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 카타르 도하=조성룡 기자] 사람 잡는 월드컵이다.

FIFA 월드컵 카타르 2022에서 취재진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벌써 세 명이 사망했다. 시작은 영국 취재진이었다. ITV 기자 로저 피어스가 미국과 웨일스의 B조 조별리그 경기 전 숨졌다. 이후 미국 기자 그랜트 월이 아르헨티나-네덜란드 8강전 현장에서 쓰러져 사망했고 카타르 방송사 알 카스TV 소속 사진기자 알 미슬람도 취재 도중 세상을 떠났다.

취재진이 연달아 사망했지만 카타르 월드컵 메인미디어센터는 따로 추모 분위기는 없다. FIFA 인판티노 회장이 애도 성명을 발표했고 그랜트 월 기자의 자리에 추모 꽃다발을 놓았을 뿐 다른 움직임은 없다.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안타까워 할 뿐이다. 이들 또한 추모만큼 월드컵의 분위기를 각자의 국가에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월드컵 현장에서 취재진이 사망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랜트 월 기자의 경우 유족인 동생이 "우리 형은 그냥 죽은 것이 아니라 살해당한 것이라 믿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고인이 성 소수자를 탄압하는 카타르 정부를 비판해왔고 대회 개막 초기에는 성 소수자를 지지하는 무지개 티셔츠를 입고 경기장에 입장하려다 제지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의 수많은 취재진들은 이들의 사망 원인에 대해 조심스럽게 '과로'의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 취재진만 고충을 토로할 줄 알았다. 그런데 타국 취재진 또한 "정말 힘든 월드컵"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한 일본 기자는 "지금까지 월드컵 취재를 수 차례 해왔지만 이번 월드컵이 세 배는 힘들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원인은 무엇일까? 현장에 온 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다. 카타르가 외친 '콤팩트 월드컵'이 오히려 취재진에게 독이 되고 있다. 도하 반경 50km 안에 8개 경기장이 모두 자리해 있다. 과거 월드컵과 달리 대부분의 경기를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다. FIFA는 취재진에게 하루 두 경기까지 취재를 허용했다. 조별리그부터 16강까지 꽤 많은 취재진이 휴식일 없이 두 경기씩 소화했다.

게다가 추가적인 업무도 발생한다. 8개 경기장이 모두 있다는 것은 각 팀의 베이스캠프와 훈련장 또한 다 모여있다는 뜻이다. 경기 뿐만 아니라 경기 하루 전날 열리는 공식 기자회견, 각 팀의 훈련까지 소화하면 그야말로 '지옥의 일정'이 된다. 이렇게 11월 21일부터 12월 6일까지 버텨야 했다. 8강을 앞두고 이틀 경기 없는 휴식일이 주어졌을 뿐이다.

자연스럽게 노동 시간 또한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경기 시간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하루 노동 시간이 12시간 넘는 경우는 다반사다. 오후 1시 경기와 오후 10시 경기를 취재하는 경우 오전 11시 출근 새벽 2~3시 퇴근이 되어버린다. 그랜트 월 기자도 SNS에 격무와 스트레스에 대한 글을 올린 바 있다.

극심한 기온 차이도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실 카타르는 공식적으로 한낮 기온이 31도 안팎이다. 하지만 땡볕이 내리쬐는 순간 체감온도는 급격히 올라간다. 35도 가까이다. 하지만 경기장에 들어가는 순간 체감온도는 20도 안팎으로 줄어든다. 한국에서 아침 최저기온이 전날보다 15도 이상 하강하면 한파경보가 발령된다. 카타르에서는 몇 시간 마다 15도 가까이 기온 변화를 체감해야 한다.

월드컵 현장에 베테랑 기자들이 많은 것도 건강 측면에서는 우려할 만한 점이다. 유럽 취재진들 중에서는 60대 가까운 '노기자'들이 베낭을 메고 현장을 누비고 있다. 체력적으로는 힘들 수 밖에 없다. 젊은 취재진들도 힘들어 하는 카타르 현장이기에 더욱 버겁게 느껴질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카타르 월드컵이 끝나간다는 것이다. 토너먼트에 들어서면서 단계마다 이틀 씩 휴식일이 주어져 숨통도 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타르에서는 국적 다른 취재진끼리 "건강 유의하라"는 인사를 주고받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쓰러지는 취재진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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