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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치앙마이=인터뷰 조성룡 기자, 정리 안민석 객원기자] 또 다른 리더가 인천으로 돌아왔다.

인천유나이티드에는 많은 경험을 가진 선수들이 많다. 특히 이전부터 팀을 이끌었던 주장 출신들이 인천에는 유독 많았다. 지난 시즌 인천에는 오반석, 이명주, 김광석, 강민수, 김창수, 여름, 김도혁 등이 주장으로서 K리그 팀을 이끈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팀에 많은 리더가 있었지만 인천은 큰 잡음이 없던 팀 중 하나였다. 시즌 도중 위기가 도래했을 때도 쉽게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빠르게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던 이유도 많은 리더들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자연스럽게 인천은 하나의 팀으로 뭉치며 지난 시즌 리그 4위를 기록했고 리그 2위 전북현대가 FA컵 우승을 기록해 창단 첫 AFC 챔피언스리그(ACL) 진출권이라는 큰 선물도 받게 됐다.

이번 시즌 인천에는 김창수, 강민수, 김광석 등 팀의 리더급 선수들이 떠났지만 또 다른 리더가 팀에 합류했다. 그 선수들은 바로 지난 시즌까지 포항스틸러스와 김천상무를 이끌었던 신진호와 문지환이다. 그 중 <스포츠니어스>는 군복무를 마치고 이번 시즌 인천으로 돌아온 문지환을 1차 전지훈련지인 태국 치앙마이에서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전지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전지훈련은 3주 차에 접어들었다. 팀에 적응하기 위해 어려운 점들도 있고 만족하는 부분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더 열심히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행히 몸 상태도 좋고 아픈 곳도 없어서 열심히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어린 선수들이 훈련 후 탁구를 많이 쳐서 ‘인천의 훈련은 힘들지 않은 것 같다’는 외부에서의 장난 섞인 평가가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동의할 수 없다. 팀 훈련이 결코 쉽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탁구 칠 힘이 남아있지 않아서 훈련이 끝나면 방에서 휴식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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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팀 성남에서는 주로 중앙 수비수로 경기에 나서다 미드필드 자리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특별한 비법이 있었나?
남들이 모르는 비결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사실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수비수와 미드필더를 오가며 경기했다. 성남에서는 대부분 수비수로 경기에 나섰지만 남기일 감독님을 만나고 난 후 미드필더 역할로 다시 올라가게 됐다.

3년 만에 미드필더 자리에 나섰지만 어색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느낌이 들어서 만족했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흐르고 상대팀이 나에 대한 분석을 많이 하게 되자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한 적도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설레는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이 교차했던 다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인천에 이적하고 나서는 중앙 수비수로 많이 출전했다. 하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시즌으로 기억한다.
인천이 나를 좋게 평가해 이적할 수 있었고 어린 나이임에도 많은 경기에 나섰다. 처음 이적을 결심할 때 많은 인천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나의 모습 때문에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큰 시기였다. 특히 리그에서 페널티킥을 많이 내주면서 개인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계속된 응원이 너무 감사했지만 당시 나의 플레이에 자신이 없어지면서 조금씩 눈치가 보였다. 그럼에도 인천팬들은 꿋꿋이 나를 믿어줬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 시즌에는 개인적인 문제점을 극복하려고 나도 많은 부분들을 되돌아봤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내가 당시에는 어리고 부족한 부분들이 있어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다잡고 이겨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나?
페널티킥을 몇 차례 허용하며 힘들어 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 경기 이후 발목도 좋지 않아져 한 달 정도 휴식기를 가지면서 혼자 생각을 할 시간이 있었다. 당시에는 머리가 하얘지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생각했다. 그렇게 하나씩 채워나가려고 했다. 

