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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후아힌=인터뷰 조성룡 기자, 정리 안민석 객원기자] 조규성을 이을 월드컵 스타가 또 FC안양에서 나올 수 있을까?

지난 시즌 K리그2에서는 교체 횟수가 K리그1과 동일하게 3회 5인 교체로 늘어났다. U-22 선수가 선발로 1명 교체로 1명 이상 출전하면 교체 카드가 5명까지 활용이 가능하고 그 이외의 상황에서는 교체 횟수가 제한되는 등의 제도였다. 교체 카드가 5장으로 늘어나면서 모든 구단들에게 U-22 카드는 매우 중요해졌다. 즉시 전력감을 가지고 있는 팀들은 교체뿐만 아니라 전술의 활용도 보다 더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U-22 자원이 풍부하지 못한 팀들은 U-22 선수를 선발로 투입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교체로 내보내는 등의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지난 시즌 FC안양도 U-22 선수에 대한 걱정이 없던 팀이었다. 지난 시즌 FC안양에서는 박재용과 박종현 등의 신인들이 데뷔해 정규리그 3위, 창단 첫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 등 많은 성과를 이뤄냈다. 특히 신인 박재용은 지난 시즌 정규리그 19경기에 출전해 2득점을 기록하며 프로에 데뷔했다. 화려한 기록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박재용의 알짜배기 활약이 팀을 위기의 상황에서 구한 경우도 있었다. 지난 시즌 43라운드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놓고 싸우던 부천FC1995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만든 장면이 대표적이었다. <스포츠니어스>는 이번 시즌 U-22에서 벗어나 또다른 경쟁을 펼칠 FC안양 박재용을 태국 후아힌에서 직접 만났다.

만나서 반갑다. 전지훈련지 후아힌에 온 지는 얼마나 됐나.
후아힌에는 지난 3일에 들어왔으니 이제 열흘 정도가 지났다.  

프로에 오고나서 첫 번째 해외 전지훈련인가.
그렇다. 사실 인천대학교 시절 태국 방콕으로 전지훈련을 간 적은 있어서 태국은 두 번째 방문이다. 그렇지만 프로에 데뷔하고 나서는 첫 번째 해외 전지훈련이 맞다.

대학에서 전지훈련을 왔을 때와 프로가 돼서 왔을 때는 기분이 다를 것 같다.
대학 때는 신입생 시절에 와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대학교 때가 훨씬 더 엄격했다. 간단한 예로는 대학교 때는 호텔 밖을 나갈 수가 없었고 편의점도 눈치를 보고 갔었다. 하지만 지금은 커피숍, 편의점과 같은 편의시설은 마음껏 갈 수 있다. 또한 일정이 없고 쉬는 일요일에는 하고 싶은 일들도 하면서 보낼 수 있다.

전지훈련의 강도는 지난 시즌과 비교해 어떤가.
개인적으로는 많이 힘들다. 특히 지난 시즌 전지훈련보다 이번 전지훈련이 더 힘든 것 같다. 이번 시즌은 몸을 끌어올리고 체력을 키우는 훈련이 많다. 강도가 낮은 것 같으면서도 날씨가 더워서 더 피곤한 느낌이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인 선수들도 같이 훈련을 하고 있나.
세 명의 신인 선수가 들어왔다. 외부에서 봤을 때는 후배 선수가 들어와서 더 좋을 것 같지만 나도 아직 후배 입장이어서 여전히 눈치를 많이 본다.

음식은 어떤가. 입맛에 맞는 편인가.
나는 전형적인 한식파다. 태국 음식은 향이 센 음식들이 많아서 입맛에는 조금 맞지 않았다. 얼마 전 (백)동규 형과 시장에 있는 현지 식당을 갔다. 향신료의 향이 너무 강해서 거의 먹지 못했다. 서로 사이좋게 한 입씩 먹었다. 그래서 다음 외출 때는 동규 형과 한식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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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2년 차가 됐다. 달라진 점이 있나.
지난 동계훈련과는 확실히 다르다. 지난 시즌은 잘하고 잘 보이자는 압박감이 컸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형들과도 어색한 부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형들과도 많이 친해지며 마음의 여유도 조금은 생겼다. 

