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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울산현대의 우승은 한 커플의 결혼을 이끌어냈다.

지난 23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울산현대와 제주유나이티드의 경기 후 울산이 K리그1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17년 만의 우승이다. 그동안 우승에 한이 맺혔던 울산은 이번 시즌 누구보다도 기쁜 순간을 만끽했다. 많은 의미가 담긴 우승이었다.

우승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는 소원 성취일 수도 있고 한을 털어내는 순간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울산 우승'으로 인해 결혼을 하게 된 커플이 있다. 스물아홉 동갑내기 울산 팬인 최귀정 씨와 윤아영 씨다. 이들은 울산의 K리그1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결혼을 하기로 했다. 울산이 한 가정을 만든 셈이다.

<스포츠니어스>는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정말 특이한 조건을 내걸었다. "조성룡 기자가 내년 시즌 포항 취재를 한 번 덜 가달라"는 조건이었다. <스포츠니어스>는 고심 끝에 이 제의를 수락했다. 정말 어렵게(?) 얻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공개한다.

정말 첫 만남도 '축덕'스러웠던 커플

이들의 이야기는 지난 201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무려 11년 전이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다름아닌 '버스' 안이었다. 버스 안에서 처음 눈이 마주치고 사랑에 빠진다면 꽤 달달한 로맨스 영화의 도입부 같다. 그런데 버스 앞에 두 글자를 덧붙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원정버스'다. 참으로 '축덕'스러운 첫 만남이다.

윤 씨는 당시를 회상했다. "2011년 울산이 플레이오프에서 준우승을 할 때 전북 원정버스 안에서 처음 봤어요." 2011년 K리그는 단일리그였고 'K리그 챔피언십'이라는 이름의 6강 플레이오프가 있었다. 당시에 포항 김기동 감독이 선수로 500경기를 달성할 시절이니 정말 옛날이다. 이 때 울산은 정규리그 6위로 챔피언십 막차를 탄 이후 파죽지세로 챔피언 결정전까지 올라갔다. 홈 앤드 어웨이로 열린 이 경기 상대는 정규리그 1위 전북현대였다.

그런데 이미 최 씨는 그 전에 한 번 윤 씨를 본 적이 있다. 이것도 원정버스 안이었다. 그는 "그 전까지는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였어요. 그런데 2011 K리그 챔피언십 플레이오프 포항 원정버스에서 여자친구를 처음 봤어요"라면서 "다음에 저 친구를 한 번 더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혼자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전북 원정버스에서 여자친구를 한 번 더 보게 된 거죠"라고 말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후 두 사람이 연애를 시작하기까지 몇 달이 더 걸렸다는 점이다. 2012년 4월 30일이다. 이유를 묻자 두 사람은 솔직하게 말했다. "비시즌이라 볼 일이 없었죠." 그렇게 연애를 시작한 두 사람은 무려 10년 가까이 만나고 있다. 곧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을 예정이다.

무모한(?) 약속, "우리 우승하면 결혼하자"

그렇게 연애를 해오던 두 사람은 어느덧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래 저는 스물 넷에 결혼을 하고 싶었어요. 둘 다 빨리 취업을 해서 돈을 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결혼 생각이 있었어요. 어차피 오래 만났잖아요. 결혼을 하면 얘랑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좀 장난 섞인 이야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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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진심으로 결혼에 대해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울산이 우승하면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했어요. 둘 다 축구를 좋아하는데 사랑하는 팀도 같잖아요? 그래서 의미가 있다고 해야할까요. 팀이 우승을 한 뒤에 우리가 결혼을 하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았어요. 울산 우승에 대해 더 간절해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이들은 주변 지인들에게도 "우리 울산이 우승하면 결혼할 거야"라고 말했다. 하지만 울산은 2005년 이후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 특히 2019년부터는 눈 앞에서 미끄러지며 준우승을 연속으로 하기도 했다. 주변 지인들의 반응은 비관적이었다. "독신주의자 선언을 이렇게 하느냐"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연애만 30년 할 뻔했어요"라면서 "그러면 그냥 동거인으로 평생 살았겠죠"라고 웃었다.

정말로 이들의 결혼은 계속해서 미뤄졌다. 울산이 우승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래는 우승을 하면 그 다음 해에 딱 웃으면서 결혼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1년, 1년 뒤로 계속 미뤄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2022시즌이 밝았다. 윤 씨는 아예 '선전포고'를 했다. "우리 이번에 우승하면 진짜 결혼한다."

엄원상의 골에 울어버린 남자친구, 눈물의 의미는?

2022시즌의 울산은 거친 파도를 넘어가면서 우승을 향해 나아갔다. 파이널 라운드에 돌입하자 울산의 우승 가능성과 함께 두 사람의 결혼 가능성도 솔솔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거 몇 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던 것처럼 울산은 일단 현대가 더비와 동해안 더비를 넘어야 했다.