당시에는 내가 먼저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위로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결국 내가 느꼈던 건 나의 외적인 상황을 보고 지인들이 해줄 수 있는 말과 나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나의 판단은 다르다는 점이었다. 결국 선택과 결정은 내가 해야 했고 그 선택은 나의 상황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의견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의 상황을 보다 더 이성적으로 돌아보고 선택한 후 행동으로 옮겼던 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특히 그 당시에 많은 도움을 받은 선수가 있다면. 
내가 인천에 처음 들어왔을 때 개인적으로 친분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없었다. 대학 선배였던 (김)호남이 형에게 먼저 의지했다. 호남이 형은 너무나 편하고 자연스럽게 많은 도움을 나에게 줬다. 아직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송)시우 형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많은 위로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는지 궁금하다.
많은 위로를 받았지만 그 중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말은 “누구나 그 상황이 왔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특정 선수의 잘못이 아니다. 끝까지 기다리겠다”는 이야기였다. 그 당시에는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솔직히 내가 반대의 입장이어도 쉽게 말하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팬들과 지인들이 좋은 이야기를 건넸던 그 때를 잊지 않고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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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이어 군 입대를 했다. 군대에서 배운 점은 어떤 게 있었나?
군대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곳이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만큼 값진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군대에 있으면서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이전에는 내가 잘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군대에서 분대장 훈련병의 역할도 경험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하다 보니 주위 사람들과 같이 이겨내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배웠다. 모두가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같이 헤쳐 나갔던 시기였다.

훈련소에서 분대장 훈련병을 하는 건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 분대장의 삶은 어떻게 시작됐나?
김천상무의 주장이 분대장 훈련병의 역할을 한다. 내가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에는 (정)승현이가 분대장이었다. 그런데 전역을 이유로 팀을 떠나게 되면서 다음 주장으로 내정됐던 내가 자연스럽게 분대장 훈련병이라는 직책을 맡게 됐다.

나는 선수들에게 잔소리도 조금씩 하는 분대장이었다. 대부분의 잔소리는 군인 신분을 잃지 말자는 이야기였다. 경기장뿐만 아니라 경기장 밖에서도 군인이 해야 하는 역할이 분명 있었기에 그 부분을 지키고 싶었다.

김천은 지난 시즌 강등을 피하지 못하며 K리그2로 돌아가게 됐다. 지난 시즌 김천을 이끌던 선수로서 심정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우선 주장으로서 부상과 같은 개인적인 문제로 주장의 자리를 비운 적이 많아 팀과 선수단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플레이오프가 끝나고 일주일 정도는 너무 아쉬웠다. 모든 선수들이 한 시즌을 위해 많은 노력했지만 강등이라는 결과가 나왔기에 더 힘들었다. 다음 시즌에는 김천상무가 힘을 내서 다시 K리그1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안타까운 부분은 김천상무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었다. ‘김천상무는 특혜를 받고 있는 집단이어서 다른 구단들과 비교해 강등을 당해도 된다’는 이야기가 그 중 하나였다. 당연히 김천상무 이외의 구단에서 선수로 뛴 경험도 있었고 다른 구단들은 예산을 들여 시즌을 준비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공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스포츠에서 패배해야 하는 팀이나 경기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김천상무 경기를 보려고 경기장을 찾는 팬들을 위해서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해 경기를 치르는 게 김천상무 선수들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외부의 시선이 다소 차가워 상무선수로서 아쉬웠다.

김태완 전 감독과는 연락을 하고 있나?
김태완 전 감독님에게는 꾸준히 연락을 했다. 지난 김태완 감독님 전역일에도 연락을 했고 새해에도 따로 연락을 보냈다. 현재는 서로 다른 상황에 놓여있지만 나에게는 정말 오래 기억에 남을 감독님이다. 앞으로는 감독님에게 더 좋은 일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전역일을 앞둔 당시 민간인(진)의 심정과 전역 스토리가 궁금하다.
모든 군인이 그러겠지만 나의 말년 시기는 유독 시간이 가지 않았다. 12월 20일이 나의 전역일이었다. 그래서 전역을 앞두고 연말은 사회에서 보내기 위해 휴가를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승강 플레이오프 두 경기를 모두 치르고 휴가를 나갔다. 결과적으로는 휴가를 나갔지만 승강 플레이오프의 결과로 멍한 마음이 들어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전역일도 더 멀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휴가를 모두 쓴 후에는 마침내 전역을 했다. 솔직히 전역을 하면 세상 모두를 얻은 느낌이 들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전역을 하고 난 후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억에 남는 건 더 이상 22시에 취침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과 아침 점호를 위해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게 가장 좋았다. 매우 소박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간절히 바라던 부분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다.

