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드래곤즈 제공

[스포츠니어스 | 김귀혁 기자] 흥미로운 커플 한 쌍이 백년가약을 맺는다.

보통 결혼식 시즌은 봄과 가을이라고 칭한다. 식을 치르기에 여름은 너무 덥고 겨울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날씨 좋은 날에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된다. 하지만 축구인들은 다르다. 봄에 시작해 겨울이 임박해야 시즌이 끝난다. 그리고 개막 전에는 동계 전지훈련을 가기도 한다. 사실상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실질적 기간은 한 두 달 남짓이다. 그 때문에 리그가 끝나고 휴식기인 요즈음 많은 축구 스타들이 결혼 소식을 알리고 있다.

여기에는 축구 선수들 뿐만 아니라 관계자들까지 포함된다. 그런 와중에 최근 국내 축구계에서는 사실상 최초라고 칭할 만한 부부가 탄생해 화제다. K리그2 전남드래곤즈 이창근 분석관과 WK리그 경주한수원WFC 김봄봄 분석관이 오는 17일 부부의 연을 맺는다. 보통 선수와 선수 간 결혼 사례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분석관과 분석관의 결혼은 국내에서 흔치 않은 경우다.

ⓒ김봄봄 분석관 제공

이들은 어떻게 해서 사랑을 싹 띄우게 됐을까. <스포츠니어스>와 전화 통화에 응한 이창근 분석관은 먼저 예비 신부와의 첫 만남을 소개했다. 그는 "나는 실업팀까지 선수 생활을 했었다"면서 "선수 생활 이후에 지도자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나는 한 분석 회사 대표님을 만나서 강의를 듣다가 관련 분야에 흥미가 생겼다. 그래서 전력 분석 회사에서 10년 가까이 일했었다"라며 분석관 일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그는 "2016년도쯤에 여자 선수 출신이 분석을 배워보고 싶다고 해서 면접을 보러 왔었다. 그때 처음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면서 "선수 생활 이후에도 여러 곳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만큼 축구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친구였다. 나는 당시에 팀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면접을 주로 담당했다. 내 아내가 될 사람이라서 이런 말 하는 게 아니라 워낙 능력도 좋고 지금 현장에 있는 남자 분석관들과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았다"라며 첫 만남을 회상했다.

물론 처음부터 가까워진 것은 아니었다. 이창근 분석관은 "우리가 2018년에 한 팀의 상대팀을 영상으로 분석해 준 적이 있다"면서 "그때 내 아내가 공격을 분석했고 나는 수비 관련 전술을 분석했다. 그렇게 공격과 수비를 묶어서 합친 뒤에 자료를 보내는 방식이었다. 그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이 가까워졌다. 일주일에 이틀에서 사흘은 같이 밤을 새웠다. 우리 둘만 회사엔 남아서 숙식을 해결할 정도였으니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라고 전했다.

물론 당시에는 정식으로 교제를 한 단계가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썸'의 시기였다. 그렇게 알듯 말듯한 사이가 이어지던 와중에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 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창근 분석관은 "보통 연인들이 며칠 됐다고 기념하기 위해 정식으로 만난 날을 정하지 않느냐. 우리는 2019년 11월로 지정했다"면서 "당시에 아내가 경주한수원 분석관으로 들어가게 됐다. 나도 같은 시기에 나와서 2020년에 전남으로 합류했다. 나오는 것도 같이 나오면서 새로운 팀에도 같은 분석 일로 합류를 하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씨는 "서로 팀에 들어가면 출퇴근할 때와는 다르게 합숙 생활을 하다 보니 서로 잘 못 만난다"면서 "몸이 멀어지면 소원해질까 봐 결국 그 시기에 못을 박았다. 분명 이전에도 서로에게 관심은 있었다. 사실 '썸' 단계에서는 아내가 먼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헤어질 때가 되니까 그 관계가 역전됐다. 내가 좀 더 관심을 갖게 되더라. 그래서 먼저 정식으로 사귀자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이어왔고 지금은 그 마음이 더 커진 것 같다"라며 아낌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서로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지면서 애틋함은 더욱 커졌다. 이 씨도 이 점을 인정하며 "시즌을 시작하면 1년에 열 번 정도밖에 못 만난다"면서 "서로 합숙 생활을 하기도 하고 여자 팀들은 주중에 경기가 있다. 반면 남자 팀들은 대부분 주말에 경기가 있다. 쉬는 날도 잘 안 맞는다. 그러다 보니 서로 통화를 하면 할 이야기가 많더라. 또 오랜만에 만나다 보니 볼 때마다 설렘이나 애틋함이 있다. 같은 일을 하다 보니 각자 기분도 잘 이해하고 서로의 팀을 응원해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점점 마음이 커지더라"라고 이야기했다.

