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 전주=김귀혁 기자] 전북 팬들의 성난 외침에도 김상식 감독은 답변 없이 경기장을 떠났다.

7일 전북현대는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FC서울과의 하나원큐 K리그1 2022 30라운드 맞대결에서 득점 없이 0-0으로 비겼다. 전북은 경기 초반 문선민의 뒷공간 침투를 앞세워 공세적인 모습으로 나섰으나 이후 이렇다 할 기회를 잡지 못하며 네 경기 연속 무승(3무 1패)의 늪에 빠졌다. 이날 결과로 전북은 수원삼성에 승리를 거둔 울산과의 승점차가 10점으로 벌어지게 됐다.

경기가 끝난 직후부터 심상치 않은 상황이 포착됐다.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리자 서울 원정석을 제외한 경기장 곳곳에는 야유 소리가 흘러나왔다. 물론 경기를 뛴 선수들에게 향한 것은 아니었다. 선수들이 인사를 건네기 위해 E석을 시작으로 N석과 W석을 차례로 방문할 때도 서포터스 석을 포함한 관중석에서는 박수를 보내며 무승부를 기록한 선수들을 위로했다.

하지만 다시 야유가 시작됐다. 야유보다도 더 큰 볼 멘 소리가 여러 곳에서 터져 나왔다. 전북 선수단이 인사를 다 마친 후 김상식 감독은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등을 토닥이며 위로의 제스처를 취했다. 그 사이 서포터스석에는 콜리더를 포함해 팬들 앞으로 나오라는 이야기를 했으나 김상식 감독은 선수들을 다 반긴 뒤 곧바로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그 모습을 본 전북 서포터스 'MGB'는 "김상식 나가"를 연호했다. 그 이후에는 허병길 대표이사를 향해 "허병길 나가"를 크게 외쳤다.

전북 팬들 마음에 자리 잡고 있던 고름이 결국 터진 것이다. 김상식 감독은 지난해부터 모라이스 감독의 후임으로 전북의 지휘봉을 잡았다. 부임 첫 해 울산현대와의 치열한 접전 끝에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으나 경기력에 대해서는 팬들 사이에 의문 부호가 붙었다. 그리고 올 시즌부터 경기력 문제가 결과로 나타나자 팬들이 들고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모기업인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트럭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팬들 사이에도 갈등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허 대표이사의 구단 운영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후 경기가 끝나자 팬들은 속속들이 본부석 앞으로 향했다. 이곳은 전북 선수단의 버스가 출발하는 장소다. 기자가 김상식 감독의 인터뷰까지 마친 뒤 현장에 도착하자 팬들은 이미 선수단 통로 밖 주변과 버스 일대를 에워싸고 있었다. 일부 팬들은 "언제 나오냐"라는 소리와 함께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한쪽에는 '김 빠지는 경기 상실된 전술 식견 없는 리더 OUT'이라는 김상식 감독의 삼행시를 활용해 걸개를 게시했다.

