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 최철원 “고2때 골키퍼 시작, 노력하면 된다고 느꼈죠”

아직은 어색한 엠블럼을 가리키며 사진을 찍는 최철원.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후아힌=김현회 기자, 정리 김귀혁 기자] 거의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FC서울에 골키퍼 걱정은 사치였다. 김용대가 2010년대 초반을 든든하게 받친 가운데 그 이후는 유상훈으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됐다. 유상훈이 군 복무 문제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는 양한빈이 등장하며 또 다른 안정감을 갖게 됐다. 유상훈의 전역 이후에는 이 둘이 번갈아가며 골문을 지켰다. 지난 시즌 유상훈이 강원으로 이적했음에도 양한빈은 더욱 농익은 기량을 과시했다.

그러나 양한빈이 일본 J리그1 세레소오사카로 적을 옮기며 서울은 새로운 고민에 직면했다. 그리고 그 고민의 해결책은 K리그2에서 ‘최철벽’이라 불렸던 부천FC의 최철원이었다. 긴 팔과 큰 키를 바탕으로 신들린 선방에 도가 튼 선수다. 신체 조건만 보면 ‘모태 골키퍼’라는 칭호와도 잘 어울린다. 하지만 FC서울의 전지 훈련지인 태국 후아힌에서 <스포츠니어스>와 이야기를 나눈 최철원은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전했다. 바로 처음부터 골키퍼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떻게 된 사연일까. 지금부터 그의 이야기에 빠져보자.

다음은 FC서울 최철원과의 일문일답이다.

많은 서울팬들이 기대하고 있는데 한 마디 부탁한다.
나도 많이 기다려진다. 팬분들께서 어떤 응원으로 성원을 보내주실까 부담되면서 설레기도 하다. 동계 훈련 잘 준비해서 경기장 안에서 잘하는 모습으로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태국에서는 며칠 정도 시간을 보냈는지.
지난 8일부터 태국에서 훈련 중이다. 근력 운동도 많이 했고 그 이후에는 운동장에서 하는 훈련 위주로 했다. 운동장에서만 계속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근력 운동과 병행하는 식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 컨디션이 딱 좋지도 않고 안 좋지도 않은 중간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적하고 처음 운동을 하고 있다. 원래부터 친했던 선수들이 있는지.
원래부터 친했던 선수들은 상무에서 같이 뛰었던 선수들 밖에 없다. (정)현철이 형, (박)동진이, (김)주성이 정도밖에 없더라.

그 선수들이 이적 소식 듣고 연락은 따로 안 했나.
내가 상무에서 많이 괴롭혔는지 연락은 딱히 없었다. 팀 합류하고 나서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나 보다.
그렇다기보다 조심스럽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실 내 생각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최철원이 서울에 올 수 있었을까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 세 명 외에 친분 있는 선수가 많지 않아서 적응하는 데 어렵지는 않은가.
적응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적응에도 여러 가지 요소가 있지 않나. 선수들도 편안한 분위기에서 잘 대해주고 대화도 많이 해준다. 그러면서 두루두루 친해진 것 같다.

제일 친해진 선수가 있다면.
그래도 (임)상엽이 형과 처음에 말도 많이 하면서 친해진 것 같다. 둘 다 새로 팀에 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많이 친해진 느낌이다. 또 다른 이적생인 (박)수일이는 원래 알았다.

이적 이야기가 나온 김에 묻겠다. 어떻게 서울로 이적을 결정하게 된 건지 궁금하다.
부천FC와 계약 기간도 남아 있어서 계속 동행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서울에서 양한빈 선수가 나간다고 해서 자리가 났다. 에이전트도 좋은 기회가 왔으니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이야기했다. 그 상황에서 사실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더 실력을 쌓고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K리그1에 가서 도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적을 결심하게 됐다.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이틀에서 사흘정도 고민했다. 그만큼 생각이 많았다.

부천에서 많은 사랑도 받았고 상징적인 선수였지 않은가. 서울에 와서 좋은 점도 있겠지만 부천을 떠난 아쉬움도 있었을 것 같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정말 많이 아쉽다. 본질적으로 나는 부천에서 많은 성장을 했고 구단에서도 많은 기회를 줘서 이렇게 클 수 있었다. 그 바탕으로 내가 이렇게 온 것 아닌가. 정말 감사하다. 사실 뭐라고 이야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팀을 나오면서 부천 코칭스태프나 동료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하다.
깊은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 그때 부천이 동계훈련 기간이었는데 급하게 이적이 이뤄졌다. 내가 복귀 훈련을 하던 도중에 나가게 돼서 너무 미안했다. 선수들에게도 버스 안에서 운동 갈 때 인사를 또 하기는 했는데 혼자 쏙 빠지니까 너무 미안하더라. 그리고 선수들도 조금 혼란스러울 수 있지 않은가. 중요한 동계훈련 기간에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 마음으로 짧게 인사를 건넸다.

