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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대한민국이 극적으로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너무 너무 기쁘다. 승부가 극적이었던 이유도 있고 경우의 수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도 놀랍다. 이렇게 가슴 졸이며 경기를 봤던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대표팀 축구는 시시해. 리그가 진짜 재미지’라고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생각도 깨졌다. 지난 밤 열린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는 역사에 남을 승부가 됐다. 통쾌하고도 행복하다.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월드컵 16강 진출 이상의 기록을 세 번 달성하게 됐다. 매번 그 의미가 남달랐다. 2002년 4강 신화야 말할 것도 없고 2010년 남아공월드컵의 16강 진출도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번 2022년 카타르월드컵 16강에는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 왜 이번 대한민국의 극적 16강 진출이 더 통쾌하고 짜릿한지 생각을 정리해 봤다. 물론 개개인의 생각도 존중한다. 어디까지나 칼럼으로 담는 의견일 뿐이다. 이런 서사를 만들어낸 벤투호의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아, 물론 가나 선수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참고로 말하지만 오늘 칼럼은 중립적이지 않다.

1. 벤투호를 무작정 비난하던 사람들에게 날린 통쾌한 반박

나는 벤투호를 지지했다. 과거 칼럼에서부터 벤투 감독을 믿어야 한다고 줄곧 주장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벤투 감독과 같은 고양시 주민이어서도 아니고 벤투 감독이 인간적으로 좋아서도 아니다. 한 번 대표팀을 맡겼으면 주어진 기간 동안은 믿고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벤투 감독이 아니라 다른 감독이 왔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과정이 공정하면 설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우리는 지금껏 한껏 대표팀 감독을 치켜 세우다가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여론의 뭇매 속에 작별한 경험이 많았다.

그래서 더 벤투호를 지지했다. 나는 벤투 감독이 월드컵 이후 떠나고 새로운 감독이 온다고 해도 지지할 것이다. 선수 선발에 논란이 있거나 납득할 수 없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당연히 비판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감독이라면 믿고 기다려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거봐. 벤투 감독이 옳았지?’라고 결과론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마치 벤투 감독이 무능력하지만 연줄을 붙잡고 있어 대표팀에 있는 것처럼, 귀를 막고 입을 닫은 사람처럼 몰아세운 이들에게 ‘과정이 공정하면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믿고 지지해줘야 한다’는 메시지를 줬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비겁한 이들이 많았다. 벤투 감독과 이강인이 무슨 앙숙인 것처럼 묘사한 축구인들, 내국인 감독과는 다른 잣대로 외국인 감독에게는 더 엄격했던 전문가들에게 벤투 감독은 성적으로 입증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벤투 감독이 16강에 가지 못했어도 그의 4년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6강 진출에 성공했으니 벤투 감독을 명장이라고 미리 알아봤다고 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무지성’으로 감독을 비난하는 이들에게 벤투 감독이 성적으로 보여줬다는 게 통쾌하다. 나는 적어도 계약 기간 동안은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대표팀 감독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벤투 감독이 그걸 입증한 게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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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호날두를 상대로 한 통쾌한 승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을 받았던 슈퍼스타다. 하지만 3년 전 한국에 와 ‘노쇼 사건’을 일으킨 뒤에는 완전히 민심을 잃었다. 한창 논쟁이었던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의 ‘메호대전’은 더 이상 없다. 호날두는 한국에 와 오만하게 행동했고 많은 팬은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우리 형’은 그렇게 우리 집 족보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이후 호날두는 우리가 어떻게 복수를 할 방법이 없었다. 그냥 그가 미울 뿐 지구 반대편에 있는 호날두와 우리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런 호날두에게 우리는 포르투갈전에서 멋지게 복수에 성공했다. 호날두는 김영권의 첫 골 장면에서 우리에게 패스를 했고 결정적인 슈팅도 놓쳤다. 결국 그렇게 교체 아웃됐다. 좀처럼 도발성 멘트를 하지 않는 조규성도 경기 후 “호날두는 날강두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호날두는 교체 아웃되면서 조규성에게 욕설을 하기도 했다. 3년 전 서울월드컵경기장을 꽉 채운 관중 앞에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실망감을 안겼던 그는 대한민국의 축구팬은 물론 선수들과 언론으로부터도 적대적인 대상이 됐다. 예뻐할래야 예뻐할 수 없는 호날두는 이날 경기장에서 온갖 야유와 조롱을 받았다.