군대를 안 간 팀 내 후배들에게 많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시즌에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팀으로 들어온 선수들이 있다. 그런 선수들을 보면서 나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군대와는 아직 거리가 먼 후배들에게 조언을 건넨다. 나는 어린 선수들에게 “아직은 멀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군대에 가야될 나이가 오면 1년이라도 일찍 가라”는 조언을 건넨다. 아직까지는 이 말을 이해 못하는 선수들도 있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궁금해 하는 후배도 있다. 선택은 후배들이 하겠지만 후회 없는 선택이 됐으면 좋겠다.

예비군 1년 차다. 복무 중인 김천 후임들에게 전해줄 말은 또 어떤 게 있나?
내가 전역을 한 시기는 코로나19가 심한 시기는 아니어서 미복귀 전역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부대로 다시 복귀해야 하니 휴가의 일수가 더 중요해졌다. 나는 다른 병사들에 비해 다소 긴 시간을 휴가로 나올 수 있었다. 휴가의 중요성을 알게 된 건 선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부터다. 선임들은 나에게 “정기휴가는 한계가 있다. 포상휴가를 받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강조했다. 

그래서 나는 부대에서 분기마다 진행하는 독후감 대회를 공략했다. 그리고 두 번의 독후감 상을 받게 됐다. 처음에는 접근하기 쉬운 손흥민 선수의 자서전을 읽어서 독후감을 썼고 그 다음에는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선생님의 자서전을 보고 독후감을 작성했다. 운이 좋게도 두 번이나 수상자로 뽑혀 포상휴가까지 받게 됐는데 이런 다양한 방법들로 차곡차곡 휴가를 모으다보니 다른 병사들에 비해 조금은 더 긴 휴가를 나갈 수 있었다.

사실 나는 글을 쓰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독서는 굉장히 좋아한다. 그게 원고를 쓰는데 큰 도움이 됐고 군대에서의 비교적 여유로운 시간이 더해지자 편하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생각보다 책을 굉장히 많이 읽는 것 같다. 그렇다면 치앙마이에서는 무슨 책을 읽고 있나.
나는 평소에도 자기 계발서나 재테크와 관련한 책들을 주로 읽는다. 최근에는 ‘한 번 더의 힘’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운동 나가기 전 막간을 이용해 읽고 나가거나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책을 읽는다. 나뿐만 아니라 (이)명주 형, (김)도혁이 형 등 다른 형들도 책을 읽는 걸로 알고 있다.

독서에 정답은 없다. 나는 책을 읽고 항상 순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는 걸 많이 느낀다. 이런 매력 때문에 계속 책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지난 시즌 인천은 리그 4위와 더불어 AFC 챔피언스리그(ACL) 진출권까지 얻어냈다. 군복무를 하면서 인천을 바라봤을 때는 어떤 기분을 가지고 있었나.
많은 축구팬들이 생각하기에 인천이라는 팀은 ‘생존왕’이라는 이미지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 같다. 내가 김천에서 지켜봤던 인천은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는 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예측을 넘어선 결과를 지난 시즌 만들어냈다. 나도 인천이 AFC 챔피언스리그(ACL)에 나간다는 게 너무 새롭고 즐겁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지난 시즌 인천이 이룬 성적을 가지고 이번 시즌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시즌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 인천 선수단에게 고마운 마음이 가장 크고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 한다.

