽑은 게 아니어서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다 떠나 K리그에 입단해 내가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또한 당시 박병규, 박동혁이 울산을 떠나면서 이동원, 이원재, 임종은 등 쟁쟁한 수비수들이 모두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힘든 시기에 주전 경쟁은 어땠나.

동계 훈련을 하는데 일단 주전 선수 베스트11을 꾸리고 그 다음에 서브 선수 11명으로 베스트11을 구성했다. 그리고 그 밑에 11명을 나눴다. 흔히들 이걸 우리끼리는 1군, 2군, 3군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나는 3군에도 못 들었다. 4군에서 훈련을 했다. 상상을 해보라. 4군이면 얼마나 막막할 것 같나. 정말 이를 악물고 동계훈련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4군 인생을 잘 안다. 나는 학교에서 공부로 4군까지 해봤다. 그렇다면 공격수로 보직을 변경할 결심은 언제하게 됐나.

내 의지는 아니었다.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이)진호 형이 부상을 당해 (조)진수와 (염)기훈이 형이 공격을 맡았는데 기훈이 형까지 피로골절로 쓰러지고 말았다. 여기에 믿었던 알미르까지 부상을 당해 공격으로 나설 선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때마침 김호곤 감독님께서 “넌 수비수로는 비전이 없으니 공격을 한 번 해보라”고 권유하셨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공격수가 됐다. 수비수로는 4군이었는데 공격수로는 2군까지 올라간 상황이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도 당신의 공격수 데뷔전이었던 베이징 궈안과의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을 기억한다.

주로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입장이었는데 나에게 기회가 왔다. 이상철 코치님이 “내일 경기에서 잘하면 교체 멤버로라도 데리고 다니겠지만 못하면 여기에서 끝이다”라고 잔뜩 나를 긴장시켰다. 나에게는 마지막일지도 모를 기회였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정말 자신이 없었다. 공격수로 훈련한지 이제 막 한 달 됐는데 공격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지금처럼 발로 공을 잡고 하는 그런 플레이도 없었다. 그냥 죽어라 경기 내내 헤딩만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상대 수비가 별로 강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국 선수들 헤딩 정말 못 하더라. 되게 편하게 경기를 했고 생각보다 플레이도 괜찮았다. 당시 우리팀 분위기가 좋지 않았는데 이 경기에서 그 시즌 첫 승을 거뒀고 다음 대전과의 정규리그에서 내가 골을 넣었다.

그래도 당시 여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5경기에서 세 골인가 넣었다. 언론에서는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지만 헤딩만 잘하는 키 큰 선수”라고 평가하는 분위기였다. 울산 팬들도 “옛날 뻥축구가 다시 나온다”면서 나를 무척 싫어하셨다. 김호곤 감독님도 주전 선수들이 부상에서 돌아오면 나를 리저브로 돌릴 것이라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4군에서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한 거 아닌가. 그런데 진호 형이 계속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기훈이 형은 시즌 막판이 되어서야 컨디션을 찾게 돼 내가 쭉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다시 김호곤 감독이 당신에게 수비수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시키면 하는 수밖에 더 있나. 대표팀에서 조광래 감독님도 나에게 수비를 종종 지시하셨었다. 선수라면 감독님이 어떤 걸 지시하건 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 사회생활 잘한다. 나는 누가 뭐 좀 부탁하면 안 할 궁리만 하는데 당신은 참 대단한 거 같다. 만약 당신에게 포지션 선택권이 있다면 공격과 수비, 수비형 미드필더 중 어떤 포지션을 고르겠는가.

세 포지션 모두 경기 출전이 보장된다면 지금은 공격수가 가장 우선이고 그 다음은 중앙 수비다. 이제 수비형 미드필더로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공격수로 전향한지 3년밖에 안 된 선수라는 게 믿겨지지 않는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거 타고난 거 아닌가.