아쉬워하는 동료들도 있지 않았나.
직접적으로 ‘형 가지 마’라고 말했던 선수는 없었다. 어쨌든 도전하는 것이니 내 선택을 축하해 줬던 것 같다.

ⓒ프로축구연맹제공

이사 준비도 해야 하지 않은가.
이제 구리에서 운동을 해야 한다. 원래 인천에서 살았었는데 구리 훈련장까지 한 시간 이상 걸리더라. 서울 올림픽대로를 타야 하는데 엄청 막히는 도로 아닌가. 장거리 운전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피곤함도 많이 느낀다. 그래서 훈련장 15분 거리의 집에 자리를 잡고 이사를 마쳤다. 마침 FC서울 휴가 기간이 있어서 그때 급하게 이사를 했다.

그 짧은 기간에 이사를 한 정도였다면 미리 계획을 다 해놓은 거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이사를 한 경험이 워낙 많았다. 그래서 팀의 휴가 기간에 계약을 하고 사흘에서 나흘정도 빠르게 이사를 진행했다.

그 짧은 시간에 집을 알아보면서 이사까지 마친 것 아닌가. 그게 가능한가.
내가 직접 발로 뛰면 가능하다. 사실 서울을 직접 운전하고 다니니 조금 힘들기는 했다.

집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었나.
힘들게 운동하고 집에 들어갔을 때 나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는 집을 기준으로 잡았다. 서너 군데를 둘러봤다. 또 축구에서 이적은 워낙 흔하다 보니 내가 다른 팀으로 갈 수 있는 상황도 생기지 않나. 보증금이 묶여 있다 보니 다른 사람이 들어왔을 때까지 생각해야 하더라. 또 사람이 안 오면 보증금 받기가 어렵다고 들었다. 보통 2년 계약을 하는데 중간에 나가면 세입자를 또 구해야 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한다. 그런 것까지 생각해서 집을 구했다.

원래 있던 인천 집은 어떻게 됐나.
아직 집을 못 뺐다. 지금 부동산 시장이 워낙 안 좋다. 세입자가 없어서 지금 구하고 있는 상태다. 아직 보증금을 돌려받지는 못했는데 계속 상황을 봐야 할 것 같다.

집을 포함해 서울로 오면서 여러 부분이 바뀌었을 것 같다. 어떤 점이 가장 어색한가.
서울 엠블럼을 달고 있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 훈련장에서 선수들과 합을 맞춰보는데도 많이 어색하더라. 경기장 안에서 선수들과 같이 뛰어보고 호흡을 맞췄을 때 적응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골키퍼라 수비수들과의 호흡도 중요할 것 같다. 지금은 서로의 스타일을 파악하는 과정인가.
그렇다. 오늘 훈련할 때도 감독님께서 수비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나도 수비수들에게 이야기해주는 등 그런 과정을 파악하고 있다. 수비수들과도 계속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 중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2021년에 상무 전역을 하고 기량이 눈에 띄게 성장한 것 같다.
나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사실 상무에서 경기를 많이 뛰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름값 있는 선수들과 같이 지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실력이 성장했던 것 같다.

전역 후 부천 유니폼을 입고 나선 첫 경기가 기억에 남는다. 두 명이 퇴장당했음에도 무실점 활약을 펼쳤지 않았는가.
그때가 7월에 열린 부산과의 홈경기였다. 나도 당시에 부담이 있었고 감독님이나 코치진도 전역하고 오니 다 바뀐 상태였다. 나에 대한 평가가 많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날이 나를 증명하는 자리였는데 마침 좋은 모습을 보여드렸다.

그 외에 부천 유니폼을 입고 펼친 ‘인생 경기’가 있나 궁금하다.
아까 말한 부산과의 경기도 마찬가지고 내가 2018년도에 해당 라운드 전체 MVP를 받았을 때도 기억이 난다. 골키퍼가 MVP를 받기가 정말 쉽지 않다. 그런데 그 경기에서 유효슈팅 열 개를 막고 MVP에 뽑혔다. 생각해 보니 마침 그날 상대도 부산이었다.

한 경기에서 유효슈팅 열 개를 어떻게 막나.
골대 방향으로 열 개가 다 들어온 것도 아니었고 가운데로 향한 슈팅도 많았다. 내가 잘 막을 수 있도록 공이 와서 열 개를 막을 수 있었다.

