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벤투 감독, 떠난다니 이제 와서 아쉬우신가요?

ⓒ 대한축구협회 제공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파울루 벤투 감독의 4년여 여정이 마무리됐다.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6일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전에서 브라질에 1-4로 패하며 월드컵을 마쳤다. 벤투 감독은 대한축구협회와 재계약을 하지 않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고 브라질전이 한국을 이끌고 치른 마지막 경기였을 확률이 대단히 높아졌다. 그 동안 고생했다. 대한민국의 월드컵 본선 10회 연속 출전을 달성했고 극적인 승부 끝에 본선 무대에서도 16강을 달성했으니 성과는 다 이뤘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벤투 감독의 4년은 아름다웠다.

벤투 감독과 대한민국 축구가 함께 했던 지난 4년
브라질전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16강 진출에 성공했으니 승패에 연연하지 말고 멋지게 싸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막상 브라질전이 다가오니 ‘그래도 혹시나’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물론 브라질의 벽은 높았다. 대한민국 선수 중 누구 하나 못한 선수들이 없었는데 브라질은 차원이 다른 축구로 우리를 압도했다. 하긴 K리그에서 역대급 활약을 펼치며 우리를 열광케 한 로페즈나 세징야, 말컹 같은 선수들이 브라질에서는 대표팀 7군쯤 될까 말까할 테니 그렇게 이해하면 쉬웠다. 거기에 브라질은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로테이션을 가동했고 우리는 모든 걸 쏟아 부은 뒤 16강에 올라왔다.

화가 나는 경기는 아니었다. 억울하게 진 것도 아니고 심판 판정이 애매하지도 않았다. 변명할 수 없는 패배였다. 아마 벤투 감독이 전반 내내 수비만 하다가 후반에 역습을 노리는 형태로 플레이를 했다면 이런 큰 점수차로 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10명의 수비수들을 세우고 90분 동안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리는 경기를 펼치기보다는 이렇게 꽁무니를 빼지 않고 정면 대결한 벤투호에 박수를 보낸다. 아마 10명의 수비수들을 세웠다면 우리는 더 적은 실점을 했겠지만 90분 동안 유효슈팅 하나 못 때리고 후회에 가득찬 경기를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0-2로 지나 이렇게 해서 1-4로 지나 지는 건 똑같다. 잘했다.

이제 벤투 감독의 시대는 막을 내린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나는 벤투 감독을 향한 이중적인 태도가 참 씁쓸하다. 언제부터 언론과 축구인, 대중이 벤투 감독에게 그렇게 호의적이었다고 그가 떠난다니 마치 4년간 열렬히 지지해 준 사람이 떠나는 것처럼 아쉬워하나. 4년 동안 벤투호를 그렇게 흔들어 놓고 이제 와서 그런 적 없던 것처럼 행동하는 게 참 아쉽다. 마음 같아서는 실명 하나 하나를 다 거론하고 싶지만 참는다. 벤투호가 망할 거라고 호언장담하던 이들, 그리고 망하기를 바라던 이들, 걱정하는 척하며 훈수를 두던 이들은 다 어디로 갔나. 하루 아침에 벤투 감독이 한국을 떠나는 걸 아쉬워하고 벤투 축구에 감명 았다는 이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그런 생각이 든다. 있을 때 잘하지.

ⓒ대한축구협회

벤투 감독이 이강인과 원수 지간인가?
툭 까놓고 이야기 해보자.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빼고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으로 돌아가 보자. 벤투호는 아주 편안하게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지난 2018년 러시아월드컵 당시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대한민국은 4승 3무 3패를 기록했는데 이번 월드컵 최종예선에서는 7승 2무 1패라는 압도적인 결과를 내며 월드컵 본선에 올랐다. 그런데도 언론과 축구인, 다수의 팬들은 마치 벤투 감독이 무능력한 것처럼 바라봤다. 갑자기 벤투호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잘해졌나. 누가 보면 벤투호가 무능력했다가 월드컵 때 ‘포텐’이 터진 걸로 오해하기 딱 좋다. 참고로 2018년 9월 우리나라의 FIFA 랭킹은 55위였는데 2022년 10월 기준으로는 28위다. 이 정도면 벤투는 이미 월드컵 전부터 할 걸 다 했다.

