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안양 쪽에서 바라본 펜스의 모습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후아힌=김현회 기자] 태국 후아힌에 K리그 단 두 팀이 동계 전지훈련을 왔다. 그런데 그 두 팀이 하필이면 FC안양과 FC서울이다.

현재 K리그 팀들은 전국과 전세계로 뻗어나가 동계 전지훈련에 임하고 있다. 내달 K리그 개막을 앞두고 선수들은 따뜻한 곳으로 가 몸을 만드는 중이다. 코로나19 여파로 2020년 이후 해외 전지훈련이 전면 중단된 바 있지만 올 시즌을 앞두고 K리그 다수 팀이 해외로 떠났다. 특히나 태국이 인기가 좋다. 방콕에는 충북청주FC가 훈련 중이고 촌부리에도 대전하나시티즌과 서울이랜드 등이 머물러 있다. 치앙마이에는 성남FC와 수원FC, 제주유나이티드, 인천유나이티드 등 많은 팀들이 자리 잡았다.

후아힌은 태국에서도 외진 곳이다. 휴양지로 잘 알려진 이곳은 서양의 노년층이 주로 휴가를 보내는 바닷가 도시다. 방콕에서나 치앙마이에서 후아힌으로 들어오는 비행기도 하루에 각각 한 대에 불과하다. 방콕과 촌부리, 치앙마이 등 다른 태국 도시에 비하면 교통 접근성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런데 후아힌에 K리그 두 팀이 들어와 있다. 그게 바로 FC서울과 FC안양이다. 역사적으로 얽힌 두 팀의 숙소는 자동차로 5분 거리, 훈련장은 심지어 같은 곳이다. 역사적으로 그 누구보다 거리가 먼 두 팀은 머나먼 타국, 그것도 의지할 곳 없는 후아힌에서 마주하고 있다.

이들은 철저히 자신들의 갈 길을 가는 중이다. FC안양과 FC서울 훈련은 동시간대에 겹치는 경우가 많다. 이 두 훈련장 사이는 훤히 뚫려 있었지만 FC서울과 FC안양이 동시에 들어온다는 사실이 전해진 뒤 훈련장 측에서 가운데 가림막을 설치해 서로를 지켜보지 못하도록 배려(?)했다. 두 팀은 서로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한 쪽 구단 관계자는 “상대팀 관계자가 훈련할 때면 계속 우리 쪽을 지켜본다”고 푸념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 두 팀은 역사적인 관계 특성상 후아힌에서도 아무런 교류를 하지 않고 있다.

후아힌에 한국 팀이 두 팀 이상 들어온 건 처음 있는 일이다. FC안양은 코로나19 이전에 후아힌을 단골 전지훈련지로 삼았다. 2019년에는 FC안양과 올림픽 대표팀이 후아힌에서 연습경기를 치르는 등 교류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후아힌은 지리적 특성과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인해 한국 팀들의 발길이 끊겼었다. 올 시즌 해외 전지훈련이 재개된 가운데 FC안양은 단골 전지훈련지인 후아힌으로 향했고 FC서울도 일본 가고시마로 가기 전에 후아힌에서 몸을 만들기로 했다. 2019년 이후 후아힌에 한국 팀이 두 팀 이상 온 게 처음인데 하필이면 그게 FC서울과 FC안양이다.

흥미로운 건 두 팀의 숙소와 훈련장 등을 섭외한 ‘현지 에이전트’가 같은 인물이라는 점이다. 현지 에이전트는 숙소 및 훈련장 섭외, 훈련 환경 조성, 연습경기 상대 주선 등의 일을 한다. 이 에이전트는 먼저 후아힌에 도착한 FC안양 숙소에 있다가 FC서울이 후아힌에 도착하자 FC서울 숙소로 옮겼다. 에이전트는 FC서울 숙소에 간 뒤 소속감을 중시하는 안익수 감독의 방침에 따라 FC서울 트레이닝복을 지급받았다. “우리 숙소와 훈련장에 출입할 때면 이 옷을 입어달라”는 것이었다. 현지 에이전트는 전지훈련장에서 소속감을 보여주기 위해 해당 구단 엠블럼이 박힌 트레이닝복을 착용하는 경우가 많다.

