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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태국 치앙마이=김현회 기자] 태국 2부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임창균이 근황과 함께 인사를 전했다.

15일 태국 치앙마이 시립 경기장에서 열린 M-150 챔피언십(태국 2부리그) 치앙마이FC와 우타이 타이니의 경기에서 양 팀은 한 골씩 주고받으며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날 김보용은 선제골을 넣은 이후 페널티킥을 실축했지만 90분 풀타임을 소화하며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이뿐 아니었다. K리그 팬들이라면 다들 기억하는 임창균은 치앙마이FC 유니폼을 입고 이날 추가 시간에 투입돼 5분간 뛰었다.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임창균은 머나먼 태국 2부리그에서 추가시간에 투입되면서도 축구에 대한 애정을 이어나갔다.

1990년생인 임창균은 2013년 부천FC의 프로 입성과 함께 부천 유나핌을 입고 K리그에 데뷔했다. 2013년 32경기에 나서 5골 7도움하며 맹활약한 임창균은 이듬해 경남FC로 이적했다. K리그 챌린지 출범 이후 최초로 K리그 챌린지를 거쳐 K리그 클래식으로 이적한 사례였다. 이후 임창균은 세 시즌 동안 경남에서 58경기에 출장해 4골 12도움을 기록한 뒤 2016년 수원FC로 이적했다. 수원FC에서 두 시즌을 보내고 아산무궁화에 입단한 임창균은 2019년 수원FC에 복귀해 11경기에 나서 두 개의 도움을 뽑아냈다.

임창균은 2020년 K리그2 전남드래곤즈 유니폼을 입은 임창균은 4도움을 기록하며 준수한 호활약을 펼쳤지만 이후 K리그에서 자취를 감췄다. K리그에서 10년 가까이 사랑받았던 임창균은 그렇게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축구에 대한 열정이 넘친다. 2021년 홀로 태국으로 날아와 도전에 임했고 태국 2부리그 우돈타니FC를 거쳐 2022 시즌부터는 치앙마이FC에서 활약 중이다. 지난 시즌에는 치앙마이FC의 모든 경기 중 경고누적으로 결장한 두 경기를 뺀 전경기에 출장하며 펄펄 날았다. 임창균을 향한 치앙마이FC 팬들의 지지는 강력하다. “림”이라며 임창균을 연호하는 팬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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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경기 종료 후 임창균은 밝은 표정으로 태국 치앙마이에서 <스포츠니어스>를 만났다. 비록 5분이라는 짧은 시간밖에 뛰지 못했지만 한국에서 온 취재진을 반겼다. 경기 후 라커에서 긴 미팅을 가진 뒤 선수단은 곧바로 해산했고 임창균과 김보용이 함께 경기장 밖으로 나와 <스포츠니어스>와 만나자 이를 알아본 치앙마이FC 팬들은 임창균과 김보용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하기도 했다. 임창균은 “한국에서 오셨는데 식사라도 대접하겠다”고 웃었다. 식사 자리에서 간단히 맥주가 한 잔씩 오갔지만 임창균은 “근육 부상 회복을 위해 나는 음료수만 마시겠다”며 맥주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 한국나이로 34세인 임창균은 여전히 철저하게 몸 관리 중이었다.

임창균은 2021년 5월 태국으로 날아왔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 비자를 받아야 태국에 입국할 수 있는 상황에서 홀로 비자 발급 절차까지 밟은 뒤 태국에 도착했다. 임창균은 “그때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이곳에 왔다”면서 “어떤 팀이라도 입단 테스트를 요구한다면 받아들일 마음이었다.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내가 K리그에서 이룬 게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여기에서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식상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정말 신인의 마음으로 왔다. 한국에서는 더 이상 팀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적시장도 끝났고 여기에서 한국에 더 미련을 두다보면 붕 뜰 수 있었다. 그래서 어려운 결심을 하게됐다”고 말했다.