공교롭게도 현대가 더비는 울산의 홈에서 열렸다. "그냥 '결혼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현대가 더비가 있는 날 좀 일찍 경기장에 갔어요. 경기장에 있는 웨딩홀에 그냥 한 번 상담을 받았어요. 어차피 계약을 해뒀다가 우승 못하면 취소하면 되니까 계약을 했어요. 계약금도 꽤 들었어요."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이날 경기는 울산의 기적적인 2-1 역전승으로 종료됐다. "그 경기가 그렇게 됐으니 '올해는 진짜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계약도 취소하지 않고 그대로 뒀어요." 무언가 울산의 홈 경기장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경기장에 있는 웨딩홀을 잡은 것일까? "기자님, 그게 아니라 이런 얘기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울산에 웨딩홀 2개가 망했어요. 울산에 결혼식장이 손에 꼽혀요. 얼마 없는 웨딩홀 중에 여기가 최고 좋습니다." 이런 사연이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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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파이널 라운드 강원FC전에서 울산은 드디어 우승을 확정지었다. 두 사람은 강원 원정까지 따라갔다. "솔직히 처음에 PK골을 먹히고 '이번에도 어렵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하지만 엄원상이 결혼 확정골을 넣었고 마틴아담이 배로 결혼 축포까지 쐈다. 이미 엄원상이 동점골을 넣는 순간 최 씨는 눈물을 쏟고 있었다.

윤 씨는 이렇게 말했다. "남자친구가 원래 잘 우는 성격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많이 울어요. 그런데 그날 갑자기 울었어요. 엄원상이 골을 넣고 '야 우리 이제 딱 결혼한다'라고 말했는데 울고 있더라고요." 주위의 친구들은 당시 최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 너 이제 큰일났다. 결혼해서 우는 거야?" 최 씨는 "절대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일단은 그렇다.

"홍명보 감독님 덕분에 저희 결혼합니다"

두 사람은 울산의 우승, 아니 결혼할 수 있었던 비결로 홍명보 감독을 꼽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가 항상 준우승을 했잖아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한끗 차이가 있었어요. 분명 우리 선수단 정말 좋고 우승할 수 있는 전력이었어요. 그런데 가을에서 차이가 나는 그 한끗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메워주신 게 감독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울산 팬들은 이들의 사연을 알고 있기에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있다. 우승의 기쁨과 함께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고 있다. "SNS에서도 저희를 아시는 분들은 결혼 축하한다고 말씀해주시고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저희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미 울산 구단에도 이들의 결혼 사실이 널리 퍼졌다. "이미 구단에도 '우리 결혼한다'라고 소문을 냈어요. 서포터스에서 할 일이 있어서 구단 클럽하우스를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홍명보 감독님이 바로 '결혼 날짜 언제 잡았느냐'라고 바로 물어보셨어요. 세이고상을 비롯한 코치님들과 사무국장님도 결혼을 축하한다고 해주셨어요."

이들은 2023년 12월 2일에 결혼할 예정이다. 나름대로 결혼하기 가장 좋은 날을 받아서 정했다. 그런데 그러면서 또 '축구' 이야기다. "저희 두 사람에게 가장 좋은 날이 12월 2일이라고 하더라고요. 만일 저희가 2013년 12월 1일이 아니라 12월 2일에 경기를 지켜봤다면 울산이 우승하지 않았을까요?"

미래의 자식에게 "공부 못해도 좋으니 포항은 안 된다"

이들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만일 태어날 아이가 '엄마 아빠, 나는 아무래도 포항이 좋아'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곧바로 격한 반응이 나왔다. "호적에서 파야죠.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사람이 공부는 못해도 되는데 포항은 좋아하면 안 됩니다. 그럴 바에는 저희도 축구를 안 볼 겁니다." 라이벌 의식 하나는 정말 대단하다.

그만큼 울산에 진심이었기에 우승에 결혼을 약속했을 것이다. 최 씨는 "초등학교 때 울산이 우승하는 모습을 보면서 팬이 됐거든요. 그런데 이제 어른이 돼서 울산이 다시 한 번 우승하고 그 현장에 있으니까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여기에 여자친구와 함께 같은 팀을 사랑하고 우승을 하니 정말 행복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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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아요. 감흥이 없어요. 결혼도 우승도 이게 진짜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트로피를 좀 들어야 우승했다는 게 느껴질 것 같고 결혼식장에 정말 입장해야 결혼한다는 걸 알 것 같아요. 그런데 진짜 좋기는 좋아요. 아니 이 좋은 걸 왜 우리는 못하고 있었을까요?"

"지금까지 이 모든 걸 이겨낸 우리에게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솔직히 주위에서도 울산이 힘들 거라고 말했고 언론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 걸 다 이겨냈어요. 선수들 뿐만 아니라 팬들도 잘 이겨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팬들이 제일 고생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우리는 모든 걸 다 이겨냈어요."

사실 두 사람은 경기장에서 한 번 다투고 인터뷰에 임했다. 응원 준비를 하다가 통천 가지고 싸웠다. "친구니까 지금처럼 재미있게 잘 살면 좋겠어요. 축구 재밌게 보러 다니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라는 최 씨에게 여자친구 윤 씨는 "제 말 좀 잘 들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뼈 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 그러자 최 씨는 웃으면서 "자고로 여자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 어떻게 연애를 해왔는지 유추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만난 이후로 처음으로 울산의 우승을 겪었다. 둘은 계속 "우승을 처음 해봐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를 연발했다. 이제 두 사람은 또다른 '처음'에 나서게 된다. 결혼이다. 함께 우승도 처음 겪은 둘이 이제는 처음으로 결혼이라는 관문 앞에 섰다.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좌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울산이 결국 우승을 따낸 것처럼 이들의 결혼 생활도 해피엔딩이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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