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서 근무하며 K4리그 득점 1위’ 고양KH 김운의 축구 인생

ⓒ스포츠니어스. 자신의 번호 11번을 표시하는 김운

[스포츠니어스 | 고양=김귀혁 기자] K4리그에서 신생팀 고양KH가 무서운 질주를 하고 있다. 네 경기 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22승 2무 4패 승점 68점으로 2위와 승점 11점 차 선두를 사수하고 있다. 오는 25일 펼쳐지는 양평FC와의 원정 경기에서 우승을 확정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올 시즌 고양의 기세는 어마어마하다. 이 중심에는 사회복무요원 선수들이 있다. K4리그에서는 한 팀 당 열 명의 사회복무요원 선수를 등록할 수 있는 가운데 고양KH는 이슬찬, 전민광, 최치원, 김수안, 박원재 등 K리그에서도 이름을 날렸던 선수들이 대거 활약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고양의 최다 득점자는 이 선수들이 아니다. 현재 16골로 K4리그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는 김운이 그 주인공이다. 김운은 건국대학교를 졸업한 뒤 K3리그 이천시민축구단에 입단하며 첫 시즌 득점왕을 거머쥐었다. 이후 경주한수원과 대전한국철도, FC목포를 거쳐 올 시즌 고양KH에 합류했다. 프로 출신 선수들이 즐비한 팀에서 세미프로 리그 출신 선수가 득점 1위를 차지하니 이 선수가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스포츠니어스>는 고양KH의 홈구장인 고양종합운동장 보조구장에서 그의 축구 인생사를 들어봤다.

ⓒ고양KH

너무 반갑습니다. 지금 고양KH의 선수 겸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있는데 근무지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저는 고양소방서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업무 강도가 꽤 있는 편으로 알고 있어서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적응하고 나니까 괜찮더라고요. 듣던 것보다도 편의도 많이 봐주셔서 괜찮습니다. 처음에는 출동도 하고 나가서 사람들도 구해야 한다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제가 해야 할 일은 보조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주로 사무 업무를 보조하고 있습니다.

경력을 보니까 고양이라는 도시는 처음이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생활해보니 어떤가요.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라 그런지 인프라도 좋고 살기도 좋아요. 서울도 바로 옆에 있고 수도권 부근이다 보니까 깨끗하고 사람 살기에는 정말 좋은 도시입니다.

낮에는 근무하고 밤에는 훈련하는 일정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맨 처음에는 요령도 없이 일정을 소화하다가 날씨도 더워지고 오래 앉아 있으면서 확실히 근육에 무리가 오더라고요. 살면서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책상에 오래 앉아 있었던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저녁에 운동할 때 어떻게든 노하우를 찾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같은 팀인 박원재도 사무직 업무를 하면서 너무 오래 앉아 있는 것에 대한 고충을 호소하더라고요.
우리 같은 선수들은 근육이 항상 움직이는 데 적응해있습니다. 그러다가 정적으로 계속 앉아 있다 보니까 몸이 먼저 반응하면서 피로가 많이 오더라고요.

사회복무요원 선수들끼리는 서로의 근무지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할 것 같습니다.
저녁에 만나면 ‘오늘 무슨 일 했느냐’, ‘너의 근무지는 편의를 많이 봐주냐’ 등에 대해 이야기하죠. 그 외에도 ‘꿀무지(상대적으로 업무가 편해서 달콤하다는 ‘꿀’과 근무지의 합성어)’인지 ‘헬무지'(상대적으로 업무가 힘들어서 지옥을 뜻하는 영어 ‘Hell’과 근무지의 합성어)인지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그날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으면 서로 말하면서 같이 웃기도 하죠.

그러면 김운 선수는 소방서 근무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지금은 다른 소방서로 가신 팀장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축구를 정말 좋아하셨어요. 제가 축구선수라고 하니까 애정이 많이 가셨나 봐요. 그래서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시다가 어느 날 은퇴 후의 삶에 대해 물으시더라고요. 요즘 축구 선수들은 은퇴 후에 뭐 하냐고 물으셔서 주로 지도자를 많이 한다고 말씀드렸죠. 그러면서 소방 공무원은 어떻냐고 하시면서 진지하게 고려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아직은 은퇴를 생각할 나이도 아니고 선수 생명도 과거에 비해서 길어졌다 보니 당장 크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그 팀장님은 가셨지만 그래도 저를 생각해주시는 것 같아서 감동을 많이 받았죠.