임창균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아내와 상의한 뒤 홀로 태국으로 날아왔다. 임창균은 “비자를 신청하고 내 돈을 들여 태국에 방을 구한 뒤 팀을 알아보기 시작했다”면서 “방콕으로 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팀이 정해진 것도 아니었다. 몇몇 구단과 대화는 하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그냥 관심 수준이었다. 그래서 나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태국에 왔다. 한국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다가는 내 축구 인생이 원하지 않을 때 멈춰버릴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렇게 가족을 한국에 남겨두고 태국에서 혼자 9개월을 살았다. 내가 2021년 5월에 태국에 온 뒤 코로나19 때문에 입국이 막혀 아내는 그 다음 해 2월에 들어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임창균은 모든 걸 내려놓고 태국에서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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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임창균의 진심을 알아본 이들이 도움을 주기도 했다. 임창균은 “한국 선수들과 한국 에이전트 분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면서 “방콕에 있을 때 태국 무대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들이 모여 훈련을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각자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외국인 선수들이 비시즌 동안 모여서 풋살도 하면서 컨디션 관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태국 4부리그나 태국 3부리그를 찾아가서 연습경기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때 과거 부천FC에서 뛰었던 (정)현민이 형과 유튜브 채널 ‘제이풋볼 JFootballTV’를 운영 중인 (이)정진이가 많은 도움을 줬다. 그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태국에 ‘한국에서 괜찮은 선수가 왔다’는 말이 퍼지기 시작했다. 태국에서 훈련을 하다 만난 이들 중에 여기에서 오래 뛰다가 은퇴한 선수들이 내 프로필을 여러 구단에 넣어주셨다”고 전했다.

