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의 표적 선발? 부천 이영민 감독 아들에게 ‘콜리더’ 맡긴 서포터스

[스포츠니어스 | 안양=조성룡 기자] FC안양의 표적 선발이 ‘대박’을 만든 것일까.

16일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2 2022 FC안양과 부천FC1995의 경기에서 홈팀 안양이 안드리고의 해트트릭과 백동규의 한 골에 힘입어 박창준의 두 골에 그친 부천을 4-2로 꺾고 승점 3점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3위 부천과 4위 안양은 이 경기로 순위를 맞바꿨다.

이날은 올 시즌 부천의 첫 안양 원정이었다. 부천 이영민 감독의 올해 첫 안양종합운동장 방문이었다. 이 감독은 “내게도 좋은 추억이 많은 곳이라 감회가 새롭다”라면서도 “나는 이제 부천의 소속이고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왔기 때문에 추억에 잠기는 것보다 좀 더 차분한 마음으로 어떻게 경기를 풀어갈 것인지 고민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안양의 팬들은 이영민 감독을 제법 의식하고 있었다. 특히 이영민 감독의 아들은 열성적인 안양 팬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안양은 이번 경기에 아예 ‘표적 선발’을 준비했다. 바로 이영민 감독의 아들인 이승근 씨(20)가 안양 응원석에서 ‘콜리더’로 나선 것이다. 원래 서포터스에서 북을 치던 이승근 씨는 아버지를 적으로 만난 날 아예 메가폰을 잡았다.

알고보니 사연이 있었다. 올해부터 안양 서포터스 A.S.U 레드는 응원을 주도하는 주요 멤버들에 대한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그래서 올 시즌 안양 응원석의 콜리더 역할은 이승근 씨와 동갑내기 친구인 박세환 씨(20)가 번갈아서 맡았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순번이 되어 이 씨가 메가폰을 잡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금까지 안양의 두 차례 부천 원정에서는 박 씨가 콜리더를 했다. 박 씨는 “두 경기를 내가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내가 할 줄 알았다”라면서 “그런데 (이)승근이가 응원석으로 온다고 하더라. 그 때 느낌이 왔다. 승근이가 이번에는 마음을 먹고 응원을 주도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라고 웃었다.

이 씨 또한 “사실 두 번의 원정에서는 좀 미안한 마음이 있다. 작년에 부천이 안양을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부천 원정에는 조용히 일반석에 가서 가족들과 경기를 봤다”라면서 “그런데 여기는 안양이다. 솔직히 내가 콜리더를 자청했다. 아버지를 많이 의식했다. 아버지와 한 번 이렇게 붙는 것도 재밌는 그림이 될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아버지와 아들 ⓒ이승근

여기에는 안양 팬 ‘형’들의 음해(?)도 있었다. 이 씨는 “안양 팬 생활을 함께한 형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너는 부천 이영민 감독 아들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안양 팬 이승근으로 남고 싶은가’라고 묻는다”라면서 “이번 경기에서는 안양 팬 이승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웃었다.

정말 이날 이 씨는 안양 응원석의 한가운데서 응원을 주도했다. 온갖 응원가와 조직적인 구호가 이 씨의 입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저 멀리 부천 벤치에는 이영민 감독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묘한 그림이었다. 두 사람이 같은 팀도 아니다. 서로 다른 팀을 지도하고 응원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날 경기가 두 팀 모두에게 아름다운 한 판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3위 부천과 4위 안양의 맞대결에서 안양이 4-2로 승리를 거뒀다. 이 씨의 옆에 자리하던 ‘콜리더 동료’ 박 씨도 “이러다가 집에 못들어가는 거 아니냐. 귀가했더니 부천 응원하는 가족 세 명에게 많이 혼나는 거 아니냐”라고 놀렸다.

이 씨 또한 “사실 경기 전에 잠깐 아버지를 만났다. ‘경기 끝나고 연락해라. 어떻게 같이 귀가할 수 있으면 같이 가자’고 하셨다”라면서 “그런데 이렇게 됐으니 혼자 가야겠다. 아니 최대한 늦게 가야겠다. 가족들이 모두 자고 있을 때 조용히 집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에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은 이승근 씨 한 명 뿐일 것이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은 좀처럼 감출 수 없다. 경기가 끝나자 이승근 씨는 동료들과 환하게 웃으며 하이파이브로 승리를 자축했다. 이 장면은 중계 화면에도 그대로 잡혔다. 경기 후 만난 부천 이영민 감독의 표정은 상당히 어두웠다. 묘하게 두 장면이 겹치면서 이승근 씨의 귀가가 더욱 더 걱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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