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1호 논란’ 협회의 공식 입장에 빠진 결정적인 사건들

ⓒ안덕수 씨 SNS 캡처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대한축구협회(KFA)가 일명 ‘2701호 논란’으로 불린 의무 트레이너 사태가 불거진 지 근 한 달 만에 공식 입장을 냈다. 협회는 10일 ‘카타르 월드컵 대표팀 의무 트레이너 관련 대한축구협회 입장’이라는 제하의 입장문에서 “카타르월드컵에 참가했던 우리 대표팀의 의무 트레이너 문제와 관련해 최근까지 많은 언론 보도가 있었다. 손흥민의 개인 의무 트레이너로, 카타르 현지에 와서 일부 대표선수들을 대상으로 치료 활동을 했던 안덕수씨가 개인 SNS를 통해 대한축구협회에 불만을 표출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협회는 그동안 공식적인 언급은 자제했다. 뚜렷한 사유와 내용을 설명하지도 않은채 SNS에 쏟아낸 개인의 감정을 협회가 정면 대응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협회는 “월드컵 16강 진출을 자축하는 분위기에서 자칫 예민할 수 있는 이 문제를 섣불리 언급할 경우 협회가 나서서 분위기를 깨뜨린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하지만 당사자도 아닌 ‘측근’이나 익명의 관계자를 빌려 계속 이 문제에 대해 보도가 나오고 팩트와 거짓이 뒤섞여 혼란을 주는 일이 되풀이됐다. 이 문제를 계속 수면 아래로 둔 상태에서 협회 내부적으로만 수습할 경우, 오는 3월로 예정된 대표팀 소집 때 비슷한 오해와 언론 보도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생겼다. 따라서 협회는 핵심 내용을 공개하고 개선책을 마련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협회는 논란 과정에 대한 상세한 상황을 설명했다. 짧게 요약하자면 선수들이 협회 의무 스태프 A를 업무에서 배제시키고 손흥민 개인 트레이너인 안덕수 씨를 협회 의무 스태프로 일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안 씨는 자격증이 없어서 협회 의무 스태프가 될 수 없었고 이에 일부 선수들은 우루과이전을 앞둔 11월 22일 협회 대표팀 책임자를 찾아 갑작스레 협회 의무 팀장 A씨의 업무 배제와 귀국 조치를 요구했다는 게 협회 측의 공식 입장이다. 그러면서 선수들이 안 씨가 자격증이 없어서 의무 스태프로 채용할 수 없다면 장비 담당자라든가 다른 직책으로 활동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펼쳤다고 덧붙였다.

ⓒ안덕수 씨 SNS 캡처

협회의 말 중에 거짓은 없다. 이 사건을 꾸준히 취재해 온 입장에서 들어도 모두 사실인 내용이다. 하지만 협회가 이 과정을 설명하면서 빼놓은 내용이 있다. 어찌보면 가장 핵심이 될 수도 있을 내용이 빠졌다. 왜 선수들은 협회 의무 팀장 A씨를 갑자기 업무에서 배제시키고 귀국 조치를 요구했을까. 단순히 안 씨가 그 자리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아무리 선수들의 민심이 한 쪽으로 기울었어도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대회 도중 A씨의 업무 배제와 귀국을 요청할 정도로 편향적이지는 않다. 여기에는 협회가 전하지 않은 뒷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를 공개해야 협회의 해명문 속 상황이 이해가 된다.

의무팀장 A는 처음부터 벤투 감독과 함께 한 인물이 아니었다. A는 2020 도쿄올림픽 김학범호의 의무 트레이너였다.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부터 대표팀에서 일한 A는 대표팀 내에서 따르는 선수들도 있었지만 사이가 좋지 않은 선수들도 많았다. A는 과거 대표팀 의무 트레이너로 선임될 당시에도 선발 과정이 공정하지 않다는 논란과 함께 실력이 뛰어나다는 반론도 제기됐던 인물이다. 2020년 도쿄올림픽은 코로나19 여파로 1년 뒤인 2021년 7월 개막했고 결국 한국은 8강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이후 A는 휴식을 가진 뒤 벤투호에 의무 팀장으로 복귀했다. 당시 벤투 감독은 A에 대해 물었고 협회 의무 트레이너들은 A에 대해 호평했다.

