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삼성 팬들은 왜 E석과 W석에서 항의 걸개를 들었나?

[스포츠니어스 | 수원월드컵경기장=김귀혁 기자] 수원팬들이 걸개를 든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수원삼성은 3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인천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하나원큐 K리그1 2022 19라운드 맞대결을 치렀다. 경기에서는 마무리에서의 세밀함이 떨어지며 득점 없이 무승부로 마무리됐다. 이날 결과로 수원은 리그에서 6경기 연속 무승(3무 3패)의 고리를 이어간 채 세 경기 연속 무득점의 침체에 빠졌다.

이날 수원의 관중석에 여러 내용의 걸개가 걸려 있었다. 그런데 보통 대부분의 걸개는 서포터스가 있는 N석에 있는 반면 이날은 가볍게 경기 보기를 원하는 E석과 W석을 중심으로 걸개가 게시됐다. 수원이 이날까지 FA컵 포함 최근 7경기 연속 무승(3무 4패)을 달리고 있지만 경기력에 대한 비판의 걸개도 아니었다. 오히려 N석에 있는 여러 배너가 경기력 촉구의 의미에서 거꾸로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걸개는 총 9개였다. E석에 여섯 개가 있었고 W석에는 세 개가 달려 있었다. E석에는 ‘No violence PEEACE in bigbird’, ‘Nㅣ들 것이 아닌 모두의 N석’, 골때리는 그놈들+한술 더 뜨는 구단’, ‘간담회는 언제?’, ‘JUMPING 무서워서 빅버드 오겠나’, 프렌테 크레용팝’이라는 내용이었다. 반대편 W석에도 ‘서포팅은 주먹이 아닌 목소리로’, ‘폭력에는 레드카드’, ‘누가 가짜 지지자?’라는 걸개가 W석 난간에 묶여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E석은 킥오프 5분 전부터 시작 후 2분여간 직접 걸개를 든 반면 W석에는 난간에 묶여있는 형태였다.

이 내용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지난 FC서울과의 슈퍼매치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원 서포터스는 경기 전 N석 출입구 앞에서 서로 음식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하는 포트락 행사를 진행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곳을 지나가는 FC서울 중학생 팬을 수원의 고등학생 팬이 번쩍 들어 올린 뒤 땅으로 꽂고 나서부터였다. 당시 폭행 피해자 주변으로 수원 팬들이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유니폼을 곧장 벗은 뒤 겁에 질린 모양새로 서둘러 현장을 빠져나왔다.

해당 영상은 경기 다음 날 한 커뮤니티를 통해 공개되며 비판 여론이 거세졌다.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가해자는 즉시 사과문을 게시했으나 ‘같이 점핑을 하자고 들어 올리다가 그분을 놓쳐 넘어지게 되었다’라고 해명하며 또 한 번 논란이 생겼다. 수원 구단측도 첫 사과문에 ‘해프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논란을 부추겼다.

이후 구단은 다시 사과문을 작성하며 가해자의 2년간 홈경기 출입 정지, 가해자 소속 소모임에게 ‘경고 및 단체복 착용과 배너 설치 금지’, ‘클린 서포터 간담회 개최’ 등의 처벌과 대책을 이야기하며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해당 소모임 역시 사과문을 작성하며 가해자에게 회원 자격 상실과 함께 프렌테트리콜로와 반다(탐, 스네어 등의 응원도구를 연주하는 집단) 업무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다른 K리그 팬들 뿐만 아니라 같은 수원 팬들 역시 분노했다. 해당 사건이 벌어진 뒤 피해자의 해명, 구단의 대응과 처벌 수위 등이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전부터 소위 말하는 강성 팬들과 일반 팬들 사이의 가치관 차이에 따른 의견 충돌이 보이지 않게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 폭행 사건이 터지면서 점화되고 말았다.

왜 걸개를 게시했나

이 사건과 관련해 <스포츠니어스>는 E석과 W석에서의 걸개 퍼포먼스를 주도한 장훈(32) 씨를 경기 전에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먼저 장훈 씨는 시작 동기에 대해 묻자 “그 영상을 보고 황당하면서도 충격도 많이 받았다”면서 “아시다시피 사과문이 사과문 같지 않은 느낌이 많았다. 구단뿐만 아니라 가해자와 단체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 입장에서는 변명처럼 느껴지더라”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일이 그동안에도 소소하게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시작하게 됐다”면서 “항의하고 싶은 생각이 가장 컸다. 처음에 팬 커뮤니티에서 어떤 분께서 E석에 걸개를 걸겠다고 말씀하시고 내가 바로 평소에 직관하는 W석에도 걸개를 걸겠다고 이야기 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리고 조용히 묵묵하게 있는 다수도 뒤에서 응원하고 있다는 목소리를 내고 싶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장훈 씨를 만난 시간은 경기 시작 두 시간 반 전인 오후 5시였다. 마침 이 시간은 걸개 게시를 위해 커뮤니티에서 약속한 사람들이 모이기로 한 시간과 겹쳤다. 장훈 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여러 수원 팬들이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물론 이들이 만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장훈 씨는 “오픈 채팅방을 통해 현재 들어오신 분들이 30명 정도 된다”면서 “이 중에 사정상 후원만 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아마 오늘은 10명 정도 참여할 것 같다. 마음만 전달해주신 분들께서도 ‘못 가서 죄송하다’라면서 보내주신다. 후원금을 받으면서 감사하면서도 걸개 내용에 더욱 신중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라며 후원자와 참여해준 팬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그렇다면 채팅방에서는 주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을까. 먼저 장훈 씨는 경기 사이 기간을 걱정했다고 전했다. 그는 “그 사건이 거의 2주가 지난 상황이다”라면서 “그 사이의 경기는 다 원정에서 진행했다. 계속 이슈들은 나오는데 홈경기에서 어쩔 수 없이 걸개를 걸지 못하니 시간이 붕 뜨지 않나. ‘걸개 내용이 강조가 될까’라는 걱정 어린 시선도 있었다”라고 밝혔다.

