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대한민국, 16강 상대가 ‘최강’ 브라질이라 더 반갑다

ⓒ대한축구협회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이제 브라질을 만난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오는 6일(한국시간) 새벽 4시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 브라질과의 경기를 치른다. 희박한 경우의 수를 뚫고 극적으로 16강에 오른 대한민국이 만나는 상대는 하필이면 세계 최강이라는 브라질이다. 브라질 축구야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세계 최강으로 인정한다, 현재 FIFA 랭킹도 1위다. 월드컵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고 우승만 무려 5번을 기록했다. 4강에 단 한 번 오른 걸 ‘신화’라고 표현하는 우리와는 격차가 상당하다.

대한민국이 극적으로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뒤 브라질이 속한 G조 경기가 열렸다. H조에서 2위를 차지한 대한민국은 G조 1위와 격돌하는 상황이었다. 누가 봐도 이미 2연승을 기록 중인 브라질이 유력한 조 1위 후보였다. 그런데 막상 G조 최종전이 열리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브라질이 카메룬에 0-1로 패했기 때문이다. 같은 시각 스위스는 세르비아를 3-2로 이겼다. 스위스가 한 골만 더 넣었으면 조 1위를 차지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16강 상대가 스위스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스위스를 응원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브라질은 카메룬전에 패하고도 1위를 확정지어 대한민국의 16강 상대가 됐다.

나는 오히려 우리가 16강전에서 브라질을 만난 게 더 좋다. 이왕 나간 월드컵이라면 강팀과 많이 대결했으면 한다. 행운의 조에 편성되거나 토너먼트에서도 운이 좋게 올라가는 것도 좋지만 아주 센 팀과 격돌해서 우리의 한계가 어딘지 도전해 보는 게 더 월드컵 답다고 생각한다. 월드컵에서 요행이라는 건 없다. 브라질 같이 강한 팀을 이겨야 8강에 오를 자격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이치다. 나는 G조 최종전에서 브라질이 대한민국의 상대가 되길 열심히 응원했다.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브라질을 만나면 우리나라 선수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꼭 보고 싶었다. 물론 스위스도 좋은 팀이지만 월드컵은 자고로 브라질이나 독일, 스페인, 프랑스 등을 만나서 싸우는 대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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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직히 16강 진출 가능성을 낮게 봤었다. 그저 조별예선 세 경기에서 후회없는 승부를 펼치고 지탄 받지 않을 만한 결과만 나온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무 1패에 ‘졌잘싸’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극적으로 16강에 올랐다. 루이스 수아레즈를 경기장에서 지워버렸고 월드컵 새내기 조규성은 가나전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헤딩력으로 두 골이나 뽑아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아예 우리나라 경기에 나오지도 않았다. 아, 나왔는데 팀을 위해 하나도 한 게 없어서 안 나온 것처럼 보였다. 선수들은 이런 결과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했겠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기대이상의 결과인 건 분명하다.

조별예선 탈락과 16강 진출은 아주 큰 차이가 있으면서도 별 차이가 없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16강 진출은 조별예선 탈락에 비해 그래봤자 한 경기를 더 치르는 거니까 조별예선 탈락과 16강 진출은 뭐 거기서 거기다. 16강에서 탈락하면 귀국 일정이 조별예선 탈락 때보다 사흘에서 나흘 뒤로 미뤄질 뿐이다. 16강에 올랐다고 한국 축구가 조별예선 탈락을 하던 시절에 비해 천지개벽 수준으로 바뀔 것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제부터 우리가 치르는 남은 월드컵은 ‘보너스 게임’이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우리는 16강 진출이라는 염원을 이뤄냈고 팬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안겼다. 브라질을 상대로 쩔쩔매다가 패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할 만큼 다 했다. 부담없이 싸웠으면 한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매우 좋겠지만 언제든 여기에서 멈춰도 된다. 물론 ‘보너스’는 받으면 받을수록 기분은 좋다.

