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 인천 남동=김귀혁 기자] 송주희 감독은 본연의 역할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다.

18일 경주한수원WFC(이하 경주한수원)는 인천 남동 아시아드 럭비구장에서 열린 2022 WK리그 인천현대제철과의 맞대결에서 전반 추가시간 상대 손화연에게 실점을 허용한 뒤 후반전 박세라의 페널티킥 실축이 겹치며 0-1로 패배했다. 이날 결과로 경주한수원은 승점 동률이던 선두 인천현대제철에 다시 승점 3점 차로 벌어지게 됐다.

최근 경주한수원은 WK리그 절대 1강으로 군림하던 인천현대제철을 위협하는 존재로 급부상했다. 인천현대제철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무려 9회 연속으로 WK리그 왕좌의 자리에 올라선 가운데 경주 한수원은 2020년부터 바로 아래에서 턱밑까지 추격하며 독주 체제를 위협했다. 2년 연속으로 승점 1점 차 2위를 기록함과 동시에 챔피언결정전에서 계속 맞선 전적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인천현대제철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인천현대제철 김은숙 감독도 시즌 시작 전 <스포츠니어스>와의 인터뷰에서 "양강 체제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별 9개를 달았다. 경주한수원은 별이 없다. 양강 체제라는 말은 솔직히 어울리지 않는다고 본다"면서 "'어우현(어차피 우승은 현대제철)'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라며 챔피언의 여유를 보인 바 있다.

하지만 경주한수원은 다시 절치부심했다. 2020년 송주희 감독 부임 이후 줄곧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지난달 27일부터 9일까지 펼쳐졌던 '제21회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이었다. 항상 앞길을 가로막던 인천현대제철을 결승전에서 만나 이룬 우승이라 더욱 뜻깊다. 2016년 창단한 경주한수원 팀 역사상 첫 트로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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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양강체제라는 말이 제법 익숙해질 만하다. 올해에도 두 팀은 WK리그와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에서 각각 두 차례 맞붙어 2승 2패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경기 전 <스포츠니어스>와 만난 경주한수원 송주희 감독도 이날 경기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 속에서는 지난 여자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의 자신감도 묻어났다.

송주희 감독은 "지난 인천현대제철과의 결승전에서 코로나19와 부상 악재까지 겹쳤음에도 선수들이 준비를 굉장히 잘했다. 내가 택하건 그렇지 못하던 어떤 선수들이 들어와도 다 각오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자신감이 이전 대회를 통해서 충분히 입증됐다"면서 "올해 우리의 심리적인 콘셉트가 윈 어글리(Win-Ugly)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송 감독은 "윈 어글리는 승리를 위해 그 과정이나 방법을 찾는 전략이다. 우리는 그 준비를 위해 전술과 심리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설정해서 준비했다"면서 "전술적으로는 부분 스리백과 포 백을 준비하고 선수 유형에 따라 포메이션에 다양성과 변화를 줬다. 그런 것들이 팀의 색깔로 잘 입혀진 것 같다. 오늘도 득점도 득점이지만 과정과 결과를 다 가져올 수 있도록 준히하고 나왔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경주한수원은 2016년에 팀을 창단했다. 비교적 긴 역사는 아니다. 그리고 2020년부터 송주희 감독의 지휘 아래 최근 여자선수권 대회에서 구단 역사상 첫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3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것이 어떻냐는 질문에 송 감독은 작심한 듯 "우리는 3년 만에 우승을 한 게 아니라 3년 차에 우승을 한 것이다"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송주희 감독은 "오랜 시간 준비한 것이 우승을 위해서도 있다. 하지만 그 보다 팀의 내실 강화와 함께 팀 구성원들이 정말 프로답게 대접받고 거기에 걸맞게 운동장에서 보여주는 것을 중점으로 뒀다"면서 "그런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선수들이 정말 프로페셔널 해졌다. 선수들의 수준이 함양될수록 결국 경기력도 같이 올라간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것은 경기장 안에서의 매너도 있을 수 있다. 생활 면에서도 우리는 미디어를 활용해 경주한수원 선수로서의 외적인 활동도 많이 하는 편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여자축구를 활성화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면서 WK리그를 좀 더 많이 알리고 공기업의 특성에 걸맞게 팀을 꾸려나갈 생각이다"라면서 "최근에는 법인화를 하기 시작했다. 법인화를 통해 여자축구라는 틀 안에서 다양성을 가지고 계속해서 나아가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구단은 법인화를 통해 클럽 운영에 좀 더 독자적인 운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

송 감독은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우리 지역에 팀들이 더 많이 생겨나고 지역 사회에 발전이 있었으면 좋겠다. 경주라는 지역이 화랑대기부터 많은 대회를 개최하는데 거기에 여자축구가 빠지면 안 되지 않나"라면서 "첫 우승을 한 시점에서 장기적인 관점 안에서는 많은 팀들도 생기고 팬심을 확보함으로써 지역 주민들에게도 재밌고 수준 높은 플레이를 보여주고 싶다. 우리 경기를 실제로 보면 굉장히 속도가 빠르다고 놀라워하신다. 그런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팀이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좀 더 프로페셔널해진 선수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원래 처음에 경주에 왔을 때도 굉장히 좋은 선수들이었다"면서 "그런데 우리가 학원 스포츠에서 했었던 생각들에 쏠려 있다 보니 규율에만 너무 집착한 모습이었다. 지금은 프로 선수들이기 때문에 자율성을 바탕으로 봐야 한다. 자기 이름을 등에 새기고 대회를 치르는 선수들이다"라며 운을 뗐다.

