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국’ 미국과 이란의 맞대결, 경기장 안팎의 180도 다른 분위기

[스포츠니어스 | 카타르 도하=조성룡 기자] “핵전쟁 가세요 내전 가세요?”

29일 카타르 도하. 한국 취재진들은 서로 인사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말하는 ‘핵전쟁’은 미국과 이란의 경기고 ‘내전’은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경기다. 카타르 월드컵 B조 3차전의 매치업이다. 3차전의 특성 상 동시간대에 열리기 때문에 한 경기를 선택해야 한다.

B조는 참 사연이 많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미국과 이란이다. 잉글랜드와 웨일스는 영국에 속해있다. 그래서 ‘내전’이라 부른다. 미국과 이란은 정치적으로 핵 협상 등을 놓고 으르렁댔다. 2022년에도 양국은 제재와 압박을 오가면서 날을 세웠다. B조 어느 경기에 가도 사연 많고 흥미롭다.

그 중에서도 역시 으뜸은 미국과 이란의 맞대결이다. 여기에 하필 상황도 묘하게 조성됐다. 두 번의 경기 결과 이란은 1승 1패로 2위, 미국은 2무로 3위다. 여기서 승리하는 팀이 16강에 진출한다. 비기면 머리가 아프다. 웨일스가 잉글랜드를 꺾을 경우 두 팀이 나란히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경기 전부터 양 팀 팬들의 치열한 신경전을 기대했다. 경기 당일 낮 카타르 전통시장인 수크 와키프에서 마주친 양국의 팬들은 “USA”와 “이란”을 외치면서 서로 도발 아닌 도발을 하기도 했다. 경기 시간이 다가오면 더욱 더 치열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혼자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분위기가 다르다. 경기장 밖에서 만난 양 팀 팬들은 화기애애 기념사진을 남기면서 서로에게 덕담을 건넸다. 정치에서만 적성국이지 축구장에서는 외국인 친구일 뿐이었다. 일부 이란 팬들이 경기 전 응원가를 부르면서 분위기를 띄울 때 미국인들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지나갈 뿐이었다.

사실 미국과 이란은 월드컵에서도 신경전을 벌여왔다. 이란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은 정치적 질문에 대해 “영국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미국 축구연맹은 이란 국기에 이슬람공화국 문양을 삭제해 한바탕 큰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막상 경기장에서는 오히려 이런 갈등은 없었다. 그런데 아뿔싸, 양국 국민들 모두 경기장 밖에서 힘을 아껴놓은 모양이다. 경기가 시작되자 알 투마마 스타디움은 시끄러운 소음과 함성으로 가득 찼다. 카타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란과 미국이 맞붙으니 고막이 아플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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