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 광양=조성룡 기자] 승부를 떠나 훈훈했던 순간이었다.

24일 광양전용구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2 2022 전남드래곤즈와 부산아이파크의 경기에서 양 팀은 치열하게 90분 동안 승부를 펼쳤지만 득점에 실패하면서 0-0 무승부를 기록, 승점 1점씩 나눠가져야 했다. 10위와 11위를 기록하고 있는 두 팀은 무승부로 순위 또한 유지됐다.

이날은 제법 남다른 날이었다. 전남에 부임하며 첫 프로 무대 지휘봉을 잡은 이장관 감독이 부산을 만나는 날이었다. 이장관 감독은 부산의 레전드 선수다. 11년의 선수 생활 동안 10년을 부산에서 뛰었다. 대우로얄즈와 부산아이콘스, 부산아이파크 시절을 모두 경험한 역사의 산 증인이다.

특히 이 감독은 2002년 3월 24일 구덕운동장에서 열린 울산현대와의 홈 개막전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선발로 출전한 이 감독은 하프타임에 옷을 갈아입고 결혼식을 올렸고 이후 후반전까지 뛰기도 했다. 그만큼 부산에서 이 감독이 차지하는 위상은 대단하다. 하지만 이제 전남의 감독으로 부산을 꺾어야 했다.

이 감독은 경기 전부터 팬들을 만나고 왔다. 그는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그라운드에서 부산의 엠블럼을 보니까 묘한 감정이 든다"라고 말했다.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경기 전 부산의 원정석에는 이장관 감독을 응원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전남 장내 안나운서가 선수 소개 이후 마지막으로 이장관 감독을 소개할 때 오히려 부산 원정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경기 시작 직후에는 다시 한 번 부산 원정석에서 응원가가 흘러나왔다. 이장관 감독의 선수 시절 응원가였다. 이후 이들은 승부의 세계에 집중했다. 양 팀은 치열하게 싸웠다. 하지만 부산 레전드가 부산에 승점 3점을 선물하지도, 부산이 구단 레전드에게 승점 3점을 선물하지도 못했다. 0-0으로 종료됐다.

경기 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했다. 부산 선수단이 팬들에게 인사를 하러 갈 때 이장관 감독이 여기에 동행한 것이다. 부산 팬들은 이장관 응원가로 그를 맞이했고 이 감독은 고개를 숙이며 화답했다. 부산 박진섭 감독과 김병석 대표 또한 조심스러워 하는 이 감독에게 기꺼이 인사하러 갈 것을 권유했다.

이장관 감독은 "상대 팀 감독에게 걸개를 걸고 이장관 노래를 불러줘 눈물날 정도로 감사하다"라며 진심어린 인사를 전했다. 승부의 세계는 치열하다. 하지만 이장관이라는 존재는 부산에서 잠시 승부를 잊을 만큼 큰 존재였다. 선수 생활 동안 부산에 진심을 다했던 '선수' 이장관은 15년이 지난 이후 '감독' 이장관이 되어 부산 팬들의 진심을 돌려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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