ⓒ김봄봄 분석관 제공

어찌 보면 국내 최초인 축구 분석관 부부이기 때문에 서로 나누는 대화도 남다를 법했다. 이에 이창근 분석관은 "서로 경기를 챙겨본다. 아내가 전남 홈경기나 원정 경기를 직접 보러 오는 경우도 있다"면서 "경기를 본 후에 만나면 그날 경기에 대한 전술적인 부분이나 궁금한 점, 본인의 생각 등을 많이 이야기한다. 나도 아내와 경주한수원 경기를 같이 보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둘이 나눌 이야기가 축구 이야기밖에 없으니 그런 것 같다"라며 웃음을 보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부부는 축구에 진심이었다. 이 분석관은 "경기 끝나고 외박을 받으면 경기장 근처에서 만난 뒤에 저녁을 먹는다. 식사하면서 또 그날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서 "오히려 너무 축구 이야기만 하다 보니 내가 중간에 끊을 때도 있다. 가끔 서로 언성을 높였을 때도 생각해보면 축구 얘기를 하다가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각자 전술을 보는 눈이 있는데 서로 주장을 내세우면서 '내가 맞다, 네가 틀리다'며 소소한 다툼을 한다. 크게 싸울 일이 없었는데 돌이켜 보면 꼭 축구 이야기로 싸움이 시작됐다"라고 말했다.

김봄봄 분석관도 이를 인정했다. 그는 "축구는 하나의 장면으로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면서 "내 생각만을 고립시키지 않으려면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남자 친구도 워낙 경험이 많다. 현실적인 조언을 많이 해주다 보니 내가 많이 물어본다. 남자 친구이자 예비 신랑이어서가 아니라 정말 존경하는 분석가 중에 한 명이라 축구에 관해 많이 물어보는 편이다. 또 남자와 여자의 피지컬 차이에서 오는 축구 스타일이 다르지 않나. 그런 면에서 남자 친구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서 티격태격할 때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축구 관련 대화는 김봄봄 분석관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김봄봄 씨는 "남자와 여자가 축구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이 없지 않나"라면서 "밥상에 앉으면 남자 친구 보다도 내가 먼저 축구 관련 이야기를 꺼낸다.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게 '오늘은 뭘 준비했고 뭐가 잘 됐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본 상황이 그것과 다르면 '아까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던데?'라고 질문하면서 이를 여자 선수들의 특성과 고려해 연결 지으려 한다. 그렇게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생각을 이어 나간다. 사실 남자 친구가 많이 피곤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물론 다른 연인들과 같은 데이트를 즐기기도 한다. 이창근 씨는 "축구 이야기가 아니면 나중에 여행 갈 곳이나 서로 먹고 싶은 것들, 시즌이 끝나면 무엇을 할지 등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면서 "올해는 결혼 날짜를 잡았다 보니 워낙 바빴다. 서로 볼 시간도 많지 않아서 예식장은 가보지도 않고 전화해서 비는 날짜에 잡은 것이다. 서로 시간이 안 맞다 보니 웨딩 촬영도 석 달 전에 겨우 하고 왔다. 심지어 사진은 내가 시간이 안 돼서 아내 혼자 부산으로 가서 찾아왔다. 올해는 몇 안 되는 쉬는 날에도 어디 같이 다니지도 못하고 각자 결혼 준비에 바빴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김봄봄 씨 역시 "서로 식성이 비슷하다. 그래서 어느 맛집을 갈지 고민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면서 "맛있는 음식은 또 먹고 싶지 않나. 그래서 최대한 빠르게 소화시키기 위해 어떤 산책 코스가 좋을지 검색하고 걸으면서 사진도 찍는다. 여행 다니는 것도 좋아한다. 각자 광양과 경주에 있으니 그 중간 지점인 부산과 같은 곳에 가서 여행을 즐긴다"라고 전했다. 이어 기자가 "산책하면서도 축구 이야기는 안 하느냐"라고 묻자 김봄봄 분석관은 "생각해보니 그렇다"라며 웃음을 짓기도 했다.

