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전북현대 김상식 감독이 말도 없이 경기장을 빠져 나간 건 큰 문제다.

전북현대는 7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하나원큐 K리그1 2022 FC서울과의 홈 경기를 치렀다. 리그 2위를 기록 중이면서 리그 선두 울산현대와의 승점 차를 좁혀야 하는 전북현대는 이 경기에서 졸전 끝에 0-0 무승부에 그쳤다. 어린 선수들 위주로 리빌딩 과정을 겪고 있는 FC서울과 리그에서 가장 몸값을 많이 받는 전북현대가 비긴다는 건 의외의 일이었다. 이건 정말 상식 밖의 경기 결과였다.

문제는 이후에 터졌다. 팬들이 거세게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경기장에서는 “김상식 아웃”이라는 구호가 터져나왔고 결국 팬들은 선수단 버스 출입구까지 몰려와 “김상식 나가”라는 말과 함께 대표이사인 허병길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김상식 감독은 아무 말도 없이 버스에 올라 경기장을 빠져 나갔고 허병길 대표이사는 현장에 등장하지도 않았다. 이후 팬들은 불이 환하게 켜진 구단 사무실을 향해 거센 항의를 이어갔지만 결국 팬들은 그 누구로부터 최근 부진에 대한 이유나 대안을 듣지 못한 채 자리를 떠야했다.

K리그에서 팀이 부진하면 선수단 버스를 가로막고 항의하는 모습이 종종 벌어진다. 그 점잖다는 강원FC 팬들도 2012년 수원삼성에 패한 뒤 강등이 눈앞에 닥치자 선수단 버스를 막은 적이 있다. 수원삼성은 내 기억으로만 두 번이나 팬들이 선수단 버스를 가로막고 경기력을 성토했고 2016년에는 인천유나이티드도 광주에 0-1로 패한 뒤 버스가 막혔다. 포항스틸러스도 최진철 감독 시절 극도로 부진했던 감독을 성토하기 위해 아예 경기 종료 후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FC서울도, 서울이랜드도 팬들이 버스를 막고 거세게 성토한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선수단의 대응은 비슷했다. 감독이 직접 나와 메가폰을 잡고 사과를 하거나 향후 대안을 제시하며 팬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대화를 했다. 2012년 강원 김상호 감독은 수원삼성에 패한 뒤 버스가 막히자 버스에서 내려 “절대로 강등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약속했고 선수단에 박수와 응원구호를 보내며 해산했다. 2016년 성남FC 구상범 감독대행은 버스 앞에서 항의하는 팬들 앞으로 가 무릎까지 꿇으며 사과했다. ‘이 정도까지 해야하나’ 싶을 정도의 대응이었다. 오히려 팬들이 구상범 감독대행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선수단 전체가 버스에 타 있는데 팬들이 경기력을 질타하며 버스를 막고 있다면 최고 수장인 감독이 당연히 버스에서 내려 팬들을 설득하는 게 맞다. 그게 책임있는 이의 모습이다. 누군들 그 자리가 피하고 싶지 않겠나. 하지만 선수들도 ‘우리 감독님’이 팬들에게 질타를 받으면서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며 ‘감독님을 지켜주자’는 동기부여로 똘똘 뭉치는 경우를 종종 봐 왔다. 어찌보면 이것도 감독으로서 선수단에게 보내는 하나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감독은 성적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리이고 언제든 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꼭 버스 앞에 나와서 감독이 머리를 조아리라는 게 아니다. 2017년 부천FC와 경남FC의 경기 도중 한 경남 선수가 부천 팬들을 향해 도발 세리머니를 했고 이후 부천 팬들은 항의 차원에서 경기 후 경남 선수단 버스를 막아 세웠다. 무려 부천 팬들과 경남 선수단이 3시간이나 대치했고 경찰까지 출동한 바 있다. 하지만 “사과하시고 넘어가시죠”라는 경남 직원의 권유에도 당시 경남 김종부 감독은 “우리가 잘못한 게 없는데 사과할 마음이 없다”면서 그 대치를 계속 이어나갔다. 의견이 다를 수는 있지만 나는 이런 행동도 지지한다. 잘못한 게 없다면 없는대로 버티는 것도 감독의 의견이다. 차라리 부산 시절 페레즈처럼 팬들과 설전을 펼치는 게 오히려 더 용기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김상식 감독의 이번 행동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전북현대의 최근 경기력과는 논외로 분노한 팬들이 단체로 목소리를 내면 거기에 어떤 방식으로건 대화를 하는 게 옳았다. 아주 짧게라도 “죄송하다. 남은 경기에서는 실망시켜드리지 않겠다”고만 해도 그나마 민심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기면 경기 후 “팬들에게 승리를 선물해 기쁘다”거나 패하면 “팬들에게 죄송하다”는 말부터 기자회견을 시작하는 감독이 정작 팬들 앞에서는 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건가. 김상식 감독은 단 몇 마디라도 팬들 앞에서 했어야 한다. 팬들의 이런 항의가 정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의견 그대로라도 표출하는 편이 나았다.