또한 외적으로도 클럽하우스가 생겼고 시설도 많이 변했다. 인천의 첫 클럽하우스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도 첫 번째 클럽하우스다. 아직까지는 클럽하우스에서 생활을 해보지 않아서 세부적인 부분을 알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동선이 매우 효율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선수들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앞으로는 선수단이 좋은 성적을 유지해 인천을 더 큰 구단으로 만들어야 하는 숙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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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 인천은 ACL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개인적으로도 남다른 감정이 들 것 같은데.
인천의 첫 번째 ACL이지만 나에게도 첫 번째 경험이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ACL은 울산현대나 전북현대 같이 우승권 경쟁을 하는 팀들이 나가는 대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천도 이번 시즌 도전장을 내밀게 됐다. K리그가 만만하지 않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다. 물론 우리 팀은 플레이오프부터 시작을 해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고 리그에서도 빡빡한 일정이 계속되겠지만 K리그를 대표해서 나가는 대회이기 때문에 자부심과 좋은 압박감을 가지고 준비할 예정이다.

개인적으로 맞붙고 싶은 팀이 있는지 궁금하다. 
카타르 월드컵을 보면서 일본 선수들이 기술적으로 뛰어나다는 걸 보고 느꼈다. 그래서 이번 ACL에서는 꼭 일본 구단들과 한 번 만나보고 경험하고 싶다.

이번 시즌 팀 내에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나.
치앙마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1차 전지훈련은 38명의 인천 선수단이 함께하고 있다. 나는 이 중 38번째 선수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부족하고 더 채우고 증명해야 하는 선수다. 개인적으로는 이 마음가짐을 시즌 끝날 때까지 유지하면서 경기에 나서고 싶다. 연초에 세운 계획을 연말까지 가져가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나는 이번 시즌 목표도 끝까지 놓치지 않으면서 계획도 다 이룰 수 있는 ‘소수’에 도전하고 싶다.

그리고 부상 없이 시즌을 보내고 싶다. 지난 시즌 코와 얼굴뼈가 부러져 안와골절이라는 진단을 받고 큰 수술을 진행했다. 큰 수술 후에는 아무래도 회복기간이 있기 때문에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축구선수로서 이런 부분이 제일 아쉽다. 그래서 이번 시즌은 큰 부상 없이 시즌을 치르고 싶다.

안와골절의 경우 다른 부상도 그렇겠지만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 부상의 정도와 회복 속도가 다르다. 나의 경험을 빗대어 이야기 하자면 처음 부상을 당했을 때는 사람이 두 명으로 보이는 증상 등이 있었다. 그 이후에는 종합병원으로 바로 넘어가 수술 날짜를 빠르게 잡았다. 

일반인들의 경우에는 눈 밑에 인공 보형물을 삽입해 녹는 과정을 기다린다고 전해 들었다. 녹아내리는 시간이 몇 년까지 걸리는 경우도 있어서 그 과정을 기다린 후 수술을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축구선수는 직업 특성상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 많다. 그래서 바로 수술대에 올라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은 잘 마쳤지만 개인적으로는 ‘눈이 빠져나올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도 기침이나 재채기를 유의하라는 의료진의 주의사항이 있었는데 굉장히 불편함을 느꼈다.

그렇다면 민간인으로 돌아온 인간 문지환의 개인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우선 선수 생활을 최대한 길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가정도 만들어서 안정적인 삶도 보내고 싶다.

마지막으로 다시 만나는 인천팬들에게 한 마디를 한다면. 
인천팬들이 항상 그리웠다. 처음 이적을 했을 때 코로나19를 이유로 육성응원이나 많은 팬들을 만나지 못했다. 오히려 김천상무 시절 인천팬들을 제대로 만나게 돼서 한 편으로는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항상 응원을 보내주는 인천팬들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있었다. 앞으로는 많은 팬들이 보내준 응원에 보답하는 시즌을 만들어보고 싶다.

인천 문지환은 또 다른 모습으로 인천팬을 맞이하려 한다. 어려움이 많았던 인천에서의 첫 시즌부터 큰 부상으로 신음했던 지난 시즌까지 문지환은 많은 어려움 속에서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축구선수들의 목표는 공격포인트나 수치와 관련된 목표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인천 문지환은 시즌 목표에 개인적인 신념과 가치관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팀에 대한 생각과 개인적인 마음가짐이 얼마나 깊은지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38번째 선수로 시작해 소수가 되기 위해 끝까지 달리겠다는 그는 어떤 종착지에 다다를지 인천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문지환의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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