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 카타르 도하=조성룡 기자] 과연 가솔현의 축구 인생은 연장전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축구계에서 카타르는 그리 낯선 동네가 아니다. FIFA 월드컵 카타르 2022 뿐만 아니다. 아시안컵을 카타르에서 한 경험도 있고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울산현대가 우승컵을 들어올린 곳도 카타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4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극적인 본선 진출을 만든 '도하의 기적'도 카타르다.

그리고 카타르에는 한국 선수들이 제법 많이 뛰고 있다. 1부리그인 카타르 스타스 리그를 거쳐간 한국인은 스무 명 가까이 된다. 이번 대회 대한민국 대표팀으로 뛰었던 정우영도 현재 카타르 알 사드에서 뛰고 있고 남태희는 카타르에서 뛰는 대표적인 한국 선수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또 한 명의 카타르 리거가 있다. 바로 가솔현이다. FC안양과 전남드래곤즈에서 뛰었던 가솔현은 축구인생의 마지막에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바로 카타르 2부리그다. FC안양과 전남드래곤즈 등에서 뛰었던 가솔현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해외 생활로 카타르 2부리그의 알 메사이미어를 택했다. 그는 카타르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역만리 카타르 도하에서 가솔현을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만나서 반갑다. 월드컵 휴식기라 잘 쉬었는가?
무슨 소리. 쉬지를 못했다. 월드컵 기간 동안 나를 비롯해 (남)태희 등 카타르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은 대표팀 선수들과 가족들을 챙기느라 많이 돌아다녔다. 다들 카타르가 낯설지 않겠는가. 선수들에게 외출이 주어졌을 때 맛집에 데려가 맛있는 것도 사주고 월드컵을 보러 온 선수 가족들 차로 픽업해주고 그랬다. 나는 카타르에 온지 반 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카타르 교포가 다 된 것 같다.

나도 가솔현이 카타르 2부리그에서 뛸 줄은 몰랐다.
나도 내가 여기 있는 것이 신기할 때가 있다. 사실 카타르로 오는 과정은 모든 게 극적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축구인생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강원FC에서 뛴 뒤 경주한수원에서 K3리그 베스트 일레븐을 한 번 수상하고 축구화를 벗자고 생각했다. 해외 무대에 대한 꿈은 있었지만 '내 축구의 한계는 여기까지인 모양이다'라고 생각하고 미련없이 은퇴하려고 했다.

실제로 선수 생활을 하면서 한 번 중국에서 뛸 기회가 있었다. 모든 이적 작업이 마무리되고 중국으로 가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19가 터져버렸다. 당시 중국 팀이 제주도로 전지훈련을 올 예정이어서 나는 거기에 합류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전지훈련이 취소됐고 내가 중국으로 갈 수 있는 비행기도 없었다. 그야말로 '붕 뜬' 처지에 놓였다. 약 6개월을 허송세월로 보내고 강원FC에 겨우 입단했다.

그래서 해외 무대는 나와 인연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경주한수원에 있던 도중 갑자기 에이전트를 통해 연락이 왔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카타르 2부리그 팀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을 찾는다는 이야기였다. 선수 생활 마지막에 내게 주어진 기회였다.

하지만 걱정도 많았다. 나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여러 팀을 옮겨다녔다. 하지만 매번 이적을 할 때마다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카타르로 이적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것이 많았다. 원소속팀인 경주한수원과도 협의해야 하고 카타르의 까다로운 서류 발급 과정을 해결해야 했다.

결국에는 카타르에 오지 않았는가?
그렇다. 정말 내가 깜짝 놀랄 만큼 빠르게 진행됐다. 먼저 경주한수원 서보원 감독님께 연락을 드려 해외 이적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서 감독님이 흔쾌히 보내주겠다고 하시면서 구단 이신선 대표님과도 소통해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진행하셨다. 이적료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해외 이적을 적극 도와주시겠다고 풀어주셨다.

그리고 카타르에 가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서류가 필요하다. 경주한수원에는 프로에서 행정 업무 경험이 많으신 김지훈 팀장님이 있다. 그분이 모든 서류를 '뚝딱' 만들어내셨다. 이렇게 이적이 빠르고 순조롭게 진행된 적은 처음이었다. 내 느낌으로는 한 3일 밖에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신기했던 것은 카타르 리그의 경우 카타르축구협회가 외국인 선수 이적을 관리한다는 것이다. 카타르에서 외국인 선수가 뛰기 위해서는 각 나라마다 일정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한국은 K리그 100경기 이상 출전과 같은 조건이 있다. 최종적으로 카타르축구협회의 승인까지 받으면서 카타르에서 뛸 수 있었다.