상대적으로 힘든 ‘헬무지’ 근무자들도 있지 않나요. 예를 들어 은성수 선수는 요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서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나요.
일단 (은)성수 형은 본인 자리와 책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근무지에 가면 제 이름이 써져 있는 책상이 따로 있습니다. 성수 형은 아무래도 많이 돌아다니는 반면에 저는 주로 앉아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거기에서 차이가 있죠. 물론 성수 형이 워낙 어른들을 잘 대해주다 보니까 그런 업무는 잘할 거예요.

반대로 근무지와 안 어울리는 선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희웅이라고 상근 예비역 선수가 있습니다. 출퇴근하고 있는데 또 해병대예요. 그런데 선수들끼리는 군대 잘 못 간 것 같다고 항상 이야기합니다. 본인과 어울리는 곳을 가야지 너무 힘든 곳으로 갔어요. 워낙 (정)희웅이가 조금 야리야리하면서도 날쌘 이미지거든요. 해병대라고 하면 뭔가 강인하고 듬직한 모습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가끔 희웅이에게 군대 잘 못 갔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놀라운 게 오자마자 K4리그 득점 1위(16골)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즌 전에 각오가 남달랐나요.
딱히 뭘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팀에 오는 동료들의 이름을 들었을 때 워낙 유명한 선수들이어서 기대가 됐죠. 그렇게 잘하는 사람들과 같이 운동하면 배울 점도 많고 코치님들도 좋은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고양에 온 것도 그런 이유가 컸어요. 현재 배성재 감독님도 제 고등학교 시절 코치님이셨고 감독님도 다행히 저를 좋게 봐주셔서 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은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고양으로 결정했습니다.

실제로 고양에서 K리그 출신의 선수들과 뛰어보니 느끼는 점도 많을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프로에 있다가 잠깐 군 복무를 위해 온 거기 때문에 안일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기하는 거 보면 아시겠지만 전혀 아니에요. 감독님도 서로 희생하면서 거칠게 경기에 임하다 보면 분명 득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같이 훈련할 때도 연습 상대가 (전)민광이 형, (임)동혁이 형, (김)수안이 형 같이 프로에서 있던 형들입니다. 수준이 워낙 높아서 운동하면서도 많이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KFA. 건국대 시절의 김운

이력 자체가 독특합니다. 보통 K4리그에서 뛰는 사회복무요원 선수들은 프로에 있다가 오는 경우가 많잖아요. 반대로 김운 선수는 내셔널리그부터 K3리그 등 세미프로 리그에서 뛰다가 넘어왔습니다. 이쯤 되면 어떻게 축구를 시작했는지부터 궁금해집니다.
크게 특별할 것 없이 동네 축구를 하다가 대전에 있는 한 초등학교 클럽팀 감독님으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는 축구를 할 생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는 주말에만 하는 축구 클럽에 나가서 취미로 즐겼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께 축구를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부모님은 그전까지 저를 축구시킬 생각이 없었습니다. 위험하기도 하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처음에는 반대를 하셨죠. 그런데 제가 ‘축구할 때 너무 행복하다’라고 말했더니 그때 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그 말을 한 기억이 안 나는데 부모님이 전해주시더라고요.

비교적 축구를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힘든 점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동네 축구할 때는 소위 말해 ‘짱’이었고 그 생각으로 축구부에 들어갔는데 제가 제일 못하더라고요. 어떻게든 따라가야 해서 하루에 운동을 네 번씩 했습니다. 새벽, 오전, 오후, 저녁으로 나눠서 어떻게든 따라가려고 했어요. 그러면서 ‘내가 졸업할 때는 너희들보다 위에 있겠다’라는 마음을 먹었는데 실제로 어느 정도 발전을 해서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점도 많지 않았나요.
사실 당시 감독님이나 코치님께 엄청 혼났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중학교 때는 축구에 대해 임하는 자세를 많이 배웠던 것 같습니다. 운동선수로서의 자세라고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선수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했죠. 다른 선수들이 잘 때 나는 더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훈련을 하다가 서서히 앞서 나간다는 걸 느꼈을 때 보람을 느끼면서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중학교 때 동료들도 축구를 아예 안 배운 선수가 졸업할 때는 확 달라져 있으니 놀랍기도 했을 것 같네요.
아마 처음에는 저를 약간 무시했을 거예요. 그 친구들은 엘리트 초등학교에서 서로 짝지어서 오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볼 때는 더 그런 감정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는 동고동락하면서 서로 친해졌죠. 지금도 중학교 친구들과 만나면 ‘처음에는 그렇게 못했는데 많이 잘해졌다’면서 우스갯소리도 듣습니다.

