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인천=김현회 기자] 해도 해도 너무한다.

26일 인천남동아시아드럭비구장에서 펼쳐진 2022 WK리그 인천현대제철과 경주한수원WFC(이하 경주한수원)의 챔피언결정전 2차전 경기에서 인천현대제철이 전반전 이민아와 정설빈의 연속 득점으로 2-0 승리했다. 인천현대제철은 지난 19일 경주한수원의 홈에서 치러진 1차전에서 0-0 무승부를 거두며 1,2차전 합계 스코어 2-0으로 통합 우승의 영광을 누렸다. 이로써 인천현대제철은 WK리그 통합 10연패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이날 경기는 올 시즌 WK리그 챔피언의 향방을 가리는 중요한 승부였다. 하지만 취재진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가뜩이나 WK리그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가운데 2022 카타르월드컵 영향까지 더해졌다. 쌀쌀한 날씨 탓도 있다. 하지만 이런 여러 사정을 떠나 WK리그 챔피언결정전이 미디어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 건 여자축구연맹의 답답하고도 앞뒤가 맞지 않는 행정이 한몫하고 있다. 단순히 이번 챔피언결정전이 문제가 아니라 여자축구연맹이 주관하는 WK리그가 지금껏 운영되는 상황을 보면 언론이 왜 WK리그에 관심이 별로 없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여자축구연맹은 수년 전부터 황당한 취재 규정을 내세웠다. 매 경기 WK리그 경기장 취재를 위해서는 정식 공문을 여자축구연맹으로 보내라는 것이다. 매 라운드 취재를 위해서는 이 번거로운 절차를 매번 거쳐야 한다. 가뜩이나 관심이 부족한 WK리그에서 매체가 정식 공문까지 발송해가며 경기장을 찾는 건 미디어의 데스크 입장에서도 반기지 않는다. 일부 매체에서는 “WK리그 경기장에 오지 말라는 것 같다”는 반응을 내보이기도 했다. 미디어가 갑이고 여자축구연맹이 을이라고 생각해 이런 행정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수시로 드나들 수 있어야 하는 현장이어야 하는데 여자축구연맹은 공문을 발송해야 입장이 된다고 하니 당연히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자축구연맹은 이게 각 구단에 해당 공문을 전달하고 출입 허가를 받는 절차라고 했다. 하지만 WK리그 구단 대다수는 “우리는 그런 공문을 요구한 적이 없다”면서 “가뜩이나 언론의 관심이 부족하고 경기장은 텅 비어있는데 무슨 그런 쓸데없고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느냐”고 반박했다. 하지만 여자축구연맹에서는 경기 당일에 취재 문의를 하면 “전날 미리 공문을 보내지 않으면 취재 협조가 되지 않는다”며 복잡한 절차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프로축구연맹과 대한축구협회 등은 홈페이지를 통해 간단한 클릭 몇 번으로 취재 신청을 받고 있다. 하지만 WK리그는 공식화된 문서를 매 경기 작성해서 전달하고 승인 받아야 출입이 가능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귀사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합니다’라고 시작하는 그런 형식적인 공문이 필요하다.

기자석에 앉을 수 없어 일반 관중석에서 기사 작성 중인 김귀혁 기자 ⓒ스포츠니어스

이런 가운데 여자축구연맹은 26일 벌어진 WK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 당일 취재 문의에 “정식 공문을 미리 접수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또 다시 공문을 요구했다. “왜 그런 복잡한 절차를 고집하느냐”는 질의에 여자축구연맹은 “오늘만 특별히 봐 드리는 것이다. ‘카톡’을 통해 취재진 이름과 연락처를 따로 보내달라”고 선심 쓰듯 말했다. 하지만 이날 현장에서 만난 타 매체 취재진은 “공문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고 사전에 취재 신청을 해야한다는 이야기도 처음이다”라면서 “나는 그냥 아무런 제지 없이 협회 발급 기자증으로 경기장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인천남동아시아드럭비구장에서는 취재진의 명함만 보여주면 출입증을 발급해줬다.