걸개 내용 선정 과정에 대해서도 장훈 씨는 “계속 채팅방에 브레인스토밍처럼 문구를 올려서 투표를 했다”면서 “소모임처럼 누가 이끄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고 개인이 모여서 진행하기 때문에 중구난방이 될 수 있기는 하다. 그래도 디자인의 경우에도 틀을 직접 제작해주신 분이 계셨고 그분이 업체까지 알아보셔서 맡겨주셨다”라며 운을 뗐다.

이후 그는 “사실 다들 처음 만난 사이다 보니까 형식적인 대화 위주로 주고받았다”면서 “아무래도 다들 ‘현생’이 있다 보니 주로 저녁이나 밤에 회의를 진행했다. 일정하게 정해진 시간은 없었고 매 이슈가 나오거나 어떤 분께서 ‘지금 주문 넣어야 할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하면 그 상황에 맞춰서 회의하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을 거쳤다”라고 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뜻을 모은 사람들이 이토록 조직적인 행동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서로 간 공유하고 있는 가치가 일맥상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가치는 앞서 언급했듯 사과문에 대한 진정성, 처벌 수위 등에서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장훈 씨 역시 처벌 수위에 대해 묻자 “2년은 너무 약하고 실효성도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가해자가 아직 학생으로 알고 있는데 2년이라는 시간이 오히려 면죄부처럼 주어진 모양새다. 그리고 가해자를 방조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처벌도 없었다. 소모임이 걸개를 안 걸고 단체복을 입지 않는 것은 구단이 공식적으로 내려야 하는 처벌 수위가 아니라고 본다. 오늘도 연맹에서 징계를 검토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구단에서 선제적으로 그렇게 했어야 한다고 본다”며 말을 이어갔다.

물론 장훈 씨는 소모임의 형태 자체에 대해서는 존중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내 사견으로는 소모임의 유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면서 “뜻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집단으로 응원을 하면 좀 더 조직적인 응원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물론 그 장점이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단점으로 부각될 수 있다. 만약 그것을 내부적으로 자정 하지 못한다면 없어지는 것이 맞다. 반대로 자정 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면 상관없는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훈 씨는 “나도 어렸을 때는 N석에서 응원을 하다가 W석으로 넘어오기는 했다. 가끔 N석 응원을 보면서 소위 말해 ‘뽕이 찬다'”면서 “각 섹터마다 차이가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문화인 것 같다. 영국처럼 전 관중이 응원을 한다기보다 축구를 즐기러 온 사람도 있고 서포팅하러 온 사람도 있는 것 아닌가. 어느 문화나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W석에서 욕하는 사람도 많고 반대로 N석에서 팔짱 기고 보러 오는 사람도 있다”며 본인의 신념을 이야기했다.

이후 그는 “하지만 이번 사태의 경우에는 범죄다”라면서 “범죄 행위가 일어났고 이를 말리는 사람도 없어 보였고 반성도 하지 않은 모양새로 비쳤다. 처벌 수위도 약하고 제대로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죄송합니다. 처벌 달게 받겠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가 주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지 않나. 언제부터 우리가 서울 팬과 같이 어깨동무를 했나. 수원 축구장에 온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인데 그렇게 이야기를 했으니 그런 것이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스포츠니어스>와 헤어진 장훈 씨는 기자를 통해 메시지를 보냈다. 기존에 인쇄 제작한 걸개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또 다른 걸개를 만들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참여해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좀 더 다양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제작했다”면서 “걸개 역시 다른 분들께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좌석을 기부받아서 진행한다”라고 밝혔다.

사실 걸개는 킥오프 전 후 오 분 동안 들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E석에서는 경기 시작 후 2분이 지나자 걸개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장훈 씨는 “구단 보안 측에서 다른 분들 관람에 방해가 된다고 요청이 와서 예정보다 빠르게 내렸다”면서도 “그래도 현장에서 걸개 내용을 보고 같이 들어주신 분들도 계셨다”며 뿌듯함을 드러냈다.

gwiman@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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