어떤 식으로 노력을 기울였나요.
저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했다기보다 무작정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만약에 외박에 나갔다가 저녁 8시까지 복귀하라고 하면 저는 저녁을 일찍 먹고 오후 6시 정도에 미리 가서 개인 운동을 했어요. 다른 애들보다 한 번이라도 공을 더 만져봐야겠다는 목적이었죠. 축구를 늦게 시작했다 보니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에 중학교 친구들이 독하다는 이야기도 했었죠.

부모님도 아들이 그렇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많이 기다려주셨어요. 당장 성과가 안 나와서 많이 답답하셨을 것 같기는 한데 제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는 잘한다는 소리를 조금 들었어요. 그때 부모님도 만족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반면에 아버지는 경기를 보시면서 부족한 점이 눈에 보이면 바로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축구인 출신은 아니지만 예전에 태권도 선수셨거든요. 운동인의 마음을 아셔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신 거죠. 제가 축구를 시작하고 경기도 많이 따라다니시면서 응원도 해주시고 골 넣으면 누구보다도 좋아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는 평택 신한고로 진학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하고 나서는 어떠셨어요.
아무래도 지역이 경기도니까 여러 지역에서 선수들이 많이 왔어요. 중학교 때는 열심히만 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었는데 거기에서는 축구를 쉽게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쉽게 축구를 하면서 약도 올리니까 ‘이렇게도 할 수가 있구나’라며 많이 배웠어요. 형들이 하는 플레이를 따라 해 보면서 저만의 모습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때가 지금 생각해봐도 축구 인생에서 가장 잘했을 때이기도 하면서 성장도 많이 했죠.

고향인 대전에서 중학교를 나왔다가 고등학교를 좀 떨어진 곳으로 가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지금은 수원삼성에서 뛰고 있는 양형모 골키퍼가 저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선배님이에요. 그리고 당시 중학교 감독님과도 잘 아셔서 소년 체전을 보고 선발을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대전에 있기가 싫었어요. 왜냐하면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타지로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신한고에서 제안이 오고 부모님과 이야기를 한 뒤 결정하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기대도 많고 설렘도 컸어요.

그러면 숙소 생활하면서 지냈을 것 같은데 어린 나이에 힘든 적은 없었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했나 싶기도 해요. 숙소가 2층 침대였는데 군대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거든요. 그런데 또 그 나이대만의 감성이 있습니다. 같이 붙어 있으면서 동고동락했던 매력이 있어요. 지금이었다면 많이 불편했겠지만 당시에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잠드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얼마 전에도 홈경기를 하는데 고등학교 친구들이 와서 응원도 해주고 인사도 나눴습니다. 지금 고양KH 배성재 감독님이 고등학교 때는 코치님이셨거든요. 그래서 친구들이 감독님께도 인사드린 것으로 압니다.

고등학교 때 배성재 감독님은 어떠셨어요.
처음에는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오후 세시 운동인데 두시 반부터 미팅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운동하기 전에 따로 전달하시는 사항이 있나 궁금해서 가봤더니 칠판에 뭘 쓰고 계셨어요. 알고 보니 그날 운동할 프로그램을 다 쓰면서 설명해주시더라고요. 그때 당시에는 굉장히 신선하면서도 충격이었습니다. 옛날에는 그냥 뛰라고 하면 뛰는 수준에 머물렀었거든요. 그만큼 능력있는 분이라는 것을 느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이후에 태국으로 가시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시더라고요.