지난 시즌을 생각해보면 다가가기 어려웠던 선배는 누가 있었나.
그 때는 동규 형도 다가가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수원삼성으로 이적을 한 (김)경중이 형도 무섭지는 않았지만 조금 힘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을 해보면 지난 시즌에는 결혼을 한 30대 형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윤)준성이 형도 지금은 룸메이트지만 지난 동계훈련 때는 말을 거의 안 했던 사이다.

2년 차가 된 뒤 소위 말하는 ‘프로 짬’을 먹었다는 게 느껴지나.
그렇지는 않다. 아직은 어리고 부족한 부분이 많다.

지난 시즌 프로에 와서 가장 많이 배웠던 점은 무엇인가.
우선 정말 많은 발전이 있었던 해였다. 더 잘할 수도 있었지만 더 큰 발전을 하지 못해 아쉬움도 공존하는 한 해였다. 지난 시즌 출전 기회가 적었던 부분이 아쉬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감독, 코치진에게 많은 걸 배웠다. 공격수가 갖춰야 할 사소한 습관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부분들까지도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옆에 있는 선수들에게 배운 건 몸 관리에 관한 부분이었다. 지금까지도 몸 관리하는 방법을 옆에 있는 형들을 보고 많이 배운다.

그렇다면 누구를 가장 보고 배웠나.
(이)창용이 형이 몸 관리를 열심히 하는 형이다. 매번 먼저 경기장에 나와서 몸을 풀고 동규 형도 먹는 것부터 관리를 하는 걸 봤다. 프로 생활을 오래한 이유가 다 있었다.

이창용의 입담도 보고 배울 마음이 있나.
나는 원래 창용이 형이 그런 형인줄 몰랐다. 그런데 지난 <스포츠니어스>와의 인터뷰를 보니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꼈다. 라이브 인터뷰도 잘하고 말하는 걸 보고 입담이 굉장한 형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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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유스 안양공고 출신이라 안양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감사한 일이다. 안양공고 시절에는 많은 경기를 이기지 못했다. 같은 안양공고 출신인 (박)종현이와 “아 진짜 우리 어쩌냐”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나눴다. 서로 신세한탄도 많이 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게 돼서 너무 감사하다. 

조규성이 월드컵에서 대박을 터트렸다. 후배로서 느낀 점이 있다면.
첫 번째는 (조)규성이 형을 보고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고 나도 더 노력하면 저 자리에서 뛸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가졌다. 동기부여가 많이 됐던 것 같다. 사실 카타르로 출국하기 전날 규성이 형을 동편마을 카페에서 봤다. 나는 밥을 먹고 카페로 이동하는 길이었는데 규성이 형과 닮은 사람을 봤다. 처음에는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는데 그 카페로 들어가서 보니 규성이 형이 맞더라. 그래서 카타르를 가기 전날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그 카페에 있던 동네 형이 월드컵을 다녀온 뒤로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됐고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정말 동편마을 카페에서 편하게 있던 형이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동편마을 카페에서 본 조규성은 정말 동네 형의 느낌이었나보다.
그 카페에서는 팬들의 시선도 많지 않아서 정말 편하게 인사를 건네고 안부도 전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월드컵을 다녀온 후 안양시청에 온 규성이 형의 모습을 보니 정말 무슨 월드스타가 다 돼서 왔더라. 월드스타의 느낌이 너무 많이 나서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고 안양시청에서는 이야기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그 정도로 동편마을의 규성이 형과 안양시청에서의 규성이 형은 다른 사람이었다. 그 뒤로 나도 노력해서 저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대한민국과 가나와의 월드컵 조별예선 2차전은 어떻게 봤나.
조별예선 모든 경기를 라이브로 지켜봤다.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머리를 만지는 그 순간도 지켜봤고 가나와의 조별예선 2차전에서 규성이 형이 득점을 만들었을 때도 지켜봤다. 규성이 형이 득점을 기록할 땐 내 몸에도 전율이 돋았다. 규성이 형이 첫 번째 골을 넣었을 때는 몸에 소름이 돋았고 두 번째 골을 넣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 정도로 너무 재밌게 경기를 지켜봤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월드컵을 보고 느낀 교훈이 있다면.
우선 월드컵에서 좋은 경기력을 펼친 모든 선수단에게 감사하다. 나는 여태까지 월드컵을 재밌게 본 기억이 없다. 조별예선에서 탈락했던 기억만 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는 내가 열 살이었다. 열 살이 16강의 성적을 보고 뭘 느꼈겠나.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서는 선수로서 또 다른 희망을 봤고 동기부여가 됐다.