해당 에이전트는 FC서울 숙소에 입성한 뒤 FC서울 트레이닝복을 입기 시작했다. FC서울 트레이닝복을 벗지 않으면 FC안양 숙소에 들어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한 번은 이 에이전트가 FC서울 측에서 업무를 마친 뒤 FC안양 측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FC서울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깜빡한 적도 있다. 다행히도 에이전트는 FC안양 훈련장 주차장에서 이 사실을 인지하고 돌아가 옷을 바꿔 입고 왔다. FC안양은 해당 에이전트 사이즈에 맞은 트레이닝복이 없어 따로 에이전트에게 트레이닝복을 지급하지 않았다. 에이전트는 FC서울 측에 갈 때면 FC서울 트레이닝복을 입고 FC안양 쪽으로 넘어갈 때면 사복을 입는다.

정확히 가운데서 양 측의 펜스를 바라본 장면 ⓒ스포츠니어스

양 쪽 훈련장 중 한 쪽이 조금 더 규모가 커 이 훈련장을 차지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쟁탈전도 있었다. 광저우 헝다가 코로나19 여파로 2020년 1월 전지훈련이 취소되면서 준비했던 가림막은 이후 그대로 창고에 방치돼 있었지만 이 사정을 잘 아는 훈련장 측에서 가림막까지 설치해줬다. 두 팀이 가림막으로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공간에는 파리생제르망(PSG) 라이선스를 획득한 유소년 클럽의 축구 레슨이 열리고 있다. 두 팀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한 관계자는 펜스 앞에서 뛰어오는 어린 선수들을 보며 “여기가 비무장지대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지훈련지는 따뜻한 기후 외에도 최적의 스파링 파트너가 많은 곳으로 잡는 경우가 많다. 터키 안탈리아나 경상도 남해 등에는 많은 팀들이 전지훈련 때마다 몰려 연습경기를 치른다. FC안양과 FC서울은 후아힌에서 연습경기 파트너로는 가장 적합한 상대다. 하지만 이 두 팀은 맞붙을 생각이 없다. 논의를 해본 적도 없고 성사될 일도 없다. FC안양 관계자는 “처음에는 포항이 후아힌으로 온다는 소문을 듣고 ‘연습경기도 두 번 정도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그런데 그 팀이 포항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말을 듣고는 연습경기를 못하게 될 거라는 생각부터 들었다”고 전했다.

FC안양은 바로 옆 훈련장의 FC서울이 아니라 자동차로 9시간이 걸리는 태국 1부리그 팀을 초대해 두 차례 비공식 연습경기를 치렀다. FC서울도 FC서울 나름대로 연습경기 파트너를 섭외했다. 두 팀은 바로 옆에 캠프를 차렸지만 철저하게 자신의 갈 길을 간다. 의외의 혜택을 본 팀도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연습경기를 위해 오는 두 개의 프로 팀은 FC서울, FC안양과 연이어 격돌할 예정이다. FC안양과 FC서울이 연습경기를 할 수 있었다면 굳이 말레이시아 팀을 초청할 이유가 없었지만 두 팀의 민감한 관계로 인해 말레이시아 팀이 양 측의 연습경기 상대로 초청받았고 K리그의 높은 수준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양 측이 팽팽하게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FC안양 이우형 감독은 선수단에 공지하기도 했다. 이우형 감독은 “서울 선수단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까지 막지는 않겠다. 같이 사진을 찍을 수는 있지만 절대 그걸 SNS에 올리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런 가운데 양 측이 유일하게 예의를 갖춰 소통하는 루트는 딱 하나 뿐이다. 훈련 시간이 겹칠 때 FC안양 이우형 감독이 FC서울 안익수 감독에게 먼저 인사를 하러 간다. 이우형 감독은 “안익수 감독이 현역 시절 선배다. 국민은행 때도 1년 동안 같이 있었다. 민감한 관계지만 선배 감독에 대한 예의는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후아힌에서 마주한 양 측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전지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footballavenue@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