지금도 배성재 감독님은 프로그램을 다양화해서 훈련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운동이 맨날 바뀝니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고 몸 가는 대로만 움직이면 운동이 안 될 정도로 훈련 프로그램 수준이 엄청 높아요. 감독님께서는 선수들이 항상 깨어있는 걸 원하시는 것 같고 그래서 너무 좋습니다.

ⓒKFA. 경주한수원 김운

그렇게 신한고에서 많은 성장을 한 뒤에 건국대학교로 진학했습니다. 당시에는 프로에 대한 욕심도 조금씩 생겼을 것 같은데요.
일단 프로 산하 유스팀이 아닌 이상 고등학교에서 프로로 바로 직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보통 대학교를 거쳐서 가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었죠. 저는 사실 이대로만 하면 프로에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워낙 컨디션이 좋았고 잘하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가니 피지컬에서 한계를 많이 느꼈습니다. 그때 감독님은 저를 좋게 봐주셔서 기회를 어느 정도 얻었는데 막상 피지컬이 완성이 안 돼 있으니까 한계가 있더라고요. 고학년 형들과 상대하려고 하다 보니까 너무 힘들었죠. 그러면서 제가 준비를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당시 건국대학교는 현재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인 이상윤 감독님이 이끌고 계시지 않았나요.
네 맞아요. 해설하면서 워낙 텐션이 높잖아요. 그런데 그때도 지금과 정말 똑같으셨습니다. 이상윤 감독님께도 축구를 많이 배웠어요. 기술축구를 추구하셨거든요. 축구할 때만큼은 정말 진지하시고 본인만의 축구 철학이 굉장히 뚜렷하신 분입니다. 비유하자면 아스날 축구를 했어요. 별명도 ‘사냐 아빠’잖아요(아스날에서 활약했던 오른쪽 측면 수비수 바카리 사냐를 좋아해서 생긴 별명). 실제로 동계 훈련 때 짧은 패스로 아기자기한 플레이를 많이 준비했는데 첫 경기 때 그게 잘 먹혀서 엄청 신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도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대전에서 평택으로 갔는데 대학교는 서울까지 갔으니 나름 뿌듯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우물에서 한강까지 갔죠. 조금만 더 하면 바다로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목표에 점점 가까워진 거죠. 그래서 대학교에서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 반면에 하다 보니까 잘하는 사람도 엄청 많고 점점 큰 무대로 가면서 제 자신감에 의문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원래 대학교 2학년 때 프로팀으로부터 좋은 이야기가 있어서 목표를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이야기가 잘 안 돼서 감독님과 1년만 더 하고 가기로 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대학교 3학년 때 많이 나갔거든요. 그러다가 대학교 3학년 때 감독님이 바뀌신 거예요. 그래서 프로팀 관련 이야기는 다 없어지고 점점 안 풀리게 됐죠. 그러면서 마음도 급해지고 제일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하더라도 피지컬에 어려움을 느꼈음에도 1년 만에 프로팀 제의가 와서 내심 좋았겠는데요.
결과적으로 성사가 안 됐지만 제의를 받았다는 거 자체가 긴가민가 했어요. 만약에 바로 프로로 간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지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요. 물론 자신감도 있었죠. 저를 높게 평가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갖고 있는 장점은 어느 정도 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가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죠. 슬슬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 친구들은 하나둘씩 취업했다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저는 진전도 없고 정체돼서 성장이 멈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프로 진출 대신 당시 K3리그 어드밴스(현재 K4리그 격) 이천시민축구단으로 갔습니다. 이적하자마자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대학교 4학년 때 잘 안 되다 보니까 축구를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1년만 더 해보자는 생각으로 간 곳이 이천이었죠. 솔직히 K3리그에 가면서 자존심도 많이 상했어요.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이었음에도 이천에서 저를 거둬주셔서 1년 정도만 해보고 여기에서도 안 되면 핑계 대지 말고 바로 그만두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또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축구가 잘 되더라고요. 득점왕도 차지하면서 바로 내셔널리그(현재 K3리그 격)인 경주한수원으로 가게 됐습니다.