임창균은 K리그에서 174경기에 나서 15골 28도움을 기록하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현실적인 거취를 고민해야 했고 이 순간 태국행을 결정했다. K리그보다 한 단계 아래인 동남아시아로 떠난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임창균은 “내가 엄청 좋은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러 K리그 팀에서 꾸준하게 경기에 나섰었다”면서 “그런데 하루아침에 팀이 없어질 수가 있나 싶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이적시장이 다 끝났다”면서 “‘뛸 수만 있다면 어디든 가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태국에서 첫 번째 팀은 엄청 환경이 열악했다. 처음 훈련을 하러 갔는데 잔디는 과장을 조금 보태면 무릎까지 왔다. 관리가 전혀 안 돼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당시 그 팀에서는 선수들 유니폼도 갖춰지지 않아 어떤 선수는 바르셀로나 트레이닝복을 입고 운동하고 어떤 선수는 아스널 유니폼을 입은 선수도 있었다”면서 “첫날 운동이 딱 끝나고 해가 지는데 ‘내가 여기에서 뭐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 외로웠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었고 다짐했던 걸 다시 떠올렸다. 신인 같은 마음으로 버티고 버텼다. 그러면서 조금씩 인정받았고 더 좋은 팀의 제안을 받았다. 한국에서였다면 그냥 ‘안 한다’고 하고 돌아갔을 거다. 물론 금전적인 고민이 없을 수는 없지만 사실 아내에게 태국행을 놓고 고민할 때 아내는 ‘당장 큰 돈이 필요하지는 않으니 돈 생각하지 말고 도전해 보라’고 하더라”라며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임창균은 “당장 한시가 급하면 어디 가서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벌어야하지만 일단은 반반이었다”면서 “나도 나가던 고정 비용이 있는데 갑자기 수입이 멈췄다. K3리그에서 제안이 왔었는데 고민을 했다. K3리그가 수준이 많이 높아지긴 했지만 어쨌든 프로리그는 아니다. 프로 선수로서 좀 더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었는데 나이가 있으니 나 스스로가 잘 알았다. 한 번 K3리그로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당장 돈은 필요없으니 도전해 보라’고 응원해줬다”고 덧붙였다. 임창균은 K리그 시절에 받던 연봉에 비하면 적은 돈이지만 태국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아직 태국 생활이 채 2년이 되지 않았지만 벌써 일상 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태국어를 구사한다. 임창균은 우돈타니FC를 거쳐 올 시즌을 앞두고 치앙마이FC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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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균은 적지 않은 나이에 처음으로 외국인 선수 신분이 됐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용병’으로서의 도전을 처음 시작한 것이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그는 “나만 신경쓰면 되는 게 너무 좋다”면서 “나만 잘하면 되고 훈련장 외에는 나와 가족만 생각하면 된다. 여기는 문화도 다르고 어차피 나에 대해 이야기해도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한다. 신경쓸 게 없다. 내가 운동장에서 보여주면 모두가 나를 대우해 준다. 외국인 선수가 돼 보니 내가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문화가 당연히 있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보여주면 된다. 한국에서는 ‘감독님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저 형들과 후배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같은 관계의 문제가 나는 조금 어려웠다. 그런데 여기에선 ‘안녕?’이라고 인사하고 운동만 잘하고 집에 가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에서 아내와 둘이 지내다보니 가족애도 더 생겼다”면서 “우리 팀에 한국인 선수인 (김)보용이와 같이 있는데 보용이는 아직 총각이다. 같이 카페에 가면 여기 사람들이 쓱 지나갔다가 보용이가 워낙 잘 생겨서 다시 뒤를 돌아볼 정도다. 보용이는 여기에서 동성애자한테도 대시를 받고 목욕탕에서 접근하는 사람도 있어 피곤할 거다. 보용이는 팀 동료들과 함께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운동 외의 시간에는 아내와 둘이 보낸다. 훈련이 끝나고 집에 가면 아내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나가서 팀 동료들을 만나면 아내는 여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태국에서 혼자 집에 있어야 한다. 그런 점 때문이라도 더 운동 시간 외에는 집에 붙어 있는다.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인 선수들이 왜 가정적인지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K리그에서 늘 희생과 팀에 집중했던 임창균은 이제 개인의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신분이다. 임창균에게 이건 좋은 점도 있지만 부담이기도 하다. 그는 “외국인 선수는 어쨌건 한 경기마다 평가를 받는다”면서 “한국에서는 1년의 성과에 대해 한 번에 평가를 받지만 외국인 선수는 한 경기 한 경기 실수와 부진이 치명적이다. 특히나 태국은 외국인 선수에게 더 엄격하다. 계약서가 있지만 외국인 선수가 별로면 6개월 만에 바꾸는 경우도 많다. 매정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축구를 잘하면 한없이 잘해주는데 못하면 누가 봐도 ‘저 선수는 외롭겠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긴장을 놓을 수 없다. 특히나 부상을 당해서 경기에 나가지 못할 때나 경기에 나서서 경기력이 좋지 않을 때는 더 치명적이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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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균은 지난 시즌까지는 매 경기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올 시즌에는 부상으로 주춤했다. 8월에 개막해 다음 해 5월까지 치러지는 태국 리그에서 지난 해 8월 시즌 개막 전부터 부상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임창균은 “지난 시즌에는 경고누적으로 빠진 두 경기를 빼고 거의 모든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했다”면서 “그런데 여기는 원정거리가 멀다. 길게는 버스를 타고 20시간 동안 이동할 때도 있다. 그러다보니 근육에 무리가 갔다. 이번 시즌을 준비하는데 전지훈련 도중 현역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다. 그리고 2주 뒤에 복귀했는데 또 거길 다쳤다. MRI를 찍어보니까 근육이 길게 찢어지기도 했지만 깊게 찢어져서 부상이 가볍지는 않더라. 그렇게 3개월을 쉬게 됐다”고 전했다.