어차피 포르투갈은 이미 2승을 거둬 조별예선 통과가 확정된 상황이었지만 그건 우리가 신경쓸 바가 아니다. 우리는 호날두를 꽁꽁 묶었고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교체되면서 우리 선수들과 설전을 펼쳤다. 경기 후 인터뷰도 거부하고 경기장을 떠났다. 너무 감정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떠오르는 스타가 공식석상에서 ‘날강두’라는 표현까지 쓴 건 중립성은 개나 줘버린 오늘 칼럼을 쓰는 입장에서 통쾌하고 또 통쾌하다. 호날두가 교체 아웃되는 순간 모두가 아쉬워할 정도로 호날두는 이날 경기에서 아무 것도 못했다. 나도 모르게 이 경기를 보면서 외쳤다. ‘호날두를 빼지 말아줘. 제발.’

3. 일본의 선전에 배가 아플 뻔 했지만

일본이 이번 월드컵에서 독일과 스페인을 잡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배가 아팠는지 모른다. 전반전은 상대에게 완전히 내주고도 후반 들어 어떻게든 두 번의 승리를 따내는 모습을 보며 ‘일본 축구가 이젠 세계적인 수준이다’라는 생각과 ‘운도 더럽게 좋네’라는 생각이 내 스스로의 머리 속에서 충돌했다. ‘그래도 우리의 우루과이전과 가나전 경기력이 일본의 조별예선 경기보다는 나았다’고 애써 위안 삼기도 했다. 물론 여기에는 일본이 거함을 두 번이나 침몰 시키면서 16강에 오른 부러움, 그리고 우리가 16강에 오르지 못하면 상대적으로 비교될 모습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일부에서는 ‘일본이 이제는 점유율 축구를 버리고 실리 축구로 갈아탔다. 현명한 선택이고 이게 이제는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일본은 독일과 스페인이라는 팀을 상대로 경기력에서 밀려 점유율을 내준 것이지 세계 축구의 변화된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한 선택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본을 통해 배울 점도 많다. 일본 대표팀 선수들은 J리그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유럽 여러 무대에 진출해 경쟁력을 갖췄다. 우리는 축구 커뮤니티에서 매번 ‘세금리그’ 논쟁이나 하고 있는데 자국리그를 바라보는 일부 팬들의 시선에서부터 차이가 크다.

각설하고 일본이 간 16강을 우리가 못 가면 이건 엄청난 비교가 될 게 뻔했다. 그런데 우리도 16강에 올랐다. 일본이 독일과 스페인을 잡은 건 아시아 축구도 월드컵 무대에서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는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환영할 만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구나 솔직하게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일본이 간 16강을 우리가 실패했을 때는 충격이 엄청났을 게 분명하다. 우리가 16강에 간 건 대단히 기쁜 일이지만 일본과 비교될 상황을 생각하니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본 축구를 깎아내리며 ‘국뽕’을 맞자는 게 아니라 한국과 일본, 호주가 동시에 16강에 올랐으니 이제는 ‘아시아가 월드컵에선 농어촌 특별전형’이라는 말이 쏙 들어가게 된 것도 통쾌하다. 참고로 이건 '농어촌 특별전형' 비하는 아니다. 내가 '농어촌 특별전형' 출신이다.

4. 비난 받던 선수들에 대한 재평가

김영권은 대표팀에서 유독 평가가 박했던 선수다. 거기에 과거 의도하지 않은 인터뷰 발언까지 논란이 돼 욕이란 욕은 다 먹었다. 하지만 그는 두 번의 월드컵에서 가장 중요한 골을 기록하며 재평가 받고 있다. 그가 포르투갈전에서 득점에 성공하고 16강행을 이끈 뒤 치러지는 다음 경기가 자신의 A매치 100번째 경기라는 건 엄청난 스토리이기도 하다. FC서울에서는 정말 잘하는데 대표팀에만 오면 욕을 먹던 나상호도 우루과이전에서 그 비난을 잠재울 활약을 펼쳤다. 이번 조별예선 세 경기를 통해 경기 때마다 벌어졌던 ‘범인찾기’가 사라진 게 반갑다.

김승규도 가나전 패배 이후 유효슈팅을 전혀 막아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많은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당장 조현우와 비교하면서 그를 교체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조현우도 훌륭한 선수지만 김승규는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뛰기에 장점이 충분한 선수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김승규의 발기술을 새삼 느끼고 있다. 월드컵을 앞두고 일찌감치 귀국한 김승규는 수원FC 훈련에 합류해 컨디션을 유지하기도 했다. 당시 김승규는 골키퍼 훈련 외에도 필드 플레이어들의 패스 훈련에도 참여했고 발기술이 필드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김승규가 포르투갈전에 선방 능력까지 보여주며 능력을 입증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아직도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은 선수들도 몇 있다. 하지만 김영권과 나상호, 김승규, 그리고 만만치 않은 비난에 시달렸던 정우영과 황인범까지 이제는 팬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16강에 가지 못했더라면 조별예선 탈락의 원흉이 될 뻔했던 선수들이 이제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판해야 할 점은 냉정히 비판해야 하지만 SNS로 달려가 댓글 테러를 가하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팬들의 인식을 바꿔놓은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프로선수가 될 확률, 그리고 해외에 진출할 확률, 여기에 대표팀에 뽑힐 확률, 그리고 월드컵에서 뛸 확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희박하다. 그걸 이뤄낸 선수들이라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선수들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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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벤치에서 앉아 마지막을 함께 하게 된 벤투 감독

