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ㅣ탄천=김귀혁 기자] 성남과 수원FC 서포터스가 한 마음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28일 성남FC는 탄천종합운동장에서 펼쳐진 수원FC와의 하나원큐 K리그1 2022 23라운드 순연 경기에서 뮬리치와 팔라시오스의 득점에 힘입어 이승우가 한 골을 넣는데 그친 수원FC에 2-1 승리했다. 이날 승리로 성남은 올 시즌 수원FC와의 전적을 무패(2승 1무)로 유지함과 동시에 3연패의 늪에서 벗어났다.

성남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했던 경기였다. 최근 당선된 새로운 성남FC의 구단주인 신상진 시장은 지난 7월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성남FC는 1부 리그에서 매년 100억원씩 쓰면서 꼴찌를 거듭하고 있다”면서 “지역을 홍보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자긍심을 높여줘야 하는데 부정부패 의혹 등을 받고 있다. 성남FC 하면 비리의 대명사가 됐다. 이런 구단의 구단주를 하고 싶지 않다”며 매각을 포함한 다양한 방향으로 해체를 검토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후 지난 20일 <스포츠니어스>의 보도를 통해 성남FC가 매각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구단 잔존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포함해 여러 방면으로 검토에 들어갔으며 성남 지역 내 기업에 구단을 매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타 지자체로의 매각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는 상황이다. 축구팬이라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연고 이전의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이에 많은 K리그 서포터스들이 한 마음으로 함께했다. 경기 전 날(27일)만 하더라도 FC안양, 제주, 수원삼성, 광주, 부산, 강원, 대전하나시티즌 등 많은 팀들이 걸개를 통해 성남FC 팬들의 뜻을 함께했다. 실제로 성남FC 서포터스인 '블랙리스트'는 구단의 매각 가능성이 흘러나오자 K리그의 모든 팀 서포터스에게 메시지를 통해 지지 동참 의사를 전했다. 이후 걸개 제작에 소요된 비용은 따로 영수증 청구를 부탁하기도 했다.

당연히 성남 서포터스도 움직였다. <스포츠니어스>에서 20일 보도가 나오고 하루 뒤인 FC서울 원정 경기에서 성남 서포터스는 '성남시는 구단 매각 결정을 철회하라'라는 걸개를 게시했다. 이후 이날 경기를 앞두고 15시 30분부터 탄천종합운동장의 N석, E석, 원정석 부근의 게이트에서 서명 운동을 펼쳤다.

기자가 탄천종합운동장에 찾아간 14시 30분부터 이미 성남 서포터스는 운집해 있었다. 대부분은 계획에 맞춰 준비한 상황에서 세부 일정을 조율하고 있었다. 성남 서포터스 '블랙리스트'의 정의현(30) 대표는 "처음에는 매각 가능성 소식이 와닿지가 않았다"면서 "이번에 성남 시장이 바뀌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특히 서울과의 경기 바로 전 날(20일) 밤에 기사를 보고 당황스러웠다"고 전했다.

그 이후 짧은 시간이었지만 블랙리스트는 많은 것을 준비했다. 정 씨는 "우선 블랙리스트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다른 팀들 서포터스에게 도와달라는 요청을 했다"면서 "그러고 나서 서명 운동도 준비하고 호소문도 만드는 등 각자 사회에서의 역할이 있는 상황임에도 열심히 준비했다. 그러다 보니 너무 정신없이 일주일이 흘렀다"라고 덧붙였다.