주변에 있던 보안 업체 직원들 역시 버스 주변에 서 있으며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이후 선수들을 태워야 한다는 보안 업체 직원의 이야기에 전북 팬들은 "선수들은 보내야 한다"라며 버스 앞으로 길을 트기도 했다. 이후 선수들이 버스에 올라타자 전북 서포터스는 콜리더의 선창 아래 응원가를 외치며 독려했다. 선수단 통로 주변에 있던 팬들도 인사를 하는 등 이전에 보였던 살벌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현장은 다시 소란에 휩싸였다. 전북의 한 팬이 메가폰을 잡고 이날 경기 후 김상식 감독의 기자회견을 읽으면서부터였다. 김상식 감독은 이날 공격 상황에서 어떤 점이 아쉬웠냐는 기자의 질문에 "마지막에 패스 실수도 있었고 문선민의 세밀함이 조금 부족했다. 구스타보가 들어가면서 좋은 크로스가 나와야 했지만 막히고 말았다"라고 이야기했다. 이 말을 메가폰으로 전한 해당 팬은 이후 "X발"을 외쳤고 주변에 있던 팬들도 "언제까지"라며 크게 소리쳤다. 주변에서는 "문선민 파이팅"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팬들이 이러한 반응을 보내는 이유는 얼마 전 김상식 감독의 발언 때문이다. 김 감독은 지난달 29일 포항과의 경기를 앞두고 경기 전 문선민의 명단 제외 이유에 대해 “문선민이 운동에서 집중하는 모습이 덜 보인다”며 “선수는 항상 운동장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특히 전북현대 선수라면 더 그렇다. 문선민은 컨디션이나 의지나 열정이 좀 떨어져 있는 게 사실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 발언 이후 문선민은 커뮤니티에 해명글을 올리기도 했고 팬들은 해당 글에 공감하며 문선민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던 중 마지막으로 김진수가 버스에 올라타고 문이 닫히자 팬들은 선수단의 출발을 위해 길을 비켰다. 이 과정에서 전북 팬들은 다시 북을 두드리며 응원가를 힘차게 외쳤다. 이윽고 'MGB'의 콜리더 조동호(42) 씨는 "우리 허병길 대표이사님께서 우리의 의견에 목소리를 내주셨습니다"라며 좌중을 집중케 했다. 이후 그는 "답이 왔는데 자리를 잡아서 다음에 만나자고 하네요. 여기까지가 전해 받은 이야기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전한 직후 팬들 사이에서는 다시 욕설이 흘러나왔고 이에 콜리더는 구단 사무실을 향해 "허병길 나와"를 크게 외쳤다. 팬들도 이에 호응하며 힘차게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선수단 버스가 떠난 뒤에도 김상식 감독 및 코치진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다 선수단 통로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팬들이 원하던 김상식 감독이 아닌 이날 경기 양정환 경기 감독관이었다. 양 감독관은 'MGB'의 콜리더와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눴다. 그 내용은 곧 일부 팬들만 안에서 따로 이야기를 나누면 안 되겠냐는 중재안이었다. 감독관 입장에서도 혹시 모를 무력 충돌 및 안전사고에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콜리더는 "우리가 무력충돌을 할 의도는 전혀 없다"면서 "솔직히 대화도 나눌 필요 없다. 들을 이야기도 없고 할 이야기도 없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 달라"라고 이야기했다. 이후 기자와의 대화에서 이 콜리더는 "지금 만나서 이야기를 듣자고 모이는 게 아니다"라며 "일부 팬들만 이야기하면 지금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뭐가 되나. 그건 아니다. 어차피 들을 이야기도 없다. 우리는 할 이야기만 할 것이고 그것은 그만두시라는 이야기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참 비겁하다. 축구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닌데 감독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라며 "본인이 몇 경기 안에 승부를 보겠다는 이야기를 해야 맞다. 그런데 뒤에서 숨기만 하고 선수 탓만 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 콜리더와 이야기를 마친 양정환 감독관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0분 뒤 김상식 감독을 필두로 코치진이 버스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김상식 감독은 일부 팬들에게 가벼운 인사를 한 뒤 서둘러 버스에 올라탔다. 그 이하 코치진들도 마찬가지였다.

주위에 있던 전북 팬들은 "무슨 이야기 하나 들어보자"라고 말하다가 아무 소통이 없자 "아니 진짜 그냥 간다고?"라며 허탈해하는 모습이었다. 이후 전북 팬들은 사전에 약속했듯 안전하게 버스가 가도록 길을 터주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팬들은 욕설과 함께 "김상식 나가"를 외쳤다. 이후 시선은 구단 사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팬들은 "허병길 거기 숨지만 말고 나오라고"라며 대화를 요구했다. 허병길 대표이사가 이 시각 구단 사무실에 있었는지에 대한 여부는 확실치 않다.

결국 'MGB' 콜리더는 더 이상의 행동을 취할 수 없다는 판단에 "뒤에 숨는 감독과 그 보다 더 뒤에 숨어서 얼굴도 안 비치는 대표이사가 있다. 이제 이 모습을 끝내야 할 것 같다"면서 "그동안 '왜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했냐'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다. 우리가 하면 어떻게 할 것이지 보여주겠다. 늦은 시간 얻은 것 없이 돌아가게 됐지만 이 고생한 것 제대로 얻어내겠다. 전북 축구 제대로 만들어봅시다"라는 외침과 함께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MGB' 콜리더가 떠난 이후에도 일부 팬들은 분에 못 이기며 구단 사무실을 향해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스포츠니어스. 경기 종료 후 해산을 알리는 콜리더

