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 카타르 도하=조성룡 기자] 옛날에 '네모의 꿈'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1996년 12월 발매된 W.H.I.T.E의 3집 타이틀 곡인 '네모의 꿈'은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 보면 /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라며 온통 네모로 가득한 세상을 노래한다. 그러면서 '지구본을 보면 우리 사는 지구는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 건지 몰라'라면서 '어쩌면 그건 네모의 꿈일지 몰라'라고 말한다.

FIFA 월드컵 카타르 2022에 참여하면서 이 '네모의 꿈'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가수가 노래하는 '네모'를 '중국'으로 바꾸면 딱이다. 여기는 온통 중국이다. 중국과 카타르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 하지만 카타르 월드컵과 카타르 사회를 움직이는 부속품은 온통 중국이다.

일단 스폰서부터 살펴보면 완다 그룹이 FIFA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한 단계 아래인 FIFA 월드컵 파트너에 '중국에서 1등, 세계에서 2등'이라는 광고를 주구장창 트는 Hisense 하나가 있…는줄 알았다. 알고보니 두 개가 더 있었다. 경기 전 경기장 분위기를 띄우는 DJ는 옆에 'vivo'라는 로고와 함께 디제잉을 한다. 사실 무슨 음향회사인 줄 알았다. 알고보니 중국의 스마트폰 제조회사였다.

또 다른 FIFA 월드컵 파트너인 '蒙牛'는 중국 회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통 무슨 회사인지 짐작가지 않았다. 이 궁금증은 카타르 월드컵 메인미디어센터에서 풀렸다. 무료로 제공되는 커피 옆에 '카타르 월드컵 공식 우유'라며 이곳의 제품이 놓여있기 때문이었다. '멍니우'라 불리는 이 회사는 중국의 유제품 및 아이스크림 회사다.

심지어 많은 관계자들과 팬들이 카타르에서 구입하는 기념품의 대부분은 중국산이다. 일부 기념품의 물량이 부족할 경우 "중국에서 만들어 날아와야 해 재입고가 꽤 늦을 것"이라는 농담까지 나온다. 중국 쇼핑 사이트에서 카타르 월드컵 기념품을 찾으면 현지보다 더 저렴하게 '진짜'를 구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온다.

사람도 그렇다. 경기장을 돌아다니면 중국 국기를 든 중국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중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않아도 중국 관광객이 있는 것이다. 심지어 취재진마저 중국인들이 많다. 한국과 일본이 16강에서 탈락한 이후 동아시아 취재진 중 중국의 비율이 급격하게 늘었다. 애초에 중국이 본선에 나오지 않는 만큼 결승까지 체류하는 중국 취재진이 제법 많다.

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면도 있다. 방송을 위해 카타르에 방문한 중국 여성 리포터들의 경우 굉장히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니기에 쉽게 눈에 띈다. 하지만 중국 대신 주로 아르헨티나나 브라질 등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페이스페인팅을 볼에 하고 다닌다. 국가대표 유니폼 등 자국 정체성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 한국과 일본 취재진과는 분명 다르다.

카타르에 오래 체류할 수록 확실히 느껴진다. 중국은 정말 선수단 빼고 다 왔다. 문제는 유일하게 카타르에 오지 못한 '선수단'이 월드컵에서는 정말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둥근 지구에서 온통 네모난 게 가득한 이유가 네모의 꿈이라면 중국 선수 없는 월드컵에서 온통 중국이 가득한 이유는 아마 '중국의 꿈'이라서 그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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