이날 현장에 모인 팬들은 김상식 감독과 소통하지 못하고 메가폰을 잡은 이가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 김상식 감독의 경기 후 기자회견문을 읽어 내려갔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감독은 바로 앞에 있는데 그 감독은 입을 닫고 팬들은 기자들과 감독이 나눈 대화를 함께 읽으며 감독의 의중을 들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다. 전북이라는 빅클럽을 이끄는 수장이라면 기쁠 때만 팬들과 함께하는 게 아니라 이럴 때도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그래야 전북 감독의 자격이 있다. 이기면 팬들에게 인사를 하러 가고 지거나 비기면 그대로 라커로 들어가는 건 지도자의 철학치고는 별로다.

ⓒ프로축구연맹

김상식 감독은 이날 이런 일이 벌어지면서 “몇몇 팬들하고만 대화를 나누겠다”고 했지만 일언지하에 전북 팬들로부터 거절 당했다. 화가 잔뜩 난 많은 팬들 앞에서 메가폰을 잡는 게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축구팀의 감독이라면 치욕을 무릅쓰고라도 많은 팬들 앞에 섰어야 한다. 구단 직원도 아니고 경기 감독관이 이걸 중재하고 있다는 것도 황당한 일이다. 몇몇 팬들과 따로 대화를 나눌 수는 있어도 많은 팬들 앞에는 서지 않겠다는 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발상이다.

김상식 감독의 행동도 매우 실망스러웠지만 더 실망스러운 건 허병길 대표이사다. 그는 팬들이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나와 달라고 했지만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비겁하다. 허병길 대표이사는 평소에도 “나한테 기자들 전화가 오지 않게 하라”며 구단 프런트를 단속한다. 소통 창구를 아예 막아버렸다. 혹시라도 자신에게 기자가 전화를 할 경우 구단 프런트에 난리가 날 정도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직원들이 늘고 있다. 허병길 대표이사가 이렇게 자리를 피해버리면 그 밑에서 일하는 구단 직원은 뭐가 되나. 당장 이날도 김상식 감독과 허병길 대표이사가 반응하지 않자 팬들은 불이 환하게 켜진 구단 사무실을 향해 볼멘 소리를 했다. 책임지고 말을 해야 할 사람이 피해버리니 정작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비판의 화살이 돌아간다.

뒤에 숨는 감독과 그 보다 더 뒤에 숨어서 얼굴도 안 비치는 대표이사는 지금 이런 행동으로 전북현대의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경기력이야 몇 경기 좋지 않을 수도 있다. K리그에서 2위를 하고 있는데 팬들이 성적에 무슨 불만이 그렇게 있는지 너무한다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북이라는 엄청난 팀에서 실망스러운 과정이 한 시즌 내내 계속되고 있다는 건 문제다. 더 큰 문제는 그나마 김상식 감독을 지지하던 팬들도 이제는 등을 돌려 ‘상식아웃’을 같이 외치기 시작했다는 거다. 여기에 반드시 김상식 감독과 허병길 대표이사는 대답을 해야한다. K리그에서 가장 큰 구단 감독이 팬들의 요구에도 묵묵부답인 채 버스에 오르는 모습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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