K리그1 12팀과 K리그2 11팀을 포함해 많은 구단 서포터스에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 과정에서 고민이 있었다. 정의현 씨는 "아무래도 연고 이전의 가능성도 있는 상황에서 FC서울, 제주, 그리고 우리와 걸개 사건으로 사이가 좋지 않은 강원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조심스러웠다"면서 "다행히 많은 팀들이 지지 의사를 건넸다. 메시지 내용에 '성남이 흔들리면 전체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강조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강원 서포터스 나르샤에게 메시지를 보내기가 조심스러웠다"면서 "나르샤 측에서 전화가 왔다. 작년에 많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고민을 했지만 그것은 축구장 안에서의 일로만 하겠다고 하더라. 현재는 외부의 일이기 때문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감동받았다. 다른 구단에 연락을 돌릴 때 걸개 비용에 대해서도 청구해주면 당연히 지불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청구하는 팀이 없었다. 너무 감사하기도 하면서 혹시 청구해주시면 바로 비용을 보내드리려고 한다. 그 외에도 부산에서는 우리가 SNS로 호소문을 올리기 전부터 지지 의사를 보냈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성남FC 서포터스 '블랙리스트' 제공. 익명의 팬이 선물한 걸개, 이는 경기 시작 전에 올라옴.

타 팀 팬들 뿐만이 아니었다. 이날 성남은 경기 시작 전 N석에 위치한 스탠딩 석에 한 걸개를 끌어올렸다. 보통 흰 천에 라카로 글씨를 새긴 것과는 다른 걸개였다. 정의현 씨는 "익명의 한 팬이 선물을 해주셨다. 아마 현수막 제작 업체를 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면서 "어제 그 현수막을 받으러 갔다. 실제로 보니 너무 감사했다"라고 말했다. 성남과 타 팀의 서포터스뿐만 아니라 일반 팬들까지 하나 된 마음이었다.

수원FC 서포터스 '리얼크루'의 동참

ⓒ성남FC 서포터스 '블랙리스트' 제공. 익명의 팬이 선물한 걸개, 이는 경기 시작 전에 올라옴.

이날 경기에서는 원정팀인 수원FC 서포터스 '리얼크루'도 함께 동참했다. 각 팀은 전후반 각각 10분과 30분에 한 마음으로 동시에 걸개를 들었다. 사전에 두 서포터스 간 협의를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 씨는 "리얼크루에서 먼저 제안이 왔다"면서 "안 그래도 걸개 작업을 생각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같은 시민구단이다 보니까 남일 같지가 않다고 하셨다. 당연히 도와주는 일이라고 말씀하셔서 너무 감사했다"라고 말했다.

두 서포터스는 오후 네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 자리에서 만난 리얼크루의 곽재일(28) 대표는 "같은 시민구단의 팬으로서, 더 나아가서는 이것이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면 K리그 전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성남만의 문제가 아닌 K리그 전체가 위기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며 이야기를 전했다.

이후 곽 씨는 "경기 중에 가장 전달성이 좋은 수단을 생각하다 보니 걸개로 합의를 봤다"면서 "성남 팬분들과 같은 시간대에 걸개를 게시하면 함께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서명 운동 역시 원정석 앞에서 진행해도 괜찮냐는 이야기를 미리 전달받아서 다 인지하고 있었다. 벌써 수원FC 팬분들이 자발적으로 서명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운영진에서는 걸개를 제작하는 것 외에 큰 움직임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곽 씨는 성남FC와의 추억을 언급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2016년에 깃발 더비를 하고 우리 구단기를 탄천종합운동장에 걸어봤던 경험도 있다"면서 "걸개 내용에 대해서 고민이 많아 우선 성남 측에서는 어떤 내용의 걸개를 제작했는지 받았다. 이후에는 운영진들의 의견을 조율해서 가장 좋은 내용을 선정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이건 K리그 전체의 문제다. 우리의 행동으로 잘 해결해서 앞으로는 이런 좋지 않은 선례가 남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곽 씨의 이야기대로 원정석 게이트 앞 수원FC 팬들의 서명이 이어졌다. 서명에 동참한 윤진석(55) 씨는 "성남은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면서 "수원시에는 '수원삼성'도 있고 '수원FC'도 있다. 다 같은 마음이겠지만 개인적으로 시민 구단이다 보니까 더 애착이 간다. 이는 단지 성남만의 문제가 아니고 K리그 전체 시도민구단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연히 서명에 동참했다. 있을 수가 없는 문제다"라며 소신을 밝혔다.