의무 트레이너들은 “A를 선수들이 다 신뢰하고 있다”고 벤투 감독에게 전했고 벤투 감독은 “당신들의 의견을 믿겠다. 선수들과 하나의 팀이 돼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의무 트레이너들이 A와 선수들 사이가 원만하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대표팀에는 A를 과거에 경험하고 신뢰를 보내지 않는 선수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월드컵 본선 무대를 이제 막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A가 들어와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A와 선수들은 서로를 경계하며 월드컵을 준비해 나갔다. 그러다가 사건이 터졌다. “A가 선수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대표팀에 합류했다는 사실을 일부 선수들이 알게 된 것이다.

ⓒ안덕수 씨 SNS 캡처

A가 거짓말로 감독까지 속여 대표팀에 합류했다고 판단한 일부 선수들이 우루과이전을 앞둔 11월 22일, 협회의 대표팀 책임자를 찾아갔다. 협회는 이 부분을 빼고 선수들이 안 씨의 의무 스태프 합류를 반대하는 A를 몰아내기 위한 독단적인 행동을 한 것처럼 묘사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안 씨의 의무 스태프 합류 여부가 아니라 A씨가 “선수들과의 관계가 돈독하다”면서 대표팀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더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선수들 사이에서 “A씨도 자격증이 없는데 협회가 고용했다. 팀에서 내보내 달라”는 말까지 나왔다. 우루과이전을 하루 앞둔 날 벌어진 초유의 일이었다. 선수들 입장에서는 신뢰하지 못하는 A가 선수들과 신뢰가 두텁다는 점을 내세워 대표팀에 들어온 걸 듣고 화를 냈다.

협회의 해명문을 보면 “과정에서 의무 스태프를 포함해 현지에 파견된 협회 지원 인력 상당수가 ‘아무런 잘못이 없는 A의무팀장을 귀국 조치한다면 우리도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등 내부적으로 심각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협회는 A의무팀장을 귀국 조치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A의무팀장에게 치료 활동은 중단하도록 조치했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A의무팀장이 선수들을 계속 치료하는 것은 당사자나 선수들 모두에게 심리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므로 이를 예방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협회는 선수들에게 이 사실을 통보했고 선수들도 동의해 이 문제는 일단락됐다”고 했다.

협회의 공식 입장은 대부분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다. 하지만 절차상 문제가 될 게 없으면 A가 치료 활동을 이어나가도 문제 삼을 수 없다. 오히려 집단적으로 반기를 들며 협회 시스템과 인사를 부정하면서 단체 행동을 하는 선수들의 문제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벤투 감독도 상황을 전해 듣고는 “처음 A를 고용했을 때 들었던 이야기와 너무 다르다. 나는 의무팀의 이야기만 듣고 선수와 A의 신뢰 관계가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렇게 사이가 좋지 않은지 몰랐다”면서 화를 냈다. 벤투 감독이 A의 치료 활동 중단 조치에 동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A와 일부 선수들의 사전 관계, 그럼에도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전해 A가 선수들과 한 팀이 된 것 등의 이야기를 빼놓고 전하면 사건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

협회는 A를 업무에서만 정지시키고 대회가 끝나면 같이 귀국하는 쪽으로 결정했지만 일부 선수들은 “당장 A는 우리 선수단을 떠나 귀국해야 한다”고 강경한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협회 관계자는 “A도 가족이 있는데 대회 도중에 돌연 혼자 귀국하면 난감해 진다. 이해해 달라”고 선수들을 설득했다. 결국 A는 대회 내내 훈련장에도 나가지 못한 채 숙소에서만 지내다가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귀국했다. 선임된 의무 스태프를 몰아낸 선수들에게도 잘못은 크다. 하지만 일부 선수와 A의 관계, 그리고 이 관계를 거짓으로 보고해 선수와 A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게 만든 시스템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대표팀 감독이 대표팀 의무 트레이너를 방에만 있도록 지시한 건 사상 초유의 일이다.