너무 겸손한 것 아닌가. 신들린 선방을 할 때마다 어떤 기분이 드는가.
‘이 맛에 골키퍼를 한다’라고 느낀다. 사실 나는 필드 플레이어 출신이다. 그런데 운동장에서 슈팅하는 건 너무 재미가 없더라. 그러다가 포지션을 전향했는데 골키퍼는 확실히 막는 재미가 있다. 구석으로 가는 슈팅을 막다 보니 골키퍼가 재밌다. 가끔 슈팅을 막고 나서도 ‘어떻게 막았지’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을 때도 있다.

ⓒ프로축구연맹제공

필드 선수로는 언제까지 뛰었나.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필드 선수였다. 골키퍼와 병행해서 한 것도 아니고 그냥 공격수 출신이었다. 키가 그때도 큰 편이어서 전방에서 헤더 싸움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포지션을 변경한 계기는 무엇이었는가.
예전 일이라서 가물가물하기는 하다. 내 기억에 팀에 골키퍼가 한 명 있었는데 다쳤거나 다른 곳으로 갔을 것이다. 그래서 골키퍼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나는 다쳐서 쉬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감독님이 골키퍼를 해보라고 간접적으로 말씀하시더라. 어렸을 때부터 필드 선수를 하다가 반데사르 같은 선수들이 골키퍼로 전향한 적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권유해 주셨다. 필드 선수였지만 감독님이 나를 잘 아시지 않나. 그만큼 경쟁력도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결국 골키퍼로 뛰기 시작했다.

냉정하게 평가해 보면 공격수로서 재능이 크게 없었다고 봐도 되는가.
나는 기복이 조금 심했다. 체력 면에서도 부족했다. 잘하는 편이기는 했는데 기복도 심하고 체력도 많이 없었다. 그래도 나름 잘 한 편이었다.

그러면 대회 나가서 득점왕도 했었을 법하다.
물론 그 정도는 아니었다. 보통의 유망주 같은 느낌이다.

지금까지 공격수를 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지금까지 축구선수를 못 했을 것 같다. 워낙 체력적으로 부족해서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지금까지 공격수였다면 키도 크다 보니 후반 막판에 분위기를 전환하는 역할을 했을 것 같다.
아마 헤더 연습을 따로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변화가 생겨서 수비수를 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래도 발 기술은 다른 골키퍼들보다는 더 강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생각하기 나름이지 않을까. 포지션을 전향하고 직후에는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골키퍼로서의 능력이 약하다 보니 발 기술에 대한 연습은 아예 놨다. 모든 신경을 골키퍼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물론 공격수로서 감각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때에 비해서는 떨어져 있다.

골키퍼는 공이 왔을 때 발보다 손이 먼저 나가야 하지 않나. 그 습관 고치는 데 많은 노력을 했을 것 같다.
정말 엄청 노력했다. 남들보다 많이 뒤떨어져 있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하니까 꽤 잘했다. 공격수가 어디로 슈팅을 때릴지 미리 가면 그 방향으로 와서 다 막았다. 그러다가 골키퍼 관련 기술을 배우니까 정말 못해졌다. 속된 말로 아예 ‘초짜’였다. 매번 다리 사이로 실점하고 다이빙도 못 하겠더라. 대학교에서는 축구를 그만하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때 이 악물고 엄청 노력했다. 골키퍼들이 어떤 운동을 어떻게 하는지 ‘유튜브’ 해외 영상에 잘 나와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줄넘기도 많이 하고 스텝 연습도 했다. 남들 놀러 갈 때 혼자서 운동하기도 하는 등 그런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있었다.

그러면 어느 시기에 골키퍼로서 기량이 늘었나.
대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한다. 같이 들어온 동기가 있었는데 나보다 한 살이 많았다. 그런데 광주대학교는 U리그와 K3리그로 나눠진다. 나는 한 살 미루고 K3리그 영광FC로 갔다. 그 동기가 나보다 잘해서 U리그로 갔고 나는 K3리그로 간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계속 뛰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실력이 엄청 늘었다. 경기도 계속 뛰면서 노력하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 그러면서 ‘노력하면 되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계속 노력했다. 이제야 되는 게 눈에 보이니까 그럴 수 있었다. 그 이후에 아까 말한 동기 형은 프로로 가고 내가 U리그로 올라가면서 그 노력을 이어갔다.

그 동기도 지금 프로에 있는가.
아니다. 그만두고 K3리그인가 K4리그로 갔을 것이다. 아마 내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을 것이다.

