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스포츠니어스 | 천안=조성룡 기자] 이게 K리그 퀸컵의 가치일 것이다.

2일 천안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2022 K리그 여자 풋살대회 퀸컵은 1위부터 12위까지 순위를 정하는 대회다. 하지만 때로는 순위가 모든 것의 순서가 되지 않는다. 특히 이런 아마추어 대회는 '잘 하는 것'의 의미가 그리 크지 않다. K리그 퀸컵에서는 잘하는 것만 주목하기에는 아까운 경기가 많다.

이번 K리그 퀸컵은 독특한 시스템으로 대회가 진행됐다. 세 개 팀씩 네 개 조로 나누어 조별예선을 펼친다. 그리고 각 조 1위팀이 4강전을 치러 1~4위를 정한다. 2위와 3위도 같은 시스템으로 순위를 정한다. 이렇게 총 24경기를 통해 1위부터 12위까지가 모두 정해진다.

하루 안에 24경기가 열린다. 그리고 그저 아마추어 경기다. 그래서 한 경기를 콕 집어 소개하는 것이 무의미할 때가 많다. 그런데 이 경기는 짧은 시간 안에 감동과 눈물을 다 담았다. 그래서 한 번 쯤 독자들에게 이 경기를 소개하고 싶었다. 2022 K리그 퀸컵 최하위 결정전, 인천유나이티드와 서울이랜드의 경기다.

끌려가고 끌려가다 최하위로 내려간 두 팀

인천은 산하 아카데미 성인 여자축구교실 멤버들이 주축으로 모였다. 평범한 직장인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자녀를 인천 유소년 팀에 보내고 있는 '엄마'도 있다. 그렇다면 K리그 퀸컵에서는 약체다. 체대 출신에 제법 공 좀 차본 아마추어 선수들이 K리그 퀸컵에는 가득하다. 심지어 WK리그 레전드도 있을 정도다.

서울이랜드는 아프리카TV와 손 잡고 BJ로 팀을 꾸렸다. 모든 선수들이 아프리카TV에서 활동하고 있는 BJ다. 이들은 팀 창단 이후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연습을 해왔다. 물론 열심히 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일주일에 한 번 연습으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팀 관계자들도 목표가 '1무' 또는 '1골' 등이었다.

그렇게 인천과 서울이랜드는 K리그 퀸컵 조별예선에서 연패를 했다. 각 조에서 최하위였다. 하지만 각자 가능성도 보였다. 서울이랜드는 강원을 상대로 BJ황후가 한 골을 넣으며 염원하던 첫 골을 달성했고 인천은 제법 끈끈한 수비로 안산에 0-1로 패했다. '졌잘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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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 그룹으로 밀려난 서울이랜드와 인천은 최하위 결정전은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서울이랜드는 성남에 무려 0-7 대패를 당하면서 고개를 숙였고 인천은 경남과의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한 이후 승부차기에서 1-2로 패하면서 최하위 결정전으로 향했다. 심지어 서울이랜드는 주전 골키퍼 BJ옐쁘가 새끼손가락 골절 부상이 의심돼 병원으로 실려가는 악재를 만나기도 했다.

최하위의 불명예 앞에서 두 팀은 마주했다. 서로 목표하는 바가 있었다. 서울이랜드는 골을 넣었지만 패배하지 않는 경기를 하는 것이 목표였다. 반면 인천은 무승부를 한 번 거뒀다. 그런데 필드골이 하나도 없었다. 딱 한 번이라도 필드골을 넣는 것이 목표였다. 여기에 이기기도 한다면 금상첨화였다.

인천과 서울이랜드가 만든 '천안 극장'

마지막 경기가 시작됐다. 나름대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반드시 이긴다'라는 결의가 가득했다. 서울이랜드의 BJ뀨알은 "저 팀을 반드시 잡아야했다"라고 회상했고 인천유나이티드 좌은아는 "마지막 경기가 하필 제일 긴장되는 경기였다. 이거 지면 풋살 그만두자고 농담 삼아 이야기했다"라고 웃었다.