사전에는 공문을 요구했고 이후 취재진의 신상 명세까지 요구했지만 막상 경기장에서는 취재진을 확인도 없이 들여보냈다. 애초에 복잡한 절차를 구단이 확인하지도 않았다. 이는 올 시즌 WK리그 취재 현장에서 내내 마찬가지였다. 현장에 가면 각 구단에서는 큰 문제없이 취재진의 신분만 확인되면 출입을 허가했다. 그런데도 여자축구연맹은 ‘공문’을 요구한다. 코로나19가 퍼졌을 때도 여타 아마추어 대회 등에서는 코로나19 음성 판정이 나오면 제한적으로 취재진을 받았지만 여자축구연맹 주관 대회는 아예 취재진을 출입을 불허한 바 있다. 조금도 협조적이지 않다. 여자축구연맹은 코로나19 방역을 핑계로 미디어에 전혀 문을 열지 않았다.

말로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평소 취재 여건을 제공하지 않는 여자축구연맹으로서는 코로나19가 좋은 핑계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여자축구연맹은 코로나19가 퍼졌을 당시에는 사진 기자도 그라운드로 내려가지 못하게 했다. 골대 뒤에서 거리두기를 하고 공식적인 사진을 남기는 이들도 다 내몰았다. 현장에 가는 취재진이라고 해봤자 챔피언결정전을 제외하면 매 경기 한두 명이 전부다. 이렇게 현장을 다니는 취재진들은 “WK리그 현장에 가면 안 되는 게 너무 많아서 가기가 싫다”고 입을 모은다. 협조가 하나도 안 된다. 단순히 이걸 번거로운 공문을 요구해서 뿔이 난 취재진의 푸념 정도로 듣지는 않았으면 한다.

챔피언결정전이 열리는 이날 경기장에서도 여건은 최악이었다. 취재석에는 이미 관중이 모두 자리를 잡고 있었고 취재진은 앉을 자리가 없어서 방황하다가 결국 일반 관중석에 앉았다. 취재진이 대단한 편의나 혜택을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기사를 작성할 수 있는 책상과 전기 콘센트만 제공하면 그걸로 만족한다. 하지만 여자축구연맹은 아무 것도 제공하지 않았다. 60석에 이르는 기자석은 이미 관중이 모든 자리를 차지했다. <스포츠니어스> 김귀혁 기자는 인천현대제철 응원석에 앉아 무릎에 노트북을 놓고 기사를 작성했다. 응원단장의 응원 유도에 홈 팬이 막대풍선으로 화답하는 사이에 앉아서 노트북을 켜놓고 일을 시작했다.

기자석에 앉을 수 없어 일반 관중석에서 기사 작성 중인 김귀혁 기자 ⓒ스포츠니어스

더 황당한 건 취재진에게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선발 명단도 없었다는 것이다. 관계자에게 경기 전 “선발 명단이라도 제공해 달라”고 하자 그는 “우리는 그런 걸 취재진에게 제공하지 않는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K3리그나 K4리그에서도 아주 기초적으로 제공되는 선발 명단조차 여자축구연맹은 제공하지 않았다. 명색이 챔피언결정전인데도 말이다. 평소 WK리그 경기에서도 취재진이 담당자를 일일이 찾아 선발 명단을 요청하지 않으면 그런 건 미리 제공해 주지 않는다. 김귀혁 기자는 경기 전 전광판에 나오는 선수들의 이름을 일일이 직접 받아 적은 뒤 경기가 시작하자 포메이션에 맞춰야 했다. 백업 명단에는 누가 있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그런 김귀혁 기자를 옆에서 지켜보다가 나름대로 센스(?)를 발휘했다. 스마트폰으로 이 경기 생중계를 진행 중인 유튜브 채널에 접속해 경기 전 선발 명단이 나온 걸 캡처해 김귀혁 기자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말도 안 되는 오류가 있었다. 경주한수원 선발 명단에 포함됐다고 방송사가 전한 아스나는 실제로는 백업 명단에 있었고 심지어 수원FC위민 소속 최소미가 경주한수원 수비수로 소개돼 있었다. 엉망진창이다. 아마도 사람들이 많이 보는 K리그나 월드컵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한숨이 푹푹 나오는 일이 WK리그에서는 수도 없이 벌어진다.