반대로 16강전은 아주 큰 의미를 지닌 경기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이 엄청난 인프라가 갖춰진 곳에서 최강 전력을 구성한 팀과 맞붙을 기회는 흔치 않다. 더군다나 홈 경기도 아니고 전세계 축구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3국에서 우리의 전력을 가늠할 기회를 얻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A매치 평가전을 이렇게 성사하려면 이건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나라와 상대팀 1군이 소집돼 제3국에 오기도 어렵고 강한 팀을 상대하려면 천문학적인 초청 비용을 줘야한다. 그런데 우리는 평가전도 아니고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브라질을 만나게 됐다. 그것도 공짜로, 아니 오히려 돈을 받으면서 경기를 한다. 스위스를 만났으면 섭섭할 뻔했다. 이럴 때 브라질과 제대로 격돌해 보니 얼마나 반가운가.

브라질을 만나서 대등하게 싸운다면 더 좋겠지만 압도적으로 밀리는 경기를 해도 된다. 이미 대한민국은 극적으로 16강 진출을 달성하면서 역사에 남을 월드컵을 만들었다. 16강에서 패한다고 갑자기 여론이 바뀌어 벤투 감독과 부진한 선수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 않았으면 한다. 이미 조별예선 세 경기를 통해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16개국에 들지 않았나. 물론 대한민국은 국내에서 축구를 대하는 일부 언론과 팬들, 축구인들의 자세나 축구 인프라 등 모든 면이 아직 16강 수준이 아니다. 우리에게 월드컵 16강은 우리의 눈높이만 높게 만들 수도 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이 이번 월드컵에서 축구 실력이 가장 뛰어난 16개국에 들었다는 건 자랑스러워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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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브라질전은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브라질? 그래서 뭐 어쩌라고?” 정신으로 시원하게 붙어봤으면 한다. 세계 최강과 격돌하는 건 도전자 입장에서 늘 흥미롭고 귀한 경험이다. 선수들 역시 가장 강한 팀과의 경기에서 쉴 새 없이 측면을 돌파하고 세계적인 공격수를 막아내고 철옹성을 뚫고 골을 뽑아낸다면 자신의 가치를 훨씬 더 높일 수 있다. 아마 우리의 16강전 상대가 스위스였다면 스위스 정도는 당연히 잡아야 한다는 여론, 우리가 원정 최초의 8강 진출을 달성할 수 있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강했을 것이다. 벌써 8강전에서 일본을 만날 생각부터 했을 것이다. 스위스를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스위스를 무시할 우리네 분위기를 지적하고 싶다.

그렇게 한껏 대표팀을 띄워놓고 결과가 나오지 못하면 비난하던 걸 여러 번 경험했다. 그래서 오히려 브라질전이 부담감이 더 적다. 이기면 정말 말도 안 되게 좋은 거고 져도 박수를 보낼 수 있는 강한 상대를 만났기 때문이다. 해보고 져도 그때 지자. 나는 일단 브라질을 상대할 우리 선수들의 모습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브라질이 정말 강한 건 맞지만 경기 전부터 꽁무니를 빼고 힘빠지는 소리를 하는 것보다는 신나고 즐겁게 브라질전을 맞이하는 건 어떨까. 브라질 같은 강팀을 만나면 그 기량 자체에 밀리기 전에 상대의 인지도와 기운에 눌리는 경우가 더 많다. 뭐 내 돈 걸고 경기 보는 것도 아닌데 시원하고 멋진 한판을 펼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면 된다. 대한민국이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만나는 첫 번째 역사적인 경기여서 나는 이 브라질전이 더 반갑다.

이번 월드컵에 나선 선수 중 상당수와 인터뷰도 했고 사적인 대화도 나눠봤다. 친분이 오래된 이들도 꽤 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선수 중에 이번 월드컵에 나선 이들은 그 누구도 상대가 브라질이라고 벌써부터 벌벌 떨진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경기 전부터 ‘오늘 경기 끝나면 저 유명한 선수하고 유니폼 교환해야지’라는 바보 같은 생각으로 경기에 임하는 선수는 월드컵에 나오지도 못한다. 네이마르건 티아구 실바건 ‘뭐 어쩌라고’의 마인드로 임해줄 거라 믿는다. 역대전적에서는 한참 밀리지만 월드컵에서는 처음 싸우는 거니 확률은 반반이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도, 이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도 신나게 즐겼으면 한다. 오늘은 1999년 브라질전에서 넣었던 김도훈의 골 장면을 한 번 더 찾아보고 잘 생각이다. 16강전 상대가 스위스가 아니라 브라질이어서 더 반갑다. 멋지게 싸우고 지면 그때 지는 거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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