벤투 감독은 가나전 종료 후 심판에게 항의를 하다가 퇴장 조치를 받았다. 첫 경기 우루과이전에서 항의를 해 경고를 받은 벤투 감독은 이번 월드컵에서 모든 선수와 코칭스태프 중 가장 많은 카드를 받은 인물이다. 그는 포르투갈전을 벤치가 아닌 관중석에서 지켜봐야 했다. 후반 종료 직전 황희찬의 극적인 골이 터지고 벤투 감독은 관중석에서 곧바로 조유민 투입을 외쳤다. 열광하며 환호하는 이들과 달리 벤투 감독은 관중석에서도 감독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관중석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그의 모습은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벤투 감독이 가나전에서 심판에게 항의를 하며 퇴장 당한 건 팀에 적지 않은 손해다. 하지만 나는 이 장면을 통해 벤투 감독이 대표팀에 잠시 온 이방인이 아니라 ‘원팀’의 리더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권이 심판에게 항의하는 순간 이를 제지하고 오히려 심판에게 거세게 항의하며 선수를 보호한 벤투 감독의 모습은 그가 국적을 떠나 대표팀의 수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느껴졌다. 대한민국이 포르투갈전을 마지막으로 이번 월드컵을 마무리했다면 그가 벤치에 앉지 못하고 대표팀과 작별할 가능성이 높았던 상황이라 우리의 16강 진출이 더 다행이다. 손흥민 역시 “감독님이 벤치에 없는 이번 경기가 마지막이 아니라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다이렉트 퇴장을 당한 선수나 스태프는 자동적으로 다음 경기 출전 정지가 적용된다. 다이렉트 퇴장은 이후 추가 징계가 부여될 수 있지만 벤투 감독은 추가 징계가 논의된 바 없다. 16강전에는 다시 벤치에서 선수들을 지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벤투 감독은 다시 벤치로 돌아온다. 언제가 그의 대표팀 마지막 경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벤치에서 선수들을 지휘하며 후회없이 싸우고 대회를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아, 물론 벤투 감독이 더 이상 월드컵에서 퇴장을 당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하는 말이다. 이제는 릴렉스하시길.

6. 가나의 우루과이 참교육

가나는 우루과이와 악연이 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8강에서 가나는 우루과이를 만났다. 당시 90분 정규시간 동안 승부를 가리지 못했던 두 팀은 결국 연장전에 돌입했고 연장전에서 놀라운 사건이 터졌다. 연장 후반 막판, 우루과이 골문 앞에 있던 루이스 수아레즈가 가나의 결정적인 슈팅을 손으로 막으며 퇴장을 당한 것이다. 누가 봐도 고의적인 핸드볼 반칙이었고 수아레즈는 퇴장을 당하며 경기장을 떠났다. 하지만 승부는 승부차기 끝에 우루과이의 승리로 끝이 났다. 가나는 우루과이와 이렇게 악연을 맺었다.

이후 수아레즈는 그 어떤 사과도 없었다. 오히려 이번 가나전을 앞두고 도발에 가까운 발언을 했다. 수아레즈는 “당시 일에 대해 사과할 생각이 없다”라면서 “내가 핸드볼 반칙을 한 것은 맞지만 가나 선수가 페널티킥을 놓쳤다. 내가 선수를 다치게 했다면 사과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당시 난 레드카드를 받았고 심판으로부터 퇴장을 당했다.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가나 선수들의 속을 긁었다. 그리고 가나는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우루과이에 0-2로 패했지만 결국 우루과이의 16강 진출을 무산시켰다. 한 골만 더 내주면 대한민국 대신 우루과이가 16강에 오르는 상황에서 가나는 필사적으로 우루과이의 총공세를 막아냈다.

심지어 가나는 후반 종료 직전 0-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골키퍼가 골킥을 앞두고 한참 동안 시간 지연을 하기도 했고 종료 1분을 남기고 두 명의 선수를 교체하며 더 이상의 실점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가나 선수들은 “우리가 16강에 갈 수 없다면 우루과이도 16강에 오르지 못하게 하자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가나 팬들은 경기 후 눈물을 흘리는 수아레즈의 모습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며 환호했다. 12년이 걸린 가나의 통쾌한 복수는 우리에게도 잊지 못할 스토리를 남겼다. 이제부터 초콜렛은 가나초콜렛만 먹기로 하자. ‘아이유’ 보유국 가나는 이번 월드컵에선 조별예선 탈락했지만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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