협회가 해명문에서 공개한 ‘MRI’ 사건도 틀린 말을 전한 건 아니지만 중요한 부분이 누락돼 있다. 협회는 “훈련과 경기 후에 통증을 호소한 선수를 현지 FIFA 공식 지정병원에 데려가 MRI 촬영을 한 적이 있었다. 촬영 결과에 대해 현지 전문의와 협회가 파견한 대표팀 닥터진이 소견을 같이하고 이를 선수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안 씨는 이와 다른 의견을 선수들에게 전달했고 이 때문에 선수들이 혼란스러워했다“고 밝혔다. 대표팀 닥터진이 의사인데 트레이너 자격증도 갱신하지 않은 안 씨가 팀닥터와 다른 의견을 전달하며 논란을 키웠다는 뉘앙스다. 누가 봐도 의료진의 의견을 무시한 안 씨의 잘못처럼 비춰질 수밖에 없는 설명이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하지만 이 사건에서도 결정적인 ‘무언가’가 빠졌다. 그건 바로 ‘MRI 원본 사건’이었다. 2차전 가나와의 경기를 앞두고 벤투 감독은 팀닥터에게 “황희찬이 다음 경기에 나설 수 있느냐”고 물었고 팀닥터는 “MRI를 분석해 봤을 때 잘 준비하면 가능하다”고 답했다. 벤투 감독은 팀닥터의 소견을 믿고 황희찬의 복귀를 준비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가나전을 앞둔 상황에서 황희찬의 몸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의문을 품은 벤투 감독이 팀닥터를 다시 불러 “MRI를 보여주면서 설명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팀닥터는 황희찬의 MRI 자료가 없었다. MRI 자료가 아니라 MRI 촬영 이후 받은 간략한 소견서가 팀닥터가 가진 자료의 전부였다. “MRI 필름은 없고 소견서만 전달받아 몸 상태를 판단했다”는 팀닥터의 말에 벤투 감독이 크게 화를 냈다.

이날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벤투 감독은 “MRI를 직접 보지도 않고 그렇게 판단한 것이냐”고 호통을 쳤고 결국 황희찬은 대회 도중 FIFA 공식 지정병원으로 가 MRI를 다시 촬영하게 됐다. 그리고 황희찬은 근육에 문제가 있는데 무리해서 재활 훈련을 했다는 판정을 받았다. 가나전도 쉬어야 한다는 소견이었다. 벤투 감독은 팀닥터에게 화를 냈고 그러면서 가뜩이나 서로 예민했던 협회 측 팀닥터와 선수 측 안 씨가 의견 충돌이 벌어졌다. 단순히 이 문제를 팀닥터와 안 씨의 개인적인 의견 차이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협회는 이번 일과 관련해 대부분 사실을 전달했지만 중요하고 민감한 부분은 생략했다. 생략한 그 부분이 이번 갈등의 핵심이지만 전달되지 않았다.

협회에 반기를 든 대표팀 선수들도 물론 크게 잘못했다. 성적이라도 좋지 않았으면 아마도 그들에게 온갖 비난의 화살이 돌아갔을 것이다. 협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인물을 배척하고 자격이 없는 이에게 대회 내내 몸을 맡긴 건 잘못된 일이다. 집단 행동을 하며 협회가 채용한 인물을 몰아내는 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여기에 대표팀 몇몇 선수들은 대회 후 “다음 대표팀 감독도 외국인이 맡았으면 한다”는 말까지 하기도 했다. “능력 있는 분이 오셨으면 좋겠다” 정도로 순화했어도 되는데 ‘외국인’이라는 단어를 넣어 국내 대다수 감독을 시대의 흐름에서 뒤떨어지는 ‘적폐’로 만들어 버렸다. 한국 축구를 걱정해서 한 작심발언이라는 건 잘 알지만 자꾸 선수들이 편가르기를 하고 입맛에 맞는 스태프들만 품으려는 건 아닌지 아쉽다. 물론 공식적이지 않은 신분으로 SNS에 논란을 일으킨 안 씨의 잘못은 이미 여러 번 지적했을 만큼 크다.

선수들도 잘못했지만 협회의 잘못도 크다. 이번 해명문을 통해서도 사건의 본질에 해당하는 논란은 쏙 빼놓고 결국 선수탓, 안 씨탓으로 여론을 돌렸다. 협회의 다른 의무 스태프는 A씨와 일부 선수들의 관계를 거짓으로 설명하며 A씨를 대표팀으로 불러들였고 결국 문제가 터졌다. MRI가 아닌 소견서만 보고 선수의 몸 상태를 판단한 팀닥터는 대표팀의 가나전 구상에 결정적인 우를 범했다. 협회에 있는 의무 스태프를 대회 때마다 돌려가며 쓸 게 아니라 고정적으로 채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처럼 매 대회 때마다 이런 갈등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능력 있는 여러 의료진과 트레이너, 그리고 선수들이 오랜 시간 함께 신뢰를 쌓아 나가야 ‘원팀’이 될 수 있다. 이번 논란이 훗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되려면 반드시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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