K리그 시절 큰 부상 없이 운동에 집중해던 임창균은 올 시즌 부상과 싸우고 있다. 그는 “지난 해 8월부터 11월까지 쉬고 다시 복귀를 해 5~6경기에 쭉 나갔다가 다시 한 번 햄스트링에 이상한 느낌이 있더라”면서 “그때가 전반기 막판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좀 쉬다가 최근 재개한 후반기에 다시 복귀했다. 지금은 몸에 큰 이상은 없지만 감독님께서도 내가 두세 번 부상으로 힘들어 하는 걸 보시고는 신중해지셨다. 한 번에 무리해서 경기에 나가는 것보다는 조금씩 컨디션을 끌어 올리자고 하시더라. 그래서 오늘 경기는 딱 5분 뛰었다. 볼 터치 두 번하고 경기가 끝났다. 다음 경기에서는 더 많은 걸 보여주고 싶다”고 웃었다.

임창균은 오랜 만에 만난 한국 취재진과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지만 이면에는 그는 매 경기 평가받는 외국인 선수 신분으로 태국에서 더 많은 걸 보여줘야 하는 부담이 느껴졌다. 임창균은 “초조한 게 없다면 거짓말이다”라면서 “지금 나한테 있는 스트레스가 100이라면 모든 스트레스는 거기에 있다. 모든 고민은 그것뿐이다. 다쳐서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평가를 받아야 하는 시기에 평가를 받지 못했다. 남은 경기에서 다 뛰어서 막판 스퍼트를 해야한다. 우리가 지금 2부리그에서 중위권인데 중간에 있는 팀들의 차이가 다 촘촘하다. 더 좋은 위치로 올라가야 한다. 치앙마이유나이티드와의 ‘치앙마이 더비’ 홈 경기도 3월에 있다. 중요한 승부에서 ‘외국인 선수값’을 해야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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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 나이로 34세가 된 임창균은 아직도 축구에 대한 애정이 깊다. 임창균은 “어디에서건 축구를 오래 하고 싶다”면서 “내가 5~6개월 정도 팀 없이 공백기가 생겨보니 축구가 진짜 소중하다는 걸 알았다. 당연히 팀이 있고 당연히 경기에 나서고 당연히 연봉을 받는다고 생각하면서 10년 가까이 지냈는데 하루아침에 당연한 게 없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선택한 건 돈보다는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쪽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정말 축구를 좋아하는구나, 축구를 오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디든 축구만 할 수 있으면 된다. 마음 같아서는 마흔 살까지 하고 싶다. 주위에서는 농담 삼아 ‘너처럼 스피드 없는 선수는 마흔 살까지도 가능하다’고 한다. 최소한 38세까지는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고 현역 생활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임창균은 K리그에서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지는 못했지만 어느 팀에 가건 팬들의 사랑을 받은 선수였다. 그는 “이렇게 나를 기억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면서 “처음 태국에 와서는 한국에서 오는 인터뷰 요청도 정중하게 고사했다. 태국에서 축구를 한다는 걸 여기저기에 알리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 내가 아직도 은퇴하지 않고 축구를 하고 있다고 알리고 싶다. ‘아직 잘하고 있구나’ 이렇게 잊지 않고 기억해 주셨으면 한다. 분명히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갈 거다. 외국에 평생 있을 수는 없다.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한국으로 돌아갈 때 좋은 모습으로 인사드리고 싶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니 한국이 그립다”고 웃었다.

인터뷰를 마치려는 순간 임창균은 한 마디만 더 하고 싶다고 말을 이었다. 그는 “나는 우리 훈련과 경기 일정이 아니면 K리그를 다 챙겨본다”면서 “그럴 때마다 K리그에서 뛰던 시절이 생각난다. ‘저 경기장에서 내가 뛰었었지’ ‘저 경기장에서 내가 이랬지’ ‘저 경기장에서 내가 골 넣고 그랬지’하는 게 다 떠오른다. 외국에 나와 보니 K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정말 더 존경하게 됐다. K리그에서 1년, 1년 살아남고 버틴다는 게 대단한 일이다. 나도 거기에 있을 땐 몰랐지만 이렇게 나와 보니까 정말 K리그에서 오래 버티는 선수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물론 나는 K리그에 없지만 많은 팬들이 K리그 선수들을 더 많이 응원해 주시고 K리그가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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