서로 나름의 직업병(?)을 탈피하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김봄봄 씨는 "월드컵 기간에는 경주한수원이 아직 경기가 남아 있어서 남편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면서도 "보통 축구 경기를 같이 보면 '상대가 이렇게 나왔기 때문에 저 팀이 압박을 계속 당할 수밖에 없어'라면서 경기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서 가끔은 축구를 일반인들처럼 재미있게 보려고 만 원 내기를 하며 즐기기도 한다. 시즌 중에는 워낙 경기가 많이 보다 보니 그런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올해 K리그는 카타르 월드컵의 영향으로 시즌에 일찍 돌입한 뒤 빠르게 마무리됐다. 전남의 경우 지난 10월 15일 경기가 시즌 최종전이었다. 하지만 김봄봄 분석관의 경주한수원은 올 시즌 리그 2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를 거쳐 챔피언 결정전까지 진출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26일 챔피언결정전 2차전을 끝으로 시즌이 끝났다. 챔피언 결정전이 끝난 뒤 예비신부는 휴가를 받았지만 예비신랑은 다시 시즌 준비에 돌입했다. 이들의 결혼식 준비는 더욱 험난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주변 지인들에게 인사를 보내는 덕목은 잊지 않았다. 특히 이들이 처음 만난 직장의 전 동료들은 꽤나 놀라웠을 법했다. 이에 이창근 분석관은 "결혼 전에 인사드리기 위해 얼굴을 뵈러 갔다. 그런데 우리 관계를 모르고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대표님만 살짝 눈치를 채셨다고 하시더라"라며 "전남 선수들에게는 미리 여자 친구가 분석관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여자 분석관이 흔치 않다 보니 괜스레 자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자 친구가 있는 것을 넘어서 무슨 일을 하고 어디 팀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 말했다"라며 아내 사랑을 드러냈다.

아내 김봄봄 분석관 역시 "내가 선수 생활할 때는 머리가 굉장히 짧았다. 체격도 굉장히 좋아서 지금 보는 사진과는 많이 다르다"면서 "지금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선배나 동기, 그리고 지도자 생활 때 가르쳤던 제자들까지 다 믿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머리가 짧았던 선수 시절을 보다가 이렇게 결혼까지 하는 것을 보니 인간 성공이라면서 '환골탈태'라고 말하더라"라며 웃음을 보였다. 김봄봄 분석관은 2년 동안 실업 선수로 활약한 뒤 지도자 생활을 했다.

ⓒ김봄봄 분석관 제공

그렇다면 이들이 꿈꾸는 결혼 생활은 무엇일까. 먼저 이창근 씨는 "우선 가정이 먼저 안정돼야 우리가 하는 일도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결혼 후 1년 동안은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자고 했다. 또 남녀 분석관이 부부가 된 것도 특이한 사례지 않나. 각자 더 발전해서 업계에 이름을 널리 알리고 싶다. 결혼을 하면서도 서로 더 높은 위치에 가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서로 응원해주면서 부족한 부분은 채워 주려고 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각자 원하는 위치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창근 씨는 "예비 신부에게도 한 마디 하고 싶다"면서 "나라는 사람을 믿고 선택해줘서 너무 고맙다. 축구 외적으로는 표현도 많이 못 하고 자주 보지 못해서 미안한 부분이 많다. 물론 가정을 꾸려도 앞으로의 생활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떠한 시간이라도 쪼개서 더 아끼고 사랑하고 자주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김)봄봄 씨 한 번 지켜봐 주세요. 더 잘 될 겁니다"라며 예비 신부에 대한 아낌없는 응원도 보냈다.

예비 신부 김봄봄 분석관 역시 소감을 전했다. 그는 "경주한수원 송주희 감독님도 선수 출신인 양현정 감독님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다"면서 "감독님이 지지를 많이 해주신다. 분석관 부부로서 좋은 선례를 남겨야 여자 선수들이 은퇴하고도 비슷한 길을 걸을 수 있지 않느냐면서 말이다. 나도 같은 생각으로 여자 분석관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분석 이전에 결국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선수들의 좋은 파트너가 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경력이 따라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남편이 생겼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정말 많이 존경하는 분석관이다"라며 "그 마음 변치 않고 늘 지금처럼만 한다면 좋은 사람이자 좋은 분석관, 그리고 좋은 부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늘 여보 편이니까 어디 가서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소신껏 열심히 하면 좋겠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라며 남편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야심 넘치는 이 분석관 부부의 결혼식은 오는 17일 오후 두 시 고양시 일산동구에 위치한 더테라스 11층에서 거행된다. 둘의 결혼 소식을 전한 전남 SNS 계정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두 사람은 국내 최초 축구 분석관 부부임을 명심하고 괴롭거나 힘들 때도 서로를 분석하지 않을 것임을 맹세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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