1년만 더 하겠다는 다짐을 했을 때 부모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부모님께는 따로 말씀을 안 드렸어요. 생각만 하고 있다가 정말 안 됐을 때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러한 다짐 자체가 정말 절박했기 때문에 나왔던 것이라고 봅니다.
정말 간절했고 상처도 많이 받았죠. 어떤 식으로든 증명을 해야 저를 한 번이라도 더 봐주시고 뽑아갈 수 있는 거잖아요. 그때 당시에도 저녁 운동이었거든요. 저는 오전과 오후에 개인 운동을 따로 하고 저녁에 단체 운동을 하는 일상을 보냈습니다. 주말에도 계속 경기하면서 포기 하지 않고 ‘존버’했던 것 같아요.

개인 운동을 하면 컨디션 유지하기도 힘들지 않았나요.
그때 운동장과 숙소 거리가 꽤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교통편도 좋지 않아서 가끔 버스 타고 가서 운동했다가 다시 버스 타고 돌아오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때 버스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던 게 ‘이렇게 하는 게 나에게는 언젠가 도움이 되겠다’라는 것이었어요.

ⓒ고양KH

이후 좋은 기세로 2018년에 경주한수원으로 이적했는데 사실 활약이 조금 주춤했거든요.
가자마자 시즌 준비도 잘했는데 그만 갈비뼈가 부러졌습니다. 그때는 동계라서 땅바닥이 얼어있었거든요. 혼자 다이빙 헤더를 하다가 땅에 제 팔꿈치와 같이 찍혀서 동계 훈련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서보원 감독님이 기회를 잘 주셔서 시즌 초반에 경기에 나섰습니다. 그러다가 경주한수원에는 워낙 좋은 선수들이 많이 뽑혀오니까 스스로 급해지면서 많이 주춤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다행히 제가 챔피언결정전과 같이 중요한 경기에서는 골을 제법 넣었어요. 그래서 ‘가을 전어’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20년에는 대전한국철도축구단으로 갔습니다. 고향 대전으로 돌아와서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일단 경주한수원에서는 경기에 많이 나서지 못했습니다. 경쟁도 많이 해야 하니까 좀 더 안정적인 곳으로 가야겠다 싶었죠. 그리고 집이 대전이라서 선택하게 된 것도 있었습니다.

경주에서는 어떤 점이 많이 힘들었나요.
그때가 스물여섯살 때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어렸던 것 같아요. 경기는 뛰고 싶은데 막상 나가면 딱히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으니 지도자 입장에서는 출전시키기 어려웠죠. 그런데 저는 단순히 뛰지 못했다는 이유로 굉장히 속상했습니다.

그럼에도 대전에 가서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대전과 경주는 워낙 스타일이 달라요. 대전은 지도자 분들도 굉장히 부드러우시거든요. 거기에서 좋은 경험을 많이 했죠. 대전에서 축구를 생각하는 자세에 대해 많이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고향이라 심리적으로 편했을 것 같은데 이듬해에는 또 FC목포로 이적했습니다.
시즌 중에 당시 김정현 수석코치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그때는 대전한국철도와 재계약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고민이 많았는데 워낙 강력하게 어필을 해주셨어요. 제가 경주한수원에 있을 때 언젠가는 같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진심에 이끌려서 며칠 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이적을 결정했습니다.

대전에서 시작해 평택과 서울까지 갔는데 이번에는 목포로 가게 됐습니다. 워낙 지방이라 거기에서는 어떤 생활을 하셨는지도 궁금해지네요.
일단 가장 좋은 점은 목포에는 목포축구센터가 있습니다. 그 안에서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운동 환경은 정말 최고예요.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헬스장도 있고 천연 잔디 구장 세 개에 인조잔디 구장도 다섯 면 정도 있는 걸로 기억해요. 제가 밥 먹고 나가면 바로 운동할 수 있을 정도로 시설이 좋았습니다. 물론 시골이다 보니까 노는 걸 좋아하는 선수들은 좀 힘들어했었는데 저는 다행히 그런 유형은 아니었습니다. 목포 생활이 나름 잘 맞았어요. 쉴 때도 선수들과 커피를 마시거나 맛집 다니는 게 취미였습니다.