이날 결승전이었던 수원삼성과 대전의 경기에 비해서 서울이랜드와 인천의 경기는 화려함이 떨어졌다. 하지만 치열했다. 서로 나뒹굴고 공이 양 팀의 골대를 오갔다. 하지만 좀처럼 원하는 골은 터지지 않았다. 실력이 비슷하니 생각보다 팽팽한 경기가 벌어졌다. 전반전은 0-0으로 종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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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후반전 갑자기 경기장에서 큰 환호성이 터졌다. 주인공은 서울이랜드였다. BJ황후가 날린 슈팅이 인천 선수의 몸을 맞고 골대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서울이랜드의 대회 두 번째 골이었다. 이후 최하위 결정전은 전쟁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몸을 던졌고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경기는 점점 막바지를 향해 흘러갔다. 벤치에 있던 BJ뀨알은 계속해서 "이제 얼마 남았는가"라고 외쳤다. 심판은 "1분 10초"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인천이 결정적인 기회를 여러차례 잡았다. 순간적으로 골키퍼가 자리를 비운 텅 빈 골대에 인천 선수가 슈팅하기 직전 서울이랜드가 몸을 날려 막았다.

그리고 10초도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서울이랜드 골문 앞에서 혼전이 벌어졌다. 종료 직전 인천 좌은아의 슈팅이 골망을 뚫었다. 골이 인정되고 곧바로 심판의 종료 휘슬이 울렸다. 인천은 기적같은 필드골에 환호했고 서울이랜드는 망연자실하게 주저 앉았다. 이 대회에서 인천은 총 80분을 뛰었다. 그런데 79분 57초 지점에서 골이 터진 것이다.

결국 최하위는 승부차기로 결정됐다. 여기서 인천 김수경 골키퍼가 맹활약했다. 한 번의 승부차기 경험도 덕을 봤다. 서울이랜드의 슈팅을 모두 막아내며 인천을 최하위에서 구해냈다. 그 순간 최이지 선수의 아들이자 인천 유소년 아카데미에 다니는 김민결 군이 물을 뿌리며 난입했다. 그렇게 인천은 기적적으로 이겼다.

간절함은 최하위가 아니었던 최하위 결정전

양 팀은 후련함과 아쉬움이 가득했다. 인천 득점의 주인공 좌은아는 "우리가 너무 바라던 한 골이었다. 내게 공이 온 순간 정말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면서 "1초가 남았어도 정말 집중하려고 했다. 결국 골이 터졌다. 나 덕분에 동료들이 기뻐해서 정말 좋았다"라고 말했다. 인천의 목표는 '필드골'이었다.

그러던 와중 인천은 계속해서 기뻐했다. 여기저기서 인천을 바라보며 "생존왕"이라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현재 인천은 K리그1 파이널A에 진출해 강등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오랜만에 다시 인천에 '생존왕' 타이틀이 붙은 셈이다. 최이지 선수의 아들 김민결 군은 "인천은 강하다. 그리고 생존왕이다"라고 마음껏 환호했다.

서울이랜드 입장에서는 씁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들의 목표는 달성했다. 두 골이나 넣었고 승부차기로 패배하기는 했지만 무승부라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처음으로 전국대회의 벽을 경험한 서울이랜드는 더욱 더 강한 독기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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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왁심은 "내년에도 할 수 있다면 반드시 K리그 퀸컵에 참가하고 싶다"라면서 "우리는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우리가 좀 더 노력한다면 충분히 그 이상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서울이랜드의 골키퍼 BJ옐쁘는 발목이 좋지 않아 관계자들이 출전을 만류했지만 "꼭 뛰고 싶다. 무조건 뛸 거다"라면서 투혼을 발휘하다가 손가락 부상까지 당해 결국 병원으로 실려갔다. 간절함은 결코 최하위가 아니었다.

이렇게 K리그 퀸컵은 수원삼성의 우승과 대전의 준우승, 그리고 서울이랜드의 최하위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앞으로 K리그 퀸컵이 계속 이어져야 하는 이유를 보여줬다. 잘하는 선수도 못하는 선수도 누구나 K리그의 이름을 달고 마음껏 뛸 수 있는 무대, 그게 K리그 퀸컵의 가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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