표면적으로 무승부라는 결과만 놓고 보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왜 버스를 가로막으며 대화를 요구했던 것일까. 전북현대 서포터스 'MGB'의 콜리더 조동호 씨는 "시즌을 보내면서 감독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커져왔지만 그것을 억누르고 있었다"면서 "구단 운영에 대해서 허병길 대표이사가 오고 난 뒤에는 불만도 있다. 그런데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도 있고 시즌 일정도 빡빡하다 보니 집단 행동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즌이 마무리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경기력과 운영에 불만이 터졌고 이에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허병길 대표이사에 대해서는 지금 많은 팬들이 운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분의 운영 계획에 대해서 듣고 싶은 마음이 크다"면서 김상식 감독에 대해서는 "정말 많은 부분이 있다. 왜 팬들이 본인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불만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본인이 잘 알 것이다. 계속 나아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그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싶은 것이다. 그 책임은 다시 말해 사퇴다. 책임을 묻고 그에 걸맞게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달라는 뜻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타올랐던 불만에 이날 경기 종료 후 팬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던 점이 기폭제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자 조 씨는 "그 이유는 전혀 아니다. 그냥 인사 안 해도 된다"면서 "다만 최강희 감독 시절부터 이어오던 전북의 정체성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홈에서의 패배는 죽음과 동급'이라는 최강희 감독의 격언도 있고 전주성 특유의 분위기도 있다. 전주성에서 홈팬들에게 언제나 즐거움을 줘왔고 그게 선수들의 책임이고 이를 만드는 것이 감독이다. 그런데 올해 홈경기 승리 수 보면 알 것이다. 그에 대한 책임이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옆에 있던 또 다른 전북 팬은 "선수 탓하는 감독은 자질이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항상 보면 문선민을 시작으로 누구 탓이라면서 선수 이름을 꼭 집어서 이야기를 한다. 누가 잘못했다는 것을 말하는 감독은 진짜 자질이 없는 것 아닌가. 올 시즌 내내 선수 탓만 계속한다. 왜 콕 집어서 선수 탓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에 조 씨는 "우리가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면서도 "K리그 최고 수준의 측면 공격수가 있음에도 측면이 주 포지션이 아닌 김보경을 투입한다. 이해할 수 없는 전술과 행동에도 팬들이 폭발한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건넸다.

양정환 경기 감독관과 이야기를 나눈 뒤에도 그는 "우리는 훈련 태도와 같이 내부적인 상황을 전혀 모른다. 문선민이 나가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도 모른다"면서 "내부에 그런 문제가 있다고 치자. 이를 언론에 이야기하면서 선수를 흔드는 것이 감독으로서 맞다고 보는가?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이를 안에서 잡아도 부족할 판에 외부적으로 흘리고 다니면서 선수 한 명을 바보로 만들어 놨다. 최강희 감독 때부터 문제가 없었겠는가. 하지만 이를 외부적으로 이야기해서 인민재판하듯이 자기 편들어 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이야기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뒤 조 씨는 "그냥 행복한 축구, 전북다운 축구를 보고 싶다"면서 "왜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아무 행동도 안 했냐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팬들 사이에 갈등이 있기도 했다. 트럭 시위에 대해서도 MGB가 공식 입장을 보이지 않아서 팬들 사이에 말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전북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그런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행동에 있어서 미흡하고 팬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미안한 감정이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조 씨의 이야기대로 전북 팬들의 인터넷 커뮤니티 '에버그린'에서는 지난 6월 트럭 시위를 추진해 시행했다. 하지만 당시 전북 서포터스는 이렇다 할 의견을 내지 않았다. 이에 일부 팬들은 '구단과 서포터스가 한 팀 아니냐'는 오해를 하기도 했으나 이날만큼은 달랐다. 이날 구단 버스 주위로 모였던 팬들 중 일부는 '김 빠지는 경기 상실된 전술 식견 없는 리더 OUT'이라는 걸개를 들고 서 있었다. 사실 이 걸개는 이전부터 E석에서 종종 볼 수 있었으나 당시에는 N석에 있는 'MGB'와는 연대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날은 모두가 한 마음이었다. 걸개를 들고 있던 조민(20) 씨는 "예전에는 N석에 있는 MGB 연대와 의견 통일이 안 됐다"면서 "오늘 '김상식 아웃'이라는 구호도 처음 듣는 것 같다. 이후 경기 끝나고 N석에 있는 콜리더분들이 버스를 막아야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도 그 소식을 듣고 걸개를 들고 가게 됐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길 때는 사진을 찍기 위해 팬들 앞에 섰지만 비기거나 졌을 때는 야유가 두려워 뒤로 숨는 모습도 많이 봤다. 그것이 오늘 크게 작용한 것 같다"라고 덧붙이며 계속해서 걸개를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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