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나는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김태영을 좋아했다. 투혼을 앞세워 수비를 펼치는 그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그의 쇼맨십도 멋졌다. 코뼈가 부러진 채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나와 ‘타이거 마스크’라는 별명을 얻었던 김태영은 월드컵이 끝난 뒤 펼쳐진 K리그 경기에서도 그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 이미 코뼈는 다 아물었지만 팬서비스를 위해 7월의 무더위에도 그 마스크를 착용한 채 경기에 임하는 모습은 대단하면서도 놀라웠다. 아직도 그가 2002년 한일월드컵이 끝난 뒤 환영 행사에서 “여러분들의 타이거 마스크 김태영입니다”라고 했던 인사도 잊혀지질 않는다.
하지만 최근 그의 행보를 보고 있다면 깊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는 현재 무려 3개의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는데 이 중 2개는 ‘지금 굳이 맡아야 하나’라는 의문이 남는다. K3리그 천안시축구단 감독을 맡고 있는 그는 예능 프로그램에 더 집중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각 군부대를 돌며 경기를 펼치는 tvn 예능 프로그램 <전설이 떴다 ‘군대스리가’>에서 감독을 맡고 있고 SBS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도 새롭게 감독을 맡게 됐다. 과연 이 시점에서 김태영 감독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외도(?)를 하고 있는 게 옳은가에 대해서 나는 대단히 부정적이다.
현재 천안시축구단은 K3리그 16개 팀 중 15위에 머물러 있다. 19번 경기를 해 딱 3번 이겼다. 14위인 FC목포보다도 승점이 4점이나 모자란다. 이대로 간다면 K4리그로의 강등까지도 걱정해야 할 성적이다. 그런데 그 팀 감독은 각 군부대를 돌아다니며 예능 프로그램을 찍고 있고 여성 연예인들의 팀을 지도하고 있다. K리그에서 성적이 부진해 깊은 시름에 빠졌던 경남FC 설기현 감독과 성남FC 김남일 감독이 쏟아지는 예능 프로그램 섭외를 거절하고 2002년 한일월드컵 20주년 행사 참석도 최소한으로 줄인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김태영 감독의 본업은 예능에 나가는 게 아니라 K3리그 천안시축구단에 집중하는 것이다.
더 안타까운 건 천안시축구단이 내년 시즌부터 K리그2에 입성한다는 점이다. 올 시즌 성적과 관련없이 천안시축구단은 프로화에 성공해 내년부터는 K리그 무대에서 뛰게 됐다. 아무리 K4리그로 강등되지 않는 상황이더라도 K리그2에 올라가려면 올 시즌 중간 이상의 성적은 보여줘야 한다. K3리그에서 최하위권에 머무는 팀이 행정만 잘해 프로로 올라간다면 과연 천안 팬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프로 무대에서도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까. 당장 내년 봄부터 프로 팀으로 전환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팀의 수장은 너무 팀을 자주 비우고 있다. 성적이 좋아도 이 정도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용인되는 게 쉽지 않은데 김태영 감독은 너무나도 책임감이 없다.
지난 시즌 K3리그에서 김포FC는 극적으로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다. 올 시즌 천안시축구단과 마찬가지로 김포FC는 지난 해 성적과 상관없이 프로화를 결정지은 상황이었지만 K3리그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멋지게 프로로 올라왔다. 마치 K3리그 우승으로 승격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상황은 극적이었다. 당시부터 팀을 이끈 고정운 감독은 지금도 김포와 함께 K리그2에서 멋지게 싸우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K3리그 팀이 K리그2로 올라와 기대하는 모습은 이런 거다. K3리그에서부터 함께 성장한 선수와 새롭게 영입한 선수가 조화를 이루며 팬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 김태영 감독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같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팀의 홍보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김태영 감독을 비롯한 2002년 월드컵 멤버들은 대부분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보다는 포커스가 여전히 2002년에 맞춰져 있다. 김태영 감독의 섭외도 ‘천안시축구단 감독’보다는 ‘2002년 레전드’에 맞춰져 있다. 그 누구도 김태영 감독이 텔레비전에 나와 웃음을 선사한다고 해 천안시축구단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김태영 감독은 지금 천안시축구단에 집중해 성적을 내야 할 때다. 아니면 차라리 예능 프로그램에만 집중하기 위해 과감히 현재 직업을 포기하는 게 낫다. 지금 이 모습은 천안의 팬들과 축구인들에게 상처만 주는 행동이다.
프로 무대에서 팀 성적이 바닥을 기는데 감독이 예능 프로그램 축구팀 두 개의 감독을 맡아 고정 출연하고 있다면 이건 당장 경질이다. 경질뿐 아니라 팬들과 언론의 거센 비판을 받을 만한 심각한 일이다. 당장 여러분들이 응원하는 팀 감독이 이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해 보시라. 이건 ‘실드 불가’다. 하지만 천안은 아직 팬층이 두텁지 않고 프로팀이 아니라 비판이 적을 뿐이다. 당연히 비판 받아야 하는 일이고 김태영 감독과 구단이 결단을 내려야 할 일이다. 이래서 김태영 감독이 내년에 프로팀 감독을 맡을 수나 있겠나. 프로팀을 맡을 만한 책임감은 있겠나. 천안시축구단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기인데 이 시기에 감독은 다른 일에 더 집중하고 있다.
현역 시절 누구보다도 팀에 헌신하던 그 ‘타이거 마스크’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어서 더 실망스럽다. 천안시축구단은 내년 시즌 K리그2에 참가하기 위해 그 누구라도 할 것 없이 노력하고 있다. 사무국 체계를 개편했고 선수를 보강했다. 천안이 프로팀을 창단하는 건 천안축구센터와 연계한 야심찬 사업이기도 하다. 박준혁과 강지용, 김평래, 조재철, 윤용호 등 K리그에서 이름을 날린 선수들은 물론 외국인 선수도 세 명이나 보유하고 있다. 선두권에서 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성적은 바닥을 치고 있고 감독은 예능 프로그램에 연달아 나오고 있다. 지금 김태영 감독이 집중해야 할 곳은 ‘군대스리가’와 ‘골 때리는 그녀들’이 아니라 K3리그 천안시축구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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