아시아 최종예선 이후로 돌아가 보자. 텔레비전과 유튜브에 나오는 축구인들은 선수 기용 하나 하나 집어가며 벤투 감독을 비난했다. 마치 벤투 감독이 무슨 선수 기용에 엄청난 비리라도 저지르고 있는 것처럼 흔들어댔고 대중은 거기에 동조했다. 우리의 ‘전설적인 스타’들이 그렇다니 너도 나도 벤투 감독이 잘못하고 있다고 했다. 평가전을 치를 때마다 “누구를 안 써서 그랬다”고 훈수를 뒀고 그런 갈등을 조장하며 결국 자신들의 이득을 챙겼다. 벤투 감독이 조현우를 일부러 배제하고 이강인을 싫어하는 것처럼 갈등 구조를 만들었다. 대중이 분노하는 지점을 정확히 알고 있는 듯했다. 벤투 감독을 흔들던 축구인들이여, 가슴에 손을 얹고 이야기 해보자. 내국인 감독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었겠는가.

아주 답답할 노릇이다. 대한민국이 월드컵을 앞두고 국내에서 연이어 평가전을 치를 때면 민망할 정도의 집요한 질문이 이어졌다.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는 “이강인을 기용할 생각인가”라고 물었고 경기 후에는 “이강인은 오늘 경기에 왜 기용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이 가장 먼저 나왔다. 월드컵을 앞두고 평가전 막판까지 매번 똑같은 질문이 나오자 벤투 감독이 한 번은 통역을 다 듣지도 않고 질문자가 ‘이강인’이라는 이름을 꺼내자 한숨을 쉬며 얼굴을 맨손으로 쓸어 내리는 장면도 목격했다. 축구장을 출입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지인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도 이거였다. “벤투 감독은 왜 이강인을 싫어해?” 방송에 나갈 때면 대본에도 그렇게 써 있었다. “이강인은 이번에도 못 나올까요?”

상주상무 시절 경기장을 찾은 벤투 감독과 대표팀 코치의 모습. ⓒ프로축구연맹제공

그놈의 지겨운 ‘빌드업 축구’
여기에 언론과 축구인, 대중은 또 이상한 프레임을 씌웠다. 바로 ‘빌드업 축구’다. ‘빌드업’은 쉽게 말해 경기를 풀어나가는 형태를 말하는 것뿐이다. 그냥 ‘공격 전개’나 ‘공격 작업’이라고 이전부터 쓰던 말이다. 그런데 벤투 감독을 향해서는 아주 지독하리만치 ‘빌드업 축구’ 프레임을 씌웠다. ‘빌드업’이라는 게 패스를 통해 상대 압박을 풀어내는 걸 뜻하는데 “벤투 감독식 빌드업 축구가 과연 통할까”라는 지적이 수도 없이 나왔다. 세상에 ‘빌드업’ 없는 축구가 어디있나. 조금 더 깊게 바라보자면 짧은 패스를 통해 압박을 풀어내는 형태가 ‘빌드업’이라고 봤을 때 반댓말은 ‘뻥축구’ 정도 되겠다.

그런데 ‘뻥축구’는 또 안 좋은 건가. 길게 전방으로 차고 위에서부터 압박하는 축구는 죄악인가. ‘롱볼 축구’도 결국에는 ‘빌드업’인데 그렇게 따지면 ‘빌드업 축구’가 아닌 축구가 없다. 벤투 감독의 축구를 ‘빌드업 축구’라고 단정짓고 “빌드업 축구하신다면서 경기력이 왜 그래요?” “빌드업 축구가 대한민국 스타일에 맞나요?”라고 수도 없이 물어왔다. 상대에 따라 뒷공간도 공략하고 후방에서부터 패스도 하고 바뀌는 게 당연한데 월드컵 본선 무대에 나간 감독의 스타일을 우리는 딱 다섯 글자로 정리해 버렸다. ‘빌.드.업.축.구’다. ‘티키타카’나 ‘빌드업 축구’나 다 더 높은 확률의 패스를 통해 역습 가능성을 차단하고 상대에게 우위를 점하는 축구다. ‘벤투 감독이 한국에 맞지 않는 빌드업 축구를 구사한다’는 건 말장난에 불과하다.

