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한수원 제공

[스포츠니어스 | 경주=조성룡 기자] "이게 경주한수원이에요."

4일 경주 황성3구장에서 열린 현대제철 2022 WK리그 경주한수원과 수원FC위민의 경기에서 홈팀 경주한수원이 후반전에 터진 나히의 선제 결승골에 힘입어 수원FC위민을 1-0으로 꺾고 승점 3점을 획득했다. 경주한수원은 같은날 창녕WFC를 3-1로 꺾은 인천현대제철에 골득실에서 밀려 2위로 내려갔고 수원FC위민은 3위 추격에 실패했다.

양 팀 모두 중요한 경기였다. 특히 경주한수원은 WK리그 1위를 놓고 인천현대제철과 승점과 골득실까지 모두 똑같은 상황이었다. 수원FC위민을 다득점으로 잡아야 조금이라도 우위에 점할 수 있었다. 이 와중에 전반전은 0-0으로 끝났다. 하프타임에 반전을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경주한수원은 하프타임에 라커룸에서 상당히 일찍 나왔다.

"아버지 사랑해요" 경주한수원의 진심

경주한수원 선수들은 센터서클 부근에 도열했다. 도대체 어떤 중요한 행사기에 선수들이 라커룸에서 쉬지도 못하고 등장하는지 궁금했다. 알고보니 이들에게는 충분히 그래야 하는 순간이었다. 6년 동안 선수단의 발로 활약한 버스기사 박광석 과장이 한수원 본사로 보직을 이동하게 된 것이다.

경주한수원 여자축구단은 2016년 창단했고 2017시즌부터 WK리그에 참가했다. 박 과장은 경주한수원의 창단 멤버다. 행사는 성대하지 않았지만 알찼다. 이신선 단장이 감사패를 전달했고 송주희 감독이 꽃다발을 박 과장에게 선물했다. 특히 송주희 감독은 만감이 교차하는 것처럼 보였다. 박 과장에게 따뜻한 포옹을 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이후였다. 경주한수원 선수단은 박 과장에게 깜짝 선물을 했다. 바로 영상 편지였다. 경주한수원의 선수들은 박 과장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한 선수는 "골프 친구 아버지"라면서 "다른 데 계시더라도 맛있는 거 먹고 다니고 합시다"라며 정말 딸 같은 말을 하기도했다. 외국인 선수 나히도 "파파"라며 한국말로 "사랑해"를 외쳤다.

ⓒ 중계화면 캡쳐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후반 35분에 이들은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0-0으로 팽팽하게 맞서던 와중 경주한수원 나히가 헤더로 득점에 성공했다. 나히는 득점 이후 홀로 관중석으로 질주했다. 그리고 A보드를 제치고 관중석으로 올라가 누군가를 안았다. 그 인물 역시 박광석 과장이었다. 이날 경기의 승리는 박 과장에게 바치는 셈이었다.

"아버님이요? 진짜 어른이자 우리 부모님이죠"

하프타임에 상당한 시간을 빼서 박광석 과장을 환송했지만 송주희 감독은 여전히 "우리 팀의 어르신께 더 대접할 수 있었다면 더 해드리고 싶었다"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송 감독이 말하는 박 과장은 '우리 부모님'이자 '진짜 어른'이다. 송 감독은 "감독과 코치만 중요한 게 아니다. 이 분도 우리 일원이었다"라고 말한다.

송 감독은 "박 과장님은 부모님이다. 정말 그냥 자식처럼 선수들을 챙겨주시고 스태프들을 존중해주셨다"라면서 "그냥 단순한 운전일 수 있다. 하지만 '아버님'이 그 이상의 가치 있는 일을 팀을 위해서 해주셨고 헌신해 주셨다. 나도 선수들도 진심으로 존경했던 분이 아버님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버님은 선수들에게 조심하고 존중해주는 큰 어른이었다"면서 "자식들을 무한정으로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은 부모 밖에 없다. 아버님이 딱 그랬다. 항상 '그래 잘했어'라고 이야기해주고 뭔가 아쉽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않고 기다려주셨다. 내가 있는 3년 동안 아버님이 선수들에게 싫은 소리한 적을 본 적이 없다"라고 전했다.