그러면서 윤 씨는 "당장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문제다. 당장의 피해는 없지만 이 문제에 대해 굉장히 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만약에 매각과 같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무언가 사달이 일어날 것 같다. 그리고 성남은 역사가 있는 구단이다. 결국 이것은 자산이자 하나의 문화가 된다. 이를 키워야 하는데 그저 잡초로 만들어 버리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여기 있는 대부분의 팬들도 열을 받으며 서명을 하고 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윤 씨의 하소연은 계속 이어졌다. 그는 "솔직히 성남이 경쟁자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는 결국 축구장 안에서만 싸우는 것이다. 외부적인 일이 연관 될 수는 없다. K리그 팬들의 반응을 보면 다 같이 힘을 합쳐야 한다. 내가 알기로도 많은 구단들이 성남FC를 도와주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면서 축구 팬들의 단합된 모습도 보여줬으면 좋겠다. 성남 시장님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구단주님께 전합니다

ⓒ성남FC 서포터스 '블랙리스트' 제공. 익명의 팬이 선물한 걸개, 이는 경기 시작 전에 올라옴.

이번 성남의 매각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는 신상진 성남 시장이 부임한 직후부터 불씨가 시작됐다. 그는 지난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로운 성남 시장으로 당선된 이후 조선일보를 통해 "전임 시장의 부정부패를 깨끗이 청소하겠다"라고 발언하며 성남FC에 대한 불투명한 미래가 제기됐다. 이후 서두에 언급했던 <주간 조선>과의 인터뷰가 도화선이 됐다. 그리고 20일 <스포츠니어스>의 매각 본격화 보도를 통해 불이 지펴 올랐다.

블랙리스트 정의현 대표 역시 <주간 조선>과의 인터뷰를 봤다고 전하며 "이게 '진짜 맞는 건가'싶었다. 시장이기도 하지만 구단주 아닌가"라면서 "이 팀의 구단주가 맞는지에 대한 의심과 함께 너무 정치적으로만 접근하는 모양새였다. 물론 이렇게 빠르게 구단 매각을 추진중이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한창 시즌이 진행 중이다. 팀 성적도 안 좋은데 선수들의 사기도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게 제일 안타깝다"라고 전했다.

현재 성남시 행복소통 청원에는 '성남FC 매각을 반대합니다'라는 청원글이 올라온 상황이다. 접수된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이천 명 이상이 동의하면 성남시는 30일 내에 그 글에 대한 공식 답변을 밝혀야 한다. 해당 글은 지난 22일에 올라왔으며 채택까지는 불과 200여 건 만을 남겨두고 있다.

채택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정 씨는 "결국 청원에 대한 답변은 시의 공식 입장과 같다. 어떤 식의 답변이 나올지 궁금하다. 청원이 그래서 중요하다"면서 "사실 청원 외에도 현재 시장 비서실을 통해 간담회를 요청하고 있다. 지난 서울과의 경기가 끝나고 다음 날(21일)에 바로 전화를 했다. 거기에서는 9월 중으로 간담회 이야기를 했는데 언제 이야기가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계속 전화를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후 간담회에서 가장 하고 싶은 말에 대해 물었다. 정의현 씨는 짧고 명료하게 "살려달라"라고 이야기 한 뒤 "혈세가 들어가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축구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성남시를 알릴 수 있다. 일본이나 근처 이웃 나라들은 성남일화 시절의 막강함을 통해 그 존재를 알고 있다. 가령 성남시청 소속의 다른 종목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도 성남시 소속이라는 것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축구는 성남 소속이라고 딱 나와있지 않나"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서명을 진행하는 이유도 많은 지지를 바탕으로 팀이 운영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만약 간담회가 이뤄진다면 오늘 서명한 명단을 제출해서 많은 지지가 있음을 호소할 것이다"라면서 "김천상무 서포터스에서도 따로 성명서 파일을 보내달라고 연락이 왔다. 거기에서도 서명을 받고 나중에 수도권 원정에 왔을 때 혹은 우편을 통해서 전달해준다고 하더라"라고 덧붙였다.