감독의 축구 철학을 이렇게 한 단어로 정리하는 건 안 했으면 한다. 유사품으로 ‘병수볼’이 있다. 나는 김병수 감독의 축구를 열심히 봐도 저걸 어떻게 ‘병수볼’이라는 세 글자에 담을 수 있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점유율을 높이고 짧은 패스를 통해 전진하고 압박하고 뭐 그런 수준 높은 축구인 건 알겠는데 그건 모든 감독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그런데 그걸 ‘병수볼’이라고 너무 쉽게 정리한다. 내가 김병수 감독에게 물어봤더니 “나도 ‘병수볼’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데 언론에서는 매번 김병수 감독을 만날 때마다 자꾸 ‘병수볼’을 묻는다. 과거 조광래 감독의 ‘만화축구’는 또 어떤가. 추구하는 축구 스타일을 한 단어로 정리하면 그 외의 것들과는 담을 쌓아야 하는 괴리가 생긴다. ‘빌드업 축구’ 아주 이 단어 지겨워 죽겠다.

YTN은 벤투 감독이 성과를 내자 유튜브 썸네일 화면을 이렇게 바꿨다. ⓒ유튜브 캡처

벤투호를 흔들던 이들의 재빠른 태세전환
4년 내내 그놈의 ‘빌드업 축구’로 비판 받고 이강인과는 한이 맺힌 원수처럼 묘사하며 제발 벤투호가 망하길 물 떠놓고 빌던 이들은 월드컵 조별예선 첫 경기 우루과이전을 본 뒤 곧바로 태세전환에 들어갔다. 그래놓고는 마치 벤투 감독이 이 시대의 구원자이며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위인으로 모시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지지를 보내던가 영 못 미더웠으면 말을 말던가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심지어 공정한 뉴스를 보도한다는 YTN은 벤투 감독을 조롱하는 듯한 유튜브 썸네일을 걸어놓고 ‘조림돌림’을 하다가 벤투호가 예상(?)외로 선전하자 썸네일을 슬쩍 바꾸기도 했다.

갈등을 조장하며 한참 장사를 했던 이들은 이제 이 갈등을 벤투 감독의 재계약 무산과 관련해 벤투 감독이라는 ‘선’과 대한축구협회라는 ‘악’의 구도로 몰아가 더 장사를 할 것이다. 이제 벤투 감독에 대한 찬양이 이어질 것이다. 그래놓고 다음 대표팀 감독의 전략과 전술, 선수 기용을 문제 삼으며 “벤투 감독 때는 안 그랬는데” “벤투 감독이 그립다”면서 그리워할 것이다. 4년 임기 내내 흔들어 제끼고 마지막 일주일 동안 박수를 보낸 게 전부인데 마치 벤투 감독을 전폭적으로 신뢰해 줬던 것처럼 행동할 것이다. 4년 내내 ‘빌드업’과 ‘이강인’만 물었던 이들이 마치 벤투 감독의 능력을 예전부터 믿어왔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만큼 이중적인 게 또 있을까.

나는 이번 대표팀 감독이 벤투여서 믿은 게 아니다. 누가 왔더라도 대표팀 감독이 보장된 4년의 임기 동안 지원을 받으며 자신의 축구를 보여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을 기대해서 그를 지지했다. 그건 그 자리에 벤투 감독이 아니라 다른 감독이 있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적어도 과정이 공정하면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문제 삼을 게 없다. 물론 이 철학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차기 감독이 누가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새롭게 감독으로 부임하면 또 믿어볼 참이다. 감독 경질의 한계를 주장하는 나의 마지노선은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탈락 직전에 놓이는 것이다. 그 정도 수준까지 가는 게 아니라면 합당한 비판은 할 수 있어도 경질을 논하거나 조롱 섞인 비난은 하지 말자.

다음 감독에게는 이러지 맙시다
선수들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 많은 경험을 했다. 4년 뒤가 더 기대되는 젊은 선수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언론과 축구인, 팬들도 이번 월드컵을 통해 뭔가 얻었으면 한다. 되도 않은 억지 비난으로 감독을 흔드는 게 대한민국 축구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에는 좀 느꼈으면 좋겠다. 쉼 없이 흔들다가 결과가 나오자 태세전환을 하는 게 얼마나 비겁한 짓인지도 기억했으면 한다. ‘벤투’여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 누가 있었던 마찬가지다. 벤투 감독을 신나게 흔들었다가 이제 와서 떠난다고 아쉬워하거나 태세전환을 한 이들이여, 다음 감독에게는 이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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