물론 여자축구연맹의 한숨 나오는 일처리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전반전이 끝나고 이날 몇 없던 기자들이 일반 관중석 곳곳에서 숨어(?) 일을 하다가 만났다. 다른 매체 한 기자가 “여기 2층에 취재석이 마련돼 있다는데요?”라고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따라 2층에 자리한 스카이박스로 접근하자 안전요원이 제지했다. “여기는 귀빈석이니까 들어오지 마세요.” 통유리로 보이는 곳을 보니 오규상 여자축구연맹 회장을 비롯한 귀빈들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여자축구연맹으로부터 이 곳에 앉아서 기사를 쓰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자 안전요원은 “들은 바 없으니 나가시라”고 내몰았다.

여기에서 끝나면 여자축구연맹이 아니다. 그 바로 옆 자리에서는 중계진이 하프타임을 맞아 잠시 쉬고 있었다. 인사를 건네고 책상을 보니 종이가 한 장 놓여 있었다. 경기 전 그토록 찾아 헤맸던 선발 명단이었다. 마치 시험 족보라도 발견한 것처럼 반가워하며 한 마디 건넸다. “이게 한 장도 없어서 그러는데 혹시 사진 좀 찍어가도 될까요?” 취재진은 전반전이 끝난 뒤에야 중계진의 선발 명단 한 장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공유할 수 있었다. 물론 이번 챔피언결정전뿐 아니라 매번 WK리그 경기장에 오면 겪는 일이다. 오죽하면 취재진 사이에서 “무엇을 상상하건 WK리그는 그 이하를 볼 수 있다”는 말이 나올까.

2층 스카이박스 옆 실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여자축구연맹 사무국장이 앉아 있었다. 다가가 들리지도 않는 상황에서 입모양만으로 “기자석이 어디냐”고 하자 사무국장은 손가락으로 바로 옆을 가리켰다. 아까 그 귀빈석이었다. 그냥 포기하고 돌아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취재진이라고 해서 대단한 특혜를 바라는 게 아니다. 공짜 밥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추우니까 따뜻한 난로를 제공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기사 작성에 필요한 아주 기본적인 책상 하나, 전기 콘센트 하나만 달라는 것이다. 사전 취재 신청 명목으로 취재진 신상 명세는 다 받아갔는데 기자석은 이미 관중이 다 차지했고 특별히 마련된 기자석이라는 곳은 이미 귀빈들이 다 앉아 있었다. 거기에 안전요원은 접근하지 말라고 하는데 여자축구연맹은 그쪽에 앉으면 된다고 하니 역시나 이번에도 WK리그는 상상 그 이하였다.

물론 여자축구연맹의 일처리는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갑자기 후반전이 시작되니 그제야 뭔가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아챈 모양이다. 기자석에 앉은 일반 관중을 모조리 내몰고 그 자리를 비웠다. 취재진에게 앉으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 사실도 일반 관중석에 앉아 있다가 타 매체 기자가 찾아와 “자리가 났다”고 해서 알게 됐다. 전반전 내내 경기를 지켜보던 좌석을 빼앗긴 관중이나 그 자리를 찾아가 앉게 된 취재진이나 씁쓸한 건 마찬가지였다. 이후 일반 관중은 다시 기자석에 들어와 앉아 경기를 관람했지만 그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빈자리에 누군가 앉아서 경기를 보는 걸 불만 삼으려는 기자의 특권 의식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여자축구연맹이 하는 일처리가 매번 이런 식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경기가 끝난 뒤 취재진은 이미 여러 번의 WK리그 경험을 통해 ‘알아서’ 인터뷰를 해야한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감독이나 수훈선수 인터뷰를 주선해 주지 않는다는 걸 WK리그는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네 명의 취재진이 프레스 카드를 제시하며 그라운드로 내려가려고 하는 순간 진행요원은 “연맹에서 그라운드 출입 허가를 허용한 명단을 받은 게 없으니 내려갈 수 없다”고 막았다. 프레스 카드를 다시 보여주고 “여자축구연맹에 이미 사전 허락을 받았다”고 해도 진행요원은 “나는 모르는 일이니 내려오지 말라”고 했다. 두 명의 진행요원은 “연맹으로부터 들은 얘기가 없으니 우리는 모른다”고 취재진을 막아 세웠다.