절대 아니다. 일단 감독님이 나를 전적으로 믿어주신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정말죽기살기로 운동을 했다. 오죽하면 형들이 “너 제발 운동 좀 그만하라”고 할 정도였다. 나는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단체 훈련이 끝나면 혼자 남아 한 시간은 기본으로 더 개인 훈련을 한다. 혼자 슈팅 연습을 하거나 막내들을 시켜 크로스 올리라고 하고 헤딩 슈팅 연습도 한다. 기현이 형이나 (최)재수 형이 도와주면 좋겠지만 선배라 부탁할 수는 없어 막내들을 괴롭히는 편이다. 또한 프로팀에서는 시즌 중에 오전이나 오후 중 한 번만 훈련을 하는데 대부분 오후에 훈련이 있으면 오전에는 잠을 잔다. 하지만 나는 오전에 자본 기억이 거의 없다. 부상 방지에 좋은 웨이트트레이닝이나 조깅을 한다. 내가 올해 40경기 넘게 뛰면서도 부상 없이 체력을 유지한 건 이것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남다른 노력이 있었는지는 몰랐다.

올해 열린 한일전을 준비하면서는 개인 훈련을 하다가 탈진하기도 했다. 혼자 훈련하다가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서 병원에 가 링거를 맞을 정도였다. 감독님도 “제발 운동 좀 그만하라”고 할 정도로 개인 운동을 많이 했다.

참 독하다. 나 같으면 개인 운동은커녕 단체 훈련도 어떻게든 꾀병을 부렸을 것이다.

개인 운동 뿐 아니라 공부도 많이 했다. 내 주변에 축구 잘하는 사람들을 카피하면서 공부했다. 올해에는 기현이 형 플레이를 많이 카피했고 그 전에는 라돈치치와 데얀을 보고 따라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데얀이 나보다는 빠르지만 그리 스피드가 있는 선수는 아닌데 참 잘한다. 서울 경기 CD를 비디오 분석관에게 부탁해 90분 동안 데얀이 어떻게 플레이하는지만 지켜봤다. 서울 경기는 거의 다 봤다고 생각하면 된다. 또한 쉴 때도 컴퓨터를 하거나 놀러 다니지 않는 성격이라 항상 방에 텔레비전을 틀어 놓고 축구만 본다. 키는 그리 크지 않은데 골 잘 넣는 인자기나 라울 같은 선수들의 슈팅 타이밍을 많이 연구했고 앤디 캐롤과 드록바, 이브라히모비치도 나의 카피 대상이었다.

올해 설기현의 플레이를 보면서 많은 걸 얻었나.

기현이 형은 최고의 선수다. 나는 같이 경기장에서 뛰면서 기현이 형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끼고 있다.

자세히 설명해 달라.

그라운드에는 죽은 공간이 있다. 패스가 왔는데 그곳으로 달려가 공을 받으면 100% 빼앗기는 상황이 있다. 공격수라면 죽은 공간에 패스가 들어온 걸 직감하고 포기한다. 하지만 기현이 형은 그걸 알고도 공을 받으러 죽은 공간으로 들어가 공을 살려낸다. 솔직히 나는 공을 빼앗기는 게 무서워서 못 간다. 기현이 형이 있어서 우리 팀이 살았고 만약 그 형이 없었으면 우리는 일찌감치 챔피언십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또한 그 형은 모든 플레이 자체가 다르다. 나를 비롯한 다른 공격수들은 K리그에서 통할 수 있지만 기현이 형은 K리그 뿐 아니라 프리미어리그 수비수가 와도 똑같은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선수다. 나는 약한 상대한테는 강하지만 강한 상대가 오면 실력이 들통나는데 기현이 형은 그렇지 않다. 제공권 장악에도 정말 많은 조언을 해준다.

어떤 조언인지 좀 알려 달라. 메시도 이 조언만 들으면 제공권 장악할 수 있나.

내 힘을 이용할 수 있는 노하우를 기현이 형이 알려줬다. 사실 나는 1년차 때 수원 마토와 헤딩 경합하면 졌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토한테 지지 않았다. 원래 헤딩 경합을 할 때면 달려가면서 공만 살짝 건드리려고 했는데 기현이 형은 몸을 이용해야 한다고 지적해줬다. 일단 몸으로 상대 수비를 막고 우위를 점하면 머리를 이용할 수도 있고 가슴을 이용할 수도 있다. 그 노하우가 나에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솔직히 내 자리에서 그것만 잘해도 축구로 먹고 살 수는 있지 않나.

당신은 설기현의 열혈 팬인 거 같다.