아내에게도 정말 고맙다. 솔직히 카타르로 떠나는 것이 거의 확실해졌을 때 아내에게 선뜻 말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어쨌든 이야기는 해야하지 않는가. 그래서 아내에게 "카타르로 이적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더니 "무조건 가야한다. 해외 생활은 네 꿈 아니냐"라고 하더라. 당시 아내도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걸 모두 포기하고 나를 위해 와줬다.

카타르 적응은 어땠는가? 더워서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정말 남태희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됐다. 남태희의 가족 덕분에 이렇게 뛸 수 있는 것이다. 너무나도 도움 받은 게 많아서 이걸 어떻게 하나하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쉽게 말하자면 하나부터 열까지 남태희가 거의 다 해줬다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도와줬고 좀 더 수월하게 적응하도록 해줬다.

정말 사소한 것도 도움이 됐다. 은행 업무도 도와주고 여기는 인터넷 설치도 최소 일주일 정도가 걸린다. 그런데 남태희가 도와줘서 3일 만에 인터넷이 설치됐다. 특히 남태희가 정말 착하다. 뭘 좀 도와달라고 하면 거절하는 법이 없다. 휴대폰 개통같이 사소하지만 꼭 필요한 걸 모두 도와줬다.

특히 남태희가 집으로 초대해서 밥을 차려준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아내를 두고 먼저 혼자 왔을 때 밥을 차려주고 와서 편하게 먹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태희와 친해졌다. 내 아내가 왔을 때는 제수씨(남태희 아내)가 밥을 차려주는 등 많이 도와줬다. 심지어 남태희 덕분에 돼지고기도 카타르에서 먹었다.

이슬람 국가인 카타르가 엄격히 금지한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그렇다. 국가에서 발급하는 라이센스를 소지하고 있으면 돼지고기나 주류 등 카타르에서 금지하고 있는 물품들을 정당하게 살 수 있다. 구단주들이 팀을 통해 발급해준다. 현재 내가 알기로는 남태희와 (정)우영이 형이 라이센스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아직까지 라이센스가 없다.

정말 남태희와 제수씨가 없었다면 나와 내 아내는 정말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양고기 맛집인 '알 카이마'도 몰랐을 것이고 카타르에서 생활하면서 어떤 것이 좋은 거고 어떤 것이 잘못된 거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살면서 이게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중에 내가 남태희 입장이 되면 이런 게 절대 쉬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태희와 내가 예전부터 크게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축구선수라는 공통점 하나 뿐이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도와준 것이다. 그 덕분에 내가 이곳에서 적응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

카타르에서 운전까지 수월하게 하는 걸 보니 적응 정말 잘한 것 같다.
카타르에 와서 우리나라가 정말 좋다는 걸 하나 느낀 게 있다. 운전면허다. 기본적으로 카타르에서 운전을 하려면 이곳에서 필기시험부터 모든 것을 다 새로 해야한다. 그런데 타국 운전면허증이 있으면 곧바로 카타르 운전면허증을 발급해주는 국가가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가 우리나라다.

과거 대전시티즌과 FC안양에서 뛰었던 브루노라는 선수가 있다. 지금 그 친구가 나와 같이 뛴다. 브라질 선수라 여기서 운전면허 시험을 다시 봐야 운전이 가능했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브루노가 과거 한국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그래서 브루노는 한국 운전면허증을 제출하고 시험 없이 카타르에서 운전면허를 받았다. 한국 생활이 이렇게 도움이 된 셈이다. 하하.

그래도 이 더위는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맞다. 처음에 여기서 뛰었을 때 정말 충격이었다. 처음에 경기를 뛸 때 너무나도 더웠다. 내가 사실 더운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여기 와서는 더운 걸 좋아한다는 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정말 더웠다. 첫 경기 때 뛰고나서 거의 5kg가 빠졌다. 솔직히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걸어다닐 정도였다.

축구화가 제일 문제였다. 상상 이상으로 더워서 축구화를 신고 있는 발에서 땀이 난다. 그러다보니 축구화가 장마철 수중전 때 뛰는 것처럼 푹 젖는다. 바느질한 가죽 사이 사이에서 땀이 쫙 쫙 빠져나온다. 첫 경기에서 이런 경험을 하니까 많은 것들이 바뀔 수 밖에 없다.