그래서 ‘다음 월드컵은 내 거다’라는 당찬 목표를 가졌다. 나뿐만 아니라 나와 축구를 함께 시작했던 모든 선수들이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차근차근 성장해서 국가대표에 진출하고 싶다. 당장은 멀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계속해서 노력하면 기회는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조규성의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아직 갈 길이 많다. 규성이 형처럼 되고 증명하고 나서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개인적으로 규성이 형을 많이 따라하고 싶다. 큰 것부터 소소한 것까지 다 신경을 쓰고 있다. 우스갯소리지만 축구화도 원래는 아디다스를 신는데 요즘에는 나이키를 신고 있고 머리도 규성이 형처럼 많이 기르고 있다. 

월드컵 후에 팔로워가 600명이 늘었다. 규성이 형이 골을 넣고 급격하게 올라갔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내 계정이 해킹을 당한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규성이 형이 팔로우 하거나 맞팔을 한 사람은 그렇게 늘었다고 들었다. 안양공고를 나와서 이렇게 규성이 형의 덕을 또 봤다.

조규성은 축구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공무원이 됐을 거라고 이야기하더라. 무슨 이야기인지 자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나.
안양공고는 대학교를 갈 수는 있지만 대학교로 진학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실업계로 빠지거나 공무원을 준비하는 친구들의 비율도 꽤 높다. 공무원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다른 실습을 하지 않고 오로지 공무원 시험만 준비한다. 나는 전자기계공학과여서 규성이 형처럼 공무원 준비를 해보지는 않았다. 주로 '납땜'을 많이 했다. 내가 당시 생각보다 납땜을 잘하는 편이었다.

나도 규성이 형과 비슷한 고민을 했다. 대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아버지의 회사에 들어가 엘리베이터와 관련된 업무를 배우려고 했다. 그래서 납땜 자격증도 땄고 웨이트 트레이닝하고 남는 시간에 납땜 공부도 열심히 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정말 납땜을 잘했다. 고등학교 때 납땜 시험을 본 적이 있는데 내가 그 시험장에서 두 번째로 일찍 끝내서 시험에 통과한 일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납땜을 생각하면 초등학교 때 배우는 납땜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 정도의 납땜은 조금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다. 

납땜을 잘하는 기준은 회로도를 보고 회로를 연결시키는 것도 포함된다. 그래서 회로도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와 회로를 보고 판단할 줄 아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 그리고 시작을 잘못 시작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게 또 납땜이어서 정확도와 꼼꼼함 신속성 모두가 중요한 작업이다.

납땜에 굉장히 열정적이다. 먼 이야기지만 은퇴하면 다시 납땜을 시작할 마음이 있나.
고등학교 시절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지금도 벌써 많이 까먹었다. 지금 회로도를 보면 이전만큼 잘할 자신이 없다. 그리고 납땜도 나름의 고충들이 존재한다. 손도 많이 데이고 눈에 연기도 들어가는 고된 작업들도 많아서 다시 시작하기 전에는 깊은 생각을 해봐야겠다.

어떻게 보면 납땜을 이렇게 까지 열심히 했던 이유는 축구선수로서의 미래가 조금은 불투명했다는 뜻이었을까?
그렇다. 이렇게까지 납땜을 준비했던 이유는 축구선수로서의 성공을 장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금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대학교 진학에도 분명 어려움이 있었다. 만약에 대학에 붙지 못했다면 나는 바로 납땜을 시작하려 했었다. 나의 장점 중 하나가 끈기가 있고 성실성이 있다는 점인데 이런 부분에서도 나의 끈기가 드러났던 것 같다.

결국 당신은 인천대학교에 합격해 지금 프로 선수 생활까지 하고 있다.
내가 인천대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당시 합격에 대한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아서 합격자 발표가 난 이후에도 결과를 찾아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가족들에게 메시지가 스무 건 가까이 와 있더라. 그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인천대학교에 합격했다는 가족들의 연락이 와있었다. 생각하지도 못한 결과여서 기분이 좋았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프로에 처음 입단할 때만큼 기쁜 순간이었다.