목포에서의 기억은 좋았던 것 같은데 바로 군입대를 결정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사실 대전에 있을 때 시즌 끝나고서는 군 복무를 하겠다고 다짐했어요. 사회복무요원 선수들을 안 뽑는다는 소문도 있어서 그전에 빨리 가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리고 같은 리그에 계속 있다 보니 현실에 많이 안주하는 듯한 느낌도 있었습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FC목포에서 연락을 줘서 1년만 더 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습니다. 그때도 목포 구단에 확실히 말했습니다. 1년만 하고 군대를 가겠다고요. 그런데 시즌 끝나고 제가 나름 활약이 좋아서 더 하고 가면 안 되겠냐고 구단에서 말씀하셨는데 그때는 정말 군대에 가겠다는 의지가 확고했습니다.

사실 이천에서는 득점왕까지 했다가 잠시 활약이 저조한 순간도 있었잖아요. 목포에서 다시 좋은 활약을 펼친 계기가 있었나요.
목포는 환경이 좋은 만큼 운동이 워낙 힘들어요. 강도도 세고 횟수도 많았죠. 그래서 목포에서 피지컬이 엄청 좋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전이었다면 엄청 크게 다칠 것도 조금만 다치더라고요. 그때의 생활이 지금까지도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그 시간 덕에 현재 K4리그 득점왕이고 팀도 우승이 유력합니다. 좋으면서도 우승해서 K3리그로 승격하게 되면 동료들과 헤어지기 때문에 아쉬움도 클 것 같아요(K4리그만 한 팀 당 사회복무요원 선수 열 명을 등록 가능, K3리그는 불가).
경기를 하면 할수록 선수들끼리도 잘 맞고 이 정도면 승격을 하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보니 선수들도 다음 시즌에는 어느 팀을 가야 할지 생각도 할 거예요. 지금 선수들끼리도 잘 맞고 같이 있으면 잘할 수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기 때문에 흩어져야 하는 아쉬움이 너무 큽니다.

창단 1년 차인 신생팀인데도 이렇게 빨리 호흡을 맞출 수 있었던 비결은 뭔가요.
배성재 감독님이 선수들을 많이 존중해주세요. 그래서 선수들도 감독님을 믿고 더 존중을 하죠. 싫은 소리가 나올 수 있는 것도 최대한 좋게 이야기하시면서 갈등을 만들지 않는 것이 비결이라고 봅니다.

기간은 좀 남았지만 소집해제 이후의 삶도 생각하실 것 같아요.
지금 활약이 좋아서 그런지 몰라도 ‘어느 구단에서 널 원하더라’라는 이야기도 조금 들리긴 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 이야기가 올해만 반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 기량을 유지해서 유효하게 끌고 가고 싶어요. 아직 프로 리그를 한 번도 못 가봤잖아요. K리그에서 저를 원하는 팀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FA컵에서 K리그팀을 만나신 적도 있지 않나요.
좀 아픈 기억이기는 한데 경주한수원에 있을 때 FA컵 8강에서 수원삼성을 만났습니다. 그때 페널티킥까지 승부를 끌고 갔는데 거기에서 제가 1번 키커로 나와서 실축을 했어요. 그리고 수원삼성 팬분들은 워낙 열성적이고 팀에 대한 애정도 많아서 응원을 열심히 해주시잖아요. 선수들끼리 경기장에서 이야기할 때도 웬만한 소리보다 더 크게 내야 들리는 정도였습니다. 거기에 정말 놀랐고 저도 ‘이런 응원을 받으면서 뛰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게 프로로 가기 위한 꿈을 계속 꾸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올 시즌 남은 목표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현재 다섯 경기(인터뷰 일 기준)가 남았는데 최근 경기에서 득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금 흐름이 떨어진 거 아닐까 걱정도 많이 해주시는데 휴식기 동안 준비 잘해서 스무 골에 도움은 열 개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팀도 지금은 1위지만 방심하지 않고 끝까지 잘해서 우승을 하고 싶습니다.

ⓒ고양KH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김운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자주 웃음을 보였다. 제법 우여곡절이 많은 축구 인생이었지만 힘든 이야기를 할 때도 밝은 표정을 유지했다. 그의 축구사를 들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이천시민축구단 시절이었다. 개인 훈련으로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김운은 버스 창 밖을 바라보며 ‘이 시간이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이다’라며 스스로를 일깨웠다. 축구에도 우리의 인생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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