선수로서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최고다. 솔직히 겉으로만 겸손한 척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걸 감추고 있는 사람은 언젠가는 티가 난다. 하지만 기현이 형은 속마음을 다 보여주는 데도 그렇게 겸손할 수가 없다. 그 형 인간성 자체가 그렇다. 인간적으로도 정말 본받고 싶은 사람이다. 내가 이번 챔피언십에서 주목받으면서 가장 미안한 게 기현이 형이었다. 하지만 기현이 형한테 전도를 시도했는데 그건 실패했다.

전도 실패의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나.

(이)영표 형이 참 전도를 잘한다. 그런데 딱 한 명 실패한 게 기현이 형이었다. 나도 지금까지 100명 넘는 사람을 전도했는데 기현이 형만큼 전도에 실패했다. 기현이 형이 “(송)종국이는 어릴 적 그렇게 열심히 교회 다니다가 지금은 그렇게 열심히 안 다니지 않느냐”고 했고 지나가다가 “또 저 교회는 왜 그렇게 비리가 많느냐”고 하더라. 정말 심지가 굳은 사람이다.

이영표가 실패했다면 말 다한 거다. 다른 대상을 찾는 게 빠를 것 같다. 그런데 당신은 타겟형 스트라이커이면서도 정말 많이 뛴다. 올 챔피언십에서도 항상 활동량으로는 다섯 손가락에 꼽혔다.

내 신조가 있다. 기존 선수들과 똑같다면 여기에 한 가지만 더 장점을 더해도 내가 더 나은 선수가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타겟형 스트라이커보다는 몇 가지 장점을 갖자고 생각했고 그래서 목표로 삼은 두 개가 바로 많이 뛰는 것과 발기술이었다. 솔직히 많이 뛰는 거 어렵지 않다. 그냥 정신력 갖고 열심히 뛰면 되는 거 아닌가. 발기술도 처음보다는 많이 늘었다. 타겟형 스트라이커이면서도 남들과는 다른 내 무기를 만들고 싶어 노력하고 있다.

발기술도 지난 강원전에서의 발리슈팅이라면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내 인생 최고의 골이었다. 그렇게 넣어 본 적도 없고 앞으로 다시 못 넣을 수도 있다. 나도 넣고 놀랐었다.

앞으로도 그런 슈팅을 기대하겠다. 올 시즌을 정말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는데 자신에게 점수를 매긴다면 얼마나 줄 수 있을까.

90점 정도 주고 싶다. 전반기 때는 몸 상태가 정말 좋았다. 7월까지는 거칠 게 없었다. 그런데 0-3으로 완패한 한일전을 치른 뒤 급격한 슬럼프에 빠졌다. 이 과정에서 감점을 주고 싶다. 그렇지만 시즌 막판에 다시 몸 상태를 끌어 올렸다는 건 내 스스로가 무척 대견하다. 그래서 90점이다.

한일전 이후 슬럼프에 빠진 원인이 있을까.

나는 K리그를 대표해 태극마크를 달았는데 대표팀에 가니 워낙 잘하는 선수가 많아서 내가 가진 것에 반도 못 보여줬다. 또 내가 자신 있는 건 타겟형 스트라이커로서의 플레이인데 대표팀에서는 그걸 내려놓고 조광래 감독님의 패싱 축구에 맞춰야 했다. 감독님 스타일에 맞추는 건 선수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대단한 열기를 자랑하는 한일전에 나선 뒤 K리그로 돌아오니 이 경기가 갑자기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당시 리그컵을 포함해 정말 많은 골을 넣고 있었는데 간절함이 사라졌다. 한일전에 충격패한 게 화도 났고 의욕도 없어 대충 뛰는 상황이 됐다.

대표 선수로 한일전 나갔다고 건방져 진 건가.

그건 절대 아니다. 충격적으로 패해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두려웠다. 쭉 선발로 나서다가 한일전 이후 치른 인천전에서는 후반 교체로 들어가 15분 뛴 적도 있었다.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나태해졌었다. 그래서 다시 생각했다. ‘이러다가 다시 아무 것도 아닌 선수로 돌아갈 수 있다. 지금까지 쌓아 놓은 게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다시 이때부터 집중하기 시작했다.

대표팀에서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 했는데 나 같으면 무척 떨렸을 거 같다.