ⓒ프로축구연맹제공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포지션을 전향한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성장한 거 보면 많은 노력과 함께 유전자의 영향이 큰 것 아닌가 싶다.
아마 그렇지 않을까. 어머니가 고등학교 때까지 배구 선수였다. 그리고 여동생도 작년까지 프로배구 흥국생명에 있었는데 지금은 수원시청에서 활약하고 있다.

당신이 배구를 했어도 잘했을 것 같다.
그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키도 큰데 그 큰 키에 비해 점프력도 있는 편이다.

장난 삼아 배구를 해본 적은 없는가.
옛날에는 조금 해봤다. 지금 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세가 비슷하더라. 손 모양만 잘 만들면 곧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GS스포츠단 안에 FC서울과 함께 GS칼텍스 여자 배구단도 있지 않은가. 나중에 콘텐츠를 같이 해봐도 재밌을 것 같다.
오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배구 선수라서 평소에도 배구를 많이 볼 것 같다.
많이 봤다. 어머님이 항상 여동생 응원한다고 계속 TV를 틀어 놓으신다. 어머니가 여동생에게 조언도 많이 해주셨다.

본인에게도 조언을 해줬는가.
기억이 안 난다. 아마 해주시지 않았을까. 내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운동 선배로서 해주셨을 것이다.

키가 크니 농구도 잘했을 법한 생각도 든다.
농구는 전혀 아니다. 나는 운동 신경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축구만 잘했다. 워낙 체력이 안 좋아서 농구는 생각도 안 해봤다.

그래도 골키퍼는 할 만한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골키퍼가 더 나은 것 같다.

사실 K리그2 골키퍼 양대 산맥으로 본인과 함께 정민기가 언급되기도 했다. 둘 사이에 라이벌 관계는 없나.
그런 건 전혀 없다. 사실 친분도 그렇게 깊은 편은 아니다. 그런데 (정)민기가 먼저 연락을 하기는 했다. 지난 해 내가 부천과 재계약을 햇을 때 ‘재계약해서 축하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도 고맙다고 말하면서 나중에 경기장에서 보자고 했다. 아마 라이벌 관계에 대해서는 서로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각자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앞으로 K리그1에서는 어떤 팀과의 경기가 기대되는지도 궁금하다.
FC서울 하면 여러 라이벌 경기가 있지 않나. 자세히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수원삼성과의 관계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걸 ‘슈퍼매치’라고 한다.
아 그렇다. ‘슈퍼매치’에서 제일 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경기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키겠다.

‘슈퍼매치’는 K리그1 최고 라이벌전이라 불린다. 그 경기를 뛰지 못했던 선수로서 기대감이 클 것 같다.
그렇다. 기대감도 크고 어느 자리든 부담이 될 것이다. 그만큼 더 잘해야 한다. 동계 훈련 때부터 잘 준비해서 팬분들 기대에 부응하는 좋은 활약을 보여드리겠다. 자신감을 앞세워 좋은 경기를 펼치겠다.

서울에서 세레소오사카로 이적한 양한빈 골키퍼가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부담감도 있을 법하다.
부담감은 어디에 가든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부천에서 데뷔했을 때 부담감이 엄청 많았다. 그 자리에 내가 있으니 다른 골키퍼를 영입해야 하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경험을 쌓다 보니 그 자리가 내 것으로 채워지게 되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도 받게 됐다. 요즘 말처럼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를 앞세워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연구하다 보면 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서울 팬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한다.
내가 서울로 오면서 팬분들이 많은 기대를 하실 것 같다. 반신반의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 또한 내가 경기장 안에서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계훈련 때부터 착실하게 잘 준비하겠다. 서울이라는 엠블럼을 달았으니 좀 더 자긍심과 자부심을 갖고 자신감 있는 플레이를 팬분들께 보여드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노력하겠다. 많은 응원과 박수를 쳐주시면 자신감도 많이 얻을 테니 부탁드린다. 경기장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감사하다.

태국 후아힌에서 훈련에 매진 중인 최철원의 모습. ⓒ프로축구연맹제공

습관이란 무서운 법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한 번 몸에 익숙해진 것들은 바꾸기 쉽지 않다. 그래서 최철원은 대단했다. 공격수에서 골키퍼로 전향하기 시작한 것이 성인에 가까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예전 흔적을 지우는 데 고된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최철원이 이제 또 다른 도전을 앞두고 있다. 이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는 위치에 놓여 있다. 여전히 가슴 위 엠블럼이 어색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포지션을 바꾼 최철원을 생각하면 이번 도전도 흥미롭다. 최철원은 새로운 질주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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