이후 송주희 감독은 "자기를 노출하는 시간보다는 팀 스포츠니까 규율을 앞세워서 '같이 열심히 해야 돼'라는 의식이 팽배했다"면서 "지금은 좀 더 자율성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늘어났다. 시즌을 치르면서 세 번의 로빈 라운드를 거치는 동안 선수들이 조금씩 경기에 대한 경쟁력이 올라가고 예전보다 도전 의식이 많아졌다. '이겨야 해'라는 생각에서 어떻게 이기느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개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잘 안다. 하지만 팀이 뭘 해야 할지 명확하게 알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지 않나"라고 전했다.

규율 중심의 팀 분위기에서 선수들이 좀 더 다양한 생각을 통해 어떻게 이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이다. 송 감독은 "구체적인 계획을 바탕으로 개인이 잘하는 것, 팀이 해야 하는 것, 그리고 변치적인 것 등 상대에 따라서 우리가 대응하는 전략이 점점 뚜렷해지기 시작했다"면서 "선수들이 만약에 개인 컨디션이 안 좋아도 팀이 준비하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런 균형이 과거와는 굉장히 차이가 날 정도로 달라졌다"라며 보충 설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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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WK리그의 새로운 라이벌전으로 떠 오른 경주한수원과 인천현대제철. 하지만 송주희 감독은 이 말을 부인했다. 그는 "우리보다 잘하는 팀도 없고 못하는 팀도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상대에 따라 강한 팀 혹은 약한 팀이라고 의미 부여를 하면 안 된다. 외부에서 2강 체제라고 말하는 것 역시 우리가 바꾼 일은 맞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한수원이 어떤 색깔로 계속 입혀지고 발전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송주희 감독은 운동장을 바라보며 예를 들었다. 그는 "사실 이은지나 김진희와 같이 선수권 대회에서 굉장히 좋은 활약을 펼쳤던 선수들이 코로나19로 인해 현재 집에 있다. 선수권 때도 김성훈이 부상이 있었다"면서 훈련 중인 선수들을 가리킨 뒤 "하지만 지금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빠져 보이는 느낌이 없지 않나.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우리의 것을 한다는 원칙이 잘 입혀져 있다고 생각한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라는 말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평소에도 송 감독은 이 같은 원칙을 최우선으로 한다. 그는 "혹시라도 훈련을 하다가 자기 기분이 나오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면서 "나는 그 모습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 운동장 안에서만큼은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함부로 할 수 없다. 다른 것들은 다 관대하게 하지만 그 부분만큼은 나에게 중요하다. 운동장에서는 정말 냉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물론 규율이 없을 수는 없다"면서 "그 규율과 생활을 구분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선수들이 생활하면서 이를 구분할 수 있으면 더욱 좋지 않나. 우리 선수들은 프로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믿는다. 예를 들어 늦게 자는 것에 대해서도 나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선수들을 믿고 전체 그림을 봐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그런 모습이 팀에 점점 잘 묻어나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송 감독의 이 같은 말은 빈 말이 아니었다. 올해부터 팀에 심리학 박사를 두어 선수들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스포츠인으로서 정신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느냐를 찾다 보니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면서 "구체적으로 선수들에게 '열심히 해'라고 하기보다는 '너의 정신이 어떻기 때문에'라고 설명하는 것이 낫다. 어차피 계획은 다 운동장 안에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개인의 정신은 내가 어찌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후 송 감독은 "여전히 학원 스포츠에서 올라온 문화가 있기 때문에 정신적인 면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선수들이 심리 상담이나 강의를 받다 보니 아는 단어도 많아졌고 수준도 높아졌다. 박사님이 예전에 몇몇 팀을 봐주신 적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여자 팀을 봐달라고 말씀드렸다. 박사님도 흔쾌히 응해주셔서 그 이후에 구단에 요청할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

송 감독은 계속해서 심리학 박사 초빙 이후 달라진 점을 이야기했다. 그는 "박사님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교육이 아닌 때로는 현장에 투영할 수 있는 단어를 많이 알려주신다"면서 "당연히 경기에 뛰지 못해 부정적인 선수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박사님이 그 선수들의 감정을 잘 완화시킨다. 박사님이 괜찮다면 계속 나아갈 생각이다"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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