아시안컵 때 한 달 내내 (박)지성이 형과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 선배님이니까 내가 국을 매일 퍼줬는데 지성이 형이 내가 퍼준 국 먹고 그렇게 잘한 거다. 며칠 퍼 드리다보니 나중에는 국물의 양도 다 파악해 남기지 않고 먹도록 신경 좀 썼다. 축구선수들은 밥을 많이 먹고 더군다나 많이 뛰는 지성이 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밥을 먹을 줄 알았는데 정말 일반인만큼 적게 먹는 게 신기했다. 이 형도 참 겸손해서 배울 게 많았다. 아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축구를 잘 하는 지성이 형, 기현이 형, 영표 형이 겸손한데 나 같은 선수가 어떻게 건방을 떠나.

박지성 ‘국셔틀’로 아시안컵에서 맹활약 한 당신은 리그컵 이후 11경기 연속 무득점의 부진에 빠졌지만 챔피언십이 시작되고 펄펄 날았다.

마음을 고쳐먹은 다음부터는 운동량을 많이 줄였다. 사실 나는 개인 운동을 정말 많이 하는데 개인 운동을 멈추고 심리적으로 컨트롤을 시작했다. 그냥 다른 거 다 접어두고 플레이 하나 하나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6강 챔피언십 서울전을 앞두고 밤새 서울 중앙 수비수 아디와 (김)동우형의 약점만 집중적으로 생각하면서 공략하는 법을 고민하기도 했다. 시즌이 끝나가는 상황에서 최대한 몸에는 휴식을 주고 머리로 축구를 생각하는 시간이 도움이 된 것 같다.

당신이 밤새 생각한 서울전 공략법은 무엇이었나.

서울 수비가 우리 공격에 비해 헤딩이 약한 편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기현이 형이 주로 측면으로 자주 빠지는 스타일인데 기현이 형이 측면으로 나가면 공간이 많이 생긴다. 수비와 붙어 있다가 빠져 나오면 찬스가 생길 것이라고 확신했다. ‘타겟형 스트라이커가 아닌 공격형 미드필더처럼 플레이하자’고 스스로에게 주문했는데 이게 정확히 통했던 것 같다.

울산은 놀라운 기세로 승승장구했지만 결국 전북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 패하고 말았다. 아쉬움은 없나.

우리는 사실 수원을 꺾고는 부담감이 없었다. 승패에 대해 선수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고 그냥 그 분위기를 즐겼다. 많은 이들이 서울과 수원, 포항 등 우리 상대팀의 우세를 점쳤지만 이 팀을 다 꺾으면서 사시가 하늘을 찔렀다. 전북을 만나서도 부담감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솔직히 우승을 놓치고 나니 아쉬움은 당연히 남는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챔피언결정전 1차전으로 돌리고 싶다. 기현이 형이 올려준 공을 내가 헤딩골로 연결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쉽다.

나도 미안한 이야기지만 울산 상대팀의 승리를 매번 예상했었다. 내 주변에는 울산 상대팀에 내기를 걸었다가 돈을 날린 이들도 상당히 많다. 다 당신 때문이다.

앞으로는 울산에 걸어라. 그러면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많은 이들의 재테크에 보탬을 줄 테니 울산을 믿었으면 좋겠다.

사실 당신의 활약도 활약이지만 챔피언십에서 울산 팀 자체의 경기력도 워낙 좋았다. 그 원동력이 있을까.

나는 작년과 비교해보면 실력에 큰 변화는 없지만 팀이 나를 이만큼 세워줘 조명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팀이 나를 주목받게끔 만들어줬다. 감독님이 정해진 틀을 제시했지만 나머지는 모두 선수들에게 맡겼다. 우리 팀은 술 마시는 회식을 잘 안하는데 대신 저녁 때면 같이 8~9명이서 밖에 나가 밥을 자주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편이다. 소고기도 먹고 삼겹살도 먹고 라면도 먹는다. 대화 시간이 많다보니 조직력도 자연스럽게 살아난 것 같다. 그게 원동력인 거 같다. 올 초에는 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불안한 면도 있었지만 이제는 팀이 하나가 됐다.