대학을 진학하지 못하면 프로에 들어갈 길이 줄어들고 안양에 갈 수 있는 방법이 더 좁아지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 축구선수의 꿈을 이어갈 수 있었다. 나는 여태까지 축구를 하면서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만약 축구에 길이 보이지 않게 됐을 때 다시 돌아갈 곳이 생겼다는 것도 안심이 됐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대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정말 많이 울기도 하고 마음고생이 심했다. 프로에 올 때도 힘들었지만 대학교에 들어가는 과정도 굉장히 힘든 기억으로 남아있다. 

대학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1학년 때는 경기에 많이 뛰지 못해서 힘들었다. 그리고 그 때는 득점을 1년 넘게 기록하지 못해 굉장히 힘든 시기였다. 주위에서도 “지금이라도 수비수로 전향을 하는 게 어떠냐”는 권유도 많이 받아서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그렇게 3학년 초반까지 힘든 시기가 계속됐다. 그러다 갑자기 득점이 터지기 시작했는데 그 시즌에는 리그에서 20골을 넣었다. 1학년 때 못 넣었던 한을 그 때 푼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그 시즌에는 득점 순위 2위를 기록했고 팀도 좋은 순위에 오르며 선전했다. 정말 인생은 끝까지 해봐야 아는 것 같다.

당시 U리그 득점 1위가 이번에 부천에 입단한 박호민이고 당신이 2위였다.
박호민 선수를 기억하고 있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득점을 잘 만드는 선수여서 기억에 남는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내가 경기에서 많이 이겼던 것 같다. 그리고 FC안양 김연건 코치가 박호민 선수를 지도한 적이 있다고 알고 있다. 이제는 내가 김연건 코치의 가르침을 받고 있다. 이제 부천과의 맞대결에서 서로를 상대하게 된다면 ‘진짜 제자’는 누가 될지 가리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것 같다.

많이 힘들었던 것도 있지만 참 많이 울었던 것 같다. 평소에 눈물이 많은 편인가.
눈물이 원래 많은 편이다. 게다가 대학 시절은 다른 친구들과 비교가 돼 더 불안하고 힘들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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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에 와서 운 적은 없었나.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이 끝나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많이 울었다. 울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현장에 있었던 많은 안양팬들의 표정을 보고 눈물이 났고 개인적인 활약에 화가 나기도 해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고 큰 교훈이 된 경기였다.

사실 나는 수원삼성의 유스인 매탄중 출신이다. 하지만 매탄고에 진학하지 못했다. 선택받지 못한 아픔이 있어서 그 경기장에서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고 앞으로도 수원과 맞붙었던 10월 29일은 내 축구 인생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는 더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겨 아팠던 날들도 웃으며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 시즌 안양은 당연히 승격인가?
이번 시즌 우리 팀에는 많은 선수들의 이탈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구단에 새롭게 들어온 좋은 선수들도 있다. 나는 우리 팀의 선수단이 K리그2 팀들 중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 팀의 목표는 우승이다. 나도 팀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선수 박재용의 꿈과 목표는 무엇일까?
우선 이번 시즌에는 골문 앞에 가면 조금 더 침착하고 위협적인 선수로 성장하고 싶다. 많은 경기에 나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목표는 공격 포인트 10개다. 그래서 관련한 훈련도 최근 많이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선수로서 가지고 있는 큰 꿈은 앞으로 K리그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는 것이다. K리그에서는 많은 외국인 선수가 최전방 공격수 자리에서 뛴다. 나는 나만의 경쟁력을 갖춰서 국내 공격수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특색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박재용의 인생 스토리에서 포기는 없었다. 대학을 입학하기 전 다른 차선책을 준비해야 할 때도 박재용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고 대학을 입학하고 1년 동안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을 때도 굴하지 않았다. 프로에 와서도 이런 끈기가 박재용을 더 빛나게 하고 있다. 최근 많은 화려함에 감춰졌지만 조규성도 과거부터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선수였다. 박재용은 사실 조규성의 피지컬이나 플레이스타일보다도 먼저 닮았던 건 조규성의 성실성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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