ⓒ 중계화면 캡쳐

그러면서 송 감독은 살짝 뒷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사실 '아버님'의 본사 이동 이야기가 나왔을 때 수 차례 본사에 남아있게 해달라고 요청을 해왔다"라면서 "물론 새롭게 오시는 분도 굉장히 잘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함께해온 분이자 너무나 잘하셨던 분을 떠나보내는 게 아쉬웠다"라고 말했다.

'창단 멤버'가 떠나 마음 아픈 김혜인

박 과장과 함께 경주한수원의 창단 멤버로 남아있던 김혜인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김혜인은 "아버지는 운전 뿐만 아니라 모든 잡다한 일들도 선수들을 위해 직접 나서서 하셨다"라면서 "그냥 운전해주시는 분이 아니다. 진짜 아버지 같다. 선수들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선수들은 소중한 외박이나 외출을 받고 박 과장에게 '아버지'라 부르며 함께 식사하는 경우도 있다. 김혜인은 "아버지가 경주 지역을 잘 아신다"라면서 "선수들이 외출이나 외박을 받으면 아버지를 따라가서 맛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오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혜인은 "아버지가 워낙 취미 생활이 많으시다"라면서 "골프도 치신다. 여기 있는 선수들과 골프도 치러 다니기도 한다. 아마 아버지가 한수원 본사로 이동을 하셔도 계속 연락하고 지내는 선수들이 많을 것이다. 심지어 외국인 선수들도 말이 통하지 않아도 아버지의 진심을 알 수 밖에 없으니 한국어로 '아버지'라 부르며 따른다"라고 전했다.

"사고 없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헌신해주셔서 감사하다. 본사에서도 무사고로 정년까지 잘 하셨으면 좋겠다"라는 김혜인은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이제 경주한수원에는 창단 멤버가 몇 남지 않았다. 박광석 과장이 떠나면서 선수단에는 손다슬과 박예은, 그리고 김혜인이 창단 멤버다. 김혜인 또한 "진짜 마음이 많이 아프다"라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이게 경주한수원입니다"

박광석 과장은 정년을 맞아 은퇴를 하는 것이 아니다. 어찌보면 기업 내에서 단순히 부서를 옮기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경주한수원은 진심을 다해서 박 과장을 환송했다. 송 감독은 "이게 경주한수원이다. 사람과 인권을 중요하게 여기는 팀이다"라면서 "그리고 팀의 터줏대감이자 역사에게 이 정도는 해드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 과장 입장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우승트로피를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일 수 있다. 송 감독 또한 "아버님의 바램대로 우승 트로피를 들 수 있도록 하겠다. 우리 경주한수원 여자축구단은 아버님이 어디에 계시든 함께하는 마음으로 하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박 과장은 이날 마이크를 잡고 "내 할 일만 했을 뿐인데 이렇게 큰 선물을 주셔서 감사하다"라면서 "올해는 꼭 우승하길 바란다"라는 덕담을 건넸다. 마지막까지 경기를 지켜본 그는 경기 후 선수단과 함께 기념촬영까지 하며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선수들도 "아부지"를 외치며 가운데로 데려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경주한수원의 역사는 짧다. 하지만 앞으로 꾸준하게 흘러갈 이 역사는 경주한수원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 한다. 이날 경주한수원은 작은 일에도 진심을 다해 또 하나의 기록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논하는 '명문'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다. 그 중에는 우승컵과 함께 '오고 싶어하는 팀'이 되야하는 것도 있다. 경주한수원은 아직 우승컵은 없다. 하지만 점점 이렇게 '오고 싶어하는 팀'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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