당신의 수원전 승부차기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국가대표 골키퍼를 상대로 한 가운데에 그런 슈팅을 날리는 건 대담하거나 미쳤거나 둘 중에 하나인 것 같다.

그렇게 차려고 의도하고 들어갔다. 쭉 지켜보니 (정)성룡이 형이 슈팅하기 전에 미리 뜨는 걸 봤다. 내가 대표팀에서도 성룡이 형을 상대로 몇 번 페널티킥을 차봤는데 주로 성룡이 형 왼쪽으로 찼다. 이번 승부차기에서도 성룡이 형이 분명히 그쪽으로 몸을 날릴 것이라고 예상해 그냥 가운데로 찍어 차겠다고 마음 먹고 슈팅을 날렸다. 내 예상대로 성룡이 형은 왼쪽으로 몸을 날리더라.

평소에도 그런 슈팅을 연습한 적이 있었나.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안 떨렸다. 그날 컨디션도 좋았고 자신감도 대단해서 그냥 두려움 없이 찼다. 막히면 막히는 거지 뭐. 이런 심정이었다.

그래도 구석으로 차서 막히면 민망하지라도 않지, 그렇게 차서 막히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다.

그런가. 생각해보니 만약 막혔으면 아마 팀을 나가야 했을 지도 모르겠다. 경기 끝나고 라커룸에서 선배들한테 “깡 좋다”고 박수 받았다.

세레모니도 화제가 됐다. 골을 넣고 야유하는 수원 팬들을 향해 도발에 가까운 세레모니를 펼쳤다.

사실 (염)기훈이 형과 (오)범석이 형, (오)장은이 형은 정말 친한 선배들인데 그 세레모니 이후 조금 어색해졌다. 특히 장은이 형하고는 정말 친한데 시즌 끝나고 맥주 한잔 하면서 “우리 팬들이 야유하는 거 당연한 거 아니냐. 선배들한테 도발하는 게 아닌 건 알지만 선배들을 생각하면 그 정도까지는 너무 과한 거 아니냐”고 하더라. 진지한 분위기는 아니었고 지나가는 말로 그랬는데 사실 좀 죄송했다. 사랑하는 형들 앞에서 그런 것도 죄송하고 팬들이 홈에서 원정팀 선수들에게 야유하는 건 당연한 건데 도발에 가까운 세레모니를 한 것도 죄송하다.

에이. 홈 팬이 야유하면 세레모니로 그에 반응하는 것도 원정팀 선수로서는 당연한 거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볼 수도 있나. 고맙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뒤 수원 팬들이 대놓고 당신을 욕하는 건 못 봤다. 그냥 “야, 요 놈 봐라” 이 정도지 그걸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건 정말 그렇다. 내 미니홈피에 대놓고 욕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나 역시 수원 팬들을 인정한다. 상대편 선수에게 야유는 해도 예의는 끝까지 갖춰주는 모습을 보고 건전한 서포터스 문화가 이런 거라는 걸 느꼈다.

죄송하다고 해놓고 다음에 또 한 뒤 한 번 더 죄송하다고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팬들은 사실 이런 거 좋아한다.

그럴까. 사실 사람들이 어떤 대표팀 경기에 나선 것보다 이번 챔피언십이 끝나고 나를 더 알아봐주신다. 특히 울산 가서 돌아다니면 다 알아본다. 그 중에서도 수원전 세레모니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해주시는 모습을 보고 좀 신기하기도 했다.

다음에도 멋진 골 세레모니 부탁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로 이야기 해 달라. 이제 수원한테는 했으니 수원은 빼고 다른 팀하고 할 때도 해보겠다. 세레모니도 연구하는 편이다. 큰 경기에는 이런 것도 이슈가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표팀에 뽑혀 해외 원정 가서 한 번 멋진 골 세레모니를 해보고 싶다. 자부심 강한 사람들 앞에서 한국이 더 우위에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그런데 솔직히 수원 서포터스가 그렇게 많은데 좀 겁나지는 않았나. 나는 길가다가 고등학생 세 명만 마주쳐도 무서운데 당신 앞에는 파란 옷을 입은 수원 팬 수천 명이 있었다.

사실 좀 겁나기는 했다. 손은 귀에 대고 있는데 차마 눈으로는 그쪽을 못 쳐다보겠더라.