직설적일 수밖에 없었던 걸개 내용

ⓒ성남FC 서포터스 '블랙리스트' 제공. 익명의 팬이 선물한 걸개, 이는 경기 시작 전에 올라옴.

사실 지난 21일 서울과의 원정 경기에서 진행한 걸개도 갑작스럽게 진행한 것이었다. 정 씨는 "<스포츠니어스>의 매각 가능성 보도가 나온 뒤에 바로 다음 날이 경기였다"면서 "그 기사를 밤에 보고 급하게 회의를 한 뒤 천을 사러 갔다. 보통 동대문에 있는 단골 가게에서 천을 구매하지만 일요일이라 휴무였다. 그래서 수소문 끝에 가게를 찾았는데 가격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그 당황도 잠시뿐이었고 어렵지 않게 구매했다"고 밝혔다.

이날 걸개 내용은 직설적이었다. 선수단 입장 시에 '너희는 경기에만 집중해 팀은 우리가 지킬게'라는 문구로 시작하여 '시민이 시장인 성남, 시민이 반대하는 매각' 등 정치 관련 요소를 연상케 하는 발언이 포함됐다. K리그 정관 및 규정 제6장 상벌 관련 내용에서도 정치적 언동에 대한 규정을 명시해놨다. 만일 관중에 의해 이것이 수행된다면 클럽에 대해 징계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정 씨는 굴하지 않으며 "그 요소를 감안하더라도 무조건 직접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면서 "사실 대부분의 걸개는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직설적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모두가 동의했다. 그 이후 시간을 정해놓고 문구에 대한 아이디어를 받았다. 그리고 투표와 함께 겹치는 내용은 다 걸러낸 끝에 최종 12개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걸개 제작 중 에피소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정 대표는 "어제 성남시청에서 초등학생이 1인 시위를 한 것을 알고 있었다"면서 "그때 탄천에서 걸개를 작업하느라 찾아가지 못했다. 그런데 그 학생이 친구와 함께 응원가를 부르면서 오더라. 1인 시위 한 학생이 맞는지 물었더니 어떻게 알았냐고 하더라. 원래 경기장에도 자주 오는 친구인데 참 기특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정 씨는 옛 시절은 언급하며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인 2003년 때부터 성남의 팬이었다"면서 "예전 성남일화 시절에 안산으로 연고 이전을 한다는 기사가 뜨자마자 형들과 다음 날 새벽에 구단을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2016년에는 강등의 아픔도 겪었다. 그런데 올 시즌이 지금까지 팬을 했던 시절 중에 가장 힘들다. 이렇게 무기력한 시즌은 처음이다. 잘해보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외부적인 이슈에 당하면서 너무 쉽게 주저앉는 모양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정 씨를 포함해 성남의 서포터스는 경기장 안에서 만큼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익명의 팬이 선물한 '성남의 별은 오직 성남의 하늘에서만 빛난다'라는 걸개를 시작으로 매 시기마다 준비한 걸개를 꺼내 들었다. 수원FC 팬들 역시 같은 시간에 맞춰 함께 걸개를 들어올리며 '연고이전 반대'라는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경기 종료 후 성남 팬들은 2-1 승리에 감격하며 환호했다. 성남 시민들이 즐거웠던 순간이었다.

다음은 경기 시작 전, 전후반 각각 10분과 30분에 올라온 성남FC와 수원FC의 걸개 사진이다.

#경기 시작 전

#전반 10분

#전반 30분

#후반 10분

#후반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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