ⓒ 가솔현 제공

선수라면 누구나 루틴이 있다. 나 또한 그렇다. 나는 경기 도중에 축구화나 유니폼을 거의 갈아 입지 않는다. 그런데 전혀 다른 환경에서 뛰니 내가 루틴을 바꿔야 했다. 이제는 축구화도 유니폼도 여러 벌을 챙긴다. 하프타임에 모든 걸 다 벗고 새로운 장비들로 갈아입는다. 처음에는 이 루틴을 깨는 게 너무 어려웠다. 그런데 여기는 상상 이상이라 내가 루틴을 깰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카타르 2부리그라 환경이 더 열악한가? 월드컵 경기장에는 에어컨이 나왔는데.
1부리그와 2부리그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에어컨이다. 카타르 스타스 리그 경기장에는 에어컨이 설치돼 시원하게 뛸 수 있다. 그런데 2부리그 경기장에는 에어컨이 없다. 더운 그대로 뛰어야 한다. 이외에는 큰 차이가 없다. 2부리그 훈련장도 상당히 좋다. 잔디구장 갯수 정도가 다르지 2부리그도 꽤 잘 갖춰져 있다.

우리나라가 월드컵 16강전에서 브라질과 붙었을 때 나는 선수들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16강전 경기장이었던 스타디움974는 에어컨이 없다. 조별리그 3경기가 열린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은 에어컨이 가동된다. 비교적 쾌적한 환경에서 뛰다가 스타디움974에서 뛰니 더위라는 또다른 적과 싸워야 한다.

이게 밤 경기여도 더운 열기는 쉽게 빠지지 않는다. 낮에 열기가 그라운드 안으로 모인다. 그런데 수만 석의 관중석이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장 조명이 그라운드로 향하니 열기가 빠질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에어컨도 가동되지 않으니 선수들 입장에서는 밤이어도 찌는 듯한 더위에 고생할 수 밖에 없다.

TV로 16강전을 보신 분들은 전반전을 보면서 '왜 이렇게 못 뛰어? 왜 이렇게 몸이 무거워?'라고 생각하셨을 것 같다. 물론 조별리그에서 로테이션 가동 여부도 큰 차이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외부적인 변수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내가 경험을 해봤으니 말씀드릴 수 있다.

사실 1부리그도 에어컨이 설치된 게 얼마 되지 않는다. 카타르 경기장에 에어컨이 들어온 게 3~4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래서 남태희는 아마 에어컨 없는 그라운드를 경험했을 것이다.

솔직히 궁금한 게 있다. 카타르 오니 '오일 머니'가 새삼 느껴지는가?
에이 아니다. 1부리그와 2부리그는 상당히 다르다. 카타르에서는 알 사드와 알 두하일, 알 아라비, 그리고 알 라이얀 정도가 명문 소리도 듣고 자금력도 상당하다. 물론 알 라이얀은 요새 성적이 좋지 않다. 이들은 외국인 선수도 정말 이름값 있는 선수를 데려오고 연봉도 많이 준다.

그런데 2부리그는 많이 다르다. 물론 한국에 있을 때보다 연봉을 많이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메리트도 없으면 이 더운 곳에서 어떻게 뛰겠는가. 하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타르 1부리그와 2부리그를 비교했을 때는 꽤 많이 차이가 난다. 그리고 나는 아직 월급을 한국 돈으로 환전을 해보지 못했다. 환전을 해봐야 좀 실감이 날 것 같다.

1부리그와 2부리그의 자금력 차이는 나를 보면 딱 알 것이다. 내가 수비형 미드필더와 중앙 수비수를 병행하면서 뛰고 있다. 카타르 1부리그에서 나와 같은 포지션인 선수가 한 명 있다. 스페인 국가대표 출신인 하비 마르티네스다. 돈 많으면 하비 마르티네스 쓰는 거고 돈 없으면 가솔현 쓰는 거다.

ⓒ 가솔현 제공

그래도 정말 '기름값' 하나는 싸다. 카타르는 휘발유를 실버와 골드로 나눠서 판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반 휘발유와 고급유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일반유 수준인 실버가 우리나라 고급유보다 옥탄가가 높다고 들었다. 품질이 좋은 셈이다. 그런데 가격은 싸다. 실버가 리터당 4~500원 정도 하고 골드가 600원 정도 한다. 정말 저렴하다.

대신 물가는 상당하다. 외식 물가도 비싸다. 얼마 전에 아내가 한국으로 잠시 들어갔다. 그런데 한국에서 뭘 자꾸 계속 시켜먹는 것이다. 여기보다 비교적 저렴하게 느껴지니까 그렇게 쓸 수 있는 것이다. 여기는 스타벅스가 그렇게 비싼 카페가 아닐 정도니 말 다 했다.