김신욱 "수원전 세레모니 사실은 엄청 쫄았어요." 이걸로 인터뷰 제목 뽑아도 되나.

좋다. 대신 기훈이 형, 범석이 형, 장은이 형한테 너무나 죄송하다는 건 인터뷰 내용에 꼭 넣어 달라. 아, (이)용래 형도 포함해야 한다. 안 그러면 삐친다. 성룡이 형은 그리 친한 편은 아니니 빼도 되지만 용래 형은 꼭 포함해야 한다.

김신욱이 수원과의 준플레이오프 승부차기에서 슈팅에 성공한 뒤 수원 팬들을 향해 선보인 세레모니. 사실 좀 쫄았단다. (사진=울산현대)

스스로 생각하는 당신의 단점은 뭔가.

음. 헤딩인 거 같다.

에이, 당신처럼 헤딩 잘하는 선수가 단점을 헤딩으로 꼽으면 다른 K리그 선수들은 뭐가 되나. 당신이 헤딩을 못한다는 건 망언 수준이다. 이민정이 “저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키 큰 선수 중에 헤딩 잘하는 선수들은 별로 없다. 다 신체 조건을 이용하는 것뿐이다. 솔직히 ‘키빨’ 아닌가. 나도 “쟤, 키만 믿고 헤딩한다”는 소리 듣는 게 정말 싫다. 공중에 제대로 떠서 정점에서 스파이크 헤딩을 꽂아 넣고 싶다. 그걸 잘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게 단점이다.

아마 당신이 그런 스파이크 헤딩을 하려면 크로스가 공중에 약 4m는 떠야할 것 같다.

당신이 내 경기를 쭉 봤을 테니 단점 하나만 꼽아 달라. 나는 내 단점 지적해 주는 게 너무 좋다. 그래야 더 빨리 고칠 수 있지 않나.

당신의 단점은 너무 겸손하다는 것이다.

에이, 나도 박지성 정도 되면 이렇게 겸손하게 행동 안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사실 당신이 키가 커서 드리블에 단점이 있을 줄 알았는데 리그컵 부산과의 결승전에서 성큼성큼 하프라인에서부터 단독 드리블을 해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사실 중계를 잘 안 해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그런 드리블 돌파도 자주 하는 편이다.

앞으로 당신의 드리블도 유심히 지켜보겠다. 이제 올 시즌이 막을 내리고 내년 시즌을 준비해야 한다. 가장 궁금한 건 내년 시즌에도 울산의 돌풍이 이어질 수 있을지 여부다.

이 멤버 그대로 간다면 3위 안에 든다고 장담할 수 있다. 성적을 내려면 멤버가 그대로 유지되는 게 중요하다. 전북이나 포항을 보면 대대적인 변화 없이 지난해와 비슷한 멤버로 좋은 경기를 펼쳤다. 반면 우리 울산과 수원 같은 경우는 큰 틀을 바꾸면서 힘든 시즌을 보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우리 울산은 선수 구성이 상당히 많이 바뀌면서 한 동안 고전을 해야했다. 올 시즌 멤버를 내년에도 유지하고 여기에 한두 명 정도만 보강되면 충분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당신의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

올해는 리그컵에서 골을 많이 넣었는데 내년에는 정규리그에서 더 많은 골을 넣어보고 싶다. 또한 보다 먼 미래에는 유럽으로 가 축구를 해보는 게 꿈이다. 내가 수비수에서 공격수로 도전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처럼 유럽 무대도 언젠가는 도전해 보고 싶다. 이뤄지건 이뤄지지 않건 몸으로 부딪혀 도전해 볼 생각이다.

축구 선수로의 최종적인 목표가 있다면.

다시 수비수로 돌아가라고 해도 시키면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현재 포지션에서 키 큰 공격수들의 롤모델이 되고 싶은 게 나의 꿈이다. 누군가가 나를 롤모델로 삼고 꿈을 키워나간다면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게 있을까.

마지막 질문이다. 올 시즌 응원해준 팬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부족한 나를 믿어주셔서 내가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내가 성장하는 과정을 팬들이 다 도와줬다. 믿어주신 분들에게 언제나 노력하는 모습으로 보답하고 싶다. 올 한해 나와 우리 울산을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내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항상 실망시켜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