그라운드 바로 아래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경주한수원 직원이 다가왔다. 경기에서 패하며 또 다시 준우승에 머물게 돼 아쉬워하던 경주한수원 직원이 오죽 답답했으면 나섰을까. 경주한수원 직원 두 명은 진행요원에게 “인터뷰는 하게 해주셔야 한다”면서 “이건 취재진의 당연한 권리다. 왜 막느냐. 저 분들은 내려오게 하시라”고 한참을 대립해야 했다. 이후에야 가까스로 취재 길이 열리고 취재진이 기자회견장에 앉게 됐다. 여자축구연맹 사무국장에게 “누가 기자회견에 들어오느냐”고 묻자 사무국장은 “양 팀 감독과 경기 MVP 이민아가 들어온다”고 했다. 사무국장은 취재진과 진행요원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도 못했다. 대치 상황을 설명해봤자 입에 바른 소리만 길어지니 생략했다.

기자석에 앉을 수 없어 일반 관중석에서 기사 작성 중인 김귀혁 기자 ⓒ스포츠니어스

하지만 경주한수원 측은 송주희 감독이 기자회견 참석자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오히려 기자가 경주한수원 직원에게 다가가 “여자축구연맹에서 그러는데 송주희 감독도 기자회견 참석자라고 한다”는 말을 전하자 “들은 바 없는 이야기다”라고 답했다. 가까스로 송주희 감독과 김은숙 감독, 이민아의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매번 WK리그 경기장에 갈 때마다 상상 이하의 일을 경험한다. 열악하니까, 괜히 지적하면 기자의 갑질 같으니까 넘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참다가 참다가 하는 말이다. WK리그 수준이 낮아서 미디어가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경기장에 갈 때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수도 없이 겪는데 그걸 참고 또 경기장을 찾는 게 과연 맞는 걸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이날 오전 유선상으로 <스포츠니어스>의 취재 신청을 받은 여자축구연맹 김정선 사무국장은 “공문 안 넣으시면 원래 못 들어온다. 오늘만 특별히 봐드리는 거니까 취재진 이름하고 연락처를 적어서 ‘카톡’으로 보내달라”며 이렇게 말했다. “요새 여자축구 붐인 거 아시죠? 좋은 기사 많이 써줘요.” 최선을 다해 열악한 환경에서 일일이 선수들을 붙잡고 오늘 <스포츠니어스>는 현장에서 9개의 기사를 썼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마지막 기사는 이렇게 여자축구연맹의 답답한 일처리를 꼭 꼬집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축구연맹은 WK리그 경기장을 취재하고 싶은 마음도 뚝 끊기게 하는 답답한 일처리가 아예 습관이 됐다.

여자축구연맹은 매 경기 비효율의 극치인 절차를 따지면서 막상 현장에 가면 아무 것도 준비돼 있지 않다. 한두 번이 아니지만 경험할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열악하니까 넘어가자는 말을 하면 안 된다. 마찬가지로 열악한 K3리그나 K4리그에 가도 이런 일은 없다. 어떻게 해서건 여건을 개선해 주려고 하고 융통성을 발휘하려고 한다. 그런데 여자축구연맹은 그저 “좋은 기사 많이 써달라”는 말 한 마디로 미디어를 잘 응대하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융숭한 대접은 안 해주셔도 되니 기본적인 것만 상식에 맞게 좀 해달라. 오전 9시 30분에 여자축구연맹 김정선 사무국장이 보내달라고 해 보낸 취재 신청 ‘카톡’은 경기가 다 끝나고 모두가 퇴근한 저녁 7시까지 옆의 ‘1’이라는 숫자가 지워지지 않았다.

footballavenue@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