명품도 그렇다. 카타르에는 명품샵이 제법 있다. 한국을 보면 '오픈런' 한다고 줄 엄청 서 있고 그러지 않는가. 여기는 그렇지 않다. 그냥 아무나 구경할 수 있다. 제품도 막 쌓여있다. 나도 신기해서 한 번 구경해봤다. 그런데 가격은 같은 제품이어도 한국보다 여기가 몇백만원 정도 더 비싸다.

이제 월드컵 이야기로 넘어가자, 이적을 하니 그 동네에서 월드컵이 열렸다.
나도 카타르로 이적하면서 월드컵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또한 컸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정말 많은 감동을 받았다. 월드컵은 기본적으로 각 나라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대회다. 실력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직접 경기를 지켜보니 하나가 더 보였다. 바로 월드컵을 임하는 자세였다.

특히 (정)우영이 형을 통해서 많이 배웠다. 내가 우영이 형 옆에 딱 붙어서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이는 게 있었다. 우영이 형이 어떻게 준비하는지 그 자세를 볼 수 있었다. 소속팀에서 원하는 것이 있고 국가대표에서 원하는 것이 따로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노력하더라. 그 형이 가지고 있는 월드컵에 대한 간절함을 봤다.

물론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이재성도 그렇고 황인범도 머리를 다치고 김민재도 다리 부상이 있었고 손흥민은 안면 부상이 있었다. 어디 아프지 않은 사람 하나 없었다. 그런데 경기를 간절하게 뛰는 게 느껴졌고 월드컵에서는 경기에 임하는 자세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솔직히 월드컵에 오기 전부터 국가대표의 전술과 전략 모티브는 다 짜여있었을 것이다. 선수들에게 이미 입력이 돼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마음만 먹는다고 그 전략이 나오는 게 아니다. 노력도 해야한다. 물론 월드컵에 출전하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다 노력은 한다. 나도 축구선수기에 그런 노력을 해봐서 알고 있다.

이 선수들이 얼마나 준비하고 얼마나 간절했고 얼마나 수많은 노력을 해야 이런 경기력을 만들 수 있는지 안다. 게다가 노력을 해도 마음이 간절해도 원하는 경기력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경기력이 나왔다. 결과도 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16강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나는 우리나라의 모습에 정말 감동 받았다.

특히 우리나라 선수들의 정신력과 간절함이 눈에 보였다. 경기를 하다가 실수하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실수한 바로 그 다음이다. 패스 미스를 해도 드리블 실수를 해도 낙담하지 않고 다시 박수 치면서 '우리 팀끼리 해야 한다'라며 도전했다. 고참과 어린 선수 뿐만 아니라 감독부터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하는 게 보였다.

솔직히 가나전이 그랬다. 졌지만 그렇게 따라가는 게 대단한 것이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축구인들이 인정할 것이다. 전반전을 0-2로 마쳤을 때 다들 0-4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월드컵이라면 그랬을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에서는 2-2까지 따라갔다.

월드컵에서는 누가 스타가 되고 누가 조연이 되고 이런 것들이 많이 조명된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는 정말 한 팀으로 이번 대회를 진심으로 다가갔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와 함께 진심으로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냉정한 현실도 봤다. 나는 많이 충격을 받았다. 나도 베테랑이지만 다시 공부를 해야한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캐나다와 벨기에의 경기를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캐나다의 자세부터가 달랐다. 그 선수들이 내게 잔잔한 충격을 줬을 때 '이게 월드컵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우디 아라비아도 마찬가지다. 아르헨티나를 잡지 않았는가. 물론 결국에는 정말 올라갈 팀이 올라갔지만 뭔가 굉장히 많았던 대회였다.

국가대표 선수들과 가족을 많이 챙겨줬다고 들었다.
여기서 또 남태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선수들 뿐만 아니라 해설이나 관광 등을 위해 카타르에 방문한 축구인들이 많다. 그들의 가족들도 많이 왔다. 남태희가 거의 다 챙겨줬다. 나도 대표팀 선수들의 가족들이 오면 공항에 픽업도 가고 티켓도 구해드리는 등 함께 거들었다.

당연히 도와야하는 것이고 카타르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아는 사람이 거드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내 성격 상 그런 걸 외면하지 못한다. 남태희도 착해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리그 때보다 더 바쁘게 생활했지만 마음은 뿌듯하다. 사실 그러다가 16강전 때 몸살까지 찾아왔다. 브라질전 다음 날에는 그냥 집에서 쓰러져 끙끙 앓았다. 그래도 나름대로 우리가 16강의 '숨은 주역'이라고 생각하면서 기분은 좋았다.

안양 후배(?) 조규성이 이번 월드컵에서 대스타가 됐다.
하나 일화가 있다. 대표팀이 카타르에 온 이후 하루 자유시간이 있었다. 외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날이었다. 그 때 대표 선수 몇 명과 함께 양갈비를 먹으러 갔다. 송범근과 이재성이 나왔고 조현우가 윤종규와 오현규를 데리고 나왔고 권경원이 조규성과 친해서 또 데리고 나왔다.

조규성과 차를 타고 함께 이동하는데 나는 조규성을 알고 있었다. 내가 전남에서 뛸 때 조규성은 안양에 있었고 이후 전북현대로 이적하면서 워낙 유명한 공격수가 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규성이'라 부르기도 민망했다. 그래도 같이 차에 있으니 "규성아 안녕"이라고 인사 정도만 했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그런데 조규성이 갑자기 내게 "형. 저는 형 알아요"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형. 그 때 저 볼보이였어요. 저 형 골 넣는 것도 많이 봤어요"라고 말했다(가솔현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FC안양에서 뛰면서 팀의 창단 첫 골과 K리그 2부리그 사상 첫 골을 넣은 주인공이다. 조규성은 2014~2015년 안양의 유스 소속이었다).

사진이라도 같이 찍었다면 자랑거리가 하나 더 생겼을텐데.
내가 그래서 엄청 후회를 했다. 선수들과 양갈비를 먹으러 간 게 조별리그 첫 경기를 3~4일 정도 앞둔 시기였다. 선수들에게 맛있는 걸 먹이러 데려간 거지만 조심스러웠다. 만일 같이 양갈비집에서 사진 찍고 SNS에 올렸다가 월드컵 성적이 좋지 않으면 '훈련할 시간에 밖에 돌아다닌다'라는 비난이 나올 것 같았다.

아무래도 월드컵이라는 민감한 시기에는 공개적으로 선수들이 돌아다니기 조심스러울 것이다. 나도 선수 생활을 하고 있으니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선수들을 최대한 배려해주기 위해 밥 먹는 시간도 사람이 없을 법한 시간에 가고 사진도 찍지 않았다.

그리고 가나전을 보는데 거기서 조규성이 두 골을 넣는 것이다. 그 순간 '조규성과 무조건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데'라는 후회가 들었다. 내가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었다. 다행히 16강전 이후 귀국하기 전에 선수들을 한 번 더 만났다. 그 자리에서 조규성과 함께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선수들이 고맙다고 유니폼에 사인을 해 선물해줬다. 참 고마웠다.

이제 월드컵은 끝났고 다시 카타르 리그는 시작된다.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가?
글쎄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은퇴를 생각하고 있던 도중에 카타르에 오게 됐다. 한국에서의 선수 생활은 좀 많이 지쳐 있었다. 그런데 카타르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다시 활력을 찾는 것 같다. 카타르에서는 내가 '용병'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잣대 없이 오직 축구로만 평가 받는다는 것이 오히려 내 마음을 편하게 한다.

ⓒ 가솔현 제공

지금은 소속팀을 위해 뛰고 있으니 우리 팀이 잘 되는 것도 목표다. 하지만 여기에 와 생활하면서 한 가지 소망이 생겼다. 여기서 좀 더 뛰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카타르에서 재계약을 해 해외 생활을 더 겪어보고 싶다. 그래서 월드컵 이후의 리그가 중요하다. 이 때부터가 진짜 나의 새로운 도전이다. 과정을 지금까지 열심히 쌓아왔기에 이제는 좋은 결과물을 만들 시기다. 더욱 선수 생활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이 선수 생활의 '보너스 게임'이라고 봐야할까?
음. 그런 것 같다. 축구로 표현하자면 0-1로 아쉬운 상황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들어온 것 같다. 내가 여기서 한 골을 넣으면 연장전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한 골'이 재계약인 셈이다. 물론 골을 넣지 못한다면 내 축구 인생이라는 경기는 그대로 종료될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한 골을 더 넣고 연장전을 가보고 싶다. 내 축구 인생에 큰 미련은 없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 생활의 마지막에 여기서 더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다.

가솔현은 지금 꿈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은퇴를 생각하던 선수가 예상에도 없던 해외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난이도는 결코 쉽지 않다. 무더운 카타르에서 선수 생활을 한다는 것은 난관이 많다. 그럼에도 가솔현은 지금 꽤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그는 선수 생활 마지막 꿈을 꾸고 있다. 여기서 더 오래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는 것. 소박하지만 당찬 꿈이다. 